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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오늘의 QT)

아름다운 소식이 들려올 때(나훔 1:9-15)

by essay2598 2026.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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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름다운 소식이 들려올 때

본문: 나훔 1:9-1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 악한 사람들은 잘되는 것 같을까?"
"왜 정직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더 힘들까?"
"정말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실까?"

뉴스를 보아도 그렇고, 우리의 삶을 돌아보아도 그렇습니다.

힘 있는 사람은 더 힘을 얻고, 약한 사람은 더 힘들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불의가 정의를 이기는 것 같고, 세상의 힘이 하나님의 백성을 짓누르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유다 백성도 바로 그런 시대를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나라는 앗수르였습니다. 그들은 정복하지 못한 나라가 거의 없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무너뜨렸고, 저항하는 민족은 잔인하게 짓밟았습니다.

특히 산헤립은 예루살렘 앞까지 와서 하나님을 조롱했습니다.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구원할 수 있겠느냐?"

그 말은 단순히 군사적 위협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나훔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은 선언하십니다.

"악은 끝이 있다."

"내 백성의 눈물도 끝이 있다."

"그리고 마침내 아름다운 소식이 들려올 것이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세 가지 사실을 보여줍니다.


1. 하나님은 자신을 대적하는 악을 반드시 끝내신다

9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여호와께 대하여 무엇을 꾀하느냐"

이 말씀은 마치 하나님께서 비웃듯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도대체 누구를 상대하려고 하느냐?"

앗수르는 자신들이 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군대가 있었습니다.
막대한 재물이 있었습니다.
정복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 가지를 몰랐습니다.

자신들이 상대하고 있는 분이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11절은 말합니다.

"여호와께 악을 꾀하는 한 사람이 너희 중에서 나와서"

이 사람은 산헤립을 가리킵니다.

그는 하나님을 우상들과 같은 수준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다 듣고 계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언제나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없이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역사를 보십시오.

하나님을 대적하던 왕들은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던 제국들도 사라졌습니다.

애굽도,
바벨론도,
앗수르도,
로마도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계획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악이 너무 강해 보입니다.

거짓이 진실을 이기는 것 같고,
불의가 정의를 이기는 것 같고,
세상의 힘이 믿음을 압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악의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

"내가 반드시 끝낸다."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직장의 문제입니까?

사람의 권력입니까?

경제적인 어려움입니까?

건강의 문제입니까?

그것이 아무리 커 보여도 하나님보다 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현실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멍에를 깨뜨리신다

12절과 13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비록 강하고 많을지라도 반드시 멸절을 당하리니"

"이제 네게 지운 그의 멍에를 내가 깨뜨리고 네 결박을 끊으리라"

참 놀라운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앗수르를 바라보시며 "강하다"고 인정하십니다.

실제로 강했습니다.

그러나 그 강함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10절은 그들의 모습을 세 가지로 묘사합니다.

가시덤불 같습니다.

술 취한 사람 같습니다.

마른 지푸라기 같습니다.

겉으로는 강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불에 타는 지푸라기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단순히 원수를 심판하시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십니다.

자기 백성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멍에를 깨뜨리겠다."

유다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군사력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짓누르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압박 때문이었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멍에를 깨뜨리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많은 멍에를 지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걱정의 멍에를 지고 살아갑니다.

잠을 자려고 해도 걱정이 따라옵니다.

내일이 불안합니다.

미래가 두렵습니다.

어떤 사람은 상처의 멍에를 지고 살아갑니다.

몇 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상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죄책감의 멍에를 지고 살아갑니다.

과거의 실패가 계속 따라다닙니다.

어떤 사람은 중독과 습관의 멍에를 지고 살아갑니다.

벗어나고 싶은데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깨뜨리겠다."

사실 우리를 가장 강하게 묶고 있는 것은 죄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를 분리시켰습니다.

죄는 우리를 죽음 아래 가두었습니다.

죄는 우리를 사탄의 권세 아래 묶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그 결박을 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죄값을 담당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골로새서 2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장해제하셨다고 말합니다.

십자가는 패배가 아니었습니다.

가장 위대한 승리였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닙니다.

사망의 종도 아닙니다.

두려움의 종도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 여러분을 짓누르는 멍에가 있습니까?

그것을 붙들고 혼자 싸우지 마십시오.

십자가 앞으로 가져오십시오.

주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은 지금도 결박을 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3. 하나님의 백성은 결국 아름다운 소식을 듣게 된다

15절을 보십시오.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입니까?

전쟁의 소식만 들리던 시대였습니다.

죽음의 소식만 들리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산 위에서 한 사람이 달려옵니다.

그는 외칩니다.

"승리했다!"

"원수가 무너졌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다!"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절망 속에 있던 사람들에게 희망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이제 다시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의 가장 자연스러운 반응은 예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은 단순히 앗수르의 멸망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사야는 이 말씀을 바벨론 포로 귀환의 소망으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로마서 10장에서 복음 전파에 적용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장 아름다운 소식은 앗수르의 멸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소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셨다는 소식입니다.

죄가 용서되었다는 소식.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소식.

영원한 생명이 열렸다는 소식.

심판이 끝나고 은혜가 시작되었다는 소식.

이보다 아름다운 소식은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 아름다운 소식을 들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소식을 전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가정에,

우리의 직장에,

우리의 이웃에게,

우리의 자녀들에게,

이 아름다운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부요한 사람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을 가진 사람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대적하는 악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멍에를 깨뜨리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름다운 구원의 소식을 들려주십니다.

앗수르는 사라졌습니다.

산헤립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오늘도 자기 백성을 붙드십니다.

혹시 지금 두려움 가운데 있습니까?

혹시 고난 가운데 있습니까?

혹시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집니까?

오늘 나훔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악은 끝이 있습니다.

고난도 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반드시 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식을 듣게 될 것입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그날을 바라보며 오늘도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1. 세상의 힘보다 하나님의 주권을 더 신뢰하게 하소서.
  2. 우리를 묶고 있는 죄와 두려움의 결박을 끊어 주옵소서.
  3. 십자가의 복음을 날마다 기뻐하게 하소서.
  4.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복음의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설교 후 기도

“심판 가운데서도 자기 백성을 기억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강한 힘보다 주님의 주권을 더 신뢰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묶고 있는 죄와 두려움과 염려의 멍에를 십자가의 능력으로 끊어 주옵소서. 아름다운 복음을 들은 자로서 그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게 하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승리를 바라보는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아름다운 소식이 들려올 때"

나훔 1:9-15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앗수르에 대한 심판과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구원의 약속을 함께 보여 줍니다. 당시 앗수르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조롱했고, 하나님의 백성을 압박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앗수르가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여호와께 대하여 무엇을 꾀하느냐?"(9절)

인간은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주권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강한 세력이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마른 지푸라기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의 세력을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특별히 마음에 와닿는 말씀은 13절입니다.

"이제 네게 지운 그의 멍에를 내가 깨뜨리고 네 결박을 끊으리라"

유다를 짓누르던 멍에를 하나님께서 친히 깨뜨리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큰 위로가 됩니다. 우리를 짓누르는 염려와 두려움, 죄책감과 상처,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마치 무거운 멍에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결박을 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본문은 놀라운 소식으로 끝이 납니다.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15절)

원수의 멸망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구원의 소식이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킵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있던 우리에게 하나님은 가장 아름다운 소식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 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 기억합시다.

악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고난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반드시 임합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 신뢰하며 살아갑시다. 그리고 우리도 복음의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하나님은 악을 끝내시고, 자기 백성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들려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세상의 강한 힘보다 주님의 주권을 더 신뢰하게 하옵소서. 저를 묶고 있는 두려움과 염려의 멍에를 끊어 주시고, 복음의 아름다운 소식을 날마다 기뻐하게 하옵소서. 또한 그 소식을 전하는 삶을 살게 하셔서, 제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평안이 흘러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의 실천

  1. 지금 나를 가장 무겁게 하는 "멍에"가 무엇인지 적어 보십시오.
  2. 그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며 기도하십시오.
  3. 오늘 한 사람에게 위로와 복음의 말을 전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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