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묵상과 설교(매일성경)_새벽 말씀

이 길을 계속 걸어가겠습니다(시편 119:33-48)

by essay2598 2025. 5. 2.
728x90
반응형
SMALL

 

이 길을 계속 걸어가겠습니다(시편 119:33-48)

 

✍️ 서론

우리는 인생이라는 길 위를 누구나 걷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길의 방향이며, 더 본질적인 질문은
"나는 누구의 인도를 받아, 어떤 길을 걷고 있는가?"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편 기자는 분명한 길을 따라가고자 합니다.
그는 자기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례의 도, 곧 하나님의 말씀의 길을 걷고자 간절히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시 119:33)

이는 단순한 종교적 열심이나 의지가 아닙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배움을 간구하고, 하나님께 행하게 하심을 구합니다.
말씀을 아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 말씀을 살아내는 삶, 즉 순종의 길을 끝까지 걷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순종이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가치가 혼란스럽고, 진리가 상대화되는 시대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며 걸어간다는 것은 큰 결단이자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세 가지 관점에서
말씀을 배우고, 마음을 지키며, 담대하게 순종하는 길에 대해 묵상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시편 기자처럼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이 길을 계속 걷게 하소서.”

 

✍️ 본론 1: 말씀을 배우고, 그 길을 끝까지 따르는 순종

시편 119편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길고, 말씀에 대한 사랑과 열망이 가장 뜨겁게 표현된 시입니다.
그중 오늘 본문 33절에서 35절은 순종의 삶이 어디서 시작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시 119:33)

시인은 말씀을 배우는 일에서 출발합니다.
여기서 “가르치소서”라고 한 것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닙니다.
히브리어 원어로 보면, ‘지속적으로, 점진적으로 훈련시키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말씀을 안다는 것은 한순간의 깨달음이 아니라, 평생에 걸친 하나님의 훈련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은 ‘끝까지’입니다.
신앙은 일회성 감정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두고 순종의 방향을 유지하는 삶입니다.
초심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끝까지 순종의 길을 걷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24:13에서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인은 그 ‘끝까지’의 길을 걷기 위해 하나님께 배움을 간구합니다.

34절은 그 배움이 지식에서 삶으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합니다.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말씀을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은 다릅니다.
깨달음은 말씀의 의미가 내 안에 들어와서 마음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깨닫게 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하며, 그 깨달음을 통해 '전심으로 지키리이다'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모든 신자의 이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단지 읽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 앞에 자신을 낮추고, 그 뜻을 깊이 깨달으며,
전심(全心)으로, 즉 마음의 전부를 다하여 순종하는 것입니다.

3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로 하여금 주의 계명들의 길로 행하게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
이 말씀은 순종이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에서 나오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이 고통스럽고 무거운 짐이 아니라,
오히려 기쁨과 자유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성숙은 바로 여기서 드러납니다.
어린 신자는 말씀을 지켜야 하니까 억지로 따르지만,
성숙한 신자는 말씀 안에서 기쁨을 발견하고 그 길을 자발적으로 걷습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4장 34절에서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이라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예수님의 ‘기쁨’이자 ‘생명’이었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시편 기자는 단순한 순종을 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것을 즐거워하며, 그 길을 끝까지 걷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마음이 바로 오늘 우리가 회복해야 할 신자의 자세입니다.

 

✍️ 본론 2: 마음과 시선을 말씀에 고정하는 간구

말씀에 순종하는 삶은 단지 외적인 행위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 출발점은 우리의 마음이며,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는가 하는 시선의 방향에 달려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바로 이 내면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아뢰며 간구합니다.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 (36절)
마음은 사람의 중심이며, 모든 행동의 출발점입니다.
성경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 4:23)고 말씀합니다.
시인은 이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향하도록, 다른 것이 아니라 주의 증거들, 곧 말씀에 집중되도록 기도합니다.

반면 그는 탐욕으로 마음이 흐르는 것을 경계합니다.
탐욕은 끝이 없고, 결국 마음을 분산시키고 말씀에 대한 애정을 빼앗습니다.
세상의 부, 권력, 성공, 쾌락은 처음에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결국 말씀을 향한 갈급함을 무디게 만들고,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신뢰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시인은 말합니다.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37절)

여기서 “허탄한 것”은 헛된 것, 덧없는 것, 진리 아닌 것들을 뜻합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 이보다 더 절실한 기도가 있을까요?
수많은 정보, 광고, 영상, SNS 속에서 우리의 눈은 끊임없이 ‘헛된 것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우리 마음을 빼앗고, 영혼을 피곤하게 만들며,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합니다.

시인은 그렇게 ‘눈’을 돌이켜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라고 덧붙입니다.
이 표현은 놀랍습니다. 말씀의 길, 즉 순종의 길에서 생명이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죽은 영혼을 살리며, 기진맥진한 심령을 새롭게 합니다.

38절에서 그는 또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를 경외하게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
하나님을 두려워함 없이, 말씀은 지식이 되고 교훈이 되지만 생명의 능력은 사라집니다.
말씀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함께할 때, 비로소 그 진정한 빛을 드러냅니다.
말씀에 대한 경외심은 말씀에 대한 사랑과 순종을 낳고,
그 말씀이 우리 삶의 ‘기준’이자 ‘우선순위’가 되도록 만들어 줍니다.

39절은 우리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고백하게 합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비방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주의 규례들은 선하심이니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원하지만, 자주 넘어지고 부끄러운 생각에 사로잡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기도입니다.
‘자책’은 인간적인 양심의 가책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실패와 부족함을 느낄 때의 경건한 탄식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말씀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고, 그 규례가 ‘선하심’임을 고백하며, 다시 그 말씀 앞으로 나아갑니다.

마지막 40절에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내가 주의 법도들을 사모하였사오니 주의 의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여기서 ‘사모하다’는 말은 단지 흥미나 관심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원어상 이것은 간절히 갈망하고, 영혼 깊이 애틋해하는 마음을 뜻합니다.
말씀에 대한 사랑이 마음 깊이 심겨져 있을 때, 우리는 그 말씀이 우리 안에서 생명을 일으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본문은 말씀을 따르는 순종이 먼저 ‘무엇을 행동할 것인가’보다 ‘어떤 마음으로 말씀을 대하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 마음이 말씀을 향하게 하소서.
우리 눈이 헛된 것이 아니라 진리를 보게 하소서.
이것이 진정한 순종의 시작입니다.

 

✍️ 본론 3: 말씀 안에서 담대하게 살아가는 삶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에 마음과 시선을 고정시키는 것에서 순종은 시작됩니다.
하지만 현실 속 순종의 길은 언제나 쉽지 않습니다.
신자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산다는 이유로 오해받기도 하고, 때론 조롱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말씀 안에서 담대함을 회복하는 길을 보여줍니다.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구원을 내게 임하게 하소서” (41절)
순종의 출발점은 하나님의 인자와 구원입니다.
시인은 말씀을 의지하겠다고 고백하면서도, 먼저 주님의 인자와 구원이 자신에게 임하기를 간구합니다.
이것은 그가 은혜를 근거로 말씀을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자기 의로움이나 공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복음의 은혜 위에 말씀 순종이 세워져야 한다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그는 4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하시면 내가 나를 비방하는 자들에게 대답할 말이 있사오리니 내가 주의 말씀을 의지함이니이다”
이 구절은 매우 실제적인 상황을 반영합니다.
말씀을 따르는 삶은 세상의 기준과 부딪힐 수밖에 없고, 때로는 조롱과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그 속에서도 당당히 설 수 있었던 이유가, 자기 생각이나 논리가 아닌 ‘주의 말씀’을 의지했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점점 더 진리를 상대화하고, 말씀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는 삶을 고리타분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여전히 진리이며, 그 말씀에 근거한 삶은 흔들리지 않는 반석 위에 선 삶입니다.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43절)
이 말씀은 단순히 암송이나 지식의 보유를 넘어서, 삶 가운데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며 살아가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신자는 진리를 ‘소유’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리를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그 말씀을 입에 담고, 삶으로 보여주며, 세상 가운데 선포하는 삶이 바로 담대한 신자의 모습입니다.

44절부터 48절까지는 말씀에 대한 시인의 깊은 헌신이 고백됩니다.
“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지키리이다 영원히 지키리이다” (44절)
순종은 단기간의 열정이 아니라, ‘항상’ 그리고 ‘영원히’ 이어져야 할 삶의 방식입니다.
이는 오직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만 가능한 고백입니다.

“내가 주의 법도들을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걸어갈 것이오며” (45절)
이 구절은 순종을 억압이나 구속으로 보지 않고, 진정한 자유로 해석하는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세상은 자유를 규범과 법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말하지만, 성경은 참된 자유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다고 선언합니다.
말씀을 따르는 길은 ‘좁은 길’이지만, 그 길은 가장 안전하고 자유로운 길입니다.

“또 왕들 앞에서 주의 교훈들을 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겠사오며” (46절)
시인은 공적 공간에서의 신앙 고백을 말합니다.
왕들 앞에서조차 말씀을 말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신자의 삶이 세상 가운데 숨어 있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말하는 삶이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지막 47–48절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들을 스스로 즐거워하며,                                                                                                                     또 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들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주의 율례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이 고백은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전인격적인 사랑과 경외의 표현입니다.
‘손을 들고’는 예배의 자세이며, ‘작은 소리로 읊조린다’는 것은 묵상하며 삶에 새기는 습관을 뜻합니다.
즉, 말씀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시편 기자는 외적인 순종의 삶 뿐 아니라,
그 중심에 있는 은혜, 사랑, 자유, 담대함의 삶으로 나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신자의 참모습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은 결코 수치스러운 길이 아닙니다.
그 길은 진리 위에 선 담대한 길이며, 자유를 누리는 은혜의 길입니다.

 

✍️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시편 기자의 기도를 통해,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신자의 삶이 어떤 길인지를 보았습니다.

그 길은 단순한 도덕이나 의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구원의 은혜 위에 서서,
그 말씀을 배우고, 마음에 품고, 기쁨으로 행하는 길입니다.

이 길은 때로 좁고 외로울 수 있지만,
주님은 그 길을 자유의 길이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얽매는 것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참된 자유와 담대함을 누리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진리를 붙들어야 할 때입니다.
세상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눈을 들어 허탄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길을 바라보며,
끝까지 주님의 말씀을 따라 걷는 자로 부름받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기도도 시편 기자의 고백과 같아야 합니다.
“여호와여, 이 길을 계속 걷게 하소서.”
나의 의지로가 아니라, 주의 은혜로.
내 힘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고, 즐거워하며,
그 말씀을 따라 오늘도 담대히 살아가는 주님의 백성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로 마무리]
“주여, 우리의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 향하게 하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 가운데로 인도하소서.
이 길을 끝까지 걷게 하소서. 아멘.”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