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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오늘의 QT)

무너질 수밖에 없는 성, 피할 수 있는 은혜(나훔 3:1-11)

by essay2598 2026.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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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무너질 수밖에 없는 성, 피할 수 있는 은혜

본문 : 나훔 3:1-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들은 강한 것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높은 건물은 오래갈 것 같고, 큰 기업은 흔들리지 않을 것 같으며, 강한 나라는 영원할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하면 괜찮을 것 같고, 재산이 있으면 든든할 것 같고, 좋은 직장을 가지면 미래가 보장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에게 다른 사실을 말해 줍니다. 아무리 강했던 제국도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바벨론도 무너졌고, 헬라도 무너졌으며, 로마도 무너졌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영원해 보였지만,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어느 것도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니느웨도 그러했습니다.

니느웨는 당시 세계 최강의 도시였습니다. 견고한 성벽, 막강한 군사력, 넘치는 부와 권력을 가진 도시였습니다. 사람들은 니느웨를 보며 감탄했고, 주변 나라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누구도 그 도시가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향해 입을 여시자 첫마디가 무엇입니까?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사람들은 니느웨를 위대한 성이라고 불렀지만 하나님은 피의 성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사람은 화려한 겉모습을 보았지만 하나님은 그 안에 가득한 죄악을 보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단지 오래전 앗수르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어떻게 보시는지, 교만을 어떻게 다루시는지, 그리고 참된 피난처가 어디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향하여 무엇을 고발하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은 감추어진 죄를 반드시 드러내십니다. (1-4절)

1절은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고발장입니다.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그 안에는 거짓이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하며 탈취가 떠나지 아니하는도다."

여기서 하나님은 니느웨의 외형을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높은 성벽도, 화려한 궁전도, 막강한 군사력도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보신 것은 그 도시의 도덕적 실체였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니느웨를 피의 성이라고 부르십니다.

앗수르는 정복 전쟁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승리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정복한 민족을 잔혹하게 학살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극심한 공포를 심어 다른 나라들이 감히 저항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폭력이 국가 정책이 되었고, 잔인함이 제국을 유지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거짓이 가득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겉으로는 조약을 맺고 평화를 약속했지만, 필요하면 언제든 약속을 깨뜨렸습니다. 정치도, 외교도, 경제도 진실보다 힘이 우선이었습니다.

셋째, 포악과 탈취가 떠나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떠나지 않는다'는 표현은 죄가 일상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탐욕이 삶의 방식이 되었고, 다른 민족의 것을 빼앗는 것이 당연한 문화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반복해서 "가득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피가 가득하고, 거짓이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합니다. 이것은 몇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전체가 죄의 구조 안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2절과 3절은 마치 전쟁터 한가운데 우리를 세워 놓습니다.

"휙휙 하는 채찍 소리, 윙윙 하는 병거 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소리만 들어도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곧이어 번쩍이는 칼과 창, 수없이 쓰러진 시체가 등장합니다. 시체가 너무 많아 사람들이 걸려 넘어질 정도입니다.

이 장면은 단지 니느웨가 당할 심판을 묘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니느웨가 다른 나라에 행했던 폭력이 결국 자신들에게 되돌아오는 장면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우연한 재난이 아닙니다. 죄의 열매를 거두게 하시는 공의로운 심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는 전쟁도 없고, 칼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는 죄의 기준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결과를 보지만 하나님은 과정을 보십니다.

사람은 성공을 보지만 하나님은 정직을 보십니다.

사람은 겉모습을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혹시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보다 사람의 시선을 더 의식하는 모습은 없습니까?

작은 거짓쯤은 괜찮다고 여기지는 않습니까?

조금의 욕심은 누구나 갖는 것이라고 합리화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숨겨진 죄를 이미 보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절망의 소식만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드러내시는 이유는 우리를 멸망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회개로 부르시기 위함입니다.

다윗은 죄를 숨길 때 뼈가 쇠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죄를 자복했을 때 용서와 회복을 경험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을 찾지 않으십니다. 회개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 앞에서 깨끗하게 보이는 신앙보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신앙을 선택하십시오.

죄를 숨기는 사람이 아니라 죄를 고백하는 사람이 은혜를 경험합니다.

니느웨의 문제는 성벽이 약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죄를 가볍게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도 죄를 가볍게 여기기 시작하면 결국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비추실 때 겸손히 회개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면 결국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본문은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죄를 어떻게 다루시는지를 보여 줍니다.

2. 하나님은 교만한 영광을 반드시 낮추십니다. (5-7절)

5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네게 말하노니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이 말씀을 읽으면서 한 가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나훔 선지자가 니느웨의 죄를 고발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이것이 심판의 시작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에서 가장 두려운 일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대적이 되시는 것입니다.

니느웨는 지금까지 수많은 나라를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왕들은 니느웨를 두려워했고, 민족들은 앗수르의 이름만 들어도 떨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니느웨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바벨론도 아니고 메대도 아닙니다.

바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은 니느웨를 "마술에 능숙한 미모의 음녀"라고 표현합니다.

이 표현은 단순히 도덕적인 타락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음녀가 사람을 유혹하듯, 니느웨는 자신의 화려함과 권세로 열방을 유혹했습니다.

"우리와 동맹을 맺으면 안전하다."

"우리 편이 되면 번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은 섬김이 아니라 지배였습니다.

그들은 힘으로 사람들을 억압했고, 거짓으로 사람들을 속였으며, 결국 모든 민족을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이용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니느웨의 교만을 그대로 두지 않으십니다.

5절을 다시 보십시오.

"내 치마를 걷어 올려 네 얼굴에 이르게 하고..."

오늘날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표현이지만, 당시에는 가장 큰 수치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니느웨는 화려하게 자신을 꾸미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자신들을 넘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화려한 겉모습을 벗겨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왜입니까?

거짓으로 세운 영광은 반드시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질문을 합니다.

"왜 악한 사람이 더 잘됩니까?"

"왜 정직한 사람보다 거짓된 사람이 더 성공하는 것처럼 보입니까?"

본문은 그 질문에 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장 심판하지 않으실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무관심이 아닙니다.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오래 참으심입니다.

하지만 끝까지 돌이키지 않으면 반드시 심판의 날이 옵니다.

6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또 가증하고 더러운 것들을 네 위에 던져 능욕하여 너를 구경거리가 되게 하리니."

얼마 전까지 세상이 부러워하던 도시가 이제는 조롱거리가 됩니다.

세상이 높여 준 영광은 한순간에 사라집니다.

7절은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니느웨가 황폐하였도다. 누가 그것을 위하여 애곡하며..."

이제는 아무도 니느웨를 위해 울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니느웨는 다른 민족이 울 때 함께 울어 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강할 때 자비를 베풀지 않았던 사람은 약해졌을 때 자비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원리를 배웁니다.

교만은 언제나 사람을 고립시킵니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용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섬깁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높이려 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반복해서 말씀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니느웨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직분이 높아질수록,

사역이 커질수록,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수록,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의지하게 됩니다.

기도가 줄어들고,

감사가 사라지고,

'내가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그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니느웨와 정반대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스스로 낮아지셨습니다.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으시고 섬기러 오셨습니다.

십자가의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가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보여 줍니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하나님께서 높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도 세상이 주는 영광을 붙드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겸손을 선택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의 입술에서는 "내가 잘했습니다."라는 말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는 고백이 흘러나오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붙드시고, 끝까지 사용하시며, 영원한 영광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니느웨에게 이처럼 엄중한 심판을 선언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니느웨는 자신들이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높은 성벽이 있었고, 강한 군대가 있었으며, 막대한 부와 권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착각을 깨뜨리시기 위해 한 도시를 예로 드십니다.

3. 하나님을 떠난 강함은 결코 우리의 피난처가 될 수 없습니다. (8-11절)

8절을 보십시오.

"네가 어찌 노아몬보다 낫겠느냐?"

이 질문은 니느웨의 교만을 정면으로 겨냥하는 질문입니다.

노아몬은 애굽의 테베를 가리킵니다. 당시 테베는 천혜의 요새였습니다. 나일강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었고, 강은 천연의 방어선이었습니다. 구스와 애굽의 지원을 받았고, 붓과 루빔 같은 동맹국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도시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성도 무너졌다."

10절은 그 참혹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아이들은 길모퉁이에서 죽임을 당했고, 귀족들은 제비 뽑혀 포로가 되었으며, 권세자들은 쇠사슬에 묶였습니다. 사람들의 자랑이었던 힘도, 부도, 동맹도 하나님의 심판을 막아 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니느웨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너도 그렇게 될 것이다."

성도 여러분.

본문은 단순히 니느웨의 멸망을 예언하는 것이 아닙니다.

"네가 무엇을 의지하고 있느냐?"라는 질문을 오늘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저마다의 '노아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을 의지합니다.

어떤 사람은 재산을 의지합니다.

어떤 사람은 경력과 학력을 의지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녀를 의지하고, 인간관계를 의지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런 것들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보다 더 큰 의지가 되는 순간, 그것은 우리의 우상이 됩니다.

11절에서 하나님은 니느웨의 마지막 모습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도 술에 취하여 숨으리라. 너도 원수들 때문에 피난처를 찾으리라."

얼마 전까지 다른 나라를 떨게 만들던 니느웨가 이제는 자신이 숨을 곳을 찾아 헤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입니다.

자신이 의지하던 것이 무너질 때 비로소 피난처를 찾지만, 그때는 이미 모든 것이 무너진 뒤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는 무너지기 전에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형통할 때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건강할 때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잘될 때 더욱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래야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말씀을 들으며 한 가지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설 수 있습니까?"

사실 아무도 설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도 니느웨의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을지라도 우리 안에도 교만이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신뢰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욕심이 있고, 거짓이 있으며, 남보다 높아지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심판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로 여기에서 복음이 시작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셨지만 죄인의 자리에 서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마셔야 할 진노의 잔을 대신 마셨습니다.

우리가 당해야 할 수치와 저주를 십자가에서 홀로 감당하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를 무너뜨린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가 완전히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죄는 반드시 심판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심판을 독생자에게 담당하게 하심으로 죄인을 살리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심판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심판을 대신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피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니느웨의 멸망으로 끝나지만, 우리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봅니다.

니느웨는 자기 힘을 의지하다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삽니다.

세상의 성벽은 무너집니다.

재산도, 건강도, 권세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반석이십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오늘 여러분의 피난처는 어디입니까?

여러분의 가장 큰 안전은 무엇입니까?

혹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책망하시기 위해 이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무너지기 전에 돌아오라고, 참된 피난처를 붙들라고, 은혜 가운데 살라고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추어진 죄를 회개하십시오.

교만을 내려놓으십시오.

무너질 것을 붙들지 말고 영원한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드십시오.

그분 안에 있는 사람은 흔들릴 수는 있어도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분 안에 있는 사람은 심판이 아니라 은혜를 경험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유일한 피난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굳게 붙들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마무리하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를 통해 우리에게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감추어진 죄를 반드시 드러내십니다.

그러므로 죄를 숨기려고 하지 마십시오. 사람 앞에서는 숨길 수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며 죄를 깨닫게 하시는 것도 우리를 정죄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용서와 회복의 자리로 부르시기 위함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교만한 영광을 반드시 낮추십니다.

우리의 성공과 능력, 직분과 사역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높이시는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높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겸손히 무릎 꿇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더 큰 은혜를 베푸십니다.

셋째, 하나님을 떠난 강함은 결코 우리의 피난처가 될 수 없습니다.

세상은 변합니다. 건강도, 재물도, 권세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반석이십니다. 그분 안에 있는 사람은 흔들릴 수는 있어도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 봅시다.

나는 지금 무엇을 가장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혹시 하나님보다 더 붙들고 있는 '나의 니느웨'는 없는가?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심판하시기 위해 이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니라, 무너지기 전에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참된 피난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결단은 분명합니다.

감추어진 죄를 회개합시다.

교만을 내려놓읍시다.

무너질 세상을 붙들지 말고 영원한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굳게 붙듭시다.

그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나훔서를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니느웨의 모습을 보며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보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먼저 돌아보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 있는 교만과 욕심, 거짓과 자기 의를 주님 앞에 내려놓게 하시고, 숨겨진 죄를 정직하게 회개하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가 세상의 힘을 의지하며 살아갈 때가 많았습니다. 건강과 물질, 경험과 능력이 우리의 피난처인 것처럼 살아왔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반석이시며 피난처이심을 믿고, 어떤 형편에서도 주님만 의지하는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또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자리에서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겸손한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날마다 기억하게 하시고, 그 은혜에 감사하며 거룩한 삶으로 응답하게 하옵소서.

이 말씀을 마음에만 담아 두지 않게 하시고, 한 주간의 삶 속에서 정직과 겸손과 믿음으로 살아내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유일한 피난처 되시며 영원한 반석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도제목

  1. 감추어진 죄를 회개하게 하소서.
    • 하나님 앞에서 숨기고 있는 죄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회개하게 하시고, 날마다 거룩함을 이루어 가게 하소서.
  2. 교만을 버리고 겸손을 배우게 하소서.
    • 나의 능력과 경험을 의지하지 않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겸손하게 살아가게 하소서.
  3. 오직 하나님만을 피난처로 삼게 하소서.
    • 건강과 물질, 사람과 환경이 아니라 영원한 반석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는 믿음을 주소서.
  4.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더욱 붙들게 하소서.
    •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만난 십자가의 은혜를 날마다 기억하며, 감사와 순종의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5. 거룩한 삶으로 복음을 증거하게 하소서.
    • 세상 속에서 정직과 사랑, 겸손으로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나타내게 하시고, 우리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가 드러나게 하소서.
  6. 교회가 세상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게 하소서.
    • 우리 교회가 사람의 방법이나 세상의 기준을 따르기보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시고, 복음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게 하소서.

 

오늘의 말씀 묵상

본문: 나훔 3:1-11
제목: 내가 의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니느웨는 당시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을 것 같은 강대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화려한 외형보다 그 안에 가득한 죄악을 보셨습니다. 피와 거짓, 포악과 교만으로 세워진 나라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본문을 묵상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혹시 나도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요? 건강, 재물, 직장, 사람, 경험과 능력이 어느새 나의 안전이 되어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은 모두 귀한 선물이지만, 그것들이 하나님보다 더 큰 의지가 될 때는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니느웨에게 "네가 어찌 노아몬보다 낫겠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이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들려옵니다.

"너는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느냐?"

우리의 힘은 언제든 약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계획도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우리의 반석이십니다.

오늘 하루도 세상의 안전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더 신뢰하십시오. 감추어진 죄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겸손히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은 흔들릴 수는 있어도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늘의 말씀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편 46:1)

오늘의 기도

"주님, 세상의 힘과 나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기보다 오직 주님만을 나의 피난처로 삼게 하소서. 제 안에 있는 교만과 죄를 회개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겸손과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아멘."


무너질 것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본문 : 나훔 3:1-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벽은 하루를 하나님께 맡기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웁니다. 건강을 생각하고, 일을 생각하고, 자녀를 생각하고, 삶의 여러 문제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먼저 한 가지 질문을 던지십니다.

"너는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느냐?"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니느웨는 당시 세상에서 가장 강한 도시였습니다. 누구도 그 성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를 향해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1절)라고 선언하십니다.

사람들이 보는 니느웨와 하나님께서 보시는 니느웨는 달랐습니다.

사람들은 강한 도시를 보았지만, 하나님은 죄로 가득한 도시를 보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세 가지 교훈을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습이 아니라 중심을 보십니다.

1절은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그 안에는 거짓이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하며 탈취가 떠나지 아니하는도다."

니느웨는 외적으로는 화려했습니다.

경제도 강했고 군사력도 막강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화려함보다 그 안에 무엇이 가득한지를 보셨습니다.

거짓이 가득했습니다.

폭력이 가득했습니다.

욕심이 가득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겉으로 드러난 신앙보다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함을 기뻐하십니다.

혹시 하나님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더 의식하며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혹시 감추어진 죄를 합리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먼저 살펴보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살피사 내 뜻을 아옵소서"(시 139:23)라고 기도했습니다.

새벽을 여는 우리의 첫 기도도 이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낮추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5절부터 하나님은 니느웨에게 직접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이제 하나님께서 행동하십니다.

니느웨는 스스로를 높였습니다.

다른 나라를 지배했고,

자신들의 힘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교만을 그대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자랑하던 영광을 수치로 바꾸십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기도를 많이 했다고,

봉사를 오래 했다고,

직분을 맡았다고,

신앙이 좋다고 생각하는 순간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의지하게 됩니다.

새벽기도는 우리의 교만을 내려놓는 시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주님, 저는 주님의 은혜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겸손은 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더하십니다.


3. 우리의 참된 피난처는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8절부터 하나님은 니느웨에게 노아몬을 예로 들어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찌 노아몬보다 낫겠느냐?"

노아몬도 강한 도시였습니다.

천혜의 요새였고, 많은 동맹국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니느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1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도 원수들 때문에 피난처를 찾으리라."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피난처'입니다.

평소에는 자신들이 피난처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심판이 오자 자신들도 피난처를 찾아야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피난처는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건강입니까?

직장입니까?

사람입니까?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귀한 선물이지만, 영원한 피난처는 아닙니다.

언제든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시편 46편 1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가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대신 받으시고,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교만을 낮추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셋째, 참된 피난처는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새벽을 시작하는 이 시간,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올려 드립시다.

혹시 숨겨 둔 죄가 있다면 회개합시다.

혹시 교만한 마음이 있다면 내려놓읍시다.

혹시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 있다면 오늘 다시 하나님께 돌이킵시다.

오늘 하루 어떤 일을 만나든지 우리의 피난처는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반석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 은혜를 의지하며 담대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새벽기도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새벽에 저희를 말씀 앞으로 불러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중심을 살피시는 하나님 앞에 숨겨진 죄를 회개하게 하시고, 교만을 버리고 겸손히 주님만 의지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세상의 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피난처로 삼게 하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 일터를 지켜 주시고, 모든 걸음 가운데 성령께서 동행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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