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묵상과 설교(매일성경)_새벽 말씀

부림에 대한 일(에스더 9:20-10:3)

by essay2598 2025. 5. 21.
728x90
반응형
SMALL

부림에 대한 일(에스더 9:20-10:3)

 

🔹 서론

제목: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신 하나님
본문: 에스더 9:22

우리는 살아가며 종종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 하는 질문을 던질 때가 있습니다. 특히 설명되지 않는 고난이나 억울한 일을 겪을 때,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 순간에 믿음은 시험을 받고, 감사보다는 불평이 앞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삶에는 단 하나의 우연도 없으며,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에스더서에 나오는 유다 백성들의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하만이라는 악인이 꾸민 음모로 민족 전체가 멸망 직전까지 가지만,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그 모든 상황을 뒤집으시고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의 날을 기억하며 기뻐하고 감사하는 절기가 바로 ‘부림절’입니다.

오늘 본문 에스더 9장 2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달 이 날에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
이 말씀은 단지 과거 유다 민족의 감격만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신자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고, 우리가 그 은혜를 어떻게 기억하고 감사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제 우리는 본문을 통해 세 가지 중요한 진리를 살펴보려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섭리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둘째, 하나님은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셋째, 우리는 그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로 살아가야 합니다.

 

🔹 본론 1 – 하나님의 섭리는 우연이 아닌 계획이었다

에스더서를 읽다 보면 놀라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이 책 어디에도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어떤 책보다도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강하게 드러나는 책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인간의 역사 가운데 작동하는지를 뚜렷하게 볼 수 있습니다.

하만이라는 사람은 단순한 정치적 인물이 아니라, 유다 민족을 말살하려는 사탄적 도구였습니다. 그 음모는 치밀했고, 바사 제국의 권력을 등에 업은 위협은 현실적인 공포였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계획 위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향한 구원의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 계획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준비된 은혜였습니다.

에스더가 왕후로 선택된 것, 모르드개가 문 앞에 앉아 왕의 일을 엿듣게 된 것, 왕이 잠을 이루지 못해 옛 기록을 읽게 된 것 — 이 모든 일들이 우연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철저한 섭리 아래 이루어진 일들이었습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이를 ‘특별섭리’라 부릅니다. 하나님은 일반적 질서를 넘어서 당신의 구속사를 이루기 위해 역사와 사람을 주권적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도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려 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문화와 세력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삶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어도, 모든 상황 속에 하나님의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은 단지 어려운 일을 잘 견디자는 위로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백성의 삶에 단 하나의 우연도 없으며, 그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아래 있다는 분명한 진리입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그런 믿음으로 반응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담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손을 신뢰하며 움직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신자들에게 필요한 신앙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겉모습에 좌우되지 않고,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을 신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 본론 2 – 하나님은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시는 분이시다

에스더 9장 22절은 부림절의 본질을 이렇게 선포합니다.
“이 달 이 날에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말씀은 단지 과거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일어나는 영적 원리, 곧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선포하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고통 가운데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단지 무언가를 막거나 피하게 하시는 수동적 개입이 아니라, 고난조차도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셔서 구원을 이루시는 적극적인 은혜의 역사입니다. 유다 백성이 겪었던 절망은 하만의 조서 한 장으로 온 민족이 멸절될 위기에 놓인, 말 그대로 ‘죽음의 그림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절망의 상황 속에서 반전을 일으키셨습니다.

그 반전의 중심에는 ‘십자가의 그림자’가 있습니다. 에스더는 왕 앞에 나아가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조서를 앞에 두고 애통하며 금식했습니다. 이는 모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해 생명을 내어주신 모형이기도 합니다. 에스더서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성취될 궁극적 구원을 예표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와 슬픔, 죽음을 짊어지셨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이제 더 이상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된다”는 이 구절은 복음의 메시지 그 자체입니다.

목사님, 우리는 장년 성도들의 삶 가운데 깊은 슬픔과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자녀 문제, 건강 문제, 경제적 어려움, 오래된 관계의 상처들... 이 모든 것이 인간적인 눈에는 ‘절망의 조서’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슬픔을 헛되이 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슬픔의 자리를 복음의 기쁨으로 바꾸시며, 눈물의 기도를 응답의 찬송으로 변화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시편 30편 11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바로 이것이 오늘 본문이 말하는 ‘부림절의 영성’입니다. 단지 구원을 받았다는 과거의 사실이 아니라, 오늘도 우리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께서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고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에스더서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지금 어떤 슬픔 가운데 있는가? 그리고 그 슬픔을 하나님의 손에 올려드릴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은 결코 무관심하지 않으시며, 그분의 때에 반드시 우리도 부림절의 기쁨을 누리게 하십니다.

 

🔹 본론 3 – 구원은 기억되고 감사함으로 드러난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을 구원하신 사건은 그저 한 순간의 감격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모르드개는 이 구원의 날을 “기억하고 지키라”고 명령합니다. 에스더 9장 2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각 지방, 각 읍, 각 집에서 대대로 이 두 날을 기념하여 지키되 이 부림일을 유다인 중에서 폐하지 않게 하고 그들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기념하게 하였더라.”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은혜는 기억되어야 할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감사의 삶으로 이어져야 할 부르심입니다.

감사는 단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적 감사는 기억의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마음에 새기며, 삶으로 표현하는 것이 참된 감사입니다. 부림절은 단지 명절이 아니라, 기억과 감사의 신앙 교육이었습니다. 가정마다 선물을 나누고,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며, 다음 세대에게 이 날을 설명하게 했습니다. 이는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되새기고 나누는 날”로 삼았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는 그 은혜를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감사는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열매로 드러나야 합니다.
– 예배가 습관이 되지 않고 감격이 되어야 하고,
– 헌신이 의무가 아닌 기쁨이 되어야 하며,
– 구원이 이론이 아니라 매일의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장년 성도님들의 삶에는 많은 시간이 흐르고, 수많은 사건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시간 속에서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지켜오신 은혜가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도, 그 은혜의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 속에도 ‘부림절’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신 날, 건져내신 순간, 응답하신 사건들을 마음에 새기고, 그 기억이 우리 가정과 공동체에 흘러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종종 말씀하셨습니다.
“기억하라. 너희가 애굽 종 되었던 때를.”
“기억하라. 너희를 인도한 광야의 길을.”
이 말씀은 단지 과거를 회상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기억을 통해 감사와 순종의 삶으로 나아가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우리도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살고 있는가?”
“그 기억이 감사로, 그 감사가 순종으로 이어지고 있는가?”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었거늘, 그 은혜를 잊지 말라.”
그리고 우리는 그 은혜의 기억 위에 서서 다시 감사로 반응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부림절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치신 신앙의 태도입니다.

 

🔹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에스더서를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슬픔을 기쁨으로, 절망을 구원으로 바꾸시는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을 결코 잊지 말고, 대대손손 기억하며 감사로 살아가야 함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다 보지 못하고 다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의 섭리는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의 어두운 골짜기마저도 하나님은 사용하셔서 그분의 선하신 뜻을 이루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십니다.

하지만 그 은혜를 받은 우리는 한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감사는 선택이 아니라 믿음의 반응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를 붙들며, 매일의 삶 속에서 감사의 열매를 맺는 것이 진정한 신자의 삶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하나님께 받은 은혜의 기억을 되살려 보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하나님, 저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신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며, 순종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부림절은 유다 민족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며,
우리 삶 속에서도 계속되는 구속의 역사입니다.

이제, 우리도 ‘기억하는 신앙’, ‘감사하는 신앙’으로 살아갑시다.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잊지 않고,
그 이름을 높이며 살아가는 신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 설교 후 대표 기도문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살아계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에스더서를 통해 주의 섭리와 구원의 은혜를 다시금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 인생에는 때로 설명되지 않는 슬픔과 고난이 있지만
그 모든 순간 가운데서도 주님의 손이 우리를 인도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을 구원하셨듯, 우리의 삶 속에서도 슬픔을 기쁨으로,
애통을 감사로 바꾸어주시는 분이심을 오늘 말씀을 통해 확신합니다.

주여, 우리로 하여금 받은 은혜를 잊지 않게 하시고,
그 구원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신자가 되게 하옵소서.
과거의 기적만을 말하는 자가 아니라,
오늘의 삶 속에서도 감사의 고백을 올려드리는 예배자가 되게 하소서.

우리의 가정이, 교회가, 다음 세대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않고 대대로 전하게 하시며,
항상 그 은혜에 감사하며 순종으로 응답하는 공동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베푸신
궁극적인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기억하게 하시고,
날마다 복음의 기쁨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시는 그날까지,
믿음으로 인내하게 하시고,
감사로 살아가는 주님의 백성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