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사랑(아가 6:4-13)
서론
우리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참 자주 사용합니다. 가족을 향한 사랑, 친구를 향한 우정, 또는 부부간의 헌신까지,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사랑은 때때로 변덕스럽고, 한계가 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식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변치 않는 사랑이 있을까요?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본문, 아가서 6장 4절부터 13절은 신랑과 신부 사이의 사랑을 노래하지만, 단순한 인간적 사랑을 넘어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본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으로 부르시고, 여전히 귀하게 여기시며, 끝까지 붙드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때로 우리의 실패와 부족함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조건이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 않습니다. 오늘 이 시간, "변치 않는 사랑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며,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품으로 다시 나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1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다" (아가 6:4-5)
아가서 6장 4절에서 신랑은 신부를 향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사랑아, 너는 디르사 같이 어여쁘고 예루살렘 같이 곱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구나." (아가 6:4, 개역개정)
여기서 디르사와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도시를 상징합니다. 신랑은 신부의 아름다움을 보며, 변함없는 사랑과 존귀함을 표현합니다.
이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는 귀한 그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바라보실 때, 우리의 외적인 조건이나 현재의 상태를 기준으로 사랑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언약 가운데 맺으신 사랑으로, 변함없이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며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실패하고 넘어져도, 때로 믿음이 약해져도, 하나님은 처음 우리를 부르실 때와 동일한 사랑으로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5절에서도 신랑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 눈이 나를 놀라게 하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 네 머리털은 길라앗 산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구나." (아가 6:5, 개역개정)
이 표현은 신부의 사랑이 신랑에게 깊은 감동과 경외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강렬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랑이 아직 완전하지 않음에도, 우리가 주님을 향해 마음을 열 때마다 기뻐하시고 감격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적이지 않습니다.
세상의 사랑은 주고받는 조건에 따라 쉽게 식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로마서 8장 38-39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38-39, 개역개정)
하나님의 사랑은 시간과 공간, 상황과 조건을 넘어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바라보시며 변치 않는 사랑으로 품으십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때로 내 모습이 부끄러워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주저할 때,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다"는 이 복음의 진리를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마틴 루터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한다."
이 고백처럼, 우리 신앙의 중심은 나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스스로를 볼 때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끼십니까?
하나님은 여전히 변함없는 사랑으로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을 믿고, 다시 담대히 주님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그 사랑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히브리서 13:8 참조)
본론 2
"하나님의 사랑은 귀하게 여긴다" (아가 6:6-9)
아가서 6장 6절부터 9절까지 신랑은 신부를 향해 계속해서 사랑과 존귀함을 노래합니다.
"네 이는 목욕하고 나오는 암양 곧 쌍태를 낳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고 네 뺨은 너울 속에서 석류 한 쪽 같구나." (아가 6:6, 개역개정)
신랑은 신부의 아름다움을 정성스럽게 묘사합니다. 여기서 ‘암양’, ‘쌍태’라는 표현은 풍성함과 완전함을 상징하고, ‘석류’는 생명력과 열매 맺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이는 신부가 얼마나 귀하고 존귀한 존재인지를 나타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시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귀하고 존귀한 존재로 여기십니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거나, 자신의 가치를 세상의 평가에 맞춰 측정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에베소서 1:4-5 참조)
우리의 가치는 세상의 성공이나 실패, 사람들의 인정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부여하신 존귀함으로 우리는 귀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특히 아가서 6장 8-9절을 보면 신랑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왕비가 육십 명이요 후궁이 팔십 명이요 시녀가 무수하되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 (아가 6:8-9, 개역개정)
여기서 "왕비", "후궁", "시녀"는 수많은 사람을 상징하지만, 신랑에게는 오직 신부가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수많은 피조물 가운데 그의 백성을 유일하게 사랑하시며, 특별한 애정을 부으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 곧 "헤세드"(חסד)의 사랑을 반영합니다 — 변치 않고 신실하며, 택하신 자를 끝까지 붙드시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우리가 무엇을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7장 7-8절에서도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들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오직 여호와께서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개역개정)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유롭고 주권적인 선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사랑 안에서, 우리의 존귀함을 발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여러분을 ‘하나뿐인 완전한 자’로 여기십니다.
자주 넘어지고 부족한 우리일지라도,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으시고, 우리를 향한 사랑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앞에서 주눅들 필요도 없고, 스스로를 비하할 이유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이미 존귀한 자요, 사랑받는 자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며,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입니다"라고 고백하는 믿음의 자리에 서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힘입어, 세상 속에서도 당당하고 담대하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3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부르신다" (아가 6:10-13)
아가서 6장 10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 (아가 6:10, 개역개정)
신랑은 신부를 보며 찬탄합니다.
‘아침 빛’은 새로움과 소망을, ‘달’과 ‘해’는 빛과 영광을, ‘군대’는 힘과 당당함을 상징합니다.
이 모든 표현은 신부가 세상 속에서도 빛나며, 당당히 서 있는 존재임을 말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백성, 교회, 그리고 우리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시선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6장 11-13절로 가면 분위기가 살짝 전환됩니다.
신부는 자신이 '골짜기의 푸른 초목'을 보기 위해 내려갔다가, 뜻하지 않게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 끌려가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골짜기의 푸른 초목을 보려고 내려갔더니 포도나무가 싹이 났는지, 석류나무가 꽃이 피었는지 보려 하였노라. 부지중에 내 마음이 나를 내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에 이르게 하였구나." (아가 6:11-12, 개역개정)
이 장면은 신자의 삶에 찾아오는 부르심과 사명의 순간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가운데, 하나님의 부르심은 어느 순간 갑자기, 그러나 분명히 우리를 이끌어 사명의 자리로 옮기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부가 수동적으로 끌려간 것이 아니라 ‘부지중에’ 즉, 은혜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들을 그냥 머물게 두지 않으십니다.
사랑으로 부르시고, 사랑으로 이끄시며, 사랑으로 사명의 자리로 세우십니다.
이는 곧 우리 신자의 삶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이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치 않는 사랑으로 부르셨기에, 우리는 그 사랑에 감격하며 순종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31장 3절에서도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개역개정)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단순히 위로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우리를 이끌어 새로운 삶의 자리로 옮기고, 복음의 빛을 세상에 비추는 사명으로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그 사랑에 힘입어,
- 더 깊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 더 뜨겁게 이웃을 사랑하며
-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아가서 6장 13절을 보면, 백성들이 신부에게 돌아오라고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돌아오라,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여, 돌아오라, 돌아오라 우리가 너를 보게 하라." (아가 6:13, 개역개정)
이는 세상이 하나님의 백성을 주목하게 될 것을 암시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부르시고 세우신 자는, 결국 세상 앞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을 받은 자로서, 세상의 한가운데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거룩한 사명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아가서 6장을 통해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을 깊이 묵상했습니다.
세상의 사랑은 쉽게 변하고 조건을 따지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시고, 귀히 여기시며, 사랑으로 부르십니다.
이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십자가로 확증된 사랑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개역개정)
우리는 이 놀라운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두려움 없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또한 그 사랑에 응답하여,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단지 우리를 위로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우리를 변화시키고,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을 붙들고, 사랑받는 자로서 담대히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며,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새 힘을 얻고,
사랑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변치 않는 사랑으로 저희를 부르시는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신실하고 변함없는지 다시 깨닫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이 사랑을 날마다 붙들게 하시고, 사랑받은 자로서 세상 속에서도 당당히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설교 원고
제목: 변치 않는 사랑으로 부르시는 하나님
본문: 아가 6:4-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말씀, 변치 않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참 다양한 사랑을 경험합니다.
부모님의 사랑, 친구의 사랑, 때로는 세상에서 주고받는 많은 사랑들.
하지만 여러분, 솔직히 말해볼까요?
이 세상의 사랑은 때로 변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식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묻습니다.
“정말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오늘 본문 아가서 6장은, 겉으로는 신랑과 신부의 사랑을 노래하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어떤 사랑으로 부르시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시간, 아가서의 말씀을 통해 변치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함께 깊이 묵상해보기를 원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아가 6:4-5)
본문 4절을 보십시오.
"내 사랑아, 너는 디르사 같이 어여쁘고 예루살렘 같이 곱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구나." (아가 6:4)
신랑은 신부를 향해,
"너는 디르사 같이, 예루살렘 같이 아름답고 당당하다"라고 고백합니다.
디르사와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도시를 상징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을 보여줍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잘나서, 흠이 없어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때로 넘어지고, 연약하고, 부족할지라도,
하나님은 처음 부르실 때의 그 사랑으로 여전히,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로마서 8장 38-39절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하나님의 사랑은 시간과 상황을 넘어섭니다.
오늘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어제와 오늘과 영원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아가 6:6-9)
6절부터 9절까지 신랑은 신부의 아름다움을 세밀히 묘사합니다.
"네 이는 목욕하고 나오는 암양 같고,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여기서 양과 석류는 풍성함과 생명을 상징합니다.
신부는 신랑에게 있어 수많은 이들 중 단 하나의 특별한 존재입니다.
8절을 보면,
"왕비가 육십 명이요 후궁이 팔십 명이요 시녀가 무수하되,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바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우리는 세상의 기준으로 우리의 가치를 평가받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로, 그리스도 안에서 존귀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나는 너무 부족한데요." "나는 별로 쓸모없는 존재 아닌가요?"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아가 6:10-13)
10절부터 13절로 가면, 신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귀한 백성의 수레에 오르게 됩니다.
"부지중에 내 마음이 나를 내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에 이르게 하였노라."
여기서 ‘부지중에’라는 표현이 참 은혜롭습니다.
신부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부름을 받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단순히 우리를 위로하고 끝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사명, 새로운 길을 허락하십니다.
예레미야 31장 3절을 기억하십시오.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부르시고, 이끄십니다.
그리고 세상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로 세우십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변하지 않고,
우리를 귀하게 여기며,
우리를 부르신다는 사실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확증된 사랑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로마서 5:8)
그러니 여러분,
주저하지 말고 이 변치 않는 사랑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그리고 그 사랑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우리를 부르시고, 귀히 여기시며,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 사랑을 세상 가운데 전하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변치 않는 사랑으로 저희를 부르신 하나님,
오늘도 그 사랑을 기억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담대히 나아가게 하시고,
우리의 삶을 통해 그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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