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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설교(매일성경)_새벽 말씀

그럼에도 말씀에 희망을 둡니다(시편 119:81-96)

by essay2598 2025.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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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말씀에 희망을 둡니다(시편 119:81-96)

 

📖 설교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고난을 만납니다. 때로는 이유도 모른 채 깊은 어둠 속을 걷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건강의 문제, 경제적인 어려움, 관계의 갈등, 마음의 무너짐…. 그런 고난의 밤을 지나며 우리는 묻습니다.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언제까지입니까?” “왜 저입니까?”

시편 119편의 시인은 바로 그 어두운 골짜기 한가운데 있습니다. 81절에서 그는 말합니다.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고난으로 지쳐 쓰러질 지경이지만, 그는 말씀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은 캄캄하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지만, 말씀은 그의 영혼을 붙드는 유일한 등불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한 가지를 분명히 붙잡고자 합니다.
“말씀은 고난 중에도 신자의 영혼을 비추는 유일한 빛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너진 우리의 심령을 일으키고, 절망 중에도 살아갈 힘을 줍니다. 오늘 시편 119편의 고백을 따라, 말씀 안에서 다시 소망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본론1 – 말씀은 고난 가운데 소망이 됩니다.

본문: 시편 119:81–88

시편 기자는 지금 극심한 고난 가운데 있습니다. 그는 81절에서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라고 고백합니다. ‘피곤하다’는 말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지쳐 쓰러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히 환경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응답이 지연되는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영적 갈증과 고독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지침 가운데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이 고백은 놀랍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낙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그는 여전히 말씀을 바라본다, 즉 말씀에 소망을 둔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클수록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 당장의 해결책을 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소망을 둡니다. 왜일까요?
그 이유는 말씀은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의 약속이며, 그 약속은 절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84절에서 그는 이렇게 묻습니다. "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나이까 나를 핍박하는 자들을 주께서 언제나 심판하시리이까"

시편 기자는 “주의 종을 위하여 언제나 심판하실까?” 질문합니다.
‘심판’은 악인의 멸망이 아니라 의인의 회복과 정의의 회복을 의미하는 간구입니다. 시인은 악인의 공격과 조롱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기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하지만 그 간절함은 단지 상황의 변화보다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경건한 갈망입니다.

86절에 보면 시인은 “주의 모든 계명들은 신실하니이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신실’(에무나)은 히브리어로 견고하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즉, 시인은 지금 현실은 무너져도 하나님의 말씀만은 무너지지 않는 반석임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고난 가운데 말씀이 왜 소망이 되는지를 보게 됩니다:

  1. 말씀은 하나님 자신의 성품과 뜻을 나타냅니다.
    고난 중에 변하지 않는 진리를 붙드는 것은, 변덕스러운 감정이나 상황보다 훨씬 더 큰 힘을 줍니다.
  2.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중심에서 지탱하는 기준입니다.
    세상이 흔들려도 말씀이 나를 붙들기에, 낙심 속에서도 나는 ‘버텨냅니다’.
  3. 말씀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끈입니다.
    시인은 고난 중에도 말씀이 끊어지지 않기에 하나님께 계속 부르짖습니다.

🔎 적용 질문

  • 성도 여러분, 고난의 시기에 나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 기도의 응답이 더뎌 보일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붙들고 있습니까?
  • 눈에 보이지 않아도 신실한 말씀, 흔들리지 않는 그 반석 위에 내 삶을 세우고 있습니까?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 중일수록 말씀을 더 가까이 하십시오.
눈물이 흐를지라도 말씀을 읽으십시오. 이해되지 않아도 말씀을 붙드십시오.
말씀은 살아 계시며, 우리 영혼을 밝혀 주는 하나님의 등불입니다.

 

🪔 본론2 – 말씀은 고난 속에서 인내하며 견디게 하는 힘이됩니다.

본문: 시편 119:89–91

89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여기서 “굳게 섰다”는 말은 변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하늘의 법칙이 수천 년간 변하지 않듯, 하나님의 말씀은 시간과 환경을 초월하여 동일하게 역사합니다. 시인은 눈앞의 고난이라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하늘에 굳게 선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봅니다.
이것이 바로 인내의 근거입니다.

세상은 변하고, 사람은 흔들리며, 내 마음은 요동칩니다. 그러나 말씀은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말합니다: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90절)
즉, 말씀은 단지 진리로서 존재할 뿐 아니라, 세대를 관통하며 신실하게 이루어지는 약속의 말씀이며, 그 안에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담겨 있습니다.

90절 하반절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단지 추상적인 교훈이 아니라, 이 세상을 창조하고 지금도 붙들고 있는 능력 있는 말씀임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의 말씀이 지금도 유효하다는 믿음이죠.

91절은 말합니다:
“천지가 주의 규례들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까닭이니이다”
하늘과 땅, 피조물 모두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존재한다는 것, 다시 말해 말씀은 단지 ‘읽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움직이는 실질적 권세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 이 세 구절은 시인이 왜 고난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 이유는, 그의 삶의 기준이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 적용 포인트

  1. 인내는 근거 없는 참음이 아닙니다.
    말씀은 하늘에 굳게 섰고, 지금도 우주를 움직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붙드는 인내는 헛되지 않습니다.
  2. 말씀은 신자의 견고한 발판입니다.
    내 감정이나 상황이 아니라, 영원하고 성실한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설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인내를 소유하게 됩니다.
  3. 삶의 무게가 무너질 때,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이 세상을 지탱하듯, 말씀은 나를 지탱하는 능력의 원천입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으로 세상을 붙드십니다.
그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도 붙드십니다.
그러니 고난 중에도 말씀을 굳게 붙드십시오.
말씀이 여러분의 인내를 견디게 할 것입니다.

 

🪔 본론3 – 말씀은 생명을 회복시키는 기쁨의 원천이 됩니다.

본문: 시편 119:92–96

92절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이 말씀은 말씀이 없었다면 삶 자체가 무너졌을 것이라는 솔직하고 강력한 고백입니다.
‘즐거움’(히. שַׁעֲשׁוּעַ, 샤아슈아)은 단순한 기쁨 이상의 감정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생기와 회복의 감정을 말합니다.
즉, 시인은 말씀 안에서 고난을 이길 만한 생명의 에너지를 공급받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고난은 우리의 감정과 사고를 마비시킵니다.
사탄은 우리의 기쁨을 빼앗고, 무기력과 절망으로 신앙을 무너뜨리려 합니다.
그러나 말씀이 내 안에 살아 있으면, 우리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말씀은 기쁨이고 회복의 통로입니다.

93절에서 시인은 선언합니다:
“내가 주의 법도들을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들 때문에 나를 살게 하심이니이다.”
여기서 ‘살게 하셨다’는 말은 생명을 보존하고 소생시키셨다는 의미입니다.
말씀이 단지 지적인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다시 일으키는 생명의 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94절에서 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법도들만을 찾았나이다.”
이 고백은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의 언약적 표현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말씀을 찾는 자’로 정의하며,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의 확신을 고난 가운데서도 잃지 않습니다.

96절에 가면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들은 심히 넓으니이다.”
이 고백은 모든 인간적 지혜나 방법, 이 땅의 위로는 유한하고 제한되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만은 무한하고, 깊고, 풍성하다는 고백입니다.
‘심히 넓다’는 말은 말씀의 깊이, 높이, 넓이를 다 알 수 없다는 경탄입니다.

🌿 시인은 이 마지막 절에서 마치 결론을 내리듯 고백합니다.
“말씀만이 나를 진정으로 살게 하며, 끝까지 나를 지탱하는 유일한 기쁨의 원천입니다.”

🔎 적용 포인트

  1. 성도는 말씀 안에서 회복됩니다.
    예배 중, 큐티 중, 설교 중—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무너졌던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경험을 하셨습니까?
  2. 삶의 위기 속에서 기쁨을 회복하는 길은, 말씀에 있습니다.
    세상의 위로는 잠깐이지만, 말씀은 내 존재를 다시 세우는 능력입니다.
  3. 말씀은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와 사랑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우리의 정체성과 목적을 다시 찾습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 중에 우리가 붙들어야 할 가장 강력한 무기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우리를 살게 하고, 견디게 하며, 기쁨으로 다시 일어나게 합니다.
말씀이 우리의 생명이 되기를 바랍니다.

 

🔚 결론 – 말씀을 소망으로 삼는 믿음의 결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시편 기자는 깊은 고난 속에서도 말씀을 유일한 소망과 기쁨의 등불로 고백했습니다.
영혼이 피곤할지라도, 인내가 바닥날지라도, 절망이 밀려올지라도,
그는 말씀이 있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았고, 버틸 수 있었고,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여전히 고난은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말씀은 여전히 살아 계시며, 하늘에 굳게 서 있고,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는 생명의 능력입니다.

말씀이 없다면 우리는 길을 잃고 맙니다.
그러나 말씀이 있기에 우리는 다시 걸을 수 있습니다.
말씀이 나의 영혼을 비추는 등불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은 말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리고 14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고난 속 우리에게 비추는 말씀의 빛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와 위로입니다.

그리스도는 고난당하신 말씀 자체이시며,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신실한지를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말씀의 생명력이 진짜임을 확증하셨습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다시 말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 고난 중에도 말씀을 가까이하십시오.
  • 삶이 흔들릴수록, 말씀 위에 단단히 서십시오.
  • 말씀 안에서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만나십시오.

🙏 기도

“주여, 고난 중에도 말씀을 소망 삼게 하소서.
현실은 어둡고 마음은 지치지만,
변함없는 주의 말씀을 다시 붙듭니다.
나를 소생시키시는 말씀, 나를 살게 하시는 말씀,
나를 인도하시는 주의 빛 가운데 걷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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