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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오늘의 QT)

그리스도의 몸: 서로 연결되어 세워지는 공동체(고린도전서 12:21-31)

by essay2598 2026.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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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리스도의 몸: 서로 연결되어 세워지는 공동체

본문: 고린도전서 12:21-3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주 비교합니다. 누군가는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보며 위축되고, 또 누군가는 자신보다 부족해 보이는 사람을 보며 우월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은 "내가 교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경쟁하는 공동체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몸으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비유를 사용합니다. 몸에는 다양한 지체가 있습니다. 눈도 있고 손도 있고 발도 있습니다. 각각의 역할은 다르지만 모두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이루어 가는 공동체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세 가지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은 우리를 서로 필요하게 만드셨습니다

바울은 2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눈은 볼 수 있지만 물건을 잡을 수 없습니다. 손은 잡을 수 있지만 볼 수 없습니다. 발은 움직일 수 있지만 방향을 결정하지 못합니다. 모든 지체는 서로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특별히 바울은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다"고 말합니다.

우리 몸을 생각해 보십시오. 심장이나 폐와 같은 기관은 밖에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없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교회도 같습니다.

강단에서 설교하는 사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성도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주차를 돕고, 청소를 하고,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잘 띄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우리는 종종 "나는 별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불필요한 지체를 두신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있는 자리가 하나님께서 두신 자리입니다. 여러분의 섬김이 작아 보일지라도 하나님 나라에서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또한 자신을 함부로 평가절하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하게 하신 사람을 우리가 쓸모없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돌보며 살게 하셨습니다

24절과 25절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몸을 이렇게 만드신 목적을 설명합니다.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교회를 경쟁하는 곳으로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서로 돌보는 곳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26절은 교회의 본질을 보여 줍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이것이 진정한 공동체입니다.

우리 몸은 한 부분이 아프면 온몸이 반응합니다. 발에 작은 상처가 나도 눈이 살피고 손이 치료합니다. 머리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중합니다. 몸은 어느 한 부분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교회도 그래야 합니다.

어떤 성도가 병상에 누워 있다면 함께 아파해야 합니다. 어떤 성도가 어려움을 당한다면 함께 짐을 져야 합니다. 어떤 성도가 기도 응답을 받고 기쁜 일을 만났다면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함께 예배드리지만 서로의 삶을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같은 교회에 다니지만 서로에게 무관심할 때도 있습니다.

사실 분쟁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관심이 사라질 때 시작됩니다. 사랑이 식어질 때 시작됩니다.

교회가 건강하려면 서로를 향한 관심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누군가 울고 있을 때 다가가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 기뻐할 때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질투가 아니라 감사로, 경쟁이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같은 건물에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 같은 몸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3.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다른 은사로 교회를 세우십니다

27절에서 바울은 다시 선언합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그리고 이어서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다양한 직분과 은사를 주셨다고 설명합니다.

사도, 선지자, 교사, 능력을 행하는 자, 병 고치는 은사, 돕는 은사, 다스리는 은사, 방언의 은사 등이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이 은사들을 가지고 경쟁했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질문합니다.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당연히 아닙니다.

만약 몸 전체가 눈이라면 어떻게 듣겠습니까? 몸 전체가 귀라면 어떻게 걸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다양성을 통해 교회를 세우십니다.

어떤 사람은 가르치는 은사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섬기는 은사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위로하는 은사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는 은사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은사가 더 크냐가 아닙니다.

그 은사를 누구를 위해 사용하느냐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은사를 자랑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은사의 목적이 교회의 유익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31절에서 더 좋은 길을 보여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 길이 무엇입니까?

곧 이어지는 13장에서 말하는 사랑입니다.

은사가 많아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식이 많아도 사랑이 없으면 소용없습니다.

능력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헛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가장 높은 자리에 계셨지만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오셨습니다.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습니다.

십자가는 능력의 과시가 아니라 사랑의 절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은사도 사랑을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은사의 크기가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사람의 성숙을 결정합니다.

맺음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가르쳐 줍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를 서로 필요하게 만드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돌보며 살게 하셨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다양한 은사를 통해 교회를 세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만할 이유도 없습니다.

낙심할 이유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 안에 두셨고, 각자에게 맡기신 역할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에서 충성하십시오.

형제를 귀하게 여기십시오.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십시오.

그리고 받은 은사를 사랑으로 사용하십시오.

그럴 때 우리 교회는 더욱 건강한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질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사랑 안에서 하나 되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1. 모든 성도를 귀하게 보는 눈을 주옵소서.
  2. 서로의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3. 받은 은사를 자랑이 아니라 섬김으로 사용하게 하소서.
  4. 사랑으로 하나 되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되게 하소서.

 

오늘의 말씀 묵상

그리스도의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

본문: 고린도전서 12:21-31

우리는 교회 생활을 하면서 종종 비교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위축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능력 때문에 다른 사람을 가볍게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설명하며 전혀 다른 시각을 보여 줍니다.

몸에는 눈도 있고 손도 있고 발도 있습니다. 각각의 역할은 다르지만 어느 하나 불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눈이 손에게 "나는 네가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없고, 머리가 발에게 "나는 네가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더 요긴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를 서로 필요하도록 만드셨습니다. 눈에 띄는 사역을 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도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작은 섬김도 하나님 나라에서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돌보도록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함께 아파하고, 한 지체가 기쁨을 얻으면 함께 기뻐하는 것이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무관심해집니다. 같은 예배당에 앉아 있지만 서로의 아픔을 모르고 지나갈 때가 많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정말 형제자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있는가?"

바울은 마지막으로 다양한 은사들을 언급합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은사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다른 은사를 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은사의 크기가 아니라 그 은사를 무엇을 위해 사용하느냐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은사를 자랑의 도구로 사용하려 했지만, 바울은 더 좋은 길을 보여 줍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은사는 사랑 안에서 사용될 때 비로소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오늘 하루도 비교하지 말고 감사합시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귀하게 여깁시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자리에서 사랑으로 섬깁시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서 나는 없어서는 안 될 지체이며, 내 곁의 성도 또한 하나님께서 귀하게 세우신 지체입니다.

묵상 질문

  1. 나는 교회 안에서 어떤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2. 최근에 다른 성도의 아픔을 함께 나누거나 기쁨을 함께 기뻐한 적이 있는가?
  3.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는 무엇이며, 그것을 사랑으로 사용하고 있는가?

기도

주님, 저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 두시고 필요한 지체로 불러 주심을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경쟁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에서 충성하게 하시고, 형제자매를 귀하게 여기게 하옵소서. 다른 이의 아픔에 함께 울고, 기쁨에 함께 웃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게 하시며, 제게 주신 은사를 자랑이 아니라 섬김을 위해 사용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의 한 문장
"하나님은 우리를 경쟁하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를 살리는 지체로 부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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