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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오늘의 QT)

사자의 굴은 어디에 있는가?(나훔 2:8-13)

by essay2598 2026.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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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자의 굴은 어디에 있는가?

본문 : 나훔 2:8-13


들어가는 말

사람들은 강한 것을 보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대한 기업을 보면 "저 회사는 절대 망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세계를 움직이는 강대국을 보면 "저 나라는 영원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이 많으면 안전할 것 같고, 건강하면 괜찮을 것 같고, 능력이 있으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에게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때 세상을 지배했던 바벨론도 사라졌고, 페르시아도, 헬라도, 로마도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영원할 것 같던 제국도 하나님의 시간 앞에서는 한순간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니느웨가 바로 그런 도시였습니다.

니느웨는 당시 세계 최강의 제국 앗수르의 수도였습니다. 군사력도 최고였고, 경제력도 최고였습니다. 누구도 그들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변 나라들은 니느웨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훔 선지자를 통해 선언하십니다.

"그 니느웨가 무너질 것이다."

사람들은 믿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본문은 단순히 한 도시의 멸망을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교만한 세력의 마지막이 어떠한지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을 떠난 번영은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8-10절)

8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니느웨는 예로부터 물이 모인 못 같더니 이제 모두 도망하니."

'물이 모인 못'이라는 표현은 사람이 가득한 도시를 의미합니다.

물이 연못을 가득 채우듯 니느웨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장사하는 사람도 있었고, 군인도 있었고, 귀족도 있었고, 관리들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번성한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모두 도망한다."

누군가는 외칩니다.

"서라! 서라!"

도망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끝까지 싸우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돌아보는 자가 없도다."

아무도 뒤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한때 세상을 지배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자기 목숨 하나 살겠다고 도망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9절은 더욱 인상적입니다.

적군이 외칩니다.

"은을 노략하라! 금을 노략하라!"

니느웨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재물이 있었습니다.

전쟁을 통해 빼앗은 금과 은이 창고마다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그 재물이 그들을 살려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많은 재물이 적군에게는 더 큰 약탈의 대상이 됩니다.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돈은 우리를 지켜 주는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10절은 니느웨 사람들의 모습을 아주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주민이 낙담하여."

마음이 녹아버렸습니다.

"무릎이 서로 부딪히며."

두려움 때문에 다리가 떨립니다.

"모든 허리가 아프게 되며."

몸에 힘이 빠졌습니다.

"모든 낯이 빛을 잃도다."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세상을 호령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이 의지하던 것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갑니까?

통장입니까?

직장입니까?

건강입니까?

경력입니까?

물론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귀한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보다 앞설 때는 우상이 됩니다.

돈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돈이 평안을 주지는 못합니다.

건강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건강이 생명을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직장은 소중합니다.

그러나 직장이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안전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병거를,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오늘도 우리의 믿음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향하기를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은 교만한 권세를 반드시 낮추십니다.

(11-12절)

앞에서는 니느웨가 얼마나 비참하게 무너졌는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지십니다.

11절입니다.

"이제 사자의 굴이 어디냐?"

이 질문은 단순한 질문이 아닙니다.

이것은 조롱의 질문입니다.

"그렇게 강하던 니느웨가 어디 있느냐?"
"세상을 두렵게 하던 그 제국이 지금 어디 있느냐?"

라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사자는 앗수르를 상징합니다.

고대 앗수르의 궁전 벽에는 수많은 사자 사냥 부조가 새겨져 있습니다. 왕은 자신을 사자를 제압하는 영웅으로 묘사했고, 동시에 자신 역시 사자와 같은 절대 권력을 가진 존재로 과시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를 사자의 굴로 비유하십니다.

사자는 숲의 왕입니다.

다른 짐승들은 사자의 울음소리만 들어도 도망갑니다.

먹이를 마음껏 사냥하고, 누구도 감히 맞서지 못합니다.

니느웨도 그랬습니다.

주변 나라들을 침략했습니다.

조공을 요구했습니다.

반항하는 나라는 철저히 짓밟았습니다.

힘이 곧 정의였습니다.

강한 자만 살아남는다는 논리가 그들의 가치관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묻습니다.

"사자의 굴이 어디 있느냐?"

이 질문에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너희는 영원할 것 같았지?"

"아무도 너희를 건드리지 못할 것 같았지?"

"그런데 지금은 어디 있느냐?"

사람은 교만하면 자신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교만은 반드시 끝이 있다."


12절은 니느웨의 죄를 드러냅니다.

본문은 계속해서 사자의 모습을 설명합니다.

"수사자가 그 새끼를 위하여 먹이를 충분히 찢고..."

처음 읽으면 가족을 위해 먹이를 구하는 아름다운 모습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강조점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사자는 자기 굴을 채우기 위해 끝없이 사냥합니다.

먹이를 찢고,

움켜쥐고,

굴을 가득 채웁니다.

이것이 바로 앗수르였습니다.

그들은 다른 나라의 재산을 빼앗았습니다.

사람들을 노예로 삼았습니다.

도시를 약탈했습니다.

약한 나라를 짓밟아 자신들의 창고를 채웠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번영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힘으로 얻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약탈'**이라고 부르십니다.

세상은 성공이라고 말했지만,

하나님은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차이를 우리는 놓쳐서는 안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유혹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자처럼 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얼마든지 사자의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다.

"조금만 더 가지면 행복할 텐데."

"조금만 더 성공하면 만족할 텐데."

"내가 이 정도는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끝없이 움켜쥐려는 마음.

끝없이 채우려는 마음.

끝없이 높아지려는 마음.

이것이 교만의 시작입니다.

교만은 반드시 큰소리치는 모습으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내 계획이 하나님의 뜻보다 앞서는 것이 교만입니다.

내 능력을 더 신뢰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내 성공을 내 공로로 여기는 것이 교만입니다.

그래서 C. S. 루이스는 교만을 가리켜 "모든 죄의 뿌리"라고 말했습니다.

교만은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크게 만드는 죄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반드시 낮추십니다.

성경은 반복해서 같은 진리를 말씀합니다.

바벨탑은 높이 올라갔지만 하나님께서 흩으셨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스스로를 높이다가 짐승처럼 낮아졌습니다.

헤롯은 사람들의 칭찬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리지 않다가 벌레에게 먹혀 죽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니느웨도 같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높아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도 스스로를 높일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겸손은 자신을 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혹시 내 안에도 니느웨의 모습은 없습니까?

혹시 내가 가진 것으로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혹시 하나님보다 내 경험과 능력을 더 의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을 들어 사용하십니다.

낮아진 사람에게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며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 오늘도 제가 아니라 주님이 높임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그 고백이 우리의 삶을 붙드는 가장 큰 힘이 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한마디가 모든 역사를 결정하십니다.

(13절)

본문은 이제 절정에 이릅니다.

앞에서는 니느웨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 주었고, 사자의 굴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 모든 일의 원인을 직접 밝히십니다.

13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

이 한마디가 본문의 핵심입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메대와 바벨론이 니느웨를 무너뜨렸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메대가 아니라,

바벨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대적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배우게 됩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원인만 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군사력을 이야기합니다.

경제가 무너지면 시장을 이야기합니다.

나라가 흥하면 지도자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뒤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여 줍니다.

역사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세상의 왕들은 자신들이 나라를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역사를 다스리신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 대적하시면 아무도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계속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병거들을 불살라 연기가 되게 하고."

병거는 당시 최첨단 무기였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전차와 미사일 같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병거를 보면 안심했습니다.

"우리는 강하다."

"우리는 안전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불태우겠다."

사람이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 힘이 없습니다.

이어 말씀하십니다.

"네 젊은 사자들을 칼로 멸할 것이며."

젊은 사자는 미래를 의미합니다.

후계자입니다.

다음 세대입니다.

니느웨는 자신들의 미래가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미래까지 끊어 버리십니다.

또 말씀하십니다.

"내가 또 네 노략한 것을 땅에서 끊으리니."

그동안 약탈하여 모아 놓았던 모든 재물도 끝이 납니다.

사람은 평생 모으지만,

하나님은 한순간에 거두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말씀하십니다.

"네 파견자의 목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아니하리라."

앗수르는 여러 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의 명령은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도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께서 끝내셨기 때문입니다.


가장 두려운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에서 가장 두려운 말씀은 병거가 아닙니다.

칼도 아닙니다.

멸망도 아닙니다.

가장 두려운 말씀은 이것입니다.

"내가 네 대적이 되어."

사람이 우리의 대적이 되는 것은 견딜 수 있습니다.

환경이 어려워지는 것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대적이 되시면 아무도 설 수 없습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의 편이 되시면 어떻겠습니까?

세상이 우리를 대적해도 두려울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담대하게 말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이것이 성도의 확신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크기를 보며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기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결론 : 사자의 굴은 사라졌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한 도시의 멸망을 보여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영원하고 무엇이 사라지는지를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니느웨는 강했습니다.

부유했습니다.

찬란했습니다.

사람들은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니느웨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질문처럼,

"사자의 굴이 어디 있느냐?"

흔적만 남았습니다.

오늘도 세상은 끊임없이 새로운 '니느웨'를 만들어 냅니다.

돈을 의지합니다.

권력을 의지합니다.

기술을 의지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해서 증명합니다.

하나님 없이 높아진 것은 결국 무너집니다.

반대로 하나님께 속한 것은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앞에서 세상은 승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이겼다고 생각했습니다.

로마는 자신들의 권력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흘 후, 무덤은 비었습니다.

십자가는 패배가 아니라 승리였습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나라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니느웨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 나라는 병거로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칼로 유지되지도 않습니다.

권력으로 확장되지도 않습니다.

그 나라는 십자가의 사랑과 부활의 능력으로 세워진 나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무엇을 의지하며 살고 있느냐?"

우리의 대답은 분명해야 합니다.

돈이 아닙니다.

능력이 아닙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세상의 사자의 굴은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흔들리는 세상을 바라보며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을 바라보며 담대히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1. 하나님보다 세상의 힘과 성공을 의지했던 교만을 회개하게 하소서.
  2.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이 나의 피난처이심을 믿는 믿음을 주소서.
  3. 영원하지 않은 세상의 영광보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게 하소서.

 

오늘의 말씀 묵상

사자의 굴은 어디에 있는가?

본문 : 나훔 2:8-13

니느웨는 당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대국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군사력과 재물, 화려한 문명을 보며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심판을 선언하시자 그 견고했던 성은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본문은 "니느웨는 예로부터 물이 모인 못 같더니 이제 모두 도망한다"(8절)고 말씀합니다. 사람들로 가득했던 성은 텅 비었고, 끝없이 쌓아 두었던 금과 은은 약탈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강함을 자랑하던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얼굴에는 핏기가 사라졌습니다.

이어 하나님은 니느웨를 향해 "사자의 굴이 어디냐"(11절)라고 물으십니다. 한때 모든 나라를 두렵게 하던 사자도 이제는 흔적조차 남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지배하던 권세도 하나님 앞에서는 한순간입니다.

본문의 절정은 13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

니느웨를 무너뜨린 것은 메대와 바벨론의 군대가 아니라, 그들을 대적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역사는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많은 것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재물과 건강, 능력과 경험은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이지만, 그것들이 우리의 안전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그것들을 더 의지하는 순간, 그것은 우상이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시면 세상이 아무리 흔들려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바울은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라고 고백했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을 돌아보십시오.

나는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세상의 사자의 굴은 결국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힘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하기

"주님, 세상의 힘과 성공을 의지하려 했던 저의 마음을 돌아보게 하옵소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믿음을 주소서. 어떤 상황에서도 저의 피난처와 소망은 오직 주님뿐임을 고백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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