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8 양심대로(롬2:12-16)

by essay2598 2024. 11. 1.
728x90
반응형
SMALL

로마서 강해8 양심대로(2:12-16)

(2:12, 개정)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2:13, 개정)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2:14, 개정)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2:15, 개정)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2:16, 개정)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우리는 때로 이런 질문을 합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 온지 135년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복음이 들어오기 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미국인들도 동일한 질문을 합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하기 전 복음을 듣지 못한 인디언들은 어떻게 되는가?.. 또한, 복음을 듣지 못한 중국인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은 그들이 천국 갔는지, 지옥 갔는지 궁금한 것입니다.

필라델피아에 도날드 그레이 반하우스(Donald Grey Barnhouse) 목사님은 이런 질문을 불신자들로부터 받았을 때.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만일, 만일, 만일, 만일, 만일(10) 내가 천국 가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하기 전의.. 인디언들이 거기에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리고 복음을 듣지 않은 중국 사람들이.. 거기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할렐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와 같이 불경건한 자가 거기에 있는 것 자체가.. 아마도 가장 놀라운 기적일 것입니다

 

도날드 그레이 반하우스가 불신자로부터 질문을 받으면 위와 같이 대답하겠다고 했는데 만일 신자들에게 대답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말씀이 오늘의 본문 말씀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하나님의 심판 기준

 

하나님은 심판하실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하십니다. 하나님은 절대 외모를 보시지 안으시고, 공정하게 하십니다. 11절의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는 말씀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보편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진리, 보편, 정확한 것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심판 기준은 무엇입니까? 복음을 다 들었다면 그것으로 심판하겠지만,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심판할 것입니까?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율법 없이 망하고.. 율법을 가지고 범죄한 자는 율법을 가지고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율법이 없는 상태에서 범죄할 때도. 그대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반대로 율법이 있는 상태에서도 그대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율법 없이 망한다.’는 점을 놓고, 사람들은 인간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의 개념에서는 사람을 죽일 때까지 죄인이 아닙니다.. 간음할 때까지는 간음자가 아니다.. 남의 것을 도적질할 때까지는 도적이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개념에서는 사람이 살인자이기 때문에 살인한다는 것입니다. 간음자이기 때문에 간음하며,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인간의 뿌리가 아담 이후로 원죄를 가지고 때어 나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에서 구구단을 외고 난 후 시험을 칩니다. ‘8X7=56!’ 그런데 한 친구가 54로 쓰고, 한 친구는 46이라 썼습니다. 선생님은 54라적은 것을 그어서 0.. 46점이라 적은 것도 그어서 0점이라.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시험지를 받은 한 학생이 항의합니다. “선생님, 왜 저 아이도 0점이고, 나도 0점입니까? 56이 정답인데 저 아이는 46이니까 10이나 틀렸고, 나는 542점 차이인데, 왜 저 아이와 내가 똑같이 0점을 받아야 합니까?”

이것이 곧 사람의 개념입니다. 그러나 54, 46이든, 47이든, 아니면 55라 해도, 8X7의 해답 56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55라도 하면 천국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율법이 있든, 없든.. 의와 영생과 죄와 사망이라는 기준은 정확한 것이기에 정답에 이르지 않으면 모두가 망하는 것입니다.

 

양심의 증거

 

오늘 본을 살펴보면, 유대인과 이방인의 문제가 등장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에게는 구약과 율법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율법을 받지도 듯지도 못한 우리 조상들에게 심판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13-15절을 보십시오.

(2:13, 개정)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2:14, 개정)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2:15, 개정)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말씀을 보면, 율법이 있는 사람들은 율법을 기준으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없는 사람은 양심으로 심판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15절에 양심의 증거,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의 마음속에 이미 법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양심입니다. 모든 사람들속에 양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심지어 식인종에게도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싸울 때에도 양심의 기준이 있습니다.

자동차가 사고가 났을 때도, 처음에는 서로의 잘 못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블랙박스로 증거를 대면, 막무가네로 우기던 사람도 마음속에서 최소한 네가 맞다고 인정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양심입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만한 신성을 심어 놓으셨다고 말씀을 나눴습니다. 그래서 구누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핑계할 자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내면에 양심이라는 기준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듣지 못한 우리의 조상들은 하나님이 주신 양심에 따라.. 심판의 기준을 삼으시고 심판하실 것입니다.

 

행동, 양심, 생각

 

양심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세 단어를 주의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15절입니다.

(2:15, 개정)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행동, 양심, 생각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법을 주셨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이 없는 인간이 없습니다. 짐승이 아니라면 누구에게나 행동이 나타나고, 누구나 최소한의 양심이 있으며, 누구나 생각을 합니다. 복음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증거가 됩니다.

, 우리의 마음속에는 탐지기가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공항에 들어갈 때 몸에 있는 금속은 금방 소리가 나면서 탐지가 되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주신 탐지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저런 생각과 행동을 하지만.. 우리를 항상 제자리로 서있게 만드는 도덕적 중력의 힘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양심입니다.

 

(20:27, 개정)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양심이 범죄자를 가슴을 칩니다(24:4- 사울의 옷을 벤 다윗, 삼하24:10-인구조사 후 다윗).

신약에도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요일 3:21, 개정)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이것이 양심입니다. 복음을 듣지 못한 불신자들은 이것을 기준으로 심판을 받습니다. 불신자가 특별계시(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했을 경우는 자연 속의 하나님의 계시(자연계시)와 자기 속의 하나님의 계시(양심계시)에 따라 심판을 받습니다. 불신자 중에 특별계시를 받았으면서도 복음을 거절한 자는 자연계시와 양심계시에 덧붙여 특별계시의 기준과 복음의 기준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양심은 절대기준이 아니라 최소기준

 

왜냐하면, 양심으로 구원을 받는 사람은 한 명도 없기 때문입니다. 3:10에서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했고, 3:20에서 온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양심으로 구원받는 사람이 있다는 의미에서 양심심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양심 기준은 인간이 자신의 죄에 대해서 몰라서 그랬다는 변명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기준 앞에서는 다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양심 기준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양심이라는 기준을 주셨고,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양심+구약계시+신약까지 주셨습니다. 이런 빛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양심에 순종할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의 순종을 해야만 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타락한 인간은 자기 속에 하나님의 법에 대해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무엇이 옳다는 것에 대한 약간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우리의 양심도.. 그냥 그대로 놔두면 더러워지면서 결국에는 양심에 마비가 오기도 합니다. 개인의 범죄습관과 사회문화의 악영향으로 양심이 오염되기 때문입니다.

(고전 8:7, 개정)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양심의 오염을 방치하면.. 결국 양심이 마비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심은 절대 기준이 되지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에 절대기준이 무엇일까요? 우리의 삶에 절대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함으로 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되어야 합니다.

 

행위 구원

(2:16, 개정)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바울은 지금까지 행위에 의한 심판을 말하다가.. 갑자기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복음에 따른 심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 은밀한 것은 나와 남에게는 숨겨진 것들이지만, 하나님에게는 공개된 것들을 말합니다.

명성은 사람들이 나를 어떻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인격은 나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사람들은, 나의 명성만 알지만.. 하나님은 나의 인격을 아십니다. 사람들은, 외모만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숨겨진 부분과 의도를 알기 위해 찾아내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은밀한 모든 것을 다 아시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의 은밀한 죄는 결국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다 공개될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은밀한 것들을 드러내는 심판을 말하면서.. 16절에 나의 복음에 이른바와 같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것이 행위심판의 문맥에서 어색한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전한 복음은 은혜의 복음이지만.. 만일에 대한 심판을 포함하는 복음이기도 합니다. 은혜와 심판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정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본문의 행위구원은.. 칭의교리와 충돌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점에서 먼저, 오늘 본문은 칭의를 다루는 문맥이 아니라, 심판을 다루는 문맥이라는 점을 이해하면 풀릴 수 있습니다.

본문은 시작이 아니라 완성, 과정이 아니라 결과, 길이 아니라 목표의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본문의 목적은 거짓된 핑계를 파괴하는 데 있습니다. 본문의 성격에 대해서 캄벨 몰간(Cambell Morgan)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이와 같이 이 편지의 서두에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주요교리를 잘못 강조하면, 특별한 이단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반격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심판의 마지막 기준은 행위라는 명백한 교훈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행위를 산출하지 않는 믿음은 쓸데없는 믿음입니다. 심판의 근거는 인간의 실제적인 상태입니다. 그가 율법 없이 살았든 율법 아래서 살았든 간에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자신의 양심을 어느 정도 따라서 살았는지 반성해 보십시오. 신앙성장속도가 급속한 사람들에게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들은 깨끗하고 진실한 사람들입니다. 바울 사도도 (23:1, 개정)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고 했습니다. 자신만 그렇게 살 뿐 아니라, 믿음의 아들들 디모데에게도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권면한 것입니다(딤전1:19).

이렇게 양심을 지키며 신앙이 성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반대로 교회생활과 사회생활을 완전히 이중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10, 20년을 예수 믿어도 성장이 없습니다.

놀라운 것은 믿음이 있을 때 열매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열매는 곧 행위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열매가 없으면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곧 죽은 믿음입니다.

신자의 경우 믿음으로 의롭다 하는 칭의 교리는 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에.. 구원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이고, 선행에로의 구원입니다. 이 둘은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진짜 죄로부터 구원을 받은 자라면 선행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믿음의 열매로서의 선행이 심판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말씀과 같이 우리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양심적인 선행이 없는 믿음은 병든 믿음입니다.

목회자의 경우 자신이 자신의 교훈의 모델이 아니라면, 목회자는 설교자라기보다는 떠버리이고.. 의사라기보다 돌팔이이다라는 윌리암 펜의 경고를 기억해야 합니다.

평신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열매가 없다면,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 앞에서 변명도 회피도 있을 수 없습니다(No Excuse, No Escape).

 


나눔/ 꽃들도( 이 곳에 생명샘 솟아나)


1. 당신이 누군가로부터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 죽은 우리의 조상들은 천국에 갑니 까? 아니면 지옥갑니까?’ 그리고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 죽어서 예수님의 ’예‘자 도 들어보지 못하고 지옥에 간다고 한다면,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하나님 이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맞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2. 성경은 이 질문에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롬2:13-15)

 

3. 그러나 양심은 절대기준이 아니라 초소기준입니다. 왜냐하면, 양심으로 구원을 받는 사람은 한 명도 없기 때문입니다(롬3:10, 20_인간의 정의)

 

그렇다면 절대기준이 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롬2:16) 

 

4. 하나님은 우리에게 ‘양심+하나님의 말씀(성경)까지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양심에 순종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의 순종을 해야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타락한 사람들은 하나님 의 법에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무엇이 옳다는 것에 대한 약간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자신의 양심을 어느 정도 따라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의 절대기준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양심을 따라 살아가는 정도가 아닌 그 이상으로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양심 이상의 순종의 삶을 살아갈 때에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척도가 있습니다. 바로 믿음의 열매, 즉 행함의 열매 입니다. 당신의 삶에는 믿음의 열매가 있습니까? “믿음의 열매가 없다면, 양심적인 선행과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 앞에서 변명도, 회피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의 복음만 받고, 붙드는 삶이 아니라 그 상의 삶인 복음의 열매와 행함 이 있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결단하고 기도하는 시간이되길 바랍니다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