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들을 사하여 주소서(누가복음 23:26-43)
✍️ 설교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실수를 하며,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죄책감 속에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 기억은 때로 우리를 괴롭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발걸음을 주저하게 만듭니다. “나는 과연 용서받을 수 있을까?”,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도 받아주실까?”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첫 번째 말씀이자 복음의 핵심이 담긴 기도입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눅 23:34) 이 기도는 단지 입술로 한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가 얼마나 깊고 크며 먼저 찾아오는 은혜인지를 보여줍니다.
가장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예수님은 자신을 못 박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분의 기도는 단지 당시 군인들과 유대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를 향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이 시간,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사랑을 베푸셨는지를 깊이 묵상하며, 다시 한 번 복음의 위로를 마음에 새기고자 합니다.
십자가 위의 기도는 지금도 살아 있으며, 그 기도 속에 우리가 있습니다.
✍️ 본론1: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 죄인을 위한 중보의 기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그 순간, 가장 먼저 입을 열어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저주나 탄식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누가복음 23:34)
이 짧은 기도 속에는 복음의 전부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조롱하고, 침 뱉고, 채찍질하고, 못 박은 자들을 향해 저주가 아닌 용서의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이는 단지 관대한 인간됨의 표현이 아니라, 구속의 핵심 사역, 곧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의 선포였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으로 묘사합니다. 구약의 제사장이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 제사를 드렸듯이,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속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지 제물일 뿐만 아니라 제사장이자 중보자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시는 분이십니다.
히브리서 7장 2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우리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하늘 보좌 우편에서 계속해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회개하기도 전에, 우리가 죄를 인정하기도 전에, 예수님은 먼저 우리를 위해 아버지께 용서를 구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선행하시는 은혜(Prevenient Grace)입니다.
목사인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때로 사역 속에서 지치고, 나도 하나님 앞에 부끄럽다고 느낄 때, 이 말씀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회개를 완벽히 드리지 못했더라도, 우리의 기도가 부족하더라도, 예수님은 우리의 완전함이 아닌 자신의 완전하심으로 우리를 감싸십니다. 그분의 기도가 먼저이기에, 우리는 그 기도 안에 안식할 수 있습니다.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이 기도는 인간의 조건을 따지지 않으십니다. 믿음이 크든 작든, 회개가 깊든 얕든, 예수님의 용서는 우리보다 먼저, 더 크고 더 깊게 역사합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 본론2: 두 강도의 이야기 – 용서와 구원의 모범
십자가 위에는 예수님만 계시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2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 좌우편에는 두 명의 행악자, 곧 강도들이 함께 십자가에 달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같은 형벌을 받았고, 같은 고통을 겪고 있었으며, 동일한 거리에 예수님을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한 강도는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조롱합니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39절) 그는 고통 앞에서 하나님을 조롱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그의 말 속엔 믿음도, 회개도, 겸손도 없었습니다. 오직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조급함과 자기중심적인 생각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강도는 달랐습니다. 그는 먼저 조롱하는 강도를 꾸짖습니다.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0절) 그리고 이어 자신들의 죄를 고백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41절)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했고, 그 죄에 합당한 대가를 받고 있음을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후회가 아닌 진정한 회개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께 간절히 요청합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42절) 이것은 놀라운 고백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고 계신 분을 향해 “당신의 나라”를 고백한 것은, 예수님이 왕 되심과 구원자 되심을 믿는 신앙의 표현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희망이 없을 것 같은 순간, 그는 예수님을 주로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신칭의(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는)의 핵심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은 얼마나 감동적인지 모릅니다.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43절)
예수님은 회개한 강도의 어떤 행위를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율법 준수도, 선행도 없었습니다. 그는 기도도 한 번 제대로 못했고, 교회도 다녀본 적이 없습니다. 단 하나,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보신 주님은 그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복음의 본질을 봅니다.
죄인이 자기 죄를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의탁할 때, 하나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회개의 진실한 고백이 있다면 구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요, 예수님의 십자가 위 용서의 실제적인 적용입니다.
장년의 삶을 살아오며, 우리 중 누구도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는 없습니다. 때론 잊고 싶은 과거가 있고, 되돌리고 싶은 잘못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회개한 강도처럼, 지금 이 순간 주님께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믿음으로 나아간다면, 주님은 동일하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오늘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 본론3: 십자가 위의 용서는 지금도 유효하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는 단지 2천 년 전의 사건이 아닙니다. 그 기도는 지금도 살아 있고, 지금도 유효하며, 지금도 우리의 삶 가운데 적용되는 하나님의 영원한 용서의 선언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 한 번의 제사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10장 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이것은 용서가 단회적이고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하고 완전한 하나님의 선물임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과거를 돌아보게 됩니다. 젊을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말과 행동, 가족 안에서 지은 상처, 신앙생활의 부족함, 때로는 하나님 앞에서의 게으름이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기도 합니다.
“내가 그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제 와서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우리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 위 예수님의 기도는 그 모든 과거를 덮고도 남는 은혜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과거도, 너의 실수도, 너의 죄도 내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너를 위하여 이미 기도했고, 너는 이미 용서받았다.”
이 말씀은 우리가 더 이상 죄책감 속에 머무르지 않고, 복음 안에서 회복된 삶을 살아가도록 초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다는 진리는, 단지 우리가 안심하라는 정도의 말씀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동력이 됩니다. 용서받은 자는 다시 일어설 수 있고, 다시 사랑할 수 있으며, 다시 하나님의 사명을 붙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받은 이 놀라운 용서를 다른 사람에게도 흘려보내는 삶입니다.
골로새서 3장 1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십자가의 용서는 내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교회와 세상 속에서 증거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장년의 신앙인은 그 삶 자체가 다음 세대를 위한 복음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은 냉소와 단절, 분노로 가득하지만, 교회는 십자가의 용서를 품은 자들로 세워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 각자를 향한 중보였고, 지금도 우리 안에서 역사하며, 이제는 우리를 통하여 누군가의 삶에 다시 “용서”를 흘려보내는 사역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첫 마디는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였습니다. 이 기도는 단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만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선언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실수하고, 믿음이 흔들리며, 후회스러운 과거 속에 살아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주님은 여전히 우리를 기억하시고, 용서하시며, 회복시키십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그분은 단 한 번도 우리를 외면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합니다.
그 용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의 공로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용서받은 자로서, 다시 사랑하고, 다시 일어나며, 다시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 위의 기도는 지금도 우리를 향해 울리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 다시 서며,
“주님, 저도 그 용서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저도 다시 회복되길 원합니다.”
라고 고백하는 모든 성도님들 위에,
하나님의 놀라운 위로와 회복의 은혜가 충만히 임하시길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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