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더 사랑하겠느냐(누가복음 7:36-50)
서론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사랑을 경험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고, 친구끼리 우정을 나누며, 부부가 서로를 아끼는 모습은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그러나 사랑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조건적인 사랑이 있는가 하면, 무조건적인 사랑도 있습니다. 또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 시몬이고, 다른 한 사람은 "죄 많은 여인"이라 불리는 사람입니다. 시몬은 종교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이었고, 여인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받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을 잘 안다고 여겨지는 시몬은 예수님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았고, 오히려 죄 많은 여인이 눈물과 향유로 예수님께 자신의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장면을 통해 중요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누가 더 사랑하겠느냐?" 이 질문 속에는 우리 신앙의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깊이 깨닫고, 그 사랑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본론 1: 바리새인 시몬과 죄 많은 여인의 대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바리새인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이었으며, 종교적으로 존경받는 계층이었습니다. 시몬 역시 예수님을 "선생님"이라 부르며 관심을 보였지만, 그의 태도를 보면 정중한 초대였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당시 유대 문화에서는 손님을 집으로 초대하면 기본적인 환대의 예절이 있었습니다. 손님의 발을 씻을 물을 주고, 볼에 입맞춤하며, 머리에 기름을 부어주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몬은 이 기본적인 예의조차 갖추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손님으로 초대했지만, 그의 마음에는 예수님에 대한 존경이나 사랑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는 예수님을 시험하거나, 단순한 호기심으로 초대했을지도 모릅니다.
반면, "죄 많은 여인"으로 불리는 한 여인은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녀는 말없이 예수님의 발곁에 서서 눈물을 흘렸고, 그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았습니다. 당시 유대 여성들은 공공장소에서 머리를 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자신의 체면을 신경 쓰지 않았고, 오직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으며 극진한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과연 누가 예수님을 더 가까이서 경험하고 있었을까요? 겉으로 보기에는 시몬이 예수님과 같은 식탁에 앉아 있었지만, 실상은 죄 많은 여인이 예수님을 더 가까이에서 만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면 어떨까요? 혹시 우리는 시몬처럼 예수님을 형식적으로 모시고 있지는 않습니까?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감격이 식어버리지는 않았습니까? 반대로, 자신의 죄를 깨닫고 주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예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하게 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말씀하신 비유를 통해, 이 여인이 왜 이렇게 극진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본론 2: 비유를 통한 가르침 – 빚을 탕감받은 두 사람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한 가지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어떤 사람에게 빚진 자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둘 다 갚을 것이 없으므로 채주가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누가복음 7:41-42)
이 비유에서 **"오백 데나리온"**과 **"오십 데나리온"**은 각각 큰 빚과 작은 빚을 의미합니다.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이었으므로, 오백 데나리온은 거의 1년 반 동안 벌어야 할 큰돈이었습니다. 반면, 오십 데나리온은 두 달 정도의 품삯이었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운 금액입니다. 중요한 점은 두 사람 모두 갚을 능력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누가 더 많이 사랑하겠느냐?"라고 물으셨고, 시몬은 조심스럽게 대답합니다.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네 판단이 옳다"고 하시며, 이 비유를 오늘의 사건과 연결하십니다.
예수님을 향한 죄 많은 여인의 극진한 사랑은, 그녀가 자신이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죄가 크다는 것을 인정했고, 용서받은 기쁨이 너무나도 컸기에 눈물로 예수님께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반면 시몬은 스스로 의롭다고 여겼기에, 자신의 죄를 깨닫지도 못했고, 예수님께 대한 사랑도 미미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께 받은 은혜를 얼마나 크게 느끼고 있는가? 혹시 나는 시몬처럼 "나는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라며, 죄에 대한 민감함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가?
우리가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의 감격이 점점 희미해질 수 있습니다. 처음 은혜를 받았을 때는 기쁨과 감사가 넘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마음이 무뎌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모두가 다 예수님 앞에서는 빚진 자라는 사실입니다.
오백 데나리온을 빚졌든,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든, 갚을 수 없는 상황에서 전적인 용서를 받았다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 깨달을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죄 많은 여인에게 하신 마지막 선언을 살펴보며, 우리의 신앙이 어떠해야 하는지 결론을 맺어보겠습니다.
본론 3: 죄 사함과 사랑의 관계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비유를 말씀하신 후, 죄 많은 여인을 가리키며 중요한 선언을 하십니다.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나 이 여자는 내가 들어올 때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나 이 여자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누가복음 7:44-46)
예수님께서는 시몬과 죄 많은 여인의 행동을 대조하시면서, 결국 사랑은 죄 사함을 경험한 깊이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누가복음 7:47)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보여 줍니다.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 더 큰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더 많이 사랑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 깨달은 사람만이, 예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알고 그분을 깊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시몬은 자신이 의롭다고 여겼기에, 예수님의 용서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에는 예수님을 향한 감사와 사랑이 없었습니다. 반면, 죄 많은 여인은 자신의 죄를 깊이 깨닫고, 예수님께 나아와 회개하며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누구와 닮아 있을까요?
혹시 시몬처럼 종교적인 틀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감격이 식어버리지는 않았습니까? 아니면 죄 많은 여인처럼 예수님의 용서를 경험하고, 그분을 향한 깊은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이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누가복음 7:48, 50)
이 선언은 단순한 용서가 아닙니다. 그녀는 단순히 죄를 용서받은 것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구원의 확신과 평안을 얻었습니다. 예수님께 나아가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할 때, 예수님은 단순히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참된 평안을 주십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을 돌아봅시다. 우리는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습니까? 신앙의 연수가 길어질수록 형식적인 신앙이 아니라, 더욱 예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 결론을 통해 오늘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결론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누가 더 사랑하겠느냐?" 이 질문은 단순히 바리새인 시몬과 죄 많은 여인만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는 질문입니다.
시몬은 종교적으로 깨끗해 보였지만,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없었습니다. 반면, 죄 많은 여인은 사람들 앞에서 가장 낮아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직 예수님께 대한 감사와 사랑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렸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죄를 깊이 깨달았고, 예수님의 용서를 온전히 경험했기에 그분을 뜨겁게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모습입니까? 혹시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서도 은혜의 감격을 잊어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와 예배가 습관이 되고, 예수님을 향한 첫사랑이 희미해지지는 않았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고, 예수님께 받은 은혜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 많은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누가복음 7:5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주님의 크신 은혜를 붙잡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도 참된 구원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 받은 은혜를 다시 기억하며, 더욱 깊이 사랑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도 죄 많은 여인처럼 예수님께 나아가 우리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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