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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4 만물은 하나님의 지문(롬1:18-23)

by essay2598 2024.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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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하나님의 지문(롬1:18-23)

 

(1:18, 개정)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19, 개정)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1:20, 개정)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1:21, 개정)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1:22, 개정)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1:23, 개정)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신성과 능력이 자연 속에

 

세례문답서를 보면, 하나님은 누구십니까?란 질문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답으로 하나님은 영이시며(4:24) 창조주와 구속주이시며 심판주이십니다.’/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진짜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본질상 보이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육신의 눈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하나님을 볼 수는 없습니다. 이 사실만 놓고 생각을 해봐도 우리는 엄청난 은혜를 받은 사람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보이지 않는 자신의 몸을 연약한 인간의 육신으로 드러내시고, 우리의 삶 한가운데로 오셔서 직접 가르치시고, 치유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한 가지만 생각해도 우리는 엄청난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을 알 수가 있다고 합니다. 무엇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을까요? 여러분들을 통해서, 자연 만물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하나님의 지문이 찍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 속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만물이란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 음식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시지 않지만, 하나님의 지문이 우리 몸 천제에 그와 같이 지문이 찍혀 있습니다.

등산할 때 보면, 바위에 하나님의 지문이 찍혀 있습니다. 나무 한 그루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 나무 한 그루 속에 하나님의 지문이 찍혀 있습니다. 날아가는 새와 물속에 물고기에게 하나님의 지문이 찍혀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19절 말씀에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20절에서는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리셨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산 정상에 올라가 봤습니까? 산 정상까지 올라갈 때는 힘들어서 다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산 정상을 올라갔을 때, 대 자연을 통해서 감동과 감탄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신성입니다. 하나님이 즉, 신이 존재한다는 막연한 존재의식을 느끼는 것입니다.

누가 바위 하나를 그렇게 만들어 수놓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사람들이 정자와 난자로 인간 복제를 할 수는 있지만, 생명 자체를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분명히 그 속에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는데 그것을 종교심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전도서에서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전도서 3:11에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에 당신의 속성 중의 하나인 영원을 심으셔서 인간존재의 출발과 끝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하셨고, 그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채워지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을 통해서 채울 수 없는 우리의 마음을 채우려고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것이 우리의 어리석음이고, 피조물의 한계입니다. 이 한계를 극복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 속에 하나님의 지문을 남기셨고, 그 지문을 통해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은 알면서도 억누르고 있습니다.

 

이런 분명한 사실을 두고 인간은 어떻게 합니까? 1:18을 보면,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 고 있습니다. , 억누르고 있습니다. 분명히 진리가 있고, 하나님이 보여서 알게 하셨고, 느끼게 하셨지만 어리석은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가치 없는 것으로 눌러버립니다.

연약한 우리가 하는 일이 바로 이런 행동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몰라서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를 자신의 의지로 누르기 때문에 믿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전해야 하는 가족, 친구, 회사 동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의지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하나님의 존재를 누르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믿어지지 않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난 다른 종교야.’

이외에도 혹시 지금 말씀을 들으면서 의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누리고 있지 않은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내 감정과 다른 생각으로 말씀이 들어오지 않아, 믿어지지 않아.’ 생각하고 있다면,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와 은혜를 나의 의지로 누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지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의지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눌러버릴 때 나타나는 몇 가지 현상들이 있습니다. 21을 보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눌러버린 결과를 보면 감사가 없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피조물 속에서 당신의 신성과 능력을 보여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우리로 하여금 영광과 찬송과 경배를 받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드리는 것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설교가 좋고 안 좋고는 둘째, 셋째 문제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으로 경배를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우리가 보고, 받고, 얻기위해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우리의 마음과 헌신과 믿음을 하나님께서 보고, 받을 수 있도록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우리가 감사와 찬양으로 하나님께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들에게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영적 예배자를 찾고 계십니다.(4:23-24)

 

개는 짖도록 창조되었고, 새는 날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창조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알되 그를 영화로운 분으로 인정하고, 감사드리는 것이 우리를 창조하신 본래의 목적입니다. 이 본성을 눌러버릴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고, 감사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절을 보면,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해졌다고 말합니다. 생각이 잘못되어 삐뚤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진 상태,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사람들은 본래 여러 가지 신들을 섬기는 다신론자들이었는데 점차 좋아져서 참된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본래 인간은 참된 하나님을 섬기던 자리에서 타락해서 더 나빠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인간은 낮은 자리에서 출발해서 높은 자리로 올라간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통치권을 위임받은 높은 자리에서 출발해서 죄로 인해 짐승들보다도 더 못한 낮은 자리로 떨어진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례문답 17번에 보면, 범죄하여 타락한 인류는 어떤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까?/라는 질문에 1)하나님을 떠나 비참한 죄인의 상태에 놓이게 되었고, 2)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아 죽음에 이르렀으며, 3)전적으로 무능하고 부패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인간이 하나님의 존재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기고 믿지 않으려고 의지적으로 누른 죄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원래 목적인 경배와 감사가 없어지고, 허망해지고 어두운 멸망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참 신을 우상으로 교환한 인간

 

1:22-23절 같이 읽겠습니다.

(1:22, 개정)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1:23, 개정)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하나님에 대한 의식을 눌러버리고 나면 경배와 감사가 없어지고, 허망해지고 어리석어 짐니다. 그런 후에는 하나님을 완전히 포기하고 자기 머릿속의 공상대로 우상을 만듭니다.

 

폴란트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는 천제를 연구하면서 지구는 우주가 그 주변을 도는 전체의 정체된 주심이 아니라 태양 주변을 도는 움직이는 유성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이상하게도 그가 발견한 것을 출판하려 하지 않습니다. 인간과 세상이 모든 존재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핵심이 우리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는 것,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우리 주변을 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주변을 돌고 있다는 것도 사람들이 알면서도 인정하기 꺼려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진리를 비진리로 교환하고, 참 하나님을 우상으로 교체해 버립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인 인간이 자신의 어리석은 생각대로 거짓 신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이 자신을 알리셨다. 둘째,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고 체험하고 있다. 셋째, 인간이 이런 참지식을 의지적으로 누르고 있으며, 가치 있는 것을 가치 없는 가짜와 바꾸었다. 넷째, 인간이 참 하나님을 우상으로 교체했다./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에게 있는 심각한 죄입니다.

 

우상을 만드는 첫 번째 형태가 사람의 형태입니다. 사단이 하와를 유혹할 때 네가 하나님처럼 되리라고 한 결과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영광을이란 말씀을, 지극히 높은 피조물인 자기 자신에게 영광을이라는 모토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들 속에도 이것이 있어서 자기 자신을 가장 높은 곳에 올려놓고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 경배를 받으려고 합니다.

어리석은 우리는 자꾸만 참 하나님을 사람과 새와 짐승과 버러지의 가치 없는 형상으로 바꾸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칼빈은 아무리 야만적인 민족이라도, 아무리 야수적인 종족이라도 하나님이 있다는 믿음조차 없는 민족과 종족은 전혀 없다. 다른 면에서는 비천한 동물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사람들도 약간의 종교심은 항상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상들이 만들어진 것을 볼 때, 그것이 입증됩니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우상이 있습니다. 심지어 사람을 뜯어먹는 식인종에게 가도 그들이 믿는 신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상이 많다는 것은 사람 속에 하나님 의식이 많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우상숭배가 심각한 곳에 간다 하더라도 선교의 가능성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하나님 의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에 대해서 인간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자기의 창조자를 피하는 사람은 자기의 심판자 앞에 서야 합니다.

 

로마서는 복된 소식의 편지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가 적혀 있는가 하는 반문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를 모르면 하나님의 사랑도 모릅니다. 복된 소식은 죄인에 대한 사랑과 죄에 대한 진노의 소식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진노는 복음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거룩과 동일한 생명 에너지입니다. 진노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반감을 표현하는 것이고, 사랑은 죄인을 돌아오게 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명의는 병을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노출시켜 치료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의 죄를 정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18절에서 3:21까지 인간을 고발합니다. 우리의 어두운 측면을 가감 없이 폭로합니다. 죄와 죄책에 있어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구분이 없고, 모두가 다 같습니다. 1장에서 이방인들의 전형적인 죄악(우상 숭배와 부도덕), 2장에서는 유대인들의 전형적인 죄악(교만과 타인 정죄와 불순종), 3장에서는 모든 사람의 온갖 죄악을 지적합니다.

바울이 지적한 대로 타락한 후에는 원죄로 인해서 태어날 때부터 인간이 악 합니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의 진리를 사람이 눌러 버렸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인간의 모든 문제가 발생합니다. 호모섹스와 엄청난 죄악들의 목록이 로마서에 등장합니다. 이 모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 속에 있는 종교의 씨앗을 깨우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곧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든지 감사가 넘쳐야 합니다. 감격과 찬송이 넘쳐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계획이고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밝혀주시고, 바른 생각을 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해주셨기에 하나님이 만드시고 허락하신 공기를 마시면서 감사하고, 햇빛을 맞으며 감사하고, 움직이는 손가락을 보면서도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서 오직 하나님을 경배하는 존재로 지음받은 목적을 따라 나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눔/ 하나님의 은혜(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여러분은 지금까지 언제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을 느꼈는가? 반대로 하나님이 정말 계시는 걸까? 의심한 적은 언제인가? 서로 나눠보라.

 

 

2. 여러분은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만드신 창조주 이십을 믿습니까? 그리고 지금도 그 만드신 만물을 사랑으로 돌보시고, 간섭하신다는 것을 믿습니까? 창세기 1-2장의 말씀을 읽어보고, 하나님의 창조사역과 사랑으로 돌보시고, 세밀하게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살펴보라.

 

 

3. 모든 피조물에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지문이 찍혀져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는 종교심이라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3:11)을 주셨습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오직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만 채워질 수 있습니다. 어러분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내 인생의 공허함을 채우려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4. 이러한 마음을 가진 상태를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1:18, 21) 그리고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의 의지로 가로 막는 자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인가?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과 나를 향하고 있는 생각과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지도록, 복음이 깨달아지도록, 하나님의 사랑이 깨달아지도록 완악하고 교만한 나의 죄를 회개하고, 또 회개함으로 하나님 만으로 만족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삶을 살기로 다짐하고 결단하는 기도의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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