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구하는 대로(누가복음 23:1-25)
✒️ 서론
우리는 때때로 다수의 선택이 진리라고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여론이 그렇고, 사회가 그렇게 말하니 옳은 줄로 여깁니다. 그러나 진리는 사람의 수에 따라 정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재판을 받으시던 그날, 예루살렘의 광장은 ‘정의’가 아닌 ‘분노’와 ‘왜곡’이 지배했습니다. 군중은 “이 사람을 없애고 바라바를 놓아주라”고 소리쳤고, 빌라도는 진실을 알면서도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 주고 예수는 넘겨 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눅 23:25).
그런데 놀랍게도, 이 불의한 결정보다 더 위대한 일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뜻이, 그들의 악한 선택을 통해서도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악과 하나님의 뜻이 만나는 지점, 바로 십자가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려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지금 우리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함께 발견하기 원합니다.
📖 본론 1 – 군중의 요구, 빌라도의 타협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 서셨습니다. 무기를 든 것도 아니고, 폭동을 일으킨 것도 아닙니다. 그분이 한 일이라곤 병자를 고치고, 죄인을 용서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시기했고,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기며 정치적인 죄를 꾸며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죄가 없음을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절에서 그는 말합니다.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심지어 헤롯에게도 보냈지만, 거기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빌라도는 명백히 예수님의 무죄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진리를 따르지 않고, 대중의 소리를 따랐습니다. 왜일까요?
바로 군중의 소리가 그의 마음을 뒤흔들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외침은 점점 커졌고, 민란이 일어날까 두려워진 빌라도는 결국 그들의 요구대로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겼습니다(눅 23:24–25).
그들이 구하는 대로, 그는 타협했습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역사적 실수가 아닙니다. 인간 본성의 깊은 타락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진리를 알면서도 외면하는 자, 자기 이익을 위해 정의를 포기하는 자, 분위기에 휩쓸려 죄 없는 이를 정죄하는 다수의 모습은 오늘 우리 사회와 교회 안에서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책임을 회피한 지도자의 상징입니다. 그의 손은 물로 씻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의 죄는 물로 씻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나는 무죄하다”고 외쳤지만, 성경은 그를 변명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죄는 ‘하지 않은 것’에서도 드러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지키지 않는 중립은 결국 불의에 동조하는 행위가 됩니다.
또한, 우리는 이 장면에서 군중의 모습도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한때 “호산나”를 외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칩니다.
이처럼 군중의 소리는 진리를 따르지 않습니다. 감정에 휩쓸리고, 지도자의 선동에 휘둘리며, 정작 가장 중요한 진실을 외면하게 됩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에게도 깊은 경종을 줍니다.
우리는 진리를 외면하고 다수의 편에 서서 그들도 하니까, 내가 불리해질까 봐 침묵하거나 타협한 적은 없는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빌라도처럼 ‘책임 없는 무죄 선언’을 하지 않고, 진리를 따르는 용기 있는 삶으로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 본론 2 –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고난
예수님께서 억울하게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은 인류 역사상 가장 부당한 재판으로 남을 것입니다.
죄 없으신 그분이 죄인 취급을 받았고, 살인자인 바라바는 풀려났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이 장면은 완벽한 ‘패배’입니다. 선이 무너지고, 불의가 승리한 순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끔찍한 장면을 가리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는 자리라고 말합니다.
이사야 53장 10절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Yet it was the LORD’s will to crush him and cause him to suffer.” – 사 53:10)
인간의 시선에는 고통이지만, 하나님의 시선에는 구속의 계획이 담긴 순간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신 이유는, 우리 대신 징계를 받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분이 매를 맞고, 조롱을 당하고, 버림을 받으신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며, 우리를 위한 순종의 길이었습니다.
빌라도의 정치적 계산, 종교 지도자들의 시기, 군중의 분노…
이 모든 인간의 죄된 선택들이 모여서 예수님을 십자가로 몰아갔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 위에 계셨습니다.
그분은 인간의 악함을 도구로 삼아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단지 “좋은 일”만을 통해서가 아니라, 때로는 고난과 아픔을 통해서도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종종 고난을 하나님의 침묵이라 여기지만, 성경은 그 반대임을 보여줍니다.
십자가는 바로 하나님께서 가장 적극적으로 역사하신 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계획 없는 비극이 아니라, 창세 전부터 예정된 구속의 여정이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사도행전 2장 23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 넘겨지셨고, 인간의 악함은 그 뜻을 이루는 수단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진리는 오늘 우리 성도들의 삶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가 겪는 억울함, 실패, 이해할 수 없는 아픔 속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 뜻 안에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롬 8:28).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은 우리에게 위로와 확신을 줍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며, 우리의 고난을 통해서도 선을 이루신다.”
📖 본론 3 – 인간의 악도 하나님의 선으로 사용하신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는 명확합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거부했고, 죄인으로 몰았으며,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 모든 악한 선택들조차 하나님께서 구속의 도구로 사용하셨다는 것, 이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깊은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구약의 요셉 이야기에서 먼저 보게 됩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팔려갔고, 오랜 시간 억울한 감옥살이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훗날 형제들 앞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세기 50:20)
이 고백은 십자가 위에서도 그대로 울려 퍼집니다.
“그들이 구하는 대로” 예수를 십자가에 넘겼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계획하지 못한 더 크고 선한 일을 이루셨습니다.
인류의 죄를 속량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길을 여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의 악을 결코 방관하시지 않으시며, 그 악을 꺾어 선으로 바꾸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고백이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의 증거입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악함과 하나님의 선하심이 교차하는 자리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이 졌고, 십자가가 실패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은 그 십자가를 통해 악을 심판하고, 의를 세우며, 사랑을 증명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세상도 종종 비슷한 장면을 보여줍니다.
불의가 승리하는 듯 보이고, 정직한 자가 고난을 받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자들이 외면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일 위에 계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선하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 지금 억울한 일을 겪고 계신가요?
세상이 여러분을 오해하고, 여러분의 선한 뜻이 무시당하고 있진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러셨듯, 그 고난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결코 침묵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며, 가장 깊은 고통 속에서도 선한 뜻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기엔 “그들이 구한 대로” 되는 것 같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 안에는 분명히 “하나님이 이루신 대로” 되는 섭리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그들이 구하는 대로 예수를 넘겨주니라”는 말씀 앞에 섰습니다.
그들이 구한 것은 십자가였지만, 하나님이 이루신 것은 구속의 은혜였습니다.
그들이 택한 것은 죽음이었지만,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은 영원한 생명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간의 악이 극에 달한 현장이었지만,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가장 선한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 삶 가운데 역사하시며, 우리의 고난과 억울함, 실패까지도 그분의 영광과 유익을 위해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의한 세상 한복판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침묵 가운데 진리를 붙들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들이 구한 대로”가 아닌, “하나님이 이루신 대로” 당신의 뜻을 완성해 가십니다.
이제 우리도 그 뜻에 기꺼이 순종하며, 십자가의 길을 따르기를 결단합시다.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주권을 증거하는 통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기도
“주님, 우리가 보기에 억울하고 아픈 순간들 속에서도 주님의 뜻은 결코 멈추지 않음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처럼, 우리 삶의 고난이 주님의 구속과 영광에 쓰임 받게 하소서.
진리를 붙들고, 순종의 길을 걷는 믿음을 우리에게 허락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과 설교(매일성경)_새벽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회심한 두 제자(누가복음 24:13-35) (0) | 2025.04.20 |
---|---|
저들을 사하여 주소서(누가복음 23:26-43) (1) | 2025.04.17 |
배신과 조롱과 의심을 넘어(누가복음 22:54-71) (0) | 2025.04.15 |
기도냐, 칼이냐?(누가복음 22:39-53) (2) | 2025.04.14 |
남겨질 제자들에게 주시는 교훈(누가복음 22:24-38) (0) | 2025.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