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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오늘의 QT)

여호와께 감사하라(시편 107:1-22)

by essay2598 2026.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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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여호와께 감사하라

본문 : 시편 107:1-22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러나 감사는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이 잘 풀리면 감사하지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감사는 금세 사라집니다. 건강할 때는 감사하지만 병이 들면 불평이 먼저 나옵니다. 계획대로 되면 감사하지만 예상과 다른 길을 만나면 원망이 앞섭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감사를 환경에 맡겨 둡니다. 형편이 좋아지면 감사하고, 형편이 나빠지면 감사도 멈춥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 기자는 전혀 다른 곳에서 감사를 시작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감사의 이유가 우리의 형편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에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이유를 세 장면으로 보여 줍니다. 광야에서 길을 잃은 사람, 감옥에 갇힌 사람, 죽을 병에 걸린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언뜻 보면 서로 다른 이야기 같지만, 자세히 보면 동일한 구조가 반복됩니다.

먼저 사람이 고난을 당합니다.

그다음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반드시 감사가 나옵니다.

이 반복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어떻게 다루시는지를 보여 주는 하나의 신앙 고백입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인생의 방향을 잃고 방황합니다. 어떤 사람은 죄와 상처에 묶여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몸과 마음이 지쳐 거의 쓰러질 지경에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시편은 말합니다.

우리의 상황은 달라도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동일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다시 바라보며, 우리의 삶 속에서 진정한 감사를 회복하기를 소망합니다.


1. 하나님은 길을 잃은 사람을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1-9절)

본문은 먼저 광야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광야는 단순히 모래가 많은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광야는 방향을 잃은 곳입니다.

오늘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내일 어디에서 쉬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곳입니다.

그들은 집도 없습니다.

쉬어 갈 성읍도 없습니다.

먹을 것도 없습니다.

본문은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피곤하였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영혼이 피곤하다'는 말은 단순히 육체가 지친 정도가 아닙니다.

살아갈 의욕까지 사라진 상태를 말합니다.

혹시 오늘 우리 가운데도 이런 광야를 지나고 있는 분은 없습니까?

열심히 살아왔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분이 계십니까?

기도는 하지만 응답이 보이지 않고, 믿음은 있지만 방향이 보이지 않는 시간을 지나고 있지는 않습니까?

신앙생활도 오래 했지만 마음은 메말라 있고, 어디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인지 분별하기 어려운 때가 있지는 않습니까?

광야는 우리에게도 찾아옵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아주 짧게 기록합니다.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참 흥미롭습니다.

그들은 지도를 찾지 않았습니다.

자기 힘으로 길을 만들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왜입니까?

광야에서는 사람이 길을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길을 아시는 분만이 인도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에서 바로 성읍으로 순간 이동시키지 않으셨습니다.

"바른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빠른 길'이 아니라 '바른 길'입니다.

우리는 빠른 해결을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른 길을 주십니다.

때로는 시간이 걸립니다.

돌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기다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결코 잘못된 길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을 돌아보면 이해되지 않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왜 이런 일을 만나야 하는지,

왜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

왜 이렇게 돌아가야 하는지 알지 못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를 버리신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보다 앞서 가시며 길을 준비하셨고,

우리가 알지 못했던 곳에서 우리의 삶을 이끌어 오셨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9절입니다.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하나님은 길만 보여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빈 마음도 채우시는 분입니다.

육신의 배고픔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갈증을 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요."

세상은 잠시 만족을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혼을 만족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시인은 결론을 내립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감사는 문제가 없어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길을 잃었던 나를 끝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기 때문에 드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 인생의 광야를 걷고 계십니까?

사업의 방향을 잃었습니까?

자녀 문제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습니까?

오랫동안 기도했지만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지 않아 답답하십니까?

광야는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에게도 광야는 있습니다.

그러나 광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광야에도 하나님은 함께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은 길을 찾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길을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내일을 모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끝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필요한 것은 조급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길을 만들려고 애쓰기보다 길을 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우리는 반드시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시다."

 

2. 하나님은 묶인 사람을 자유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10-16절)

시편 기자는 이제 또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우리 앞에 보여 줍니다.

이번에는 광야가 아닙니다.

이번에는 감옥입니다.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얼마나 답답한 모습입니까?

햇빛도 없습니다.

자유도 없습니다.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쇠사슬에 묶여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를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고난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모든 고난을 죄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욥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뜻 가운데 허락하시는 연단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분명히 이 경우에는 죄의 결과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결과였습니다.

죄는 언제나 사람을 묶습니다.

처음에는 자유를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자유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결국 죄는 사람을 포로로 만듭니다.

분노는 사람을 묶습니다.

탐욕은 사람을 묶습니다.

음란도 사람을 묶습니다.

미움도 사람을 묶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도 사람을 묶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죄를 붙잡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에는 죄가 나를 붙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죄를 쇠사슬에 비유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스스로는 끊어낼 수 없는 쇠사슬입니다.

1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낮추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으니."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죄 가운데 계속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징계하십니다.

깨닫게 하십니다.

멈추게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히브리서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징계는 버림받았다는 증거가 아니라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장면이 다시 나옵니다.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시편 107편에서는 이 말이 계속 반복됩니다.

광야에서도 부르짖었습니다.

감옥에서도 부르짖습니다.

죽을 병이 들어도 부르짖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이 짧은 기도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기도입니다.

자기 힘으로 해결하겠다는 교만을 내려놓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순간, 하나님의 은혜가 시작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

얼마나 놀라운 표현입니까?

"줄을 느슨하게 하셨다"가 아닙니다.

"끊으셨다."

15절과 16절은 더 강하게 말씀합니다.

"그가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빗장을 꺾으셨음이로다."

당시 놋문과 쇠빗장은 사람이 절대로 열 수 없는 감옥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곳에서도 하나님은 길을 여십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홍해 앞에 섰을 때도 길이 없었습니다.

여리고 성도 사람의 힘으로는 무너뜨릴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도 철문이 스스로 열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사람의 능력으로는 열 수 없는 문을 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쇠사슬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염려에 묶여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상처에 묶여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미움 때문에 자유를 잃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오래된 죄의 습관을 끊지 못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은 감옥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언제까지 혼자 싸우려 하느냐?"

본문에서 사람들은 쇠사슬을 스스로 끊지 못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 끊어 주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회개는 패배가 아니라 자유의 시작입니다.

십자가 앞으로 나오십시오.

죄를 숨기지 말고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도 죄의 사슬을 끊으시는 구원자이십니다.

그리고 자유를 경험한 사람만이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은 죽어가는 사람을 회복시키시는 분이십니다. (17-22절)

시편 기자는 마지막으로 또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번에는 길을 잃은 사람도 아니고, 감옥에 갇힌 사람도 아닙니다.

병들어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입니다.

17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미련한 자들은 그들의 죄악의 길을 따르고 그들의 악을 범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아."

여기서 '미련한 자'는 머리가 나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판단을 더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결국 죄는 우리를 병들게 합니다.

죄는 영혼을 메마르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너뜨리며, 때로는 삶 전체를 무너뜨립니다.

본문은 병이 얼마나 깊어졌는지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모든 음식물을 싫어하게 되어 사망의 문에 이르렀도다."

건강한 사람은 배가 고프면 먹습니다.

그러나 병이 깊어지면 음식조차 받을 수 없습니다.

생명을 유지해야 할 음식이 오히려 부담이 됩니다.

그만큼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영혼도 그렇습니다.

죄가 깊어지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합니다.

예배가 귀찮아집니다.

기도가 멀어집니다.

찬양이 입에서 사라집니다.

영혼이 병들었다는 신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시편 기자는 같은 문장을 반복합니다.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참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사람의 기도를 기다리지 않으십니다.

죽어가는 사람의 신음도 들으십니다.

눈물로 드리는 기도도 받으십니다.

한마디 "주님 살려 주십시오."라는 기도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20절은 참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고치셨습니다.

창조 때에도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셨고,

예수님께서도 말씀으로 병자를 고치셨으며,

오늘도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십니다.

세상은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 여러 방법을 말합니다.

환경을 바꾸라고 합니다.

생각을 바꾸라고 합니다.

습관을 바꾸라고 합니다.

물론 그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더 근본적인 회복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을 살립니다.

말씀은 죽은 믿음을 다시 일으키고,

말씀은 식어 버린 마음에 다시 불을 붙이며,

말씀은 죄로 상한 심령을 치유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말씀이 들릴 때 믿음이 자라고,

말씀이 심령에 들어갈 때 회복이 시작됩니다.

본문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권면합니다.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가 행하신 일을 선포할지로다."

회복된 사람의 삶에는 반드시 감사가 있습니다.

감사는 단순히 "감사합니다."라는 말 한마디로 끝나지 않습니다.

감사는 삶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하신 일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침묵할 수 없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혹시 몸보다 영혼이 더 지쳐 있지는 않습니까?

예배는 드리지만 감격이 없고,

기도는 하지만 메마르고,

말씀을 들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회복을 필요로 하는 때일 수 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보내어 고치셨다고 말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살리십니다.

예배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을 가까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회복을 원한다면 말씀 앞에 머무르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그리고 회복된 사람은 감사를 숨길 수 없습니다.

감사는 의무가 아니라 은혜를 경험한 사람의 자연스러운 고백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내 삶에 행하신 일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맺는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세 사람을 만났습니다.

광야에서 길을 잃은 사람.

감옥에 갇혀 자유를 잃은 사람.

병들어 죽음을 앞둔 사람.

이들은 서로 다른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길을 잃기도 합니다.

죄에 묶여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영혼이 병들어 하나님께서 멀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세 이야기에는 변하지 않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사람은 계속 넘어졌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구원하시기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본문은 세 번이나 같은 고백을 반복합니다.

"이에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리고 하나님도 세 번이나 같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고통에서 건지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자입니다.

이것이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 시편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예수님은 길을 잃은 우리를 찾아오신 선한 목자이십니다.

죄의 사슬에 묶인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 구원자이십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감사는 단지 오늘 하루가 평안해서 드리는 감사가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 계시기 때문에 드리는 감사입니다.

형편은 변해도 하나님의 선하심은 변하지 않습니다.

감정은 흔들려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합니다.

그래서 시편은 처음과 끝을 같은 고백으로 묶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한 주도 이 고백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십시오.

길을 잃을 때는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죄와 두려움에 묶일 때는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몸과 마음이 지칠 때는 말씀으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어떤 형편에서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감사의 이유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입니다

본문 : 시편 107:1-22

우리는 감사할 이유를 환경에서 찾을 때가 많습니다. 일이 잘 풀리면 감사하고, 계획대로 되면 감사하지만, 어려움이 찾아오면 감사는 쉽게 사라집니다. 그러나 시편 107편은 감사의 출발점을 우리의 형편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두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편 기자는 세 부류의 사람을 소개합니다. 광야에서 길을 잃은 사람, 흑암과 쇠사슬에 갇힌 사람, 죽음의 문턱까지 이른 병든 사람입니다. 이들의 상황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자신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절망 가운데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고난 가운데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방황하는 자를 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묶인 자의 쇠사슬을 끊으시며, 병든 자를 말씀으로 고치셨습니다.

이처럼 시편 107편은 같은 고백을 반복합니다. 고난은 달랐지만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동일하셨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는 앞이 보이지 않는 광야를 지나고 있고, 누군가는 죄와 두려움에 묶여 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몸과 마음이 지쳐 회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늘도 부르짖는 자를 들으시고, 인도하시며, 자유롭게 하시고, 회복시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감사는 억지로 만들어 내는 감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경험한 사람이 드리는 자연스러운 신앙의 고백입니다.

오늘 하루도 내 문제보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먼저 바라보십시오. 내 형편보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나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돌아볼 때, 우리의 입술에서도 시편 기자의 고백이 흘러나올 것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오늘의 기도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 환경을 바라보며 감사가 사라질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오늘 시편 107편의 말씀을 통해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다시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도 저를 인도하시고, 죄와 두려움의 사슬에서 자유하게 하시며, 말씀으로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주님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하시고, 받은 은혜를 이웃에게 전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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