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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14 칭의의 복(4:1-8)

by essay2598 2024.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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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14 칭의의 복(4:1-8)

 

(4:1, 개정)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4:2, 개정)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4:3, 개정)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4, 개정)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4:5, 개정)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4:6, 개정)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4:7, 개정)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4:8, 개정)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을 칭의라고 합니다. 칭의라고 할 때 다 아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겠지만, 칭의의 교리가 그렇게 쉽고,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는 공로 중독증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해야만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사단이 보기에도 이 교리가 기독교의 핵심 교리이기 때문에, 이 교리를 막으면, 구원받는 길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이 교리에 대한 깨달음을 방해 합니다.

 

제가 질문을 한 가지 해보겠습니다. 만일 구원파에 속한 사람이 여러분들에게 와서 구원 받았습니까?” 질문을 한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혹시 글세요, 구원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는 천국에 가봐야 알지요라고 말할 미스바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겸손함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성도가 이 질문에 대해서 , 구원받았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보고 구원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라고 또 질문하면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글세, 뭘보고 알지? 성경? 하나님의 말씀?”하는데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혹시 바르게 대답해서 나는 성경에서 믿는 사람이 구원받는다고 했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을 믿습니다!” 대답하면, 또 이런 질문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구원받았습니까? 몇 년, 몇 월, 며칠입니까?” 대개 이 질문에 있어서 거의 모든 성도의 말이 막힙니다. 자기가 구원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몰겠다는 것입니다. 확신이 점점점 줄어 드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라면, 다른 것은 다 무너져도,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았다는 분명한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확신이 자꾸만 없어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왜 이런 확신이 없어지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틀림없이 자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에 근거해서 구원받았다고 말하다가도, 자신의 모습을 보니까, 구원받은 것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여기에 굴복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본문의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두 인물

오늘 본문에는 두 인물이 나옵니다. 4:1-5에서는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그리고 6-8절에서는 다윗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바울은 이 두 사람의 인물을 통하여 칭의 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 아브라함과 다윗을 들었을까요? 그것은 마태복음 1:1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위의 자손이라고 족보를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수많은 성경의 인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소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그들의 조상이며, 뿌리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조상이라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는 전체 유대인들의 구원을 책임지는 핵심 보루입니다.

만일 바울이 아브라함도 행위로 칭의 된 것이 아니므로,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면, 유대인들이 구원받은 근거로 내세우는 행위의 의가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면, 그 후손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들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유대 역사의 기둥으로서 대단한 자부심을 주는 왕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경우에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것이 입증되면 유대인들의 행위구원 사상은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선조로서, 한 사람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써 이와 같이 유대인들 사상의 중심적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두 사람의 생애를 통하여 칭의 교리를 증명한다면, 그것은 가장 확실한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이 본문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을 예로 든 데는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사실이라면, 예수 그리스도 이전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의 구원이..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기준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여기서 아브라함 시대나 다윗 시대에도 구원받는 방법이 동일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약이나 신약에서도 결코 구원받는 방법에 차이가 없다. 오직 하나님의 방법이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

 

창세기 12장을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4절에서는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라고 합니다. 여기에 아브라함의 장점이 나타납니다.

좀 더 내려가서 14절에서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라고 말합니다.

사래는 당시 왕에게 추천할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내를 생각할 때마다 어디로 가든지 아브라함은 불안했습니다.

당시 풍속으로는 여자가 아름다우면 남자는 죽여 버리고, 아내를 빼앗 샀기 때문입니다. 자칫 죽게 될 상황에서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든지 내 아내라 하지 말고, 내 누이라 하라고 약속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아내를 건드리지 못하게 했지만 아브라함이 이런 일을 했습니다.

그 일로 인해 애굽 왕 바로가 아주 많은 재물을 아브라함에게 줍니다. 아브람은 뻔뻔스럽게도 이 재물을 받아서 갔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아내를 팔아서 재물을 얻고, 살았던 것입니다. 물론 이것을 그 당시의 문화적 시각으로 보아야 하겠지만, 그렇게 본다고 해도, 아내의 생명과 순결을 걸고 살아가는 것은 아주 비겁한 남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13:8에서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는 말씀도 나옵니다.

재산문제가 걸리면 형제간에도 서로 싸웁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관련되어 있기에 이 싸움이 보통 싸움이 아닙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경우는 특별합니다. 연장자로서 자신이 먼저 선택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카 롯에게 네가 먼저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롯이 보았을 때 현재 사해 지역이 당시에는 너무나 기름져서 그곳을 선택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14장을 보면, 그 당시에 그돌라오멜이라는 왕이 나옵니다. 그는 소돔 고모라의 왕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배를 받던 소돔 고모라 왕이 지배에서 벗어나자, 그돌라오멜 왕이 그 지역의 왕들을 모아 연합군을 만들고는 소돔 고모라 성을 치러 내려왔습니다. 이 전쟁에서 소돔 고모라는 참패를 당했고, 그 결과 롯은 그의 처자와 재산 모두를 빼앗겼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이 롯의 상황을 알고 잘 되었다.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롯이 어려움을 당하자 바로 뒤따라갔습니다.

14:14절을 보면,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쫒아갔다고 했습니다. 작은 대대의 단위를 가지고 여러 왕들이 모여 있는 연합군을 쳐서 이겼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방어를 위하여 318명을 평소에 훈련 시켰고, 적은 병력으로 연합군을 쳐서 롯과 그 재산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살렘왕 멜기세덱을 만나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줍니다.

그리고 소돔 고모라 왕으로부터는 재물을 주겠다는 제의를 받았지만 제물을 받지 앖습니다.

다만 우리 함께 싸운 군인들이 나가서 먹고 마신 것은 계산하고, 그들을 대우해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아브라함은 물질 면에서 아주 바른 사람이었습니다.

이일로 인해서 두려워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5:1이 나옵니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은 이렇게 두려워하는 자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네 방패다고 말씀하시고, “내가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대하여 아브라함은 상급은 그만두고, 우리 종들도 자녀들을 낳고 염소와 양과 소와 나귀들도 새끼들을 낳는데, 왜 저에게 약속대로 씨를 주시지 않습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종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세우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엘리에셀이 상속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네 몸에서 나는 네 씨가 상속자가 되리라고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데리고 밖에 나가셔서 하늘의 별들을 보시면서, 저 별들이 보이느냐? 네 후손이 저와 같이 많아지리라.” 그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를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15:6)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시점에서 아브라함의 상태가 어떠했길래 하나님이 그를 의롭다 하셨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좋은 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를 나쁘게 취급하고 세상 군대를 두려워한 연약한 점들도 있었습니다. 우리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갈등을 느꼈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기준 앞에서는 그저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아브라함이나 우리가 동일한 사람들입니다. 똑같이 믿음이 연약하며, 죄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믿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의 의를 그에게 덧입혀 주시면서, ‘라는 도장을 찍어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판결 선언문입니다.

 

4:5에 핵심적인 내용이 나옵니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을 통해서 드러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로 부터 의롭다 함을 받을 만한, 일을 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롬4:5을 이렇게 받기 힘들어합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있는 공로 중독증입니다. 평생 교회에서 일을 했지만, 자기의 부족한 점을 먼저 보게 되기 때문에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롬4:5의 말씀을 받으며, ‘믿음 생활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다윗의 경우

 

다윗의 경우에 대한 6-8절의 말씀은 시편 32편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32:1-2을 보면,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32:3절을 보면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입을 열지 아니할 때 죄를 회개하지 아니할 때 얼마나 괴로운지 다윗이 종일 신음하였습니다. 이것은 마치 뼈가 녹는 것과 같은 엄청난 고민과 고통을 말합니다. 또 회개하지 않을 때, 주님의 거룩하신 손이 주야로 자기를 누르는 것과 같은 체험을 합니다. 온몸의 진액이 말라서, 마치 가물어 갈라지는 땅과 같이 되어, 죽고 싶은 지경이라고 다윗은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시32:1-2절에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다윗은 고백합니다.

그리고 다윗은 회개한 이후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32: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다윗이 믿음로 기도했더니 주께서 다윗의 죄악을 사하여 주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로부터 죄 용서함의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다.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다. 고백합니다. 이 모든 것이 다윗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기에 그 사람은 복된 사람이라 말합니다.

미스바 여러분이 확실히 예수님을 믿는다면, 여러분의 죄가 사함 받았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비롯 시편의 기자가 가리어졌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 여러분의 죄와 허물들이 사하여 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한 번 용서한 죄에 대해서 들추거나, 꾸짓거나, 물어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너무나도 확실하게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용서해 주셨습니다.

 

칭의 수표 앞에 공란이 있다고 합시다. 죄를 사하고, 허물을 덮었고, 하나님이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공란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이름을 적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칭의 수표를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에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너는 복된 사람이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야고보서 2:21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2:21, 개정)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이 말씀은 오늘 말씀과 정반대의 말씀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야고보서와 로마서는 절대로 충돌하는 책이 아닙니다. 로마서는 구원의 뿌리에 초점을 두고 있고, 야고보서는 구원의 열매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아브라함이 구원의 뿌리, 다윗은 구원을 이루는 기둥)

그러므로 우리에게 칭의의 뿌리가 확실하면, 반드시 의의 열매가 나타나기 때문에, 열매의 관점에서 행위가 없다면, 칭의의 뿌리, , 내가 진짜 예수님을 믿는가? 의심을 하고, 다시 복음 앞에 서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믿음의 열매를 맺어나가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 15장에서 말씀하는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크든 작든 저절로 열매를 맺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비록 그 열매가 설익은 열매든 무르익은 열매든 차이는 있지만,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이 로마서 6장 이하에서 언급합니다. 다만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4:5, 개정)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저도 때로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을 스스로 봅니다. 하지만 이렇게 믿음이 연약한 자임에도 불구하고, 저를 의롭다하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그렇게 고백하는 순간 저는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일생토록 칭의의 확신을 가지고 행복한 하나님의 자녀 된 삶을 살아가고, 열매 맺게하시는 주님 안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미스바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눔/ 예수 때문에

1. 당신은 구원 받았습니까?/ 무엇을 보고 구원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신은 언제 구원 받았습니까? 당신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까?

2.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을 통해서 칭의의 교리를 설명하고 있

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유대인의 뿌리이며, 다윗은 유대역사의 기둥으로 여

겨지는 왕이기 때문입니다. 두 인물 모두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용서함을 받은

사람들이다. 바울은 이것을 말하면서 너희들의 조상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너희들 또한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장단점을 말해보라(15:1).

-다윗의 장단점을 말해보라(4:6-8_32:1-2 인용).

3. 그리고 야고보서 2:21절을 읽어보라.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가? 로마서와 야고

보의 차이를 말해보라.

4. 아브라함을 통해서, 다윗을 통해서 우리는 의롭다 의기심을 받았다, 불법이 사

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엄청난 부채의 탕감과 죄

의 기록이 완전히 삭제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가리워 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로 우리의 모든 불법과 죄의 문제를 덮어서, 봉인해서, 말살시켜서 해결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사단의 공격에도 우를 덮으시는 하나님의 의로 인해 더

이상 공격당하거나, 정죄를 당할 때 의심하거나 주눅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믿어 이러한 칭의의 은혜를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이러한 믿음과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과 감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순모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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