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본문: 고린도전서 14:26-4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교회를 다니면서 종종 이런 말을 듣습니다.
"저 사람은 은사가 참 많다."
"저 사람은 기도를 잘한다."
"저 사람은 말을 잘한다."
"저 사람은 찬양을 잘한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다양한 은사를 주신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그 은사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나를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교회를 세우기 위한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방언도 있었고,
예언도 있었고,
가르침도 있었고,
찬양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은사가 너무 많았다는 것이 아니라, 은사를 사용하는 목적과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고,
공동체보다 자기 표현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배가 은혜의 자리가 아니라 혼란의 자리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사도 바울은 매우 중요한 원리를 말합니다.
26절입니다.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이것이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은 은사를 주셨지만,
그 은사가 공동체를 세우는 방향으로 사용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건강한 교회의 모습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은 우리의 은사가 공동체를 세우는 데 사용되기를 원하신다
26절을 보면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고린도교회는 정말 다양한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다양성을 문제 삼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여기서 "덕을 세운다"는 말은 공동체를 세운다는 뜻입니다.
교회를 강하게 하고,
성도를 유익하게 하고,
믿음을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은사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은사는 나를 높이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기 위해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방언에 대해서도 분명한 원칙을 제시합니다.
통역이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듣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해되지 않는 말은 공동체를 세우지 못합니다.
아무리 신비롭고 놀라운 경험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다면 공예배에서는 절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배웁니다.
신앙생활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가 아니라
"이것이 교회를 세우는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내 말이 교회를 세우는가?
내 행동이 교회를 세우는가?
내 섬김이 공동체를 유익하게 하는가?
오늘날 교회의 갈등도 대부분 여기서 시작됩니다.
내가 옳다는 것에 집중할 때,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것에 집중할 때,
교회는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내가 한 걸음 물러나서
"어떻게 하면 공동체가 유익을 얻을까?"
이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 교회는 살아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재능과 경험과 은사는 모두 교회를 위한 선물입니다.
나를 빛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섬김을 다시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인정받기 위해 섬기고 있는가?
아니면 교회를 세우기 위해 섬기고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덕을 세우는 은사를 기뻐하십니다.
2. 하나님은 질서 가운데 교회를 성장시키신다
29절부터 바울은 예언에 대한 원칙을 설명합니다.
둘이나 셋만 말하게 하고,
다른 사람은 분별하게 하고,
차례대로 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합니다.
32절입니다.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이 말은 무엇입니까?
성령의 역사는 사람을 통제 불가능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성령께서 감동하시니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은혜가 넘쳐서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참된 성령의 역사는 절제를 잃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성령께서는 사람을 무질서하게 만들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질서를 세우십니다.
그래서 33절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참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화평의 하나님이십니다.
창조 세계를 보십시오.
태양도 질서가 있습니다.
계절도 질서가 있습니다.
우주의 모든 움직임에도 질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혼란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질서가 있어야 성장이 있습니다.
질서가 있어야 배움이 있습니다.
질서가 있어야 서로를 세울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가정도 질서가 무너지면 힘들어집니다.
학교도 질서가 무너지면 교육이 불가능합니다.
회사도 질서가 무너지면 운영될 수 없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교회는 어떻겠습니까?
질서는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유가 건강하게 사용되도록 돕는 울타리입니다.
강물이 둑 안에서 흐를 때 사람을 살립니다.
그러나 둑을 넘으면 홍수가 됩니다.
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질서 안에서 사용될 때 교회를 세웁니다.
그러나 질서를 떠나면 교회를 무너뜨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말할 줄 아는 사람보다 멈출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장할 줄 아는 사람보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참된 성숙은 절제에서 나타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소란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질서 있는 사람입니다.
3. 하나님은 순종하는 교회를 통해 영광 받으신다
34절 이후부터 바울은 교회의 질서를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고린도교회의 교만을 책망합니다.
36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고린도교회는 자신들이 특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이 다른 교회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규칙을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희가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방식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말씀보다 경험을 앞세울 수 있습니다.
말씀보다 감정을 앞세울 수 있습니다.
말씀보다 내 생각을 앞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기준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지막에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40절입니다.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이것이 오늘 본문의 결론입니다.
예배도 품위 있게.
봉사도 품위 있게.
말도 품위 있게.
관계도 품위 있게.
모든 것을 질서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는 하나님을 드러내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보면서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교회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을 판단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와 삶은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야 합니다.
화평의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우리가 다투고 있다면 모순입니다.
질서의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우리가 혼란을 만든다면 모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진정한 능력은 은사의 화려함에 있지 않습니다.
교회의 진정한 능력은 성도들이 말씀에 순종하는 데 있습니다.
순종이 있는 곳에 은혜가 있습니다.
순종이 있는 곳에 화평이 있습니다.
순종이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십니다.
맺는말
오늘 바울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첫째,
은사는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질서 가운데 교회를 성장시키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는 교회를 통해 영광 받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교회가 은사를 자랑하는 교회가 아니라 덕을 세우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 목소리가 큰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질서와 화평 가운데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섬김과 예배가 오늘 말씀처럼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이 말씀 위에 굳게 세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공동체를 세우는 일에 사용하게 하소서.
- 우리 교회가 질서와 화평이 넘치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 내 주장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소서.
- 모든 예배와 사역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 되게 하소서.
오늘의 말씀 묵상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본문: 고린도전서 14:26-40
고린도교회는 문제가 많은 교회였지만 동시에 은사가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찬송하는 사람도 있었고, 가르치는 사람도 있었고, 방언하는 사람도 있었고, 예언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은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은사를 사용하는 목적이 잘못되었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매우 중요한 원칙을 제시합니다.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고전 14:26)
덕을 세운다는 것은 공동체를 세운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은사는 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은혜를 받았다"는 것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른 사람이 유익을 얻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 내가 가진 재능, 내가 경험한 은혜가 공동체를 세우지 못한다면 그것은 성숙한 사용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방언도 질서 안에서 사용하도록 했고, 예언도 차례를 따라 하도록 했습니다. 심지어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는다"(32절)고 말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무질서와 혼란이 아니라 절제와 질서를 낳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이유를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33절)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은 화평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 역시 화평과 질서를 드러내야 합니다. 은사가 많다고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은사가 사랑 안에서 사용되고 질서 가운데 사용될 때 건강한 교회가 됩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 한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십시오.
"내 말과 행동이 나를 드러내고 있는가, 아니면 공동체를 세우고 있는가?"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직장에서도,
하나님은 나를 높이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세우는 사람으로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은사로 공동체를 세우는 성숙한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묵상 질문
-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는 무엇입니까?
- 나는 그 은사를 나를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까, 공동체를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까?
- 내가 속한 공동체의 화평과 질서를 위해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기도
주님, 제게 주신 모든 은사가 저를 드러내는 도구가 아니라 교회를 세우는 도구가 되게 하소서. 제 말과 행동을 통해 공동체가 유익을 얻고, 화평의 하나님이 드러나게 하소서. 무엇보다 모든 일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행하는 성숙한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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