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 3_복음(1:16-17)
(롬 1:16, 개정)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롬 1:17, 개정)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지금 인간의 기술은 태아를 복제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타임지는 인간의 미세한 태아로 실험하여 증법번식에 성공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앞으로 아주 머리가 좋은 사람의 정자와 예쁜 여성의 난자를 결합하여 증법번식하게 된다면, 모든 이들이 잘생기고, 머리 좋은 사람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원래 이것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한번 실패하고 나면 수년을 기다리는 고통이 너무나 크기에 그 확률을 높이기 위하여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정당한 것을 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윤리학자들은 장차 태아농사를 하게 될 것이고, 필요한 장기만 빼고, 인육을 불고기 삼아 먹는 지경까지 가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창조주의 영역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나 정신적으로는 대단한 속도로 퇴보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을 죄와 고통과 사망으로부터 구원해 낼 수 있는 기술은 없습니다.
로마의 육군은 세계를 제패했습니다. 로마의 해군은 지중해의 해상권을 장악했습니다. 로마의 법은 사람의 죽고 살리는 것을 결정했습니다. 로마의 도로는 세계를 그물망으로 연결시켰고, 로마의 화폐는 경제가치를 지배했습니다. 라틴어는 세계어인 헬라어를 제치고 등장했고, 로마의 깃발은 엄청난 권력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인간복제의 학자도, 세계를 제패한 로마도 이 땅에서 엄청난 것을 발견하고 정복을 했지만, 70-80세를 살아가는 그 순간뿐입니다. 그 다음은 없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면 아무엇도 아니었다는 것을 그들은 알게될 것입니다.
그래서 갈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벧후 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영원히 썩지 아니하는 영생을 거두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면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왜 그리스도인들이 영생을 거두기 위해서 이 땅에서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피해야 할까요? 우리가 이 땅에 육체로부터 구하는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미스바 여러분, 우리를 구원할 능력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고, 그 구원의 능력은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복음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력
바울은 엄청난 권세의 상징인 로마를 향하여 복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세계를 제패한 로마는 그 막강한 권력으로 사람을 괴롭혔고, 탄식하게 했으며, 죽이고 정복하는 일들을 계속했지만, 로마의 잔인한 핍박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 누구도 막지 못하는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 시대에 우리를 현혹하는 능력들이 많습니다. 부의 능력, 미의 능력, 지위, 무기, 승리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이런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세상적 권력에서 나오는 능력이 아니라 이 세상의 권력들과 가치관에 도전하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약함 속의 강함이고(고후12:9), 가난 속의 부이고(고후8:9) 사망 속의 생명입니다(갈2:19-20). 극형 죄수로 처형된 자가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능력입니다(빌2:6 이하).
하나님의 능력은 목적이 있는 능력입니다. 그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이 무엇입니까? 구원은 먼저 죄책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엡1:7;골1:14). 견디지 못할 죄책감으로부터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단 죄를 짓고 나면 죄가 사람을 더럽히는데, 구원이란 이러한 죄의 오염으로부터의 구원을 말합니다(롬6;6, 17; 7:21-25). 또 죄는 마치 마약과 같이 사람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노예로 만드는데, 구원이란 노예 상태로부터의 구원입니다(롬7:24, 25; 갈5:1), 구원은 또한 죄의 형벌로부터의 구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엡2:12), 하나님의 진노(엡2:3), 영원한 사망(엡2:5,6)이 죄의 형벌입니다. 여기서부터 구원을 받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구원입니다.
그러면 구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첫째는 의로움의 구원입니다(롬3:21-26;5:1). 그리고 죄로 오염된 우리가, 죄의 오염이 없는 거룩함을 받는 구원입니다(롬6:1-4;12:1,2). 또한 노예생활을 하던 사람이 자유를 누리는 자유함의 구원입니다(갈5:1;고후3:17). 그리고 형벌을 받을 사람이 축복을 누리는 축복의 구원입니다. 여기서 축복은 하나님과의 교제(엡2:13),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롬5:5), 그리고 영원한 생명(엡2:1,5; 골3:1-4)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구원은 오늘날의 첨단기술이 결코 만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구원의 능력은 로마의 권력으로도 결코 만들지 못합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능력,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엄청난 능력의 복음을 받은 자이고 지금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았으며, 이 복음이 증거되는 곳에 수많은 사람이 저와 여러분들처럼 하나님의 능력으로 지금도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복음은 계속되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여러분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나타남을 믿으십니까?
믿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저와 같이 완악한 자에게도 나타나서 역사하여, 딱딱한 돌과 같은 마음을 녹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셔서 의와 거룩과 자유와 영원한 복음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의
(롬 1:17, 개정)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이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인 것은 하나님의 의가 복음 속에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우리가 노력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수동적인 의입니다.
루터는 처음에 능동적인 의라고 생각하여 온갖 고생과 몸에 고통을 가하면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를 이루려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성 베드로 사원을 무릎으로 기어 올라가기까지 했지만, 의를 이루지 못하여 괴로워하고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로마서를 연구하다가, 하나님의 의는 능동적인 의가 아니라 수동적인 의임을 발견하고,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받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발견한 후에는, 성경이 말씀하는 신앙생활은 고생이 아니라 기쁨과 평화의 책이 되었습니다. 루터는 마치 어두운 땅굴 감옥에 갇혔던 사람이 밝은 대낮으로 인도함을 받은 것 같다. 그리고 생명과 기력을 주는 신성한 공기를 마신 것 같았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아직도 하나님의 은혜에 접촉되지 못하신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의가 내가 무엇인가를 해서 얻어지는 능동적인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수동적인 의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하나님의 은혜와 충돌이 일어날 것입니다. 나같은 부족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붙잡고 사랑하셔서 기어이 예수의 형상으로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는 믿음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단어와 충돌하면서 아무리 내가 의인이 되기에 부족하여도 낙심하지 않는 것은 “내가 지금 현재 하나님의 은혜 바라보고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의 삶에 기쁨이고 소망이고 평안이기 때문임을 믿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오늘도 하나님의 능력이 되시는 복음 앞에서 믿음으로 살고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아시는 늘 보호해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그러므로 나의 능동적 의로는 구원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셔야 했구나. 그분이 나를 위해 피를 흘려주셨기 때문에 나의 죄가 용서함 받았구나. 나 같은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구나. 이 복음이, 이 하나님의 사랑이 나의 머리와 심장에 들어와 충돌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어떠한 사람도, 바울처럼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딤전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시니라”/
이 고백과 함께 감사하지 않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로마서 13:14절에서 말씀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인 된 나에게 쏟아부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나에게 덧입혀 졌기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소망과 희망을 주님 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는 오직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말하면서 에베소서2:8절에서는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 다음 구절에 이어서 구원의 은혜를 선물로 주신 이유는, (엡 2:9, 개정)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능력을 믿음으로 받는 것이라면, 그저 ‘믿음으로’라고만 하면 될 텐데, 왜 17절에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그리스도의 믿음은 한 번 믿고 정체되는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점점 자라나는 성숙되는 믿음입니다(고후 3:18).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입으로 고백하는 믿음에서 실제로 순종하는 믿음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성숙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0:10절에서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자라나는 것이고, 성숙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의미는 믿음의 성숙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영원부터 영원까지 믿음은, 철저하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의를 선물로 받는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믿음의 체계(신조)나, 신실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은혜에 대한 우리의 반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믿고 그분에게 나 자신을 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처음 복음을 들었거나, 모태신앙으로 처음 인격적인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이 나의 삶에 유일하신 주님이시며, 구원자라고 고백할 때 그 한 번의 고백과 믿음으로 다 끝이 났다고 착각하면 않됩니다.
우리는 로마서 1:17의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에 우리는 집중해야 합니다.
여기서 ‘믿음으로’라는 말은 ‘의인’에도 붙일 수 있고, ‘살리라’에도 붙일 수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의인은’이라는 뜻이 되고, 밑에 붙이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이 됩니다.
그래서 로마서 전체를 보면 ‘믿음으로’는 양쪽에 다 붙을 수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박국 2:4의 인용문에 나타난 ‘의’와 ‘믿음’과 ‘생명’의 패턴은 로마서 전체의 주제를 총괄해 주는 말씀입니다.
(합 2:4, 개정)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로마서 1-3장은 하나님의 의를, 4-8장은 믿음을(6장 전반부는 죄와의 관계에서의 믿음, 6장 후반부와 7장은 율법과의 관계에서의 믿음, 8장에서는 성령과의 관계에서의 믿음), 9-11장은 이방인들과의 관계에서의 유대인들의 구원을, 12-16장은 믿음의 생활을(12장은 교회론적으로 본 새 생활, 13장은 국가와의 관계에서의 새 생활, 14-15장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에서의 생활) 다루고 있습니다.
죄와 사망이라는 죽음의 계곡에서 하나님의 의와 생명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바라보고 그 약속을 붙잡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믿음을 주신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병상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면서 그의 아버지가 믿는다고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울면서 복음을 전하는 생명의 말씀을 듣고도, 죽어가는 그의 아들이 “안 믿어!”하고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고통과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어르신에게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는 다고 아무리 외쳐도 그 복음의 기쁨 소식을 외면하면서 고통속에서 죽어 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얼마나 안타까운지 그 심정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마지막 인생이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되는데, 그것이 뭐가 그렇게 어렵나? 이 상황에서 손해볼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왜 마지막까지 예수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믿기를 원합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나에게 긍휼의 은혜로 채워주시옵소서”라고 그 말 한마디 못하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믿음을 허락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신데, 왜 모든 사람에게 믿음을 허락하지 않으십니까? 모든 사람에게 믿음을 허락하시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면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은 의로우신분이 아닙니까?/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는 없다는 사실에 순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믿음을 허락하실지, 않하실지에 대해서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겸손하게 맡겨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알 수는 없지는 이 땅에서 우리가 해야 할 복음을 전하는 사명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들고, 듣든지 않듣든지,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을 전할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지 주님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허락해 주신 것에 대해서 날마다 감사해야 합니다. 나에게 믿음을 허락하셔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만으로도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임을 믿음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여러분에는 믿음이 있습니까? 나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시기 위해 믿음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여러분의 가슴을 뜨겁게 뛰게 할 정도로 감사와 기쁨이 감격이 있습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가슴앓이를 할 정도로 믿어집니까?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으로 우리들에게 도전합니다.
로마의 권력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엄청난 권력과 힘 앞에서도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여러분에게 바울의 이 외침이 머리와 가슴에서 충돌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복음은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무명의 유대인으로 로마의 동쪽 가장자리에서, 불명예스러운 십자가형을 당한 그분이, 인간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이라는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그 당시에만 해도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세계를 제패한 로마제국의 심장부를 향해서 로마인들이 보기에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이런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은 보통 담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이 하나님의 의에 근거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능력이라는 분명한 믿음과 체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원능력을 불타는 확신으로 선포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바울과 같이 복음에 대한 분명한 고백과 열정이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주님 안에서 이 복음의 고백 위에 여러분의 믿음이 날마다 성숙되어져 가기를 바랍니다.
나눔/ 예수 예수 예수(슬픈마음 있는 자)
나에게 한 가지 초능력과 같은 능력이 주어진다면 당신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싶은가? 그리고 그 능력이 왜 필요하고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나눠보라.
2.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말씀하고 있다. 당신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 순모임을 시간에 오늘 본문을 다시 묵상하면, 말씀과 함께 깨닫은 것이 무엇이지 나누어 보라
3. 로마의 권력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할 때, 여기에서 능력은 세상적으로 천해 보이고, 약해 보이고, 초라해 보이고, 형편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많이 임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바울과 같이 복음에 대한 분명한 고백과 열정이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주님 안에서 이 복음의 고백 위해 나의 믿음이 날마다 자라나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기도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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