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죽음을 넘어 완성으로
본문: 고린도전서 15:20-28
서론
사람은 누구나 미래를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자녀의 미래를 생각하고, 건강한 노후를 생각하고, 사업의 미래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미래를 계획해도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 있습니다. 바로 죽음입니다.
죽음은 인간이 가진 가장 큰 문제입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고, 권력으로 막을 수 없고, 과학으로도 완전히 정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바쁘게 살아가고, 즐거움을 찾고, 다른 것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죽음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바울 당시 고린도 교회에도 부활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믿기 어려워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다."
그리고 그 선언 위에 성도의 미래를 세웁니다.
오늘 본문은 단순히 부활이 있다는 사실만 말하지 않습니다.
부활이 왜 확실한지,
부활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부활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바라보며 참된 소망을 발견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1.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을 보증합니다
본문 20절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여기서 바울은 "첫 열매"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추수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거둔 곡식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것이 첫 열매입니다.
첫 열매는 단순히 일부 수확물이 아닙니다.
첫 열매가 있다는 것은 뒤따를 수확이 반드시 있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첫 열매라고 부릅니다.
그 말은 예수님의 부활이 단독 사건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 뒤에 따라올 더 큰 추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추수가 누구입니까?
바로 그리스도께 속한 성도들입니다.
예수님은 자신만을 위하여 살아나신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머리로 살아나셨습니다.
머리가 살아났다면 몸도 살아나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미래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아담과 그리스도를 비교합니다.
21절과 22절입니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생명 가운데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모두 아담의 후손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부자도 죽고,
가난한 사람도 죽고,
건강한 사람도 죽고,
지혜로운 사람도 죽습니다.
죽음은 모든 인간의 공통된 운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서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아담 안에서는 죽음이 시작되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생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소망은 자신의 믿음의 크기에 있지 않습니다.
자신의 행위에도 있지 않습니다.
오직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죽음을 "잠자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시 깨어날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빈 무덤은 우리를 위한 보증서입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면 우리도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소망은 무덤 너머에 있습니다.
오늘도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은 정하신 질서 가운데 부활을 이루십니다
23절입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바울은 부활에 질서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무질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계획 없이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순서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먼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장차 재림하실 때 성도들이 부활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님 나라가 완성됩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일을 조급하게 생각합니다.
기도했는데 응답이 늦어집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상황은 여전히 답답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묻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일하고 계신가?"
그러나 오늘 말씀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계획대로 일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탄생도 정하신 때에 이루어졌습니다.
십자가도 정하신 때에 이루어졌습니다.
부활도 정하신 때에 이루어졌습니다.
재림도 정하신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왜 이런 고난이 있는지,
왜 이런 아픔이 있는지,
왜 응답이 없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한 장면이지만 하나님은 전체를 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현재만 보지만 하나님은 영원을 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조급함 대신 신뢰를 선택해야 합니다.
기다림도 믿음입니다.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이 일하심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십시오.
부활도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정확하게 일하고 계십니다.
3. 부활의 마지막은 사망의 멸망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입니다
24절부터 28절까지는 역사의 마지막 장면을 보여줍니다.
24절입니다.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예수님은 단순히 죽음에서 살아나신 분이 아닙니다.
왕으로 통치하시는 분입니다.
지금도 온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원수를 정복하실 것입니다.
25절입니다.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여기서 가장 중요한 원수가 등장합니다.
26절입니다.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우리는 죽음을 너무 강한 존재로 생각합니다.
죽음 앞에서 사람은 무력해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을 마지막 승자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죽음을 마지막 패배자로 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사람들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흘 후 부활하심으로 죽음은 이미 치명적인 패배를 당했습니다.
지금도 죽음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미 패배가 결정된 원수입니다.
마치 전쟁에서 승패가 결정되었지만 최종 항복만 남아 있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사망은 완전히 제거될 것입니다.
더 이상 장례식이 없을 것입니다.
더 이상 병원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더 이상 눈물이 없을 것입니다.
더 이상 이별도 없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게 됩니다.
모든 구속 역사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나라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인간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중심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고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성도의 인생도 결국 그 자리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의 현실만 보고 낙심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혼란이 끝이 아닙니다.
질병이 끝이 아닙니다.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마지막 장면은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그리스도의 승리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입니다.
결론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세 가지 확신을 줍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을 보증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정하신 질서 가운데 모든 일을 이루십니다.
셋째,
마지막에는 사망이 멸망하고 하나님 나라가 완성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죽음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부활을 향해 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무덤으로 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영광을 향해 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패배를 향해 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승리를 향해 가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주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눈앞의 현실보다 더 크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죽음보다 강하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믿음으로 고백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살아날 것입니다."
"마침내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것입니다."
기도제목
- 부활 신앙이 삶의 중심이 되게 하소서.
- 죽음보다 크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날마다 바라보게 하소서.
-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게 하소서.
-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소망하며 오늘을 충성되게 살게 하소서.
오늘의 말씀 묵상
죽음이 끝이 아닌 이유
고린도전서 15:20-28
우리는 살면서 죽음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끝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도, 우리의 꿈과 계획도 죽음 앞에서는 멈추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오늘 바울은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0절)
예수님의 부활은 한 사람의 기적이 아닙니다. 바울은 그것을 "첫 열매"라고 부릅니다. 첫 열매가 있다는 것은 뒤이어 추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에게 속한 모든 성도들의 부활을 보증하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종종 눈앞의 현실만 봅니다. 병든 몸을 보고, 늙어가는 모습을 보고,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보면서 절망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의 시선을 무덤 너머로 이끌어 갑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게 되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죄가 가져온 사망보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더 나아가 마지막에 사망이 멸망당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26절)
지금도 죽음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미 승패는 결정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권세는 무너졌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죽음조차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은 죽음을 향해 가는 삶이 아닙니다.
부활을 향해 가는 삶입니다.
세상은 점점 늙어가고 약해지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고 계십니다. 오늘도 우리는 현실의 무게보다 부활의 약속을 더 크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묵상 질문
- 나는 죽음과 미래를 생각할 때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가?
-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삶에 어떤 소망을 주고 있는가?
- 오늘 나는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부활의 약속을 더 신뢰하고 있는가?
오늘의 기도
주님,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게 하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눈앞의 현실에 낙심하기보다 마지막 승리를 이루실 주님을 신뢰하게 하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기억할 말씀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고린도전서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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