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교회를 세우는 말을 하라
본문: 고린도전서 14:1-12
서론
사람은 말로 살아갑니다.
가정도 말로 세워지고, 관계도 말로 이어집니다. 반대로 말 때문에 상처를 입고 관계가 무너지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한마디의 격려로 다시 일어나고, 어떤 사람은 한마디의 비난 때문에 오랫동안 아파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흔히 "무슨 말을 했는가"에 집중하지만 성경은 "그 말이 무엇을 이루었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고린도교회는 매우 은사가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방언도 있었고, 예언도 있었고, 지식도 있었고, 여러 가지 신령한 체험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은사들이 교회를 세우기보다 자신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장이라고 불리는 13장을 마친 후 곧바로 14장에 들어와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무엇이 진짜 영적인 것인가?"
그리고 그 답을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이 진짜 영적인 것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성과 은사의 방향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은 나를 드러내는 은사보다 공동체를 세우는 은사를 기뻐하신다
1절을 보십시오.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바울은 먼저 "사랑을 추구하라"고 말합니다.
은사를 말하기 전에 사랑을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은사는 수단이지만 사랑은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은사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 은사를 사용하는 방향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은사가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사람을 세우지 못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특별히 예언하기를 구하라고 말합니다.
왜 예언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예언은 미래를 맞추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여 사람을 세우고, 권면하고, 위로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방언은 통역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습니다.
2절과 4절을 보면 방언은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며 자기 자신을 세우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언은 교회를 세웁니다.
여기서 바울은 중요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무엇이 더 교회를 세우는가?"
그것이 더 귀한 은사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비슷한 유혹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특별한 체험을 좋아합니다.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하면 자신이 더 영적인 사람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체험의 크기를 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 체험이 교회를 세우고 있는지를 보십니다.
누군가는 화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특별한 재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공동체를 세우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과는 거리가 멀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말은 가족을 세우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섬김은 성도를 세우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은사는 교회를 세우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나를 높이는 사람보다 교회를 세우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무엇을 받았는가?"보다 "내가 누구를 세우고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교회를 세우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은 신비한 말보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으로 일하신다
6절에서 바울은 매우 현실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쉽게 말하면 이런 뜻입니다.
"내가 아무리 좋은 내용을 가지고 와도 너희가 이해하지 못하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하나님은 이해되지 않는 혼란을 통해 일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해되는 말씀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세 가지 비유를 사용합니다.
첫 번째는 피리와 거문고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악기라도 음이 분명하지 않으면 음악이 될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나팔입니다.
전쟁터에서 나팔 소리가 불분명하면 군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진격인지 후퇴인지 구별할 수 없습니다.
세 번째는 언어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언어가 있지만 뜻을 모르면 서로 외국인이 됩니다.
말은 들리지만 의미는 전달되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가리켜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늘날에도 동일합니다.
교회는 어려운 말을 경쟁하는 곳이 아닙니다.
복잡한 신학 용어를 많이 안다고 좋은 설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믿고 순종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농부 이야기, 씨 뿌리는 이야기, 잃은 양 이야기, 탕자 이야기로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깊지만 전달은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에서 자녀에게 말할 때도 그렇습니다.
배우자에게 말할 때도 그렇습니다.
성도를 권면할 때도 그렇습니다.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하는 말은 좋은 말이라도 유익을 주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나는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상대가 들어야 할 것을 말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에 도달하는 말씀을 사용하십니다.
말씀을 분명하게 전하고, 분명하게 듣고, 분명하게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 참된 영성은 교회의 덕을 세우는 열심으로 나타난다
10절부터 12절까지 바울은 결론으로 나아갑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
이해가 없으면 관계가 끊어집니다.
소통이 없으면 공동체가 무너집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은사를 주신 이유는 서로 연결하고 세우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2절에서 결론적으로 말합니다.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이것이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교회의 덕을 세우라.
고린도교회는 "어떤 은사가 더 대단한가"를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어떤 은사가 더 유익한가"를 묻습니다.
이것이 성경적 기준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영성을 체험의 강도로 판단하려고 합니다.
얼마나 뜨겁게 기도했는가.
얼마나 특별한 경험을 했는가.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졌는가.
그러나 성경은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교회를 얼마나 세우고 있는가?"
성숙한 성도는 교회를 사랑합니다.
성숙한 성도는 성도를 세웁니다.
성숙한 성도는 자기 자랑보다 공동체의 유익을 먼저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십자가는 가장 위대한 자기희생이며 가장 위대한 공동체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우는 삶은 결국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은사와 경험과 지식이 교회를 살리는 통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오늘 바울은 우리에게 분명한 기준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나를 드러내는 은사보다 공동체를 세우는 은사를 기뻐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신비한 말보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으로 일하십니다.
셋째, 참된 영성은 교회의 덕을 세우는 열심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나를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내 말이 사람을 살리고 세우게 하옵소서."
"주님, 내가 받은 모든 은사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데 사용되게 하옵소서."
교회를 세우는 말, 사람을 살리는 말, 복음을 전하는 말이 우리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은혜의 통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 주님, 사랑보다 은사를 앞세우지 않게 하소서.
- 교회를 세우는 말과 삶을 살게 하소서.
- 나의 은사와 재능이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사용되게 하소서.
- 말씀을 분명히 듣고 순종하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 우리 교회가 서로를 세워가는 건강한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오늘의 말씀 묵상
교회를 세우는 말을 하라
본문: 고린도전서 14:1-12
오늘의 말씀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고전 14:12)
말씀 묵상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 풍성함이 항상 건강한 방향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방언의 은사를 자랑하며 자신들의 영성을 드러내려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중요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무엇이 교회를 세우는가?" 하는 것입니다.
방언은 개인에게 유익을 줄 수 있지만, 예언은 공동체를 세웁니다.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사람들을 권면하고 위로하며 믿음 안에 굳게 세웁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언을 더 사모하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영성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배웁니다.
우리는 종종 특별한 체험이나 감동을 영성의 척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영성의 기준을 다른 곳에 둡니다. 그것은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고 세우느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 이유는 자신을 자랑하게 하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공동체를 유익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또한 바울은 이해되지 않는 말은 유익을 줄 수 없다고 말합니다. 피리나 거문고가 분명한 음을 내야 하듯이, 나팔이 분명한 신호를 내야 하듯이, 하나님의 말씀도 분명하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옳은 말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를 세우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내 지식을 드러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이해하고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의 말은 사람을 세우고 있는가?"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우리의 말이 누군가를 살리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통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묵상 질문
- 나는 은혜를 받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세우는 것에도 관심이 있는가?
- 나의 말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권면이 되고 있는가?
-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는 공동체를 세우는 데 사용되고 있는가?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저에게 주신 모든 은사가 저 자신을 드러내는 도구가 아니라 교회를 세우는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제 입술을 지켜 주셔서 사람을 살리고 위로하며 믿음을 세우는 말을 하게 하옵소서.
특별한 체험을 구하기보다 공동체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제 삶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 줄 적용
"참된 영성은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는 데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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