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하나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본문: 마태복음 22:23–33
서론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피하고 싶은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죽음입니다.
사람들은 죽음 이후의 이야기를 불편해합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죽음 이후의 삶을 막연한 이야기나 종교적인 상상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두개인들입니다.
사두개인들은 당시 유대 사회의 지도층이었습니다. 제사장 가문에 속한 사람들이 많았고 성전 중심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 가지 중요한 진리를 부정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구약 성경 가운데 특히 모세오경만 권위 있는 성경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부활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사두개인들은 예수님께 나와 부활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나 그 질문은 진리를 찾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하고 부활 신앙을 조롱하려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매우 중요한 선언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이 말씀은 단순한 교리 설명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진리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과 부활의 소망을 붙드는 믿음이 우리 가운데 더욱 분명해지기를 바랍니다.
1. 믿음 없는 사람은 부활을 조롱한다 (23–28절)
23절을 보면 이렇게 시작합니다.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인생은 이 땅에서 끝나는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부활 신앙을 조롱하기 위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그들이 근거로 삼은 것은 계대결혼 제도였습니다.
신명기 25장에 보면 형이 자식 없이 죽었을 때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 형의 가문을 이어가게 하는 제도가 나옵니다.
사두개인들은 이 율법을 이용해 극단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일곱 형제가 있었는데 맏형이 결혼했다가 죽고, 둘째가 결혼하고 또 죽고, 그렇게 일곱 형제 모두 그 여인과 결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부활 때에 그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이 질문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보십시오. 부활이라는 것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까?”
그들은 진리를 알고 싶어서 질문한 것이 아니라 믿음을 조롱하기 위해 질문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에도 이런 질문은 여전히 있습니다.
“천국이 정말 있습니까?”
“사람이 죽으면 끝 아닌가요?”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부활은 비현실적인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중심에는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2. 부활을 모르는 이유는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기 때문이다 (29–30절)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의 문제를 정확하게 지적하십니다.
29절입니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예수님은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성경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성경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을 많이 아는 것과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단순한 지식의 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과 생명의 능력을 증거하는 책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을 인간의 논리 안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끝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우리가 천사가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부활의 삶은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삶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완전한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더 이상 죽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가문을 이어가기 위한 결혼 제도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생명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영광스러운 삶입니다.
그리고 이 부활의 능력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3. 하나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31–33절)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구약 성경을 인용하십니다.
출애굽기 3장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장면입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제입니다.
하나님은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죽음은 하나님과의 생명이 완성되는 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그 이후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향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영원을 향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부활의 소망을 붙들고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 살아 계신 하나님을 더욱 분명히 믿는 믿음이 자라도록
우리의 신앙이 막연한 종교가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을 바로 아는 믿음이 되도록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성숙한 신앙으로 자라가도록 기도합시다. - 부활의 소망을 붙들고 살아가는 삶이 되도록
이 땅의 현실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도록 기도합시다. - 두려움보다 소망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도록
죽음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담대한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기도합시다. - 우리 교회가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가 되도록
살아 계신 하나님과 부활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예배 대표기도
살아 계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를 주님의 거룩한 예배 자리로 불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심을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많은 때 하나님을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믿기보다
눈에 보이는 현실만 바라보며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부활의 소망을 붙들기보다
세상의 염려와 두려움 속에서 흔들렸던 우리의 믿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성경을 바로 이해하는 지혜를 주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붙들고
오늘의 삶을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의 삶을 통해 부활의 소망과 생명의 복음이 드러나게 하시고
우리 교회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말씀을 전하신 목사님에게 성령의 기름 부음을 더하여 주시고
듣는 모든 성도들의 마음 가운데 말씀이 살아 역사하게 하옵소서.
이 예배의 처음과 마지막을 주님께 맡겨 드리며
우리를 구원하시고 부활의 소망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의 묵상 | 마태복음 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부활을 조롱하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문제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하나님은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 하나님과 맺은 관계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자신의 백성과 관계를 맺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 진리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그래서 믿는 자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명의 시작입니다. 오늘 하루도 눈에 보이는 현실만 바라보지 말고 살아 계신 하나님과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붙들고 살아가십시오.
기도
살아 계신 하나님 아버지, 죽음을 넘어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에 흔들리지 않고 부활의 소망을 붙들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도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으며 담대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의 적용
오늘 하루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마음속으로 고백하며 살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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