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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오늘의 QT)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드러내는 예배(고린도전서 11:1-16)

by essay2598 2026.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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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드러내는 예배

본문: 고린도전서 11:1-16

들어가는 말

우리는 예배를 드리면서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은 마음만 보시는데 형식이 그렇게 중요한가?"
"내가 진심이면 되는 것 아닌가?"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배가 단순히 개인의 마음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행위이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열정이 많은 교회였습니다. 은사도 많았고 활동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도 많았습니다. 자유를 강조하다 보니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예배 가운데 남녀의 역할과 태도에 대한 혼란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머리를 가리는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바울의 관심은 단순히 모자나 베일이 아닙니다. 그 뒤에 있는 더 중요한 문제, 곧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와 공동체의 유익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예배가 무엇을 드러내야 하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인정하고 드러내는 예배입니다.


1. 하나님은 예배 가운데 자신의 질서를 인정하기를 원하신다

바울은 먼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바울은 자신을 따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의 모습이 예배에도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3절에서 중요한 원리를 제시합니다.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읽으며 불편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바울은 남녀의 가치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은 본질상 동일하십니다. 그러나 구속의 역사 안에서는 질서가 있습니다. 성자는 성부께 순종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남자와 여자도 하나님 형상으로 동일하게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모두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창조 안에는 역할과 질서가 있었습니다.

창세기에서 남자가 먼저 창조되고 여자가 돕는 배필로 세워집니다. 하나님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로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일부 여성들은 당시 문화 속에서 남성의 권위를 거부하는 상징으로 머리를 가리지 않고 예배에 참여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단순한 외모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무시하는 행동으로 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유보다 먼저 질서를 세우십니다.

질서는 사람을 억압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질서는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가정도 질서가 있어야 평안합니다.
교회도 질서가 있어야 건강합니다.
사회도 질서가 있어야 안전합니다.

신호등이 없는 도로를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차가 자유롭게 달린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혼란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는 우리를 묶는 사슬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는 울타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주신 자리를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나님이 맡기신 책임을 감사함으로 감당하고 있는가?

예배는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인정하는 자리입니다.


2. 하나님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공동체를 세우신다

그런데 바울은 질서를 말하다가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막습니다.

11절과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바울은 남성 우월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질서가 있다고 해서 우월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자가 남자에게서 나왔지만 이후의 모든 남자는 여자에게서 태어납니다.

그리고 바울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결국 남자도 여자도 하나님께 의존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모두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모두 은혜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죄는 언제나 비교하게 만듭니다.

누가 더 중요한가?
누가 더 인정받는가?
누가 더 높아야 하는가?

그러나 복음은 비교를 멈추게 합니다.

교회는 경쟁하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서로를 세워주는 공동체입니다.

손이 발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눈이 귀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모든 지체가 필요합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경쟁자가 아닙니다.

서로를 돕는 동역자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장로도, 권사도, 집사도, 성도도 모두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교회를 세우십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의 삶 속에 비교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누군가를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누군가보다 높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경쟁자로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동역자로 부르셨습니다.

주 안에서는 우열이 아니라 서로의 필요함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하나님은 예배가 공동체를 세우기를 원하신다

13절부터 바울은 자연과 교회의 관습을 근거로 다시 한번 권면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1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자기 자유를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공동체를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예배는 개인 표현의 장이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리입니다.

또한 공동체를 세우는 자리입니다.

고린도전서 전체에서 바울이 반복하는 주제가 있습니다.

"덕을 세우라."

할 수 있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유익한 것입니다.

내 권리보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유익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쉽게 말합니다.

"내 자유인데 무슨 상관인가?"
"내 선택인데 왜 간섭하는가?"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묻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그것이 공동체를 세우는가?"

예배는 나를 드러내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드러내는 시간입니다.

예배는 내 권리를 주장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에 올 때마다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가?"

"오늘 나는 공동체를 세우고 있는가?"

"오늘 나는 나 자신보다 하나님을 높이고 있는가?"

참된 예배자는 자신의 자유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합니다.


맺는말

오늘 본문은 단순히 여성의 머리 가리개에 대한 본문이 아닙니다.

본문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예배 가운데 드러나기를 원하시는 원리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자신의 질서를 인정하기를 원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공동체를 세우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공동체를 세우는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이 모든 것을 가장 완전하게 보여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셨지만 기꺼이 순종하셨습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사랑으로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순종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질서는 억압의 질서가 아닙니다.

사랑의 질서입니다.

생명의 질서입니다.

구원의 질서입니다.

오늘도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교회를 세우는 예배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제목

  1.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신뢰하고 순종하게 하소서.
  2. 비교와 경쟁보다 서로를 세워주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3. 예배 가운데 나 자신보다 하나님을 높이게 하소서.
  4. 그리스도의 순종을 본받아 겸손히 섬기게 하소서.

 

오늘의 말씀 묵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본문: 고린도전서 11:1-16

사람들은 예배를 생각할 때 종종 자신의 감정과 경험에 초점을 맞춥니다. "오늘 은혜를 받았는가?", "오늘 감동이 있었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예배가 단순히 나의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드러내는 자리라고 가르칩니다.

고린도 교회는 자유를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자유가 지나치면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바울은 머리를 가리는 문제를 통해 단순한 복장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 안에 세우신 질서를 존중하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바울의 관심이 우열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모두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동일한 가치와 존귀함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서로를 필요로 하며 함께 살아가도록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율성과 독립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홀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공동체에서도 서로를 필요로 하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참된 성숙은 다른 사람 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자리를 기쁨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진리를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셨지만 성부께 순종하셨습니다. 그 순종은 열등함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종을 통해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는 나를 드러내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 시간입니다. 내 권리를 주장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자리에서 충성할 때,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와 역할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2. 나는 공동체 안에서 경쟁보다 협력을 선택하고 있는가?
  3. 나의 예배는 나를 드러내고 있는가, 하나님을 드러내고 있는가?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자유를 주장하기보다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신뢰하게 하소서.
나에게 맡기신 자리에서 충성하게 하시고,
비교와 경쟁이 아니라 사랑과 섬김으로 공동체를 세워가게 하소서.

무엇보다 예배 가운데 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높임 받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한 순종을 본받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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