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15 할례와 율법 이전의 칭의(롬4:9-15)
(롬 4:9, 개정)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롬 4:10, 개정)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롬 4:11, 개정)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롬 4:12, 개정)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롬 4:13, 개정)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롬 4:14, 개정)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롬 4:15, 개정)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마하 쿰 멜라(Maha Kunbh Mela)라는 힌두교의 종교 축제가 있습니다. 매 12년마다 갠지스강과 야무나강이 합류할 때 거행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행사입니다. 힌두교도들은 어려운 여행과 많은 비용과 차가운 강물도 아랑곳하지 않고, 카스트와 경제적 계급도, 일시적으로 제쳐 놓고 이 행사에 참석한다고 합니다.
알몸의 거룩한 사람들이 앞서서 수백만의 순례자들을 강물로 인도합니다. 힌두교 고행자(탁발승)들은 못 침대 위에 앉고, 깨어진 유리 위를 걷고, 뜨거운 연탄불 위에 눕습니다.
경배자들이 긴 칼을 가지고 자신들의 혀를 찌르는 모습은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무수한 신들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서 영원한 침묵을 지키도록 스스로 형벌을 집행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배자들은 눈이 멀 때까지 해를 쳐다봅니다. 어떤 경배들은 자신들의 손발을 고의적으로 약화 시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팔을 8년간 들고 지내왔다고 합니다.
어떤 힌두교 경전에는 “검은 강물과 흰 강물, 즉 갠지스와 야무나가 합류할 때 목욕하는 자는 하늘에 간다”고 되어 있습니다. 다른 경전에는 “이 장소에서 목욕하는 순례자는 온 가족의 속죄를 얻어낸다. 그리고 그가 백 개의 범죄를 저질렀어도 그가 갠지스에 닿는 순간 구속된다. 그 강물이 그의 죄들을 씻어버리기 때문이다.” 되어 있습니다.
이 행사를 치루는 동안 강가에는 많은 헌신자들이 발가벗고, 온몸의 털을 면도합니다. 면도된 털은 다 모아서 더러운 강물에 던집니다. 힌두고 경전에 “이렇게 던져진 털 매 가닥마다 당신은 하늘에서 백만 년씩을 약속받는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적인 갈증을 가지고 온 자들이 이 행사를 마치고 마음에 평화와 갱신된 신앙을 가지고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무엇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그들이 생각하는 신은 무서운 진노를 품고 인간들을 괴롭히는 신입니다. 감히 인간들이 가까이 갈 수 없는 무시무시한 신입니다. 이런 신의 진노를 달래기 위해서 힌두교도들이 위와 같은 의식을 치루는 것입니다.
죄악된 인간의 본능은 외부적인 의식과 외부적인 행동으로 신의 진노를 달래고, 신에게서 인정을 따내려고 합니다. 이것이 모든 종교의 본질입니다. 바울 당시의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대인들의 두 가지 자랑거리는 토라와 할례입니다. 본문은 할례와 토라를 다루면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할례와 토라를 받기 이전의 것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본문 4:5에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가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유대인의 자랑거리인 할례와 토라 이전에 이미 ‘의롭게 있었다’는 진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할례 이전의 칭의(9-12)
바울 당시의 유대인들은 할례가 자신들을 모든 사람들로 부터 구분해 주는 독특한 표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할례가,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받아주시는 구원의 수단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할례를 받으면, 구원이 확보된다고 믿었습니다.
[모세의 책]에는 “할례받은 사람은 결코 지옥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랍비들은 말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지옥 대문에 앉아서 할례 받은 이스라엘 사람은 누구든 그리로 들어가도록 허락하지 않는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할례는 초대교회의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유대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할 경우 할례를 받아야 하는가? 하는 것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 문제 때문에 사도행전 15장에 기록된 대로 최초의 예루살렘 총회가 열렸고, 총회의 결정된 회람장에는 “할례는 구원을 받는 데 필요하지 않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할례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구원하는 은혜의 도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롬2:25-29).
할례 문제는 빌립보 교회의 문제였고(빌3:2-3), 갈라디아서 전체가 다루는 문제이기도 합니다(갈5:1-4). 갈라디아서에 보면 할례가 구원에 필수적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갈 5:6, 개정)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할례를 주장하면 핍박이 없고 할례를 무시하면 핍박이 있을 정도로, 갈라디아 교회는 할례의 문제로 심각했다.
(갈 5:11, 개정)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갈 5:12, 개정)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초대교회에 이렇게 심각한 문제가 되었던 할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창세기로 돌아가 보십시다. 창세기 17:10-14절에서는 할례는 하나님이 아브라함 및 그의 후손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주신 언약의 표시입니다.
언약의 표시로서의 할례는 창세기 17장에서 나오는데, 이미 그 이전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칭의교리가 있었습니다.
(창 15:6, 개정)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할례 받을 때 아브라함은 99세, 이스마엘은 13세 였습니다(창17:23-25). 이스마엘 출생 시 아브라함이 86세였습니다(16:6).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최소한 할례 받기 14년 전에 이미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15:16).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언약을 받은 것은 75세 때였습니다(창12:1-4). 할례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 맺어진 언약관계의 표시입니다. 할례는 아브라함이 처음 언약을 받은 후 24년 만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신약의 세례는 신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것을 상징합니다. 성찬은 재림 시까지 예수님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죄의 대가를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통해서 대신 지불하셨다는 ‘구속의 은혜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나 성찬은 어디까지나 이미 이루어진 것에 대한 표시일 뿐이며, 그것이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칭의 이후에 할례를 받은 것은 할례자든 무할례자든 아브라함의, 믿음의 발자취를 따르는 모든 자들의 조상이 되게하기 위해서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의 모델이 되게하기 위해서입니다.
토라(율법) 이전의 칭의(13-15)
그래서 13-14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롬 4:13, 개정)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롬 4:14, 개정)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결코 외부적인 의식(할례)이나, 외부적인 행동(율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한 번 살펴조십시오(창12:3; 15:6; 18:18; 22:18).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내용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와 네 후손을 통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하늘의 별, 땅의 티끌, 바다의 모래처럼 많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이런 후손을 통하여 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2)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가나안이라는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3)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씨가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번영과 보호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4) 그런데 이러한 씨와 땅의 약속이 구속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었습니다.
(갈 3:16, 개정)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롬 8:16, 개정)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롬 8:17, 개정)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씨와 땅의 축복된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는데,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축복 된 약속을 이어받은 상속자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이렇게 엄청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약속의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이미 이루어진 것입니다.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입니다(롬7:12). 그러나 율법은 구원의 수단, 칭의의 수단으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정말 하나님의 이런 율법을 완벽하게 시킨다면, 하나님의 상속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이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타락한 인간이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율법은 우리에게 ‘의’를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율법의 목적은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의를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자기의식이나 도덕 행위를 통해서 구원을 받겠다고 하지만, 범죄한 인간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이루기 위해 죄의 대가를 지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의 값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지불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경은 우리 모두를 향해서 ‘대가 없이 믿음으로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얻은 자들이기 때문에’, 본문 9절에 ‘이 복(이 행복_개역한글)’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의 선행과 나의 종교의식과 무관하게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으로 의롭다. 여겨주신 ‘칭의의’ 은혜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들이 저와 여러분이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붙잡으시고, 마음 깊이 새기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롬4:17절을 보면,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죽었던 저와 여러분을 살리셨습니다. 죄인인 우리에게 의도 없고, 거룩함도 없고, 믿음도 없는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를 믿기만 하면, 그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 거룩하다 여기셔서, 의인의 자리로, 거룩한 자녀요 백성의 자리로, 믿음의 자리로 불러주셨습니다. 지금도 그 일을 우리의 삶 속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기쁨으로 찬양하는 미스바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만큼 완벽하게 우리의 신분을 의롭다. 보장하시는 분이십니다. 나의 행동 때문에 이것이 없어지는 것으로 착각하고 불안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눔/ 그 사랑(아버지 사랑 내가 노래해)
1. 9-15절에서 바울이 다음의 순서를 논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의롭게 여기셨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가족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명하셨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가족에게 율법을 주셨다.
이것은 오늘 본문에 유대인의 자랑거리 할례 이전에 이미 칭의가 있었으며, 토라 이전에 이미 칭의가 있었다는 진리를 설명하고 있다.
2. 특별히 할례의 문제는 초대교회 당시에 유대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할 경우 할례를 받아야되는가 받지 않아도 되는가 하는 심각한 문제였다.
이 문제 때문에 사도행전 15장에서 최초로 예루살렘 총회가 개최되었다. 총회의 결정은 “할례는 구원에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 할례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롬2:25-29).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례의 문제는 빌립보교회(빌3:2-3), 갈라디어서 전체가 다루는 문제가 되었다(갈5:1-4).
갈라디어서에 할례가 구원에 필수적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무엇인가?(갈5:6)
그럼에도 갈라디아 교회는 할례의 문제로 심각했다(5:11-12).
3.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을 때 무엇이 달라지는가?
2-3절
- 6-8절
16절
- 18절
4.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들은 복된 사람입니다(9절).
롬4:17절을 보면,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가지고,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하셨고, 지금도 하고 계신 모든 일들에 대해 감사의 찬양을 올려 드릴 수 있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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