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요한계시록 3:14-22)
🟦 서론 “오늘, 마음의 문을 여십시오”
어느 날 유명한 화가가 그린 그림 하나가 사람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림 속에는 문 앞에 서서 두드리는 한 남자의 모습이 있었는데, 자세히 보면 그 문에는 손잡이가 없습니다. 이 그림은 요한계시록 3:20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었고, 문 밖에 서 계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림을 본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왜 문에 손잡이가 없습니까?” 화가는 대답했습니다. “그 문은 우리 마음입니다. 안에서만 열 수 있기 때문이죠.”
오늘 우리가 마주한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수님을 문 밖에 세워두고 있었습니다. 부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곤고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먼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문 밖에 서서 조용히, 그러나 끊임없이 두드리고 계십니다.
이 본문은 단순한 책망이 아니라 회개와 회복의 기회에 대한 초청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의 마음의 문 앞에서 기다리십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붙들어야 할 진리입니다.
🟦 본론 1 – “미지근한 신앙에 대한 주님의 책망”
라오디게아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매우 강한 책망을 받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요한계시록 3:15-16, 개역개정).
이 표현은 당시 라오디게아 지역의 지리적 배경을 고려하면 더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라오디게아는 근처의 히에라볼리의 뜨거운 온천수와 골로새의 차가운 시원한 물 사이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체의 물은 멀리서 끌어와야 했기에 미지근하고 불쾌한 물이 되어버리곤 했습니다.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미지근하다’고 하신 것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실제적인 무용함과 타협적인 신앙 상태를 책망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미지근하다’는 표현은 신앙의 중간 지대를 선택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은 상태, 즉 열정도 없고 분별력도 사라진 상태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상태를 ‘내 입에서 토하여 버리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신앙의 본질을 상실한, 형식만 남은 믿음에 대한 매우 단호한 선언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은 그들의 행위를 아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삼상 16:7). 라오디게아 교회는 겉보기엔 부요하고 부족함이 없는 공동체처럼 보였지만, 영적으로는 가련하고, 가난하며, 눈멀고, 벌거벗은 상태였습니다(계 3:17). 오늘날 우리도 자칫하면 신앙생활의 껍데기만 유지한 채 내면은 식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돌아보아야 합니다. 지금 나는 차가운 무관심 속에 있는가, 아니면 뜨거운 헌신 속에 있는가? 아니면 그 사이에서 스스로 괜찮다고 위로하며 미지근함을 방치하고 있는가?
주님의 책망은 단순한 비난이 아닙니다. 그것은 회복을 위한 진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매 예배 속에서, 매 기도 속에서, 주님 앞에 우리의 신앙의 온도를 점검하고, 다시금 뜨거운 마음을 구해야 합니다.
이제는 행동할 때입니다. 미지근한 상태에서 깨어나, 다시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 본론 2 – “주님이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시는 이유”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20, 개역개정).
이 말씀은 너무나 잘 알려진 구절이지만, 그 안에는 예수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문 밖에 서 계신 주님, 그것은 단지 어떤 장소적 표현이 아니라, 그분의 철저한 배제와 외로움을 드러냅니다. 주님은 자신이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교회로부터, 심지어 신자 개인의 마음으로부터 문밖에 내몰려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은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시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단 하나, 교제의 회복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스스로 자족하고 자만하며 주님의 임재를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여전히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책망과 징계의 말씀 이후에도 문을 두드리며 다시 초청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성품을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그분은 강제로 문을 여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인격적으로 다가오시는 분입니다. 강제적인 개입이 아니라, 기다리고, 부드럽게, 끊임없이 두드리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자비하심을 보여줍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시 63:3).
그분은 우리의 회개를 기다리십니다. 우리의 교만을 내려놓고, 자만을 회개하며, 마음을 다시 여는 것을 바라십니다. ‘문을 열면’ 주님은 들어오셔서 함께 먹고 마시는 교제를 나누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고대 근동에서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사귐과 동행의 가장 깊은 형태를 의미합니다. 주님은 단순히 “용서해주겠다”는 선에서 멈추지 않으시고, 다시 가까이, 다시 친밀하게 우리의 삶 가운데 함께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두드림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일’이나 ‘언젠가’가 아니라, 오늘이 그 날입니다. 히브리서 3:15은 말합니다.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 문이 주님의 임재를 향해 닫혀 있는지 점검하고, 조용히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에 민감해져야 합니다.
이제는 행동할 때입니다. 주님이 두드리시는 그 문을 열고, 주님과의 교제를 회복하는 결단이 필요한 때입니다.
🟦 본론 3 – “마음을 열 때 주시는 약속”
예수님께서는 문을 두드리실 뿐 아니라, 문을 여는 자에게 놀라운 약속을 주십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요한계시록 3:21).
이 약속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왕권과 통치의 영광에 참여하는 특권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자만에 빠져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부요함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참된 부요는 이 땅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영원한 나라에서 주어지는 것임을 기억하라고.
여기서 주목해야 할 표현은 “이기는 그에게”입니다.
이긴다는 것은 단순히 고난을 견디는 차원이 아니라,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자, 미지근한 신앙에서 벗어나 뜨거운 믿음을 다시 회복하는 자입니다. 이긴 자에게는 예수님과 함께 보좌에 앉는 은혜가 주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히 상징적인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공동 상속자로서의 자격과 신분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8:17 참조)
또한, 예수님은 친히 이 약속의 실례로 자신의 승리를 언급하십니다.
“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기시고 보좌에 오르셨듯이, 우리도 그분 안에서 이기면 그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는 약속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미래에만 해당되는 보상이 아닙니다.
주님은 오늘 이 순간, 우리가 마음을 열고 그분을 받아들일 때부터, 우리 안에 임하시고, 우리와 교제하며, 우리를 다스리시며, 인도해 주시는 주권자로 오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단지 감정적인 응답이 아닙니다. 그것은 왕이신 주님을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시는 결단입니다. 그분이 우리 삶의 주인이 되실 때,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의 힘과 의로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주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이 약속을 지금 우리에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22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마음 문을 열고,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과 함께 다스리는 삶을 꿈꾸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제는 행동할 때입니다. 오늘, 주님의 약속을 믿고 응답하십시오.
그분은 여전히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영광의 보좌로 초청하십니다.
🟦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음성을 함께 들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부요하다고 여겼지만, 주님의 눈에는 가련하고 가난하며 눈먼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문 밖에서 기다리시며, 두드리시며, 교제를 회복하길 원하셨습니다.
이 음성은 2000년 전 라오디게아 교회만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 각자의 마음을 향해 주님이 두드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멀리한 적이 있을지라도, 신앙이 식어 있었을지라도, 주님은 여전히 문 밖에 서 계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지금이 그 문을 열 시간입니다.
지금이 회개의 때요, 다시 뜨겁게 주님을 붙들어야 할 순간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붙들어야 할 진리입니다.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회복하고, 함께 다스리는 삶에 참여하는 복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마음의 문을 여십시오. 주님은 지금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 기도제목 3가지
- 첫째, 우리의 신앙이 미지근한 상태에 머물지 않고, 날마다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도록 기도합시다.
- “주님, 우리 안에 식어진 마음이 있다면 성령으로 다시 불타게 하소서.”
- 둘째, 주님의 두드리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우리의 마음 문을 활짝 여는 삶을 살도록 기도합시다.
- “작은 음성에도 귀 기울이고, 주님을 날마다 초청하는 마음이 되게 하소서.”
- 셋째,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회복되고, 약속하신 영광의 보좌에 참여하는 믿음의 삶을 살도록 기도합시다.
- “이기는 자로 살게 하시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누리게 하소서.”
🤲 공동 기도문
사랑의 주님,
오늘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문 밖에서 기다리시는 주님의 인내와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스스로 괜찮다고 착각하며 미지근한 신앙에 머물러 있었다면,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우리의 마음 문을 엽니다.
주님,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함께 하시고, 다시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게 하소서.
회개의 자리로, 순종의 자리로, 다시 일어나게 하소서.
우리로 하여금 끝까지 이기는 자 되게 하셔서,
주님과 함께 보좌에 앉는 영광에 참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소그룹 나눔지 – 오늘, 마음의 문을 여십시오
본문: 요한계시록 3:14-22
대상: 장년 소그룹
목적: 말씀을 삶에 적용하고, 공동체 안에서 신앙 회복의 결단을 나눔
🟦 1. 오늘의 말씀 요약
라오디게아 교회는 스스로 부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영적으로 가련하고 가난한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책망하시되 버리지 않으시고, 문 밖에 서서 두드리며 다시 교제를 회복하길 원하셨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회개와 결단으로 문을 열고,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회복합시다.
🟩 2. 나눔 질문
-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책망 중 가장 마음에 와닿은 표현은 무엇이었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 나의 신앙 상태는 지금 ‘차가움’, ‘뜨거움’, ‘미지근함’ 중 어디에 가깝다고 느끼시나요?
- 주님이 지금도 나의 마음을 두드리고 계시다면, 나는 무엇을 내려놓고 문을 열어야 할까요?
- 삶 속에서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회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실천 한 가지를 나눠봅시다.
🟨 3. 실천 적용 (작성 공간)
이번 한 주, 내가 회복하고 싶은 신앙의 영역은?
(예: 말씀 묵상, 기도 시간, 교회 공동체와의 교제 등)
✍ 내 실천 계획:
🙏 4. 함께 기도해요 (기도제목 3가지)
- 식어진 신앙을 회개하고, 다시 뜨거운 믿음으로 회복되도록
- 주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가도록
- 소그룹 안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함께 자라도록
🤲 5. 공동 기도문
주님,
우리의 마음이 식어 있었던 것을 고백합니다.
오늘 주님 앞에 다시 서서, 마음의 문을 엽니다.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새롭게 하소서.
우리 소그룹이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말씀 안에서 자라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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