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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설교(매일성경)_새벽 말씀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누가복음 24:1-12 )

by essay2598 2025.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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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을 찾아간 여인들(누가복음 24:1-12 )

✍️ 서론

부활절 새벽, 여인들은 향료를 들고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안식일이 지나기를 기다렸다가 새벽이 되자마자 그분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 나아간 것입니다. 무거운 마음, 깊은 상실감, 말할 수 없는 고통이 그들의 걸음을 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들은 여전히 주님을 사랑했고, 그 사랑은 행동으로 드러났습니다.

우리도 인생의 어느 순간, 무덤과도 같은 상황을 마주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거나, 기대했던 일이 무너지고, 기도하던 일이 응답되지 않을 때, 우리는 영적 무덤 앞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은 자주 절망으로 기울고, 신앙은 흔들립니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바로 그 무덤 자리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인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절망 가운데서도 주님을 향한 사랑의 걸음을 내디딘 믿음, 그리고 말씀이 기억될 때 일어나는 놀라운 전환을 보게 됩니다. 본문을 함께 살펴보며, 우리도 무덤이 아닌 말씀을 붙드는 신앙의 자리로 초대받고 있음을 발견하길 소망합니다.

 

📌 본론1: 무덤으로 향한 사랑의 믿음

누가복음 24장 1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눅 24:1)

여기서 우리는 여인들의 믿음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조심스레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신 사건은 제자들과 모든 이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제자들은 흩어졌고,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 부인했으며, 그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인들은 다르게 행동합니다. 그들은 새벽이 되자마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향품을 준비했다는 것은 단순한 장례 예식의 일환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식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더욱이, 여인들이 향품을 준비했던 안식일 전날은 매우 바쁘고 고통스러운 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목격한 충격 속에서도, 그들은 안식일 규례를 지키며 조용히 기다렸고, 그 다음 날 곧바로 무덤으로 달려갑니다. 즉, 신앙과 율법을 모두 지키는 정결한 믿음의 태도를 보여준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무너져 있었지만, 그 속에는 아직 사랑이 있었고, 그 사랑은 행동하는 믿음으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신앙의 교훈을 얻습니다. 믿음이란 항상 모든 것을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을 때만 발휘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고통 속에서도, 상황이 끝난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주님을 향한 사랑 때문에 내딛는 한 걸음이 바로 참된 믿음일 수 있습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향한 마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장년 성도들이 회복해야 할 믿음의 모습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익숙함이 사랑을 식게 하고, 실망이 헌신을 약화시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은 상황에 의해 좌우되지 않습니다. 비록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더라도, 예수님을 향한 사랑으로 인해 무덤과 같은 현실 앞에서도 주님을 찾는 것, 그것이 여인들의 믿음이요,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신앙의 본질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 여인들을 부활의 첫 증인으로 세우셨습니다. 사랑의 믿음을 보시고, 절망 가운데서도 주님을 찾는 그 마음을 통해, 하나님은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 본론2: 천사의 질문 –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인들이 무덤에 도착했을 때, 그들이 마주한 현실은 예상과 전혀 달랐습니다. 무덤은 열려 있었고, 예수님의 시신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당황스러운 상황 속에서, 두 천사가 나타나 이렇게 말합니다.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눅 24:5)

이 질문은 단순한 의문이 아닙니다. 이는 믿음의 방향에 대한 도전이며, 신앙의 본질을 다시 묻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여인들은 분명 예수님을 사랑했지만, 그 사랑은 아직 ‘부활의 믿음’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여전히 ‘죽은 자’로 여겼고, 그래서 시신을 찾기 위해 무덤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살아 계신 분이셨고, 무덤이 그분이 계실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천사의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때로 믿음의 방향을 잃은 채, 여전히 ‘죽은 것’ 가운데서 살아계신 주님을 찾으려 합니다. 과거의 실패, 상처, 절망, 죽은 습관, 오래된 전통 속에서 주님을 붙잡으려 할 때, 우리는 마치 무덤 속을 뒤지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며, 말씀하신 그대로 살아나신 주님이십니다.

천사는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눅 24:6)

이 말씀은 여인들에게 믿음의 회복을 불러일으킨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갈릴리에서 자신의 고난과 부활을 미리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믿음은 결국 말씀을 기억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원리를 보여줍니다.

여인들은 단순히 감정에 이끌려 무덤을 찾은 것이 아니라, 이 천사의 말을 통해 말씀을 되새기며 신앙의 방향을 되돌리는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무덤이라는 장소에서 그들은 부활의 복음을 듣고, 절망이 소망으로 바뀌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신앙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상황은 절망스럽고 현실은 비어 있는 무덤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자는 살아계신 주님을 다시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여전히 ‘죽은 것’에 묶여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의 말씀은 지금도 우리에게 묻습니다.
“왜 죽은 자 가운데서 나를 찾느냐? 나는 살아 있다. 말씀대로 부활했다.”

이제는 시선을 무덤에서 돌려, 말씀을 바라보아야 할 때입니다.
믿음은 감정이 아닌, 말씀을 붙드는 결정에서 시작됩니다.
여인들이 그랬듯, 우리도 다시 말씀을 기억하고, 믿음의 방향을 돌이킬 때,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 본론3: 말씀을 기억하는 자가 부활의 증인이 된다

천사의 말을 들은 여인들은 그제야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 냅니다.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눅 24:8)

이 짧은 구절은 여인들의 믿음 여정에 있어 결정적인 전환점이 됩니다. 이전까지 그들은 사랑으로 주님을 찾았지만, 여전히 죽은 자 가운데서 주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기억하는 순간’, 그들의 믿음은 무덤에 머물러 있지 않고, 부활의 확신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기억은 단순한 정보의 회상이 아닙니다. 말씀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 말씀이 다시 우리의 현재를 해석하게 하는 능동적인 행위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수차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셨지만, 고난의 충격 속에서 제자들과 여인들은 그 말씀을 잊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다시 마음에 떠오를 때, 그들은 비로소 현재를 바르게 이해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말씀을 기억한 여인들은 곧장 움직입니다.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눅 24:9)

여기서 우리는 주목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여인들은 어떤 기적을 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없다는 ‘상황’만을 본 것이지, 아직 부활하신 예수님 자체를 직접 만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말씀을 기억한 믿음만으로 부활의 증인이 되어 달려갑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영적 원리를 가르쳐줍니다.
신자는 ‘상황’이 아니라 ‘말씀’을 근거로 증인이 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에 반해,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눅 24:11)

믿음의 핵심은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습니다. 여인들은 말씀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반응했지만, 제자들은 그 말씀을 믿지 못하고 의심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동일한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우리는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현실의 무덤 속에 머무르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억된 말씀은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를 이끌어줍니다.
그 말씀이 다시 불붙을 때, 우리는 무덤에서 일어나, 살아계신 주님을 전하는 자로 변화됩니다.
여인들이 보여준 믿음의 길은 오늘 장년 성도 여러분께도 동일하게 열려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붙잡고 기억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복음의 증인, 부활의 전달자로 세우실 줄 믿습니다.

 

📌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무덤을 향해 달려간 여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믿음이란 절망 중에도 주님을 향하는 걸음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그들은 죽은 예수님을 찾았지만, 말씀을 기억할 때 살아계신 주님을 전하는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믿음의 길은 항상 무덤과 같은 현실 앞에서 시험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우리를 살리시는 것은 상황이 아니라, 말씀입니다.
천사는 여인들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눅24:9)

지금 이 시간, 주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기억하라. 나는 살아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여인들처럼, 말씀을 기억하고 주님의 부활을 담대히 증거하는 삶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 안팎에서, 말씀으로 해석된 믿음의 눈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살아계신 주님을 전하는 증인으로 살아가야 할 때입니다.

우리 모두 다시 복음 앞에 서서 이렇게 고백하길 원합니다.
“나는 무덤이 아니라, 말씀을 붙듭니다. 나는 절망이 아니라, 부활을 믿습니다. 나는 침묵이 아니라, 주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겠습니다.”

이 고백이 장년 성도 여러분의 삶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부활의 증인으로 우리를 세우는 은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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