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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오늘의 QT)

누가 그 앞에 설 수 있는가?(나훔 1:1-8)

by essay2598 2026.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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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누가 그 앞에 설 수 있는가?

본문: 나훔 1:1-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을 두려워합니다.
어떤 사람은 경제적인 문제를 두려워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녀의 미래를 두려워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들의 평가와 시선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지킬 무언가를 찾습니다.

돈이면 안전할 것 같고,
권력이 있으면 안전할 것 같고,
능력이 있으면 안전할 것 같고,
좋은 환경이 있으면 안전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6절)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정말 두려워해야 할 분은 누구입니까?
정말 의지해야 할 분은 누구입니까?

오늘 나훔 선지자는 니느웨를 향한 심판의 말씀을 전하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것이 우리의 믿음을 바로 세우는 출발점이 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은 죄를 끝까지 그냥 두지 않으신다

본문 2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 감정적으로 화를 내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질투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다른 우상에게 빼앗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죄 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그대로 두지 않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관심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기에 죄를 미워하십니다.

니느웨는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도시였습니다.

요나 시대에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회개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심판을 멈추셨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다시 죄악 가운데 빠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나훔을 통해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느니라."

여기에 하나님의 두 가지 성품이 함께 나타납니다.

하나는 오래 참으심입니다.

하나님은 쉽게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기회를 주십니다.

기다려 주십니다.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공의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영원히 묵인하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침묵을 하나님의 허락으로 착각합니다.

죄를 지어도 당장 문제가 없으면 괜찮은 줄 압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별일 없으면 괜찮은 줄 압니다.

신앙이 식어가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괜찮은 줄 압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동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회개의 기회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은 말씀합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혹시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죄를 품고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회개를 미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하나님께 돌아오십시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헛되게 하지 마십시오.


2. 하나님은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절대 주권자이시다

이제 나훔은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줍니다.

3절 후반부터 6절까지를 보면 놀라운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그는 바다를 꾸짖어 그것을 말리시며"

"산들이 진동하며"

"작은 산들이 녹고"

"그 앞에서는 땅 곧 세계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들이 솟아오르는도다"

마치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온 자연이 떨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왜 나훔은 이런 표현을 사용했을까요?

니느웨는 당시 세계 최강국의 수도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군대를 믿었습니다.

높은 성벽을 믿었습니다.

강력한 무기를 믿었습니다.

부와 권력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믿는 모든 힘도 내 손 안에 있다."

바다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강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릅니다.

산이 하나님 앞에 떱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습니다.

그러므로 6절은 선언합니다.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답은 분명합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가장 강한 왕도 없습니다.

가장 큰 제국도 없습니다.

가장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피조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종종 문제를 크게 봅니다.

질병을 크게 봅니다.

경제적 어려움을 크게 봅니다.

사람을 크게 봅니다.

환경을 크게 봅니다.

그러나 믿음은 문제를 작게 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더 크게 보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을 괴롭히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해결되지 않는 가정의 문제입니까?

미래에 대한 두려움입니까?

건강의 문제입니까?

관계의 문제입니까?

그 문제보다 하나님이 더 크십니다.

그 문제를 허락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마십시오.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지금도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권자이십니다.


3. 하나님은 피하는 자에게 산성이 되어 주신다

그런데 놀랍게도 본문은 심판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지금까지는 심판의 하나님이었습니다.

두려운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위로의 말씀이 등장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원수에게는 심판자이시지만 자기 백성에게는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동일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에게는 두려운 분이시고,

하나님께 피하는 자에게는 가장 안전한 피난처가 되십니다.

본문은 하나님을 "산성"이라고 말합니다.

산성은 전쟁 중에 적의 공격을 피하는 요새입니다.

아무리 강한 적이 공격해 와도 무너지지 않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런 분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말씀합니다.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얼마나 큰 위로입니까?

하나님은 우리 이름을 아십니다.

우리 눈물을 아십니다.

우리 형편을 아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아십니다.

우리의 외로움을 아십니다.

우리의 아픔을 아십니다.

사람은 몰라줘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사람은 떠나도 하나님은 떠나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잊어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여기서 복음을 보게 됩니다.

사실 죄인인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 앞에 설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우리도 니느웨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도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심판을 피하기 위해 도망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피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산성이 되셨습니다.

우리의 피난처가 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되셨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죄를 결코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절대 주권자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의 산성이 되십니다.

니느웨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죄를 붙들 것입니까?

하나님께 돌아갈 것입니까?

세상을 의지할 것입니까?

하나님을 신뢰할 것입니까?

오늘도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세상이 흔들려도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환경이 무너져도 하나님은 무너지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피하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그 하나님 안에 참된 안전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 안에 참된 평안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 안에 영원한 구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는 누구도 설 수 없지만,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영원히 안전합니다.

이 은혜를 붙들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제목

  1.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회개의 기회로 사용하게 하소서.
  2.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주소서.
  3. 환난 중에도 하나님을 산성으로 신뢰하게 하소서.
  4.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구원의 은혜를 더욱 붙들게 하소서.

 

오늘의 말씀 묵상

여호와는 선하시며

본문 : 나훔 1:1-8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나훔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악을 심판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니느웨는 한때 요나의 경고를 듣고 회개했던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하나님을 떠나고 죄악 가운데 살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셨지만 결국 그들의 죄를 심판하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노하기를 더디하시며"(3절) 동시에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 두지 아니하신다"(3절)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오래 참으심은 죄를 용납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심판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7절)

이 말씀은 본문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에게는 심판자이시지만, 하나님께 피하는 자에게는 산성이 되어 주십니다. 세상이 흔들리고 삶의 어려움이 몰려와도 하나님께 피하는 사람은 안전합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를 알고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형편과 눈물과 기도를 모두 아시고 돌보십니다.

오늘도 우리는 두 가지 선택 앞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갈 것인가, 하나님께 피할 것인가.

참된 안전은 환경에 있지 않습니다. 건강이나 물질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나의 산성이 되시는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묵상 질문

  1. 나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회개의 기회로 사용하고 있는가?
  2. 지금 내 삶에서 가장 크게 보이는 문제는 무엇인가?
  3. 나는 그 문제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바라보고 있는가?
  4. 오늘 내가 하나님께 맡겨야 할 염려는 무엇인가?

오늘의 기도

주님,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회개의 기회로 삼게 하소서. 삶의 여러 두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나의 산성이심을 믿게 하시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피하는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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