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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설교(매일성경)_새벽 말씀

고난을 겪고 나서 알았습니다(시편 119:65-80)

by essay2598 2025.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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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겪고 나서 알았습니다(시편 119:65-80)

 

📝 서론

사람은 누구나 고난을 피하고 싶어합니다. 질병, 상실, 경제적 어려움, 인간관계의 갈등… 우리는 고난 앞에서 하나님께 “왜 이런 일이 제게 일어났습니까?”라고 묻곤 합니다. 고난은 불청객처럼 느껴지고, 삶을 무너뜨리는 재앙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길을 걸어온 많은 이들은 고백합니다. “그 고난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의 나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편 기자도 고난을 통과한 후에 중요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놀라운 말입니다. 고난이 유익이라니요? 어떻게 고난이 우리에게 복이 될 수 있을까요?

이 시편은 한 신자가 인생의 깊은 골짜기를 지나오며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새롭게 발견한 은혜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고난이라는 하나님의 신비한 훈련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선하심과 말씀의 진리를 경험하게 되는지, 함께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결국, 고난 후에야 우리가 깨닫게 되는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참된 정체성을 바라보게 되길 원합니다.

 

🪔 본론 1: 고난 중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선하심 (시편 119:65-68)

시편 기자는 본문의 시작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하셨나이다”(65절).
이 구절은 단지 과거에 하나님께서 좋은 일을 행하셨다는 감사의 표현을 넘어서, 하나님의 선하심이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시편 기자가 고난을 당한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선하신 분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닥칠 때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합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가?”라는 질문이 우리 마음을 흔듭니다.
하지만 시편 기자는 고난을 지나며 오히려 더욱 확신에 찬 말로 고백합니다.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68절).

하나님은 선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모든 행하심은 선합니다.
이 진리를 신자 된 우리가 고난 중에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난 자체를 즐기시는 분이 아니라,
그 고난을 통해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말씀으로 빚으시는 분이십니다.

66절과 67절에서 시편 기자는 고백합니다.
“내가 주의 계명들을 믿었사오니 좋은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
그리고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그는 고난 이전에는 잘못된 길을 걸었지만, 고난 이후에는 말씀 앞에 서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선하심은 고난의 순간에도 우리를 말씀 앞으로 인도하는 은혜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수기 위해 고난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새롭게 세우기 위해, 사랑 가운데 고난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시는 주권자이십니다.
이는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과도 연결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당신의 삶에 일어나는 고난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지금도 말씀을 따라 선하게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눈에는 이해되지 않아도, 우리의 마음에는 아픔이 있어도,
하나님은 고난 속에서도 여전히 선하시며, 그분의 뜻은 언제나 신실합니다.

 

🕊 본론 2: 고난을 통한 내면의 성숙 (시편 119:69–72)

고난이 우리 삶에 닥쳐올 때, 그것은 단지 외적인 어려움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오해와 비난, 억울함, 인간관계의 파괴 같은 영혼의 깊은 상처들이 고난의 이름으로 찾아옵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교만한 자들이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들을 지키리이다”(69절).

여기서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시편 기자를 거짓으로 공격하고 억울하게 몰아갑니다.
하지만 시편 기자는 그 상황 속에서 “전심으로 주의 법을 지키리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고난이 올 때, 그는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고 말씀에 붙잡혀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고난이 가져다주는 은혜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말씀에 집중하게 합니다.
평안할 때는 느슨해지고, 내 뜻대로 모든 것이 될 때는 말씀보다 내 감정과 상황을 더 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고난은 우리를 다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게 만듭니다.
말씀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70절에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들의 마음은 살져서 기름덩이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살쪘다’는 표현은 영적으로 무감각하고 자기중심적인 상태를 상징합니다.
반면, 시편 기자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인내의 수준을 넘어서, 고난이 그의 영혼을 정결하게 하고 더 깊은 말씀의 기쁨으로 이끌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시인은 그 유명한 71절을 고백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고백은 고난을 단지 참고 견디다 보니 결국 잘 됐다는 말이 아닙니다.
고난을 통해 말씀의 깊이를 배웠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견고해졌다는 고백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인도하는 영적 성장의 훈련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편안하고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보다,
거룩하고 성숙한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때때로 고난이 우리 인생 가운데 허락되는 이유입니다.

마지막 72절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세상 사람들은 금과 은을 인생의 목표로 삼지만,
고난을 통과한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가장 귀한 보물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 내면을 다듬고, 불순물을 제거하며, 정금처럼 빚어 가십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진정 사랑하게 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요,
그 말씀 안에서 주시는 참된 위로와 능력입니다.

 

🌿 본론 3: 고난 후 새롭게 발견하는 나의 정체성 (시편 119:73–80)

고난은 단지 우리를 변화시키는 사건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깊은 은혜는 고난을 지나면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73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내가 깨달아 주의 계명들을 배우게 하소서.”

이 고백은 한 신자의 존재론적 회복입니다.
고난을 통과한 후, 그는 자신의 인생이 우연한 결과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으로 지으신 존재라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합니다.
고난은 오히려 그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해주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창조의 손이요, 회복의 손이며, 훈련의 손입니다.

고난 이전에는 말씀을 떠나 있었던 자였지만,
이제 그는 고백합니다.
“내가 깨달아 주의 계명들을 배우게 하소서.”
하나님의 손으로 지어진 존재답게, 이제는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살고자 하는 갈망이 그 안에 일어난 것입니다.

74절에서 시인은 자신의 회복이 다른 성도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합니다.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나를 보고 기뻐하는 것은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까닭이니이다.”
고난 후에 신앙으로 회복된 사람은 그 자체로 공동체에 격려와 위로가 됩니다.
한 사람이 믿음을 지키며 걸어간 고난의 여정은,
다른 이들에게도 “나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겠구나” 하는 소망을 주는 것입니다.

75절은 고난의 신학적 의미를 집약합니다.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나를 보고 기뻐하는 것은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까닭이니이다.”
여기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고난을 허락하신 이유가 그의 성실하심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는 고난을 마치 하나님의 침묵이나 방치로 오해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고난의 이면에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를 다듬으시고 이끄십니다.

76절부터 80절까지는 하나님의 긍휼과 회복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로 이어집니다.
“구하오니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이 나의 위안이 되게 하시며”(76절), “주의 긍휼히 여기심이 내게 임하사 내가 살게 하소서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77절)
이 기도는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하고 그분의 은혜에 의지하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마지막 80절에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 마음으로 주의 율례들에 완전하게 하사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게 하소서.”
여기서 ‘완전하게’라는 말은 흠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분열되지 않고 하나님께 향해 있는 전심(全心)을 뜻합니다.
고난을 통해 시인은 분열되었던 마음이 말씀으로 하나 되어가는 회복의 은혜를 경험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은 때로 우리를 무너뜨리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사람은,
그 고난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새롭게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다시 말씀을 따라 살아가고자 하는 거룩한 소명으로 이어집니다.

 

🌈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시편 기자의 고백을 통해 고난이 단순히 불행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 아래 있는 유익한 훈련의 시간임을 보았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 고백은 고난을 지나온 자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이끕니다.
우리의 내면을 성숙하게 하며,
하나님의 선하심과 성실하심을 더 깊이 경험하게 합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그 속에서 자신의 참된 정체성,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영광스러운 신분을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혹 지금 고난의 시간 가운데 계신 분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결코 당신을 버리지 않으셨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당신을 사랑하시기에,
당신을 빚으시고 다듬으시며, 더 깊은 진리와 친밀함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고난 후에야 깨닫는 은혜,
그 은혜 안에서 우리는 더욱 말씀을 사랑하게 되고,
더욱 겸손히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며,
더욱 깊은 믿음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그 은혜에 응답하며,
고난 중에도 여전히 선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라는 고백이 우리 심령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기를 원합니다.

🙏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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