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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설교(매일성경)_새벽 말씀

증인의 사명(누가복음 24:36-53)

by essay2598 2025.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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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의 사명(누가복음 24:36-53)

 

📝 서론

사람은 누구나 삶의 의미를 묻습니다.
특히 신앙을 가진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내가 믿는 복음은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하게 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신앙이 점점 습관처럼 굳어지고, 세상의 가치관이 교회 안에도 스며드는 이 시대 속에서, 우리는 참된 신앙의 중심이 무엇인지 다시금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두려움과 혼란 속에 있던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친히 나타나시고, 그들을 증인으로 세우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한 기독교의 교리가 아니라, 제자들의 인생 전체를 변화시킨 실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부활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부르심을 줍니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우리는 부활을 믿는 자일 뿐만 아니라, 부활을 증언하는 자, 즉 복음을 전하는 증인으로 부름받았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자로서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 본론1. 부활하신 주님의 평안과 확신

제자들이 모여 두려움과 혼란 가운데 있을 때, 예수님께서 갑자기 그들 가운데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첫마디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눅 24:36).
이 인사는 단순한 유대적 인사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평강, 곧 두려움과 절망을 이기는 평화였습니다.

당시 제자들의 상황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모두 도망쳤고, 베드로는 세 번이나 주를 부인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엔 후회와 죄책감, 실패감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고, 정죄하거나 꾸짖지 않으시고 평강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괜찮다”고 위로하시는 분이 아니라, 자신의 부활로 인해 그들을 용납하시고 회복시키시는 분이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의 본질을 봅니다. 복음은 실패한 제자를 다시 세우시는 주님의 은혜입니다.
평안은 상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때 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 말을 듣고도 여전히 놀라고 무서워합니다. 성경은 그들이 “영을 보는 줄로 생각했다”고 기록합니다(눅 24:37).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의 불신을 아시고, 그들에게 자신의 손과 발을 보이십니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눅 24:39).
주님은 단순한 환영이 아니라 실제 부활하신 육체의 주님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역사적 증거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직접 보여주시고 만지게 하심으로, 그들의 두려움을 확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라.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오늘날 우리 역시 많은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살아갑니다.
세상의 불확실한 경제, 건강 문제, 자녀 문제, 노후 문제 등 삶의 무게는 쉽게 우리를 짓누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다면, 우리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참된 평안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또한 주님은 단순히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먹을 것을 달라 하셨고, 그들 앞에서 생선을 드셨습니다(눅 24:41-43).
이는 부활의 몸이 실제적인 몸, 곧 장래에 우리도 입게 될 영광의 몸이라는 증거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의 몸을 “썩지 아니할 몸, 영화로운 몸”이라 증언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지 그분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이자 소망이 되는 사건입니다.

결국,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에게는 삶의 방향이 바뀌게 됩니다.
더 이상 숨어 있는 자들이 아니라,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증인들로 변화됩니다.
이 변화의 시작은 부활의 주님을 실제로 만나고, 그분 안에서 평안과 확신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 본론2. 말씀을 열어 주시는 주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단지 자신이 살아 계심을 증명하신 것으로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그 부활의 의미를 ‘말씀’을 통해 이해하도록 도우셨습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눅 24:44)
이 말씀은 구약 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 그리고 복음 전파를 예언하고 있었다는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제자들의 마음을 여시고, 성경을 깨닫게 하십니다.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눅 24:45)
이 짧은 구절은 매우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단지 성경을 ‘읽는 것’과, 성경의 말씀을 ‘깨닫는 것’ 사이에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성경을 읽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한 채 교훈으로만, 도덕적인 메시지로만 받아들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께서 마음을 열어 주실 때, 우리는 성경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되고, 하나님의 구속사의 흐름을 깨닫게 됩니다.

특히 예수님은 구약의 세 구분—율법, 선지자, 시편—을 언급하시며, 그 모든 것이 자신을 가리킨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개혁주의 신학에서 말하는 언약적 성경 해석, 곧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성경의 일관된 메시지를 잘 보여줍니다.
구약은 단지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라,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예언이 지금,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성취된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눅 24:47)
이 구절은 복음의 핵심인 “회개와 죄 사함”, 그리고 복음의 보편성과 시작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되,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계획된 구속 역사의 순서를 보여주며,
이제 그 사명을 제자들에게,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에도 이 말씀이 깊이 적용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단순히 아는 지식으로만 접근할 때가 많지만,
주님은 우리 마음을 여시고,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새롭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말씀은 정보가 아니라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며,
부활을 체험한 성도는 반드시 말씀을 통해 확신을 얻고, 말씀 위에 자신의 삶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 부활의 의미를 분명히 깨달을 때, 그 신앙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환경에 따라 오르내리는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진리 위에 서게 됩니다.

말씀을 여시는 주님의 은혜를 구하십시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실 때, 우리는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우리에게 맡겨진 증인의 사명을 더욱 분명히 붙들게 될 것입니다.

 

📖 본론3. 증인의 사명과 성령의 능력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눅 24:48).
이 한마디는 부활하신 주님의 사역을 보고 들은 제자들에게 주어진 분명한 정체성과 사명을 선포한 말씀입니다.
“이 모든 일”이란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 곧 복음 전체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 복음을 세상에 증언하는 역할이 제자들에게 맡겨진 것입니다.

여기서 '증인'(μαρτύρες, martures)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자신의 삶과 생명을 걸고 증언하는 자를 뜻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이 복음을 증거하다 순교한 이유도 이 단어의 깊은 의미에서 출발합니다.
단순한 정보 전달자가 아니라, 복음을 삶으로 살아낸 사람들이 바로 증인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연륜이 쌓이고, 말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우리는 단순한 수신자가 아니라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할 책임을 갖습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부활의 증인입니다.
주일에만 신자가 아니라, 삶의 모든 자리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삶—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증인의 사명을 말씀하시면서 즉시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눅 24:49).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 없이는 참된 증인의 삶을 살 수 없음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여기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은 바로 성령님을 가리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제자들은 비로소 두려움을 떨치고, 담대한 증인으로 변화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자였지만, 성령의 능력 안에서는 수천 명 앞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담대한 사도가 됩니다.

이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줍니다.
복음의 증인이 되는 일은 우리의 능력이나 경험으로 감당할 수 있는 사명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야만, 우리의 말이 생명이 되고, 우리의 삶이 증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먼저 머무르라고 하셨습니다.
조급히 나아가 복음을 전하기 전에, 성령을 기다리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이 ‘성령을 기다림’입니다.
많은 활동과 사역, 프로그램도 중요하지만, 성령의 능력이 임하지 않으면 참된 열매는 맺히지 않습니다.
장년 성도는 교회 안팎에서 영적 본이 되는 존재로, 기도의 자리, 말씀의 자리에서 성령을 구하고,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전도와 사역에 앞서 먼저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나는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증언인가, 아니면 종교적 언어로 그칠 뿐인가?
성령의 능력을 입은 자만이, 진정한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증인의 사명을 맡기실 뿐만 아니라,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즉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졌습니다.
복음을 듣고 믿은 우리 안에는 보혜사 성령님이 거하시며, 우리를 통해 복음을 전하시고,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십니다.

 

🕊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평강을 주시고, 말씀을 깨닫게 하시며, 증인의 사명을 맡기시는 장면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지 과거에 있었던 사건이 아닙니다.
그 부활은 오늘 우리에게도 참된 평안과 확신, 그리고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살아 있는 복음입니다.

우리는 부활을 본 자로서, 이제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각자도 가정에서, 교회에서, 사회 속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부름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사명은 우리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고, 지금도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여,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삶으로 살아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머물지 마십시오.
우리를 살리신 복음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말과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사랑, 부활의 소망이 흘러가도록 쓰임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부활의 증인으로 살게 하소서.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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