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부활이 있기에 오늘을 거룩하게 산다
본문: 고린도전서 15:29-34
들어가는 말
사람은 미래를 믿는 만큼 현재를 살아갑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는 이유는 가을의 수확을 믿기 때문입니다. 학생이 오늘 공부하는 이유는 미래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미래가 없다면 현재의 수고는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부활을 말합니다. 그러나 부활은 단순히 죽은 뒤에 일어날 사건이 아닙니다. 부활은 오늘을 살아가는 방식까지 결정합니다.
고린도교회 안에는 부활을 부인하거나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은 인정하면서도 성도들의 몸의 부활은 믿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전체를 통해 부활의 진리를 변증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바울은 단순히 교리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 전체가 무너진다고 말합니다.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부활은 미래의 소망일 뿐 아니라 오늘의 삶을 움직이는 능력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 부활을 믿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부활은 우리의 헌신을 헛되지 않게 합니다
29절입니다.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이 구절은 성경에서 가장 어려운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죽은 자를 위하여 세례받는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학자들의 견해가 다양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바울의 논점입니다.
바울은 어떤 관습 자체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왜 그런 신앙적 행동을 하겠는가?”
다시 말하면 부활이 없다면 세례도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례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나는 것을 상징합니다.
세례는 부활의 소망을 전제로 합니다.
부활이 없다면 세례는 단순한 물놀이에 불과합니다.
교회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우리는 예배를 드립니까?
왜 시간을 들여 봉사합니까?
왜 헌신합니까?
왜 복음을 위해 살아갑니까?
부활이 없다면 이 모든 것은 설명되지 않습니다.
세상은 종종 묻습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
“왜 손해 보면서 믿느냐?”
“왜 그렇게 헌신하느냐?”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우리의 삶은 이 세상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부활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나라가 있습니다.
우리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눈물의 기도도,
이름 없이 감당하는 봉사도,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왜냐하면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신앙생활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습니까?
열심히 섬겨도 변화가 보이지 않습니까?
그럴 때 기억하십시오.
부활을 믿는 사람의 헌신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수고를 기억하십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충성하십시오.
2. 부활은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붙들게 합니다
30절부터 32절까지 바울은 자신의 삶을 예로 듭니다.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끊임없이 위험을 만났습니다.
돌에 맞았습니다.
매를 맞았습니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죽음의 위협을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이 말은 실제로 매일 죽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매일 죽음의 위협 가운데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 그만큼 위험했습니다.
32절에서는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고 말합니다.
실제 맹수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사나운 대적들을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으로 이해합니다.
바울은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부활이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바울의 삶은 가장 어리석은 삶이 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부활이 없다면 세상 방식이 정답이 됩니다.
즐길 수 있을 때 즐기고,
누릴 수 있을 때 누리고,
손해 보지 말고 살면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왜입니까?
그는 부활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위험을 무릅썼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신앙 때문에 손해를 볼 때가 있습니다.
정직하게 살다가 불이익을 당하기도 합니다.
믿음 때문에 외로움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세상 기준으로 보면 손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 사람은 다르게 봅니다.
지금의 고난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 모든 것을 회복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을 지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힘든 길을 걷고 있습니까?
믿음 때문에 눈물 흘리고 있습니까?
기억하십시오.
부활은 현재의 고난을 영원한 영광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복음을 붙드십시오.
3. 부활은 오늘의 삶을 거룩하게 깨웁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매우 실제적인 결론을 말합니다.
33절입니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부활을 부인하는 사람들의 영향력을 경계하라는 말씀입니다.
왜 이런 경고를 합니까?
부활을 부정하면 결국 삶도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삶을 결정합니다.
무엇을 믿느냐가 어떻게 사느냐를 결정합니다.
부활이 없다면 죄를 멀리할 이유가 없습니다.
거룩을 추구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여기서 “깨어”라는 말은 술 취한 사람이 정신을 차리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지금 정신 차리라는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잠들어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죄에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 가치관에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오늘을 다르게 살아갑니다.
입술을 다르게 사용합니다.
관계를 다르게 맺습니다.
돈을 다르게 사용합니다.
시간을 다르게 사용합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34절 후반부에서 바울은 충격적인 말을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고린도교회 안에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하나님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직분이 있다고 하나님을 아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삶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부활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거룩을 추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까?
정말 부활을 믿고 있습니까?
만일 믿는다면 오늘의 삶이 달라져야 합니다.
죄를 끊어야 합니다.
거룩을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부활 신앙은 주일의 고백이 아니라 월요일의 삶으로 증명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깨어 의를 행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맺는말
오늘 바울은 세 가지를 말씀했습니다.
첫째,
부활은 우리의 헌신을 헛되지 않게 합니다.
둘째,
부활은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붙들게 합니다.
셋째,
부활은 오늘의 삶을 거룩하게 만듭니다.
부활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활은 지금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도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마십시오.
수고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놓지 마십시오.
죄와 타협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우리의 마지막은 죽음이 아니라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이 있기에 오늘의 헌신은 의미가 있습니다.
부활이 있기에 오늘의 고난은 헛되지 않습니다.
부활이 있기에 오늘 우리는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고, 그 부활의 능력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 부활 신앙이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삶의 능력이 되게 하소서.
- 낙심 가운데서도 부활의 소망으로 끝까지 충성하게 하소서.
- 세상의 가치관에 속지 않고 깨어 의를 행하게 하소서.
- 죄와 타협하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 우리 교회가 부활 신앙 위에 굳게 서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이 있기에 오늘을 다르게 산다
본문: 고린도전서 15:29-34
우리는 종종 눈에 보이는 현실만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당장의 문제와 손해, 고난과 불안이 우리의 시선을 가득 채웁니다. 그럴 때면 믿음을 지키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부활을 부인하는 사람들에게 질문합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왜 신앙을 위해 헌신하고, 왜 위험을 감수하며, 왜 거룩한 삶을 살아가겠느냐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의 삶은 부활 신앙의 증거였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 수많은 위험을 감당했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그의 고백은 부활의 소망이 없었다면 결코 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부활은 단순히 죽음 이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활은 오늘의 삶을 결정하는 진리입니다.
부활을 믿기에 우리는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정직을 선택합니다. 부활을 믿기에 우리는 죄와 타협하지 않습니다. 부활을 믿기에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어도 믿음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지막에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부활 신앙은 우리의 삶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깨어 있게 만듭니다. 하나님 앞에서 오늘을 책임 있게 살아가게 합니다.
혹시 오늘 나는 현실의 문제만 바라보며 낙심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시다. 혹시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다고 믿음의 수고를 포기하려 하지는 않는지 살펴봅시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그 부활의 생명이 오늘도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부활은 미래의 약속일 뿐 아니라 오늘을 살아갈 힘입니다.
오늘도 부활의 소망을 붙들고 믿음의 길을 걸어갑시다.
함께 묵상하기
- 나는 부활을 단지 교리로 알고 있는가, 아니면 삶의 능력으로 믿고 있는가?
- 최근 내가 낙심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 부활의 소망이 오늘 나의 선택과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가?
기도
주님, 부활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현실의 어려움 앞에서 쉽게 낙심했던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주신 산 소망을 붙들게 하시고, 오늘도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죄와 타협하지 않게 하시고, 부활의 능력으로 깨어 의를 행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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