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1 예수 그리스도의 종(롬1:1-7)

by essay2598 2024. 11. 1.
728x90
반응형
SMALL

예수 그리스도의 종(1:1-7)

 

(1:1, 개정)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1:2, 개정)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1:3, 개정)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1:4, 개정)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1:5, 개정)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1:6, 개정)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1:7, 개정)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

 

로마서를 보면 마틴 루터가 생각납니다. 그는 1515113일부터 약 1년간 비텐베르그대학 성서학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로마서를 강의하였습니다. 그 강의를 하는 동안 그의 마음이 뜨거워져서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발견하게 되었고, 우리의 구원이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확신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루터는 그 강의를 시작한 지 2년이 지난 후 그 95개조의 반박문을 붙였으며, 그 후 교황은 지금이라도 변개하면 살려주겠다.”고 하였지만, 그는 절대 변개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과 양심에 근거하여 결단을 내렸고 나의 확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의 제 입장을 철회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저를 도와주시옵소서.”

그는 화형대 앞에서도 자기의 입장을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보면 로마서를 연구하는 가운데 루터가 얻은 확신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도 로마서를 공부하면서 이런 확신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루터가 로마서 강해 서론에서 한 말에 따르면, 이 서신은 신약의 주요 부분이며, 가장 순수한 복음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로마서의 내용을 한 단어 한 단어 읽을 뿐만 아니라 암송할 가치가 있고, 매일 영혼의 일용할 약식으로 집중적으로 섭취할 가치가 있다. 아무리 읽고 묵상해도 결코 많이 하는 것이 아니며, 다루면 다룰수록 진지가 드러나고, 더욱 맛이 좋아지는 것이 이 서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

 

로마서의 영향

 

이처럼 로마서는 루터를 변화시켰으며, 그를 통하여 그 시대를 변화시켰고, 지금까지도 종교개혁의 역사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루터나 칼빈 이전에는 우리가 잘 아는 어거스틴도 로마서13장을 읽으면서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13:13, 개정)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생활하면서 정욕을 이기지도 못한 채 애쓰고 고민하고 있을 때, 밖에서 놀던 어떤 아이들이 부른 노래가 톨레 레게 톨레 레게(집어 들고 읽어라! 집어 들고 읽어라!)”라 노래를 듣게 됩니다. 이것이 어거스틴에게 한 말이 아니었지만, 그는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들어 로마서를 찾아보았을 때, 마침 로마서 13장 그 부분이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조금만 더 즐기고 회개하겠습니다! 조금만 더, 내일. 내일. 내일.’ 하였지만 이 말씀은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라는 말씀이 전광석화처럼 어거스틴의 뇌리를 친 것입니다. 그때 어거스틴이 삶이 바꿨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200년 후 요한 웨슬레 역시 알더스 게이트 교회에서 루터의 로마서 강해 서론을 읽는 것을 듣고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로마서는 이렇게 어거스틴을 변화시켰고 루터와 칼빈을 변화시켰으며, 그로부터 200년 후에는 요한 웨슬레를 변화시킨 서신서입니다. 그리고 오고 오는 많은 성도들의 가슴에 뜨거운 불을 붙여 주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되씹게 될 것입니다.

---

 

긴 인사말

 

1:1-7은 바울 사도의 인사말입니다. 편지의 인사말을 쓸 때는 대체로 송신자수신자에게 인사한다고 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수신자들에게 히브리식으로는 샬롬!’, 헬라식으로는 카이레!’라고 인사하면 인사말이 짧게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간단히 소개할 수 있는 인사말을 바울은 로마서에서 길게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왜 바울은 로마로 보내는 편지에서 길게 인사말을 쓰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바울은 로마교회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만약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세운 교회라면 간단하게 바울은이라고 해도 로마교회 교인들이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 교인들은 바울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바울이 자기를 소개한 것입니다(1:10, 11, 13, 15, 22).

또 바울은 자신을 소개하는 가운데, 자신이 깨달은 복음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로마 교인들의 믿음을 바른 신학과 교리를 바탕으로 세우려고 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바울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쓰고 보니,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구원의 은혜로 인해 가슴이 뜨거워는 감격이 일어났습니다.

---

 

 

많은 대부분의 성도가 바울 서신서에서 바울 자신을 소개하는 이 부분을 그냥 지나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하고 그냥 넘어가는 구절입니다.

바울이란 이름을 밝힌 후 처음 나온 단어가 입니다. 이것은 바울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얼마나 깊고, 사명의식이 철저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물론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만 소개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은 사도라고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사도로 택정함을 받았다는 의식이 분명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좋은 소식, 상실된 인간들에게는 구원의 소식을 전파하도록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도였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자신을 사도로도 소개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난 다음 바로 뒤이어 이라고 한 것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를 소개하면서 첫 번째로 둘로스’ ‘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서신을 읽은 사람들이 파울로스 둘로스라는 말을 대했을 때 놀라고,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여기서 노예라는 말입니다.

당시 로마에는 노예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로마가 헬라, 마게도냐, 터키, 팔레스틴, 북아프리카 등으로 세력을 확대해 나가면서 거기에서 좋은 사람들을 노예로 잡아 왔습니다. 그 당시에는 인신매매도 심했는데, 심지어는 한 마을 전체가 노인에서 아이게 이르기까지 노예가 되기도 했습니다.(아스달연대기 드라마보면 나옵니다.)

로마 시내만 해도 노예가 전체 인구의 1/3이었습니다. 그 숫자는 20만 내지 30만에 이르는 숫자입니다. 그들은 노예 시장에서 물건처럼 취급받고, 반라의 상태로 매매되며,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면서 거래가 되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로마교회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 이 편지를 받을 때, 수신자의 절반 이상이 노예 신분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고위층보다는 하위층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노예였을 텐데, 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파울로스 둘로스라고 한 것은 듣는 사람들에게 뭉클한 반응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노예란 무엇입니까? 주인의 절대 소유입니다. 이마나 귀에 고리를 꿰어 평생 그 주인의 종이 됩니다. 주인은 그를 마음대로 주장하게 되며, 그에게는 자유가 전혀 없습니다. 종의 입장에서는 주인에게 절대복종해야만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 있을 당시에 바울은 스스로에게 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라는 말은 명함 맨 앞에 내어놓기에는 그렇게 자랑스러운 소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어떻 사람이었을까요? 요즘 식으로 말하면 바울은 하버드 법대 역대 수석자입니다. 당시 최고학부라는 가말리엘 문하생이었습니다. 가문으로 따져도 유명한 바리새파에 속한 사람입니다.

어디를 보아도 내놓을 것이 많고, 자랑할 것이 많고, 굉장한 인물이라 할 수 있는 바울이 모든 인간적인 자랑을 전부 내려놓고, 자신을 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종

 

그렇다면, 바울은 자신을 누구의 종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이 말씀도 그저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메시아라는 말입니다.

메시아는 또한 구세주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오래 기다렸던 기름 부음 받은 종인 구원자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메시아가 아니라는 확신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했습니다. 그것도 국내에서 박해하다가 마음에 차지 않아서 해외에 원정을 가서 박해를 합니다. 수리아 다메섹까지 가서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오려 했습니다. 그때 그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습니다.

바울이 보기에는 예수가 메시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는 영광스러운 분이신데, 십자가형을 받은 죄수가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사이비종교로 알고 예수님을 따르고 전파하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바울은 견딜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스데반을 죽이는 데 있어서 대표로 돌로 사람을 때려죽이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의 가슴 속에는 예수가 메시아가 아니라는 굳은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돌로 때려죽이는 것도 방조할 만큼 확신을 가졌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 때문에 핍박하던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이 후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바울은 핍박자에서 예수를 전하고, 십자가를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의 인생을 짜고 짜서 액기스를 낸다면, 예수와 십자가만 남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삶 전체가 뿌리로부터 흔들리고 변화되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바울이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었을까요?

여러분은 자신을 소개할 때 어떻게 소개되기를 원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예수의 종입니까? 날 구원하신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죄인 중의 괴수였던 자신을 부르시고,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너무도 커서 자신은 사랑의 빚진자가 되었고, 스스로 주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체험한 바울의 심정이 느껴집니까?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합니다.

고전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외국까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려고 했던 바울에게 예수님이 만나주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뉘시니이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바울 자신은 예수를 박해하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사랑으로 바울을 추적해 온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사랑에 바울은 뒤집어져 버렸습니다. 그의 인생이 뒤집혔습니다.

예수님에게 부딪치기만 하면, 정말 부딪치기만 하면 인생이 뒤집어집니다. 가치관이 변하고, 삶이 변하게 됩니다. 믿으십니까?

 

바울은 가는 곳마다 예수를 메시아라 증거하는 것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돌에 맞고, 굶주림을 당하며, 헐벗음, 육지와 바다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동족과 강도로부터 어려움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세상의 찌꺼기처럼 살아가더라도 그 사랑과 은혜에 감동하여 그분을 위해 사는 것이 너무 감격스럽고, 그분이 너무나 좋아서 맨 앞에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느 정도로 만났습니까? 아주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다가 순간적으로 주님을 만나 돌아왔나요, 아니면 오래 방황하다 조금씩 변화되면서 주님께로 돌아왔나요?

과정과 이유에야 어떻든지 고린도전서 7:22을 보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입니다. 부딪힘이 다를 뿐,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고전 7:22, 개정)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바울은 전능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 그의 인생이 주님과 충돌했을 때, 십자가의 엄청난 은혜와 사랑을 알게 되면서, 그의 명함 제일 앞에 그리스도 종이라고 소개한 것입니다.

바울이 종이 된 후로는 그의 삶이 주님 때문에 버리는 삶을 살았고, 주님 때문에 채워지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것도 아주 강력하게 주님과 충돌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으로 찬양으로 기도로 충돌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사랑으로 접근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를 장악하고 오늘도 추적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성도의 명함

 

바울은 6절에서 이 말씀을 받는 성도들을 가리켜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하였습니다.

첫째는 성도인 우리를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름심을 받았다.” 둘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셋째는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우리 명하의 세가지 항목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명함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라 하고서는, 우리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향해서는, 명함에 적을 세 가지를 지적해 준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소유물이 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책임지고 사랑하시고, 책임지고 보호하시며, 책임지고 공급하시며, 마침내는 그리스도가 들어간 영광의 자리에 이르게 할 그리스도의 소유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나와 같이 부족한 사람도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목회자로 세우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은 아무리 설명해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사랑을 극적으로 잘 설명해주시는 곳이 두어 군데 있습니다. 이샤야 46:3-4을 보면, (46:3, 개정)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46:4, 개정)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고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처럼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르는 완벽한 사랑입니다.

또 이사야 49:14-16을 보면, (49:14, 개정)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49:15, 개정)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49:16, 개정)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자식에 대한 여인의 사랑이 이 세상의 최고의 사랑인데 하나님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러나 혹시 여인이 잊는다 할지라도 나는 너희를 잊지 아니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고 하신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진한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성애보다 더 진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이와 더블어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말씀합니다. 성도라는 말은 거룩한 자라는 뜻입니다. 내가 무슨 성자인가 생각이 듭니까?’

그러나 로마서 1:26-27을 보면, (1:26, 개정)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1:27, 개정)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하였습니다.

당시 로마의 도덕적 상황은 여자가 남편과의 부부관계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관계를 맺는 무서운 죄악뿐만 아니라, 동성애가 행해지는 시대였습니다. 이런 시대, 이런 분위기에 살고 있는 로마서의 성도들을 가리켜, 하나님은 성자들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는 물건이라도 하나님을 위해 쓰게 되면 그것은 거룩한 것이었습니다. 땅도 하나님을 위해 쓰게 되면 그것은 거룩한 땅이 되었습니다. 성전의 기명들이 하나님을 위해 쓰게 되었을 때 모두 거룩한 것이 되었습니다.

도덕적으로 거룩하여서 거룩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죄악 된 세상에서 하나님이 불러내셔서 하나님을 위한 것들로 구별해 내셨기에 성자들이 되었다고 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위하여 일생을 다하여 살도록 구별되어 부르심을 받은 존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세 가지 신분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물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하나님의 사랑이 나에게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나는 이렇게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성자로 나를 부르셨기 때문에, 성자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엄청난 신분을 소개하면서 바울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제가 볼 때 이렇게 안전하고 복 받은 신분은 없을 것입니다.

 

구약적 배경으로 보면 이삭이 샘 때문에 다툰 후에 두려워할 때에 하나님 그에게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는말씀으로 위로하십니다(26:24).

하나님은 모세를 두고도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말씀하시면서 미리암에게 문둥병을 발하게 하셨습니다(12:7-8).

하나님은 다윗을 향하여도 이라고 하시면서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하셨고(삼하7:5,9),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하셨습니다(37:35).

 

이런 구절들은 이라는 개념이 주인이신 하나님이 철저하게 보호하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을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안전을 보장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는 바울과 같은 감격과 헌신과 안전보장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까? 바울이 지적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것’, ‘하나님의 사랑받은 자’, ‘성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는 신분 인식이 확실하십니까? 하나님=나의 아버지, 예수님=나의 주인’-이것이 우리의 안전보장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 ‘나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 ‘나는 성자라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고귀한 신분입니다.

로마서를 공부해 나갈 때 이러한 확신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감격이 우리에게도 생겨서, 우리를 뜨겁게 움직이는 역사가 일어나길 바랍니다.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과의 접촉에서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 하는 것이 우리에게 깨달아지면서 이 놀라운 변화가 로마서 말씀을 통해서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눔/  찬양 : 예수 때문에(위대한 그 사랑으로)

 

나의 삶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복음으로 변화되고 있는가? 20191월부터 지금까지 하나님 안에서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나눠보라.

 

 

 

2. 바울은 자신을 소개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서로 자기 자신을 소개하고, 주님 안에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고, 소개받고 싶은지 나눠보라.

 

 

 

3. 당신은 예수님을 만났는가? 우리 모두는 예수님과 접촉된 그리스도인들이다. 나는 어떻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는지 나눠보라.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이다. 당신은 성자로 부름을 받은 자이다. 이것을 믿는가?

 

 

4. ‘예수 그리스도의 종은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안전을 보장해 주시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께 예수께 속한 사람들이다. 다시 한번 주님이 지신 십자가 사랑을 회복할 수 있도록 말씀 안에서 주님과 강력한 충돌이 일어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