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때문에 헐떡입니다(시편 119:129-144)
🔹 서론 – 헐떡이는 시대, 헐떡이는 신자
사람은 살아가면서 다양한 이유로 ‘헐떡이게’ 됩니다.
몸이 지치고 숨이 가쁠 때, 혹은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우리는 입을 벌리고 숨을 몰아쉽니다. 이 시대 또한 여러 이유로 헐떡이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생계를 위해, 자녀의 미래를 위해, 병과 외로움 속에서 우리는 애타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하지만 오늘 시편 기자는 조금 다른 이유로 헐떡입니다.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시 119:131).
이것은 육체적인 피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간절한 갈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세상의 피곤함이 아니라, 영혼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목마름 때문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말씀을 사모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주일이면 한 끼 설교로 버티려 하진 않았는지, 주중에는 말씀 없이 살아가는 것이 익숙해지진 않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시편 기자의 마음처럼, 말씀 때문에 헐떡이는 신자의 삶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 묵상하게 될 것입니다.
🔹 본론1 – 말씀이 열리면, 마음이 깨어납니다
시편 119:129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주의 증거들은 놀라우므로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
여기서 ‘놀랍다’는 표현은 단순히 신기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히브리어 원어로는 ‘기이하고 경이롭다’는 의미로,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이성과 상식을 초월하는 깊이와 능력을 지녔다는 고백입니다.
시편 기자는 그 말씀 앞에서 감탄하며, 단순히 읽는 수준이 아니라 ‘지킨다’고 고백합니다.
말씀이 경이로울수록, 그 말씀을 삶으로 순종하고자 하는 갈망이 더 깊어집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어떻게 우리 안에 역사할 수 있을까요?
130절에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여기서 주목할 표현은 “말씀이 열릴 때”입니다.
말씀은 언제나 진리이며 완전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고 깨닫기 위해선 하나님의 조명, 곧 성령의 역사하심이 필요합니다.
본문의 ‘열린다’는 표현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성경책을 펼친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눈이 열려 말씀의 빛을 받아들이게 되는 영적 사건을 의미합니다.
말씀이 열리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빛이 비친다’고 했습니다.
이 빛은 단순한 정보나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비추는 거룩한 빛입니다.
우리는 이 빛 앞에서 자신의 죄를 보게 되고, 방향을 잃은 인생길에 참된 이정표를 발견하게 됩니다.
성경을 오래 읽었다고 해서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의 세계는 날마다 새롭고, 열릴수록 우리 마음의 어두움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뜻이 뚜렷이 보이게 됩니다.
기자는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신다’고 고백합니다.
이 말은 단순히 지식이 부족한 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힘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는 연약한 인간 존재를 의미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빛을 비추시고, 깨달음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머리로 끝나지 않고, 삶의 방향을 바꾸는 능력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읽을 때마다 간구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 제 마음을 열어 주의 말씀의 빛을 보게 하소서.”
그때 말씀이 활짝 열릴 것이고, 우리의 메마른 심령에 하나님의 생명의 빛이 다시 스며들게 될 것입니다.
🔹 본론2 – 말씀을 향한 헐떡임, 그것이 은혜의 출발입니다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시 119:131)
이 구절은 시편 119편 전체에서도 가장 정서적으로 깊은 고백 중 하나입니다.
‘헐떡인다’는 표현은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숨을 몰아쉬는 모습과 같습니다(시 42:1 참조).
입을 벌리고 헐떡이는 모습은 생존을 위한 본능적 반응입니다.
즉,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절박한 심령을 가지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갈망은 단순한 지적 흥미가 아닙니다.
131절은 말씀을 향한 영혼의 열망입니다.
말씀은 삶의 지침일 뿐 아니라, 영혼의 생명줄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계명을 향한 사모함은 말씀을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그 뜻 안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영적인 갈급함으로 드러납니다.
이는 신자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갈급한 자에게 임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그 갈급함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베푸시던 대로 내게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132절)
그는 단순히 말씀이 좋다고 감상에 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을 구하며 말씀 안에 자기 삶을 비추고 있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은 자신의 죄와 연약함을 더 선명히 보게 되며, 그만큼 더 간절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됩니다.
133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간구합니다.
“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
말씀에 대한 사모함은 결국 삶의 방향을 바꾸는 실천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읽고 감동만 받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에 삶을 세우고, 죄를 거절하며, 순종하는 구체적 결단으로 열매 맺게 해야 합니다.
134절과 135절에서는, 세상의 억압에서 자유롭게 해달라는 간구와 함께, 하나님의 얼굴을 비추어달라는 기도가 나옵니다.
여기서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에 대한 소망입니다.
말씀에 헐떡이며 갈급한 자에게 하나님은 얼굴을 돌리지 않으시고, 친히 빛을 비추어주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136절,
“그들이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
말씀을 사모하는 자의 눈에는, 말씀을 떠난 세상이 슬픔의 이유가 됩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고, 그 말씀을 외면하는 영혼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말씀을 향한 헐떡임은 결국,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 되는 자리로 우리를 이끕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심령은 무엇을 향해 헐떡이고 있습니까?
세상의 성공, 사람들의 인정, 아니면 그저 버티기 위한 기도입니까?
참된 은혜의 시작은,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이 거룩한 갈망에서 비롯됩니다.
입을 벌리고 숨을 몰아쉬듯, 하나님의 말씀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고백이
우리 심령 속에서 매일 새롭게 울려 퍼지기를 소망합니다.
🔹 본론3 – 고난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말씀이 소망입니다
신앙의 길에서 가장 흔히 마주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고난과 억울함, 그리고 때로는 하나님의 침묵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입니다.
시편 기자 역시 그런 상황 속에 있었기에 137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옳으니이다.”
상황은 불공평하고 억울할지라도,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신뢰하며 고백하는 믿음의 태도입니다.
138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명령하신 증거들은 의롭고 지극히 성실하니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는 확신입니다.
사람의 말은 때와 장소에 따라 바뀌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의롭고 진실하며 신실합니다.
고난 중에 있는 자에게 이런 확신은 커다란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전히 유효하고, 그분의 판단은 정직하다는 진리는 우리를 붙드는 반석이 됩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그 믿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으로는 매우 낮아져 있습니다.
“내 대적들이 주의 말씀을 잊어버렸으므로 내 열정이 나를 삼켰나이다.” (139절)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사는 세상을 바라보며 가슴이 무너지고, 열심이 자신을 불태우듯 소모되고 있다는 고백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이 땅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생기는 거룩한 통증입니다.
하지만 그는 다시 한번 말씀에 대한 확신으로 돌아갑니다.
“주의 말씀이 심히 순수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140절)
고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는 순금과 같습니다.
심히 순수하다는 말은, 정련된 은처럼 불순물이 전혀 없는 완전한 진리임을 의미합니다(시 12:6 참조).
이 순수한 말씀이기에, 세상의 부조리와 아픔 가운데서도 믿는 자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고 말씀을 사랑하게 됩니다.
141절과 143절에는 기자 자신의 처지를 드러냅니다.
“내가 미천하여 멸시를 당하나 주의 법도를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신앙의 현실은 종종 세상의 멸시와 오해, 그리고 외로움 속에 놓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기자는 말씀이 즐거움이 되었고, 잊혀지지 않는 위로가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의 능력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흔들어도, 말씀이 우리 안에서 살아 있다면 영혼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144절,
“주의 증거들은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
말씀이 단지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살게 하시는’ 생명의 말씀임을 선포합니다.
깨닫게 하시고 살게 하소서.
이것이 시편 기자의 결론이자 기도입니다.
고난 속에서도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의지하며, 말씀 안에서 살아가기를 원하는 이의 간절한 탄식이며 소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떤 상황 속에 있든지,
말씀이 우리 안에 살아 있다면 우리는 살 수 있습니다.
불이 꺼져도, 길이 막혀도,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소망입니다.
그 소망을 붙들고 오늘도 다시 살아내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 결론 – 숨 쉬듯 말씀을 갈망하는 삶으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시편 기자의 고백을 통해 말씀을 향한 진실한 갈망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입을 열고 헐떡일 만큼, 말씀이 없이는 숨 쉴 수 없다는 고백.
그 고백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사모하는 영혼의 반응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도 수많은 소리와 유혹이 들려오지만,
진짜 생명을 주는 말씀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영적 민감함이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
세상 소식은 불안을 심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살게 하고 소망을 주는 생명의 빛입니다.
고난이 있어도, 억울함이 있어도,
말씀이 우리 안에 살아 있다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참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요 1:14).
우리가 날마다 말씀을 가까이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입니다.
그분을 사모하고, 그분의 음성을 들으며, 그분을 닮아가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시 결단해야 합니다.
말씀을 숨 쉬듯 갈망하는 삶,
말씀 없이는 살 수 없다고 고백하는 자리에 우리 자신을 세우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날마다 깨우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갈망이 식지 않도록 도우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기도로 마무리
주님,
우리가 다시 말씀 앞에 엎드리게 하소서.
헐떡이며 갈망하는 심령에게 말씀의 빛을 비추시고,
말씀으로 살게 하소서.
우리 삶이, 우리 가정이, 이 교회가
말씀으로 숨 쉬고 말씀으로 살아가는 공동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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