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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오늘의 QT)

주의 몸을 분별하는 믿음(고린도전서 11:27-34)

by essay2598 2026.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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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의 몸을 분별하는 믿음

본문: 고린도전서 11:27-3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성찬을 앞두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게 합니다.

성찬은 교회가 지켜온 가장 거룩한 예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는 떡과 잔을 받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합니다. 그러나 성찬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는 의식이 아닙니다. 성찬은 오늘도 살아 계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을 은혜 가운데 부르시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찬에 참여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찬의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행위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으로 주님의 식탁에 나아오는가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성찬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찬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떡과 잔은 받았지만 성찬의 의미를 잃어버렸습니다. 사랑 대신 분열이 있었고, 섬김 대신 이기심이 있었으며, 감사 대신 무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찬의 본래 의미를 다시 가르치며 성도들에게 경고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어떤 마음으로 내 식탁에 나아오고 있느냐?"

오늘 말씀을 통해 주의 몸을 분별하는 믿음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은 먼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신다

28절 말씀입니다.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바울은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말합니다.

그것은 자기를 살피는 것입니다.

여기서 살핀다는 말은 단순히 자신의 상태를 대충 점검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영혼을 진지하게 돌아보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문제는 남을 너무 잘 보았다는 것입니다.

누가 먼저 먹었는지,
누가 더 많이 가졌는지,
누가 더 높은 위치에 있는지 보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기 자신의 영적 상태는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남의 허물은 쉽게 발견합니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저 집사는 믿음이 없는 것 같아."

"교회가 왜 저렇게 하지?"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우리 자신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마음은 어떠한가?

나는 정말 그리스도의 은혜를 붙들고 있는가?

나는 회개하지 않은 죄를 품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을 가지고 있는가?

성찬은 남을 평가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자리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오해합니다.

"나는 부족하니까 성찬을 받으면 안 되겠다."

그러나 바울의 의도는 성찬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을 살피고 회개한 후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성찬은 완전한 사람을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성찬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십자가를 붙드는 사람을 위한 자리입니다.

병든 사람이 병원을 찾듯이 죄인은 십자가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우리는 완전해서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필요하기 때문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을 앞둔 성도의 마음은 교만이 아니라 겸손이어야 합니다.

정죄가 아니라 회개여야 합니다.

자신을 돌아보며 주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먼저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을 보기 전에 너 자신을 살펴보아라."

그 말씀 앞에 정직하게 서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몸을 분별하며 나아오게 하신다

29절 말씀입니다.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여기서 핵심은 "주의 몸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분별하라는 말입니까?

먼저는 십자가에서 찢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성찬의 떡은 단순한 음식이 아닙니다.

우리 죄를 위해 찢기신 그리스도의 몸을 가리킵니다.

잔은 단순한 음료가 아닙니다.

죄 사함을 위해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성찬에 참여한다는 것은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떡을 받을 때마다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몸을 찢으셨다."

잔을 받을 때마다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피를 흘리셨다."

그러나 바울은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고린도교회의 문제는 교회 안의 분열이었습니다.

그들은 형제를 무시하면서도 성찬은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의 몸을 분별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분별하는 의미도 포함합니다.

주님께서 피 값으로 사신 형제를 무시하면서 주님의 식탁에 나올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찬을 받는 순간 우리는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했을 뿐 아니라 서로를 화목하게 했습니다.

주님은 하나 되게 하시기 위해 몸을 찢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미움을 붙들고 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만하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찬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성찬은 단순한 개인 경건의 시간이 아닙니다.

교회 공동체가 함께 십자가 아래 서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찬을 앞두고 물어야 합니다.

나는 형제를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교회를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를 귀하게 여기고 있는가?

주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내 몸을 분별하라."

십자가를 바라보고 형제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징계를 통해서도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신다

30절부터 32절까지를 보면 충격적인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고린도교회 안에는 병든 자도 있었고 죽은 자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이 성찬을 가볍게 여긴 결과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이 너무 엄격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곧이어 하나님의 의도를 설명합니다.

32절입니다.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징계입니다.

징계는 버림이 아닙니다.

사랑의 표현입니다.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훈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부모는 잘못된 길로 가는 자녀를 바로잡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죄 가운데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은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때로는 아픔을 통해,
때로는 실패를 통해,
때로는 눈물을 통해,

우리를 돌이키게 하십니다.

그 목적은 멸망이 아닙니다.

회복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잃어버리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붙드시고 돌이키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결국 십자가를 바라보게 합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최종 심판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정죄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받는 징계는 심판자의 형벌이 아니라 아버지의 훈련입니다.

그 안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은혜가 있습니다.

회복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징계 가운데서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손길을 봅니다.

그리고 더욱 십자가 앞으로 나아갑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은 성찬에 참여하는 세 가지 태도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첫째, 우리는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분별해야 합니다.

셋째,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 속에서도 사랑을 보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성찬의 식탁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두려움만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함으로 나아갑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몸을 찢으셨기 때문입니다.

회개함으로 나아갑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전히 은혜가 필요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공로만이 우리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

그러므로 주의 몸을 분별하는 믿음으로 주님의 식탁에 나아갑시다.

그리고 십자가의 은혜를 새롭게 붙드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1. 성찬의 의미를 깊이 깨닫게 하소서.
  2. 자신을 살피고 진실하게 회개하게 하소서.
  3.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게 하소서.
  4. 십자가의 은혜를 새롭게 경험하게 하소서.
  5. 성찬을 통해 믿음이 더욱 견고해지게 하소서.

 

오늘의 말씀 묵상

주의 몸을 분별하는 믿음

본문: 고린도전서 11:27-32

우리는 성찬에 참여할 때 종종 "나는 과연 합당한가?"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성찬에 참여할 자격이 완벽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살피고 주님의 은혜를 붙드는 데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바울은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28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찬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살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기를 원하십니다.

나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 있는가? 회개하지 않은 죄를 붙들고 있지는 않은가? 형제와 화목하지 못한 채 예배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은 이러한 질문을 통해 우리를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앞으로 이끌기 원하십니다.

또한 바울은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29절)라고 말합니다. 주의 몸을 분별한다는 것은 십자가에서 찢기신 예수님의 몸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성찬의 떡과 잔은 단순한 음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위해 몸을 내어주신 주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표징입니다.

동시에 주의 몸은 교회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의 지체들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은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성도들과의 관계도 돌아보게 합니다. 주님께서 피 값으로 사신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주님의 사랑을 온전히 누릴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또한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서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징계하시는 이유는 버리기 위함이 아니라 돌이키기 위함입니다. 32절은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심판자의 분노가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멸망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끝까지 붙드시며 회복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오늘도 십자가 앞으로 나아갑시다. 우리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를 붙들고,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며 나아갑시다.

성찬은 완전한 사람의 식탁이 아니라, 은혜가 필요한 죄인을 위한 주님의 식탁입니다.

묵상 질문

  1. 나는 지금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돌아보아야 할 부분이 무엇입니까?
  2. 내가 용서하거나 화해해야 할 사람은 없습니까?
  3. 성찬을 통해 기억해야 할 예수님의 사랑은 무엇입니까?
  4. 최근 하나님께서 나를 돌이키기 위해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제 자신을 먼저 살피게 하시고 십자가의 은혜 앞에 겸손히 서게 하소서. 주님의 몸과 피가 보여주는 사랑을 기억하게 하시고, 형제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소서. 주님의 징계 속에서도 아버지의 사랑을 발견하게 하시며, 오늘도 그리스도의 은혜만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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