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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오늘의 QT)

사람의 몸과 같은 교회(고린도전서 12:12-20)

by essay2598 2026.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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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람의 몸과 같은 교회

본문: 고린도전서 12:12-2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비교를 참 많이 합니다.

어릴 때는 공부를 비교하고, 직장에서는 능력을 비교하고, 나이가 들어서는 가진 것을 비교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비교는 교회 안에서도 일어납니다.

"나는 저 집사님처럼 기도를 잘 못하는데..."
"나는 저 권사님처럼 봉사를 많이 못하는데..."
"나는 특별한 은사도 없는 것 같은데..."

어떤 사람은 열등감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우월감을 느낍니다.

바로 이런 문제가 고린도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풍성한 은사가 오히려 갈등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받은 은사를 자랑했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위축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를 설명하기 위해 가장 이해하기 쉬운 비유를 사용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의 몸입니다.

우리 몸을 보십시오.

눈이 있고 귀가 있고 손이 있고 발이 있습니다.

모두 다릅니다.

모양도 다르고 역할도 다릅니다.

그러나 모두 한 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을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은 서로 다른 우리를 한 몸으로 부르셨습니다

12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몸은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수많은 지체가 있습니다.

눈 하나만 있다고 몸이 아닙니다.

귀 하나만 있다고 몸이 아닙니다.

여러 지체가 함께 있을 때 비로소 몸이 됩니다.

바울은 이것이 교회의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특별히 13절에서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당시 유대인과 헬라인은 서로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종과 자유인 역시 사회적 신분이 전혀 달랐습니다.

그러나 복음 안에서는 달랐습니다.

성령께서 그들을 하나로 묶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두가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연령도 다릅니다.

직업도 다릅니다.

성격도 다릅니다.

경제적 형편도 다릅니다.

자라온 환경도 다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한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비슷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모두 죄인이었고,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일치는 성격의 일치가 아닙니다.

취향의 일치도 아닙니다.

복음 안에서의 일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볼 때 먼저 사람을 보기보다 복음을 보아야 합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도 있습니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 역시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형제요 자매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교회를 소비자의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내 마음에 들면 좋고 들지 않으면 불편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교회를 몸이라고 말합니다.

몸은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은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손이 발을 보고 "나는 저 발이 싫다" 할 수 없습니다.

눈이 귀를 보고 "나는 너 없이 살겠다" 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함께 있어야 몸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서로 다른 우리를 한 몸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바라볼 때 차이보다 먼저 하나 됨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함까지도 몸의 일부로 사용하십니다

이제 바울은 또 다른 문제를 다룹니다.

그것은 열등감입니다.

15절과 16절을 보십시오.

발이 말합니다.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귀도 말합니다.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얼핏 들으면 우스운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 마음속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생각입니다.

"나는 저 사람처럼 뛰어나지 못해."

"나는 저 사람처럼 인정받지 못해."

"나는 특별한 은사가 없어."

그러면서 자신을 작게 여기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발이 손이 아니라고 몸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귀가 눈이 아니라고 몸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손이냐 발이냐가 아닙니다.

몸에 속해 있느냐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주목하는 자리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강단에 서는 사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눈에 띄는 봉사만 귀한 것이 아닙니다.

주방에서 섬기는 손길도 필요합니다.

조용히 청소하는 손길도 필요합니다.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무릎도 필요합니다.

예배당 문을 열어주는 섬김도 필요합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17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만약 온몸이 눈이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볼 수는 있지만 들을 수는 없습니다.

온몸이 귀라면 어떻겠습니까?

들을 수는 있지만 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몸을 그렇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다양한 지체가 함께 일하도록 만드셨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은사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르치도록,

어떤 사람은 섬기도록,

어떤 사람은 위로하도록,

어떤 사람은 기도하도록,

어떤 사람은 돕도록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다양한 은사가 함께 모일 때 건강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교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잊게 만듭니다.

우리는 없는 것을 바라보느라 이미 받은 것을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와 자리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함까지도 몸의 일부로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비교를 멈추고 맡겨진 자리에서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은 각 사람을 가장 좋은 자리에 두셨습니다

본문의 핵심은 18절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이 말씀은 교회 생활에 매우 중요한 진리를 가르칩니다.

지체의 위치는 우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손이 손으로 태어난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발이 발로 태어난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눈이 눈으로 존재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두셨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원하시는 곳에 두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사로,

어떤 사람은 찬양대로,

어떤 사람은 구역장으로,

어떤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으로,

어떤 사람은 조용히 섬기는 사람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자리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지금 내 자리에 나를 두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늘 다른 자리가 좋아 보입니다.

다른 은사가 좋아 보입니다.

다른 직분이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금의 자리에 두셨다면 그 자리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19절과 2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몸은 다양성이 있을 때 건강합니다.

교회도 다양성이 있을 때 건강합니다.

모두가 같은 생각만 하고,

모두가 같은 일만 하고,

모두가 같은 역할만 한다면,

그것은 건강한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서로 다른 사람들을 통해 교회를 세워 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다른 사람을 시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다른 사람을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도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시는 사람을 우리가 함부로 여길 수 없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서로 다른 우리를 한 몸으로 부르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함까지도 몸의 일부로 사용하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각 사람을 가장 좋은 자리에 두셨습니다.

교회는 완벽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교보다 감사를 선택해야 합니다.

시기보다 사랑을 선택해야 합니다.

경쟁보다 섬김을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도 교회를 세워 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귀하게 여기며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입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충성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아름답게 세워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1.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바라보게 하소서.
  2. 비교와 열등감을 내려놓게 하소서.
  3. 하나님이 맡기신 자리에 감사하게 하소서.
  4. 서로 다른 지체를 존중하고 사랑하게 하소서.
  5. 성령 안에서 하나 되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오늘의 말씀 묵상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입니다

고린도전서 12:12-20

사람은 본능적으로 비교합니다.

다른 사람의 재능을 보며 부러워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보며 낙심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는 눈에 띄는 사역을 감당하고, 누군가는 조용히 섬깁니다. 그때 우리는 종종 생각합니다.

"나는 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몸의 비유를 통해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발이 손이 아니라고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귀가 눈이 아니라고 몸에서 제외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지체를 그분의 뜻대로 몸에 두셨습니다.

교회는 같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성령 안에서 하나 된 공동체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르치고, 어떤 사람은 섬기고, 어떤 사람은 위로하고, 어떤 사람은 기도합니다. 역할은 다르지만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소중한 지체입니다.

우리는 자주 다른 사람의 자리를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를 이 자리, 이 교회, 이 사명 가운데 두신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하루,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보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자리를 돌아보십시오.

하나님은 나를 필요해서 부르셨고, 교회를 위해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몸의 모든 지체가 소중하듯, 하나님 나라에서도 쓸모없는 성도는 없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에서 충성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묵상 질문

  1. 나는 교회 안에서 누구와 비교하며 낙심하고 있지는 않은가?
  2.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역할과 은사는 무엇인가?
  3. 내가 더 귀하게 여기고 존중해야 할 지체는 누구인가?

오늘의 기도

주님,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낙심하거나 교만하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와 은사에 감사하게 하시고,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일에 기쁨으로 헌신하게 하옵소서. 서로 다른 지체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성령 안에서 하나 됨을 이루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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