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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

로마서강해13 세가지 질문(롬3:27-31)

by essay2598 2024.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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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강해13 세가지 질문(3:27-31)

(3:27, 개정)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3:28, 개정)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3:29, 개정)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3:30, 개정)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3:31, 개정)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오늘 본문에서는 세 가지의 질문이 나옵니다. 첫 번째는 27절의 자랑할 것이 있느냐?”, 두 번째는 29절에 하나님님 누구의 하나님이냐?”, 세 번째는 31절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할 수 있느냐?”//란 질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랑의 질문이고, 인간 차별의 질문, 율법 폐지의 질문입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질문을 근거해서 로마서 4장부터 8장까지가 전개가 됩니다.

41-8절까지는 자랑의 문제입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예를 들면서 그가 공로를 세운 것이 없으면서도,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축복이다. 말합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부르시고, 복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하셨습니다. (무조건적인 부르심)

9절부터 5장 마지막 절까지는 할례자와 무할례자의 차별이 없다는 것을 다룹니다. 61절부터는 율법을 폐지하는 문제에 대해서 거론을 하는데 이것이 8장까지 갑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세 가지 질문은 8장의 마지막까지 가는 아주 중요한 질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자랑의 질문(3:27-28, 4:1-8)

 

먼저 자랑의 문제를 봅시다. 27절에 보면 우리 자랑의 근거가 무슨 법의 원리에서냐 아니면 행위에 근거해서냐 하는 것을 묻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에게 있어 자랑의 근거는 오직 믿음의 원리밖에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자랑이 무엇인가? 했을 때 자랑의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은 남보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낫다고 생각하면, 자랑을 하고 싶어 합니다. 어떤 사람의 경우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거칠게 자랑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세련되게 자랑을 합니다. 후자는 자신의 자랑이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나오도록 유도하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상공에 떠보면 집들이 전부 장난감 레고 같습니다. 사람들이 노는 모습을 보려고 운동장을 찾아보면, 운동장에서 노는 모습이 꼭 개미들처럼 보입니다. 땅에서 하늘을 조금만 올라도 사람들의 모습이 개미들처럼 보이는데,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에서 보면 인간은 보지도 않는 하찮은 피조물일 뿐입니다. 보이지도 않는 피조물인 인간들이 그 속에서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하는 것은, 개미들이 서로 자신의 다리가 더 길다고 자랑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바울은 피조물인 우리들을 향해서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 못을 박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신 것은 우리의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믿음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날드 반 하우스라는 빌라델피아의 제10장로교회 목사님께서 구원의 지리학이라는 예화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지면의 굴곡이 제일 심한 곳이라고 합니다. 일마일 이내에 있는 지역인데도 어떤 곳은 해저이고, 어떤 지역은 아주 높은 봉우리가 있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캘리포니아에 살고있는 사람이 캘리포니아주를 벗어나고 싶어서 에코 마운틴에 올라갔다고 합니다. 그 높은 산에 올라가서 나는 캘리포니아를 벗어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옆에 있는 사람이 당신이 아무리 높은 에코 마운틴에 올라가 있어도 그곳은 역시 캘리포니아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그러면 다시 휘트니산에 올라가겠다.”고 했습니다. 이 지역이 미국에서 제일 높은 지역이니 캘리포니아를 벗어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옆 사람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높은 곳에 올라가도 역시 캘리포니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캘리포니아를 벗어나는 길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캘리포니아주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반 하우스 목사님은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인간들은 사망 지역에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해저에서 살고 있고, 어떤 사람은 높은 산 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곳에 살고 있든지 인간은 사망 지역을 벗어나서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망 지역에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것도 이 땅의 가장 낮은 곳에 오셔서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그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 구원의 길이 바로 십자가라는 다리입니다. 이 다리를 통과하기만 하면, 생명의 지역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생명의 지역에 들어가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놓으신 십자가의 다리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아무도 자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다리를 통해서만이 생명의 땅, 즉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의를 가지고 하나님을 조금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서 하늘과 땅 사이에 어떤 다리를 놓아서, 그것으로 사망의 땅에서 벗어나, 생명의 땅으로 가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몰라서 하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하나님의 거룩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몰라서 하는 생각입니다.

계시록 6:16-17절을 보면, 어린 양의 진노의 큰 날이 임합니다. “그날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바위와 산에게 자신을 가려 달라고 절규하는 날이 될 것이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일어나면, 그 누도 피할 수 없고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고, 감당할 사람은 어린양의 피로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의 자랑하는 입을 틀어막기 위해서 율법의 청진기를 갖다 대시고, 다 죄인인 것을 보여 주시면서, 너의 선행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 때문에 너는 자신의 선행에 대해서 단1도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에게 혹시 선행이 아니라 믿음으로라는 이 말씀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야고보서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란 질문이 생길지 모르겠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증거가 무엇인가? 질문을 던져보면 됩니다.

구원에 이른 믿음의 증거는 크든 작든 삶의 열매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겉으로 봐서는 알 수 없는 진짜 밀과 가짜 밀을 구별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진짜 꽃과 가짜 꽃을 구별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어떻게 구별할 수 있습니까?

진짜와 가짜 밀을 물속에 하루 이틀 담가두면 됩니다. 그러면 진짜 밀알은 싹이 나지만, 가짜 밀알은 싹이 나지 않고 모조품 그대로 있습니다.

진짜와 가짜 꽃은 벌과 나비가 있는 곳에 두면 됩니다. 벌과 나비는 진짜 꽃 속에 꿀을 먹기 위해 가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생명의 싹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믿음으로 사망에서, 생명의 지역으로 일단 옮겨지면, 선행의 열매를 추구하고, 맺는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구원은 더 나은 생활과 삶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생명으로 가는 길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가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뿐입니다. 아무런 선행을 하지 않아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사망에서 생명으로 가게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은혜입니다. 따라서 여기에 우리의 자랑이 들어올 여지는 절대로 없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이렇게 자랑이 없는 은혜와 사랑의 복음(a boatr-free Gospel)입니다.

 

차별의 문제(3:29-30, 4:9-5:21)

 

세 가지 질문의 첫 번째는 자랑할 것이 있느냐?”인데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기 때문에 자랑의 여지가 없습니다.

두 번째는 차별이 있느냐입니다. 이것은 칭의에 근거해서는 차별이 없습니다.

할례를 받았든, 받지 않았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입었기 때문에,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구약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 아브라함의 후손, 선민이라는 특권 의식이 대단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버려진 사람들 즉,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칭의에 근거할 때, 이런 인간차별은 원천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할례를 통해서 선민으로 삼으셨을 때는.. 그들을 통해서 온 민족을 구원하는 복의 통로요, 구원의 통로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 된 삶을 살아가는 을 보이기 위해 아브라함을 먼저 부르셨고,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마치 자기가 잘나서, 선민이 된 것처럼 할례자와 무할례자를 구분 짓고 차별을 한 것입니다.

앞에서 다룬 자랑도 인간의 본성 속에 깊이 들어있는 문제지만, 인간차별이라는 것도 인간의 본성 속에 깊이 들어있는 문제입니다. 인간의 본성 속에는 이상한 차별의식이 들어 있습니다. 50평짜리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20평짜리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놀지 않으려고 합니다. 대학 학위라는 것에도 아주 깊은 차별의식이 박혀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의 삶은 달라야 합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칭의의 은혜로 의롭다 함을 받은 성도라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이웃과 지체를 놓고 차별하지 말아야 합니다.

죄 많은 세상에서 우리 모두가 편견과 차별로 부터 벗어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 편견과 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율법폐지 문제(3:31, 6:1-8:39)

 

세 번째는 율법폐지에 문제입니다. 바울은 믿음으로 율법을 필요없다고 폐하는 것이 아니라.. 굳게 세우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믿음으로 칭의구원을 얻는다면, 이제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이 필요 없다. 말을 하면 잘못된 것입니다.

구원파 이단의 문제도 이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율법이 필요 없다. 말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율법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을 세우는 역할을 합니다.

율법의 거울을 우리 앞에 두면 우리의 얼굴에 묻은 더러움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더러움을 제거해주지는 못합니다. 율법의 기능은 죄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들어내기는 하지만 씻지는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의 한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을 세우기 위해, 예수님이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왜 화목제물이 되셔야 했습니까?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의 율법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어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죄의 형벌인 사형을 받아야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제정한 법대로 사형이라는 형벌을 받아 죽어야지 만이 하나님의 공의의 상징인 율법이 세워지는 것이고, 공의의 하나님이 이라는 속성을 충족 시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20:28; 10:45).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제정하신 법을 충족시켜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죄인인 우리를 그냥 의롭다 여기시면, 하나님 스스로가 공의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포기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완전하신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실수하시는 하나님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인 율법을 충족시키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내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실행하시고, 스스로 충족하시고, 만족시키셔서 죄 많은 우리에게 칭의의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칭의의 교리는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을 완성하셨고, 세우시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세우셨기 때문에,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과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알 수가 있고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율법의 요구를 알면서도, 육신이 약해서 하지 못하는 것을,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신이 해결해 주셨습니다.

 

율법을 동전에 비유한다면, 동전은 스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금속을 틀에 부어서 만든 것입니다. 율법(도덕법) 동전을 만드는 원 틀이 바로 하나님(정직, 정의, 진실, 순수, 공평, 신실 등)입니다. 하나님의 모습이 율법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율법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율법은 우리가 살아야 할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율법의 기준 그대로 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님을 통해서 믿음으로 살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해 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점점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인 성령의 9가지 열매입니다.

 

우리는 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마라톤을 하는 것처럼 빨리 선행 쪽으로 달려가고 있고, 어떤 사람은 방향은 바로 잡았는데.. 가는 속도는 마치 손톱을 땅에다 대고 기어서 가는 것 같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이 두 사람 모두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크게 발전하는 사람도 있지만, 적게 발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이 칭의로 거룩하다 선포하시고,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여주셨기 때문에 이 후로는 생명의 역사가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크든 작든 생명의 역사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서 우리 주님이 이미 이루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일들은 우리의 공로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화목제물이 됨으로 인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하고// 높일 분이 있다면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어떤 이유로도 하나님의 사랑받는 형제와 자매를 차별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장과 깨달음의 속도는 다르지만, 하나님께서 세워나가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통해서 날마다 믿음의 공동체를 세워나가고, 오늘을 일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미스바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눔/ 예수 때문에

1. 지금 나의 가정을 자랑한다면, 무엇이 있는가? 그리고 미래의 나의 가정을 상상하면서 자랑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겠는가?(3가지 이상 나눠보라)

 

 

2. 믿음으로 의롭다함 받으면 왜 자랑할 수 없는가?(27)

 

 

3. 우리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똑같이 심판에 직면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같은가?(29-30)

 

 

3. 우리는 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마라톤을 하는 것처럼 빨리 선행 쪽으로 달려가고 있고, 어떤 사람은 방향은 바로 잡았는데 가는 속도는 마치 손톱을 땅에다 대고 기어서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이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을 닮은 꼴이라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크게 발전하는 사람도 있지만 적게 발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생명의 역사가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에 크든 작든 생명의 역사는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성도가 율법을 세우고, 완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 앞에서 겸손해야 하는 이유, 정직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의 화목제물이 되셔서 율법이 쓸데 없다고 폐하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바라보면서, 모든 일에 믿음으로 이기고 승리하는 미스바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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