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기도(빌립보서 1:1-11)
🟦 서론: 감사는 은혜를 보는 눈에서 시작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관계 속에 살아갑니다. 가족, 친구, 교회 공동체… 이 모든 관계에서 우리는 기쁨도, 아픔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관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 어떤지에 따라 마음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빌립보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와 기도로 가득 찬 마음을 고백합니다. 어떤 환경보다, 그들과 맺은 복음 안의 관계를 더 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성도들과 바울의 관계는 단순한 인간적 친분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한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그 은혜가 그들을 하나로 묶었고, 복음을 위한 동역자로 세웠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또 감사와 기도로 어떻게 서로를 세워나가야 하는지를 함께 나누려 합니다.
🟦 본론1: 복음 안에서 맺어진 교제 – 공동체는 은혜 안의 연합이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감옥에 갇힌 상황 속에서도 기쁨과 감사를 잃지 않고 기록한 편지입니다. 그는 편지를 시작하면서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고백합니다(빌 1:3). 단순한 안부 인사가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이 처한 상황보다, 하나님께서 빌립보 성도들과 함께 이루신 복음 안의 교제를 먼저 바라보며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바울은 그 교제를 5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빌 1:5)
여기서 “참여”라는 말은 헬라어로 코이노니아(koinonia), 곧 ‘교제’, ‘동참’을 뜻합니다. 이는 단순히 식사 나누는 교제 이상의 개념입니다. 같은 복음을 믿고, 같은 사명을 품고, 같은 주를 따르는 깊은 연합을 의미합니다. 이 교제는 단순한 인간적 친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맺어진 연합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2차 선교여행 중 처음으로 유럽 땅에 세운 교회입니다(행 16장 참조). 루디아의 회심, 감옥의 지진 사건, 간수의 회심 등 빌립보에서 시작된 복음 역사는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였습니다. 이 교회는 바울이 다른 곳에 있을 때에도 물질과 기도로 그를 후원했으며, 고난 중에도 복음 전파에 동역했습니다(빌 4:15-16).
그들은 단순한 수신자가 아니라, 복음 사역의 동역자들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일종의 ‘종교 커뮤니티’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교회를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교회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이 복음 안에서 하나 된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배경, 직업, 연령이 다르지만, 복음으로 하나 되었고, 성령 안에서 연합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연합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야 가능한 일입니다. 바울이 감사한 것은 바로 이 성령의 역사, 복음 안의 연합, 그 놀라운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빌 1:4-5)
장년 성도 여러분, 우리는 같은 교회에 출석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복음의 교제’를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 교제는 복음에 대한 헌신, 서로를 위한 중보기도, 함께 고난을 짊어지며 사명을 나누는 삶 속에서 깊어집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분은 오직 성령님이십니다.
우리가 교회를 단지 ‘좋은 분위기’나 ‘편안한 소속감’으로 여길 때, 쉽게 상처받고,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 안에서 맺어진 연합으로 교회를 바라보면, 연약한 지체도, 다른 생각을 가진 성도도 감사함으로 품을 수 있는 은혜의 대상이 됩니다.
🟦 본론2: 하나님의 선한 시작과 확신 – 우리의 구원과 성장은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다
복음 안에서의 교제는 단지 과거의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고, 장차 완성될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바울은 6절에서 그 확신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 1:6)
이 구절은 매우 중요한 복음의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착한 일”, 곧 구원의 시작은 인간의 결단이나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결코 미완성으로 끝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구속 사역을 반드시 “그리스도 예수의 날”, 즉 주님의 재림 때까지 완성해 가십니다.
바울이 이 말을 빌립보 성도들에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그 구원의 열매를 삶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복음에 참여했고, 고난 중에도 동역했으며, 바울을 물질과 기도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확신은 그들의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를 가능케 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에 기반한 것입니다.
이것은 개혁주의 신학이 강조하는 아주 중요한 교리입니다.
우리는 은혜로 시작되었고, 은혜로 유지되며, 은혜로 완성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구원은 성령의 내주와 역사를 통해 날마다 우리를 성화의 길로 이끄십니다. 그렇기에 신자의 삶에는 낙심이 있어도 절망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소망은 우리 자신의 신앙심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있기 때문입니다.
장년 성도 여러분, 신앙의 여정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연륜이 쌓이고 세월이 흐를수록 믿음의 싸움은 더욱 복잡해집니다. 가정의 문제, 자녀의 문제, 건강의 염려, 때론 교회 안의 갈등까지…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을 관통하며 오늘도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이 확신은 목회자의 확신이자, 모든 성도의 확신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안에 선한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는 단지 그분의 손에 붙들린 도구일 뿐입니다. 그분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 말씀이 주는 은혜는, 우리가 서로를 볼 때도 새로운 눈을 갖게 합니다.
때론 연약하고 미숙해 보이는 지체도, 불완전한 모습의 교회도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구원의 과정 중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신뢰 안에서 함께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 본론3: 지식과 총명으로 자라가는 사랑 – 성숙한 공동체의 기준은 사랑의 깊이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한 감사와 확신을 고백한 후, 마지막으로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 기도의 핵심은 단 하나입니다:
“사랑이 더욱 풍성해지기를.”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빌 1:9)
바울은 단순히 ‘사랑이 많아지길’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지식과 총명을 겸비한 사랑, 즉 올바른 진리에 기초한 분별력 있는 사랑이 넘치기를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공동체의 성숙은 단지 따뜻함이나 친절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합한 분별력 있는 사랑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 속에서 빛을 잃어가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진리를 놓치거나, 진리를 말하면서 사랑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 공동체가 자라가야 할 방향은 분명히 말합니다:
사랑이 자라되, 지식과 총명으로 자라가야 한다는 것.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영적 통찰력을 의미합니다.
‘총명’은 실제 상황에서 어떻게 그 지식을 적용할지를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즉, 복음의 진리를 삶에 실제로 적용해 나가는 사랑이야말로 성숙한 공동체의 기준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빌 1:10)
바울이 기도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날까지 거룩하게 서는 것입니다.
단지 외적인 행위나 열심이 아니라, 내면의 진실함과 성결함으로 자라나는 공동체가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성령의 열매로 이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빌 1:11)
여기서 ‘의의 열매’는 하나님 앞에서의 올바른 삶의 열매, 곧 복음으로 변화된 인격과 공동체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궁극적으로 이 모든 자라남과 성장의 열매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찬송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장년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가 복음 안에서 진정한 공동체가 되려면, 우리의 사랑이 단지 감정적이거나 조건적인 차원에 머물러선 안 됩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지식 가운데 사랑해야 하며,
삶의 실제에서 분별력 있게 적용되는 총명함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공동체는 외적인 풍성함을 넘어,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성숙한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공동체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을 드러내는 교회로 세워질 것입니다.
🟦 결론: 은혜로 맺어진 공동체, 감사와 기도로 세워갑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향해 고백한 감사와 기도의 마음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했고, 그들의 성장을 위해 간구했습니다. 왜일까요?
그들이 인간적으로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한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배경과 성격을 가졌지만, 복음으로 인해 하나 된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선한 일을 시작하셨고, 지금도 성령께서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볼 때마다 감사의 눈으로 바라보고, 기도로 세워가는 믿음의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사람의 열심이 아니라 은혜로 세워집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아는 사람은 반드시 감사하게 되고, 기도하게 됩니다.
이 시간, 우리 각자의 마음을 돌아보며 이렇게 기도하길 원합니다:
“주님, 우리 교회가 복음 안에서 함께한 은혜를 기억하게 하소서.
그리고 감사와 기도로 서로를 세워가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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