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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오늘의 QT)

작은 것은 챙기고 큰 것은 놓치는 신앙을 경계하라(마태복음 23:13–24)

by essay2598 2026.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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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은 챙기고 큰 것은 놓치는 신앙을 경계하라
본문: 마태복음 23:13–24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예배도 빠지지 않고 드리고 있다.”
“헌금도 하고 봉사도 하고 있다.”
“그래도 나는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가장 강하게 책망하신 사람들이 바로 종교적으로 가장 열심이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도도 많이 했고, 금식도 했고, 율법도 세밀하게 지켰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여기서 “화 있을진저”(헬라어 ouai)라는 말은 단순한 꾸중이 아닙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할 때 사용하던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종교 지도자들의 외식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심각한 죄인지 선언하고 계신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이렇게 강하게 말씀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이것입니다.

그들은 작은 것은 철저하게 지켰지만, 정작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보시는 것을 놓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작은 것은 챙기지만 큰 것을 놓치는 신앙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외식은 하나님 나라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13–15절)

예수님은 먼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천국 문을 닫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15절에서 예수님은 더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닌다.”

이 말은 그들이 전도 열심도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정말 열심히 사람들을 종교로 끌어들였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 이유는 복음이 빠진 종교였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종교 제도 안으로만 끌어들이는 신앙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어디로 인도하고 있습니까?

단순히 교회라는 조직입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있습니까?

외식은 천국 문을 닫지만
복음은 천국 문을 엽니다.


2. 외식은 신앙의 가치 질서를 뒤집어 놓습니다 (16–22절)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해 이렇게 부르십니다.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왜 눈이 멀었다고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신앙의 가치 기준이 뒤집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성전으로 맹세하면 괜찮다.”
“그러나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러자 예수님이 질문하십니다.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금이 거룩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전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제단보다 예물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물보다 제단이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제단은 하나님께 드리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하나님보다 종교적 가치와 형식을 더 크게 보았습니다.

외식의 특징은 이것입니다.

본질보다 부수적인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신앙의 중심은 하나님인데
어느 순간 하나님보다 종교적인 것들이 더 중요해집니다.

예배 형식이 더 중요해지고
사람의 평가가 더 중요해지고
종교적 체면이 더 중요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맹인들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도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본질보다 형식이 커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중심은 언제나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3. 참된 신앙은 더 중요한 것을 붙듭니다 (23–24절)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철저함을 인정하십니다.

그들은
박하, 회향, 근채 같은 아주 작은 채소까지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
정원에서 키운 채소까지도 십일조를 계산했습니다.

문제는 철저함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었습니다.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더 중한 것.”

하나님 나라에는 무게 중심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정의, 긍휼, 믿음

사실 이것은 구약 선지자들이 반복해서 외쳤던 메시지입니다.

미가 6장 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형식적인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삶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작은 순종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본질을 놓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에 아주 강렬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당시 유대인들은 포도주를 마실 때
부정한 벌레가 들어갈까 봐 천으로 걸러 마셨습니다.

아주 작은 하루살이는 철저히 걸러내면서
정작 율법에서 가장 큰 부정한 짐승인 낙타는 삼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이런 뜻입니다.

작은 것은 철저히 따지면서
정작 가장 큰 문제는 그냥 넘어간다
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도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예배는 빠지지 않지만
사람을 향한 사랑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교리에는 열심이지만
약한 사람을 향한 긍휼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봉사는 열심히 하지만
가정에서는 사랑이 없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 신앙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혹시

작은 것은 열심히 지키면서
정작 하나님의 마음은 놓치고 있지 않습니까?

바리새인들의 문제는 율법을 많이 지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 율법만 붙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율법으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의 삶을 열매로 맺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형식이 정확한 신앙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신앙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작은 것만 붙드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붙드는 신앙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정의와 긍휼과 믿음으로 살아가는
참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후 함께 드리는 기도제목

  1. 외식적인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신앙을 살게 하소서
    우리의 신앙이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신앙이 되게 하옵소서.
  2. 신앙의 본질을 붙드는 믿음을 주소서
    형식과 습관에 머무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중심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3. 정의와 긍휼과 믿음의 삶을 살게 하소서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게 하시고, 연약한 이웃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주옵소서.
  4. 우리 교회가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공동체 되게 하소서
    종교적 활동에 머무는 교회가 아니라 복음으로 사람을 살리는 교회 되게 하옵소서.
  5.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고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배 마침 기도문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때때로 신앙의 형식은 지키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마음을 놓치고 살아갈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 안에 있는 외식과 교만을 깨뜨려 주옵소서.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작은 것만 붙드는 신앙이 아니라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붙드는 신앙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게 하시고
연약한 이웃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주옵소서.

우리 교회를 축복하여 주셔서
종교적 형식에 머무는 교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사람을 살리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이제 예배를 마치고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 나라의 빛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하시고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날마다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의 묵상 | 마태복음 23:23–24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예수님은 당시 가장 종교적으로 열심이 있던 바리새인들을 향해 “화 있을진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아주 작은 채소까지 십일조를 드릴 만큼 철저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문제는 작은 계명을 지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더 중요하게 보시는 것을 놓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더 중한 것으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단지 종교적 형식이 정확한 신앙을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삶을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신앙도 때때로 형식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예배와 봉사, 헌금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본질을 놓칠 수 있습니다. 참된 신앙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긍휼히 여기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으로 나타납니다.

기도
주님, 우리의 신앙이 형식에 머무르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이웃을 향한 긍휼을 우리 안에 새롭게 하시고, 날마다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의 적용
오늘 하루, 하나님 앞에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실천할 한 가지 행동을 선택해 실천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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