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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설교(매일성경)_새벽 말씀

서기관과 과부(누가복음 20:41-21:4)

by essay2598 2025.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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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관과 과부(누가복음 20:41-21:4)

✍️ [서론 ]

우리는 살아가며 수없이 많은 판단을 내립니다. 사람을 보고, 말을 듣고, 행동을 살피며 그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훌륭해 보이는 이들이 때론 속으로는 욕심과 교만으로 가득한 경우도 있고, 세상 기준으로는 초라해 보이는 이들이 하나님 앞에서는 진실하고 아름다운 영혼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들은 서기관들을 존경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알고, 기도하며, 회당의 윗자리에 앉는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겉모습 너머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한 과부의 조용한 헌신에 눈을 두셨습니다. 사람의 기준으로는 무시될 만한 작고 가난한 이 여인의 행위에 대해 주님은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눅 21:3)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무엇을 보느냐? 그리고 너는 누구의 시선을 따라 살고 있느냐?”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는 참된 경건이 무엇인지, 그리고 제자의 삶이란 어떤 것인지 깊이 살펴보려 합니다. 사람의 눈은 외형을 보지만, 하나님의 눈은 중심을 보십니다.

 

📖 [본론 1 – 서기관들의 경건: 보이기 위한 신앙의 위험성]

(누가복음 20:45–47)

예수님께서는 본문에서 서기관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십니다.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눅 20:46)
그들은 경건한 척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의 인정을 갈망하고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기도도 길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과 교제하려는 간구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경건하다”는 평판을 얻기 위한 행위였습니다.

이들은 율법을 가르치는 자로서 이스라엘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말씀과 동떨어진 이중적 신앙을 드러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그들이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기도는 길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눅 20:47). 이는 가난하고 약한 자들의 형편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위선적인 태도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겉모습만으로는 결코 그들의 참모습을 알 수 없습니다. 신앙의 외형은 경건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참된 경건은 아닙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중요한 영적 진리는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 16:7)

이 말씀은 목사로서, 교사로서, 오래된 신앙인으로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나는 지금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하나님 앞에서 나의 신앙은 진실한가?
내가 맡은 직분은 누굴 섬기기 위함인가, 나를 드러내기 위함인가?

예수님은 서기관들의 삶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단지 ‘따르지 말라’는 수준이 아니라, 조심하라, 즉 주의 깊이 살피고 거리를 두라는 적극적인 경고입니다. 왜냐하면 겉으로는 경건한 모습이지만, 실상은 하나님 나라를 해치는 거짓된 모양의 경건이기 때문입니다(딤후 3:5 참조).

서기관들의 신앙은 철저히 ‘사람의 눈’을 의식한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사람 앞에 잘 보이려는 신앙, 그것은 결국 우상 숭배이며, 자기 자신을 섬기는 종교적 포장에 불과합니다.

이 시대도 다르지 않습니다. 형식과 전통, 직분과 겉모습에 갇힌 신앙은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우리는 늘 점검해야 합니다. 나의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전심인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예식인가? 나의 섬김은 은밀하고 진실한가, 아니면 칭찬과 보상을 기대하는 계산된 행위인가?

 

📖 [본론 2 – 과부의 헌금: 작지만 온전한 헌신]

(누가복음 21:1–2)

예수님은 서기관들의 위선을 책망하신 후, 곧바로 한 장면을 제자들과 함께 바라보십니다. 성전의 헌금함 앞에 사람들이 헌금을 넣고 있었습니다. 당시 부자들은 큰 돈을 넣으며 드러나기를 원했고, 그 행동은 곧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선은 한 가난한 과부에게 머물렀습니다.

누가복음 21장 2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이 두 렙돈은 지금으로 치면 동전 몇 개에 불과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헌금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가볍게 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많이 넣었다고 평가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눅 21:3)

왜일까요?
헌금의 절대적 액수보다, 그것이 드려지는 마음의 태도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이유를 직접 설명하십니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눅 21:4)

여기서 “모든 생활비”라는 표현은 헬라어로 “βίος(비오스)”, 즉 삶 자체를 의미합니다. 그녀는 단순히 돈을 드린 것이 아니라 자기의 삶을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경건이고, 온전한 헌신이며, 제자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내가 가진 것 중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의 일정한 시간, 정해진 예물만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헌신을 원하십니다.
가난한 과부는 자신이 가진 것을 전부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전적인 신뢰를 표현했습니다.
자신의 생계를 맡기고, 미래를 의탁하며,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헌신은 매우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지만, 예수님의 눈에는 가장 크게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부자들의 드러나는 헌금보다, 이 가난한 여인의 보이지 않는 믿음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중요한 교훈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드렸는가보다, 어떻게 드렸는지를 보십니다.
얼마나 외적으로 나타났는가보다, 얼마나 중심을 다해 드렸는지를 보십니다.

이 과부는 누구에게 칭찬을 받을 것도, 드러날 일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 앞에 경건한 믿음의 제자로 남았습니다.
세상 기준으로는 실패자였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본이 되는 신앙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 [본론 3 – 주님의 평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경건의 본질]

(누가복음 21:3–4)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눅 21:3)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표현이 “참으로(ἀληθῶς)”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와 기준에 근거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선은 사람의 시선과 다릅니다. 사람은 드러나는 행동과 양을 보지만, 예수님은 동기와 중심을 보십니다.

이 과부의 헌신은 ‘많이’ 넣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하십니다.
그 기준은 단순한 수치가 아닌, 헌신의 비율과 믿음의 깊이에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풍족한 중에서’ 넣었지만, 이 과부는 ‘가난한 중에서’—더 나아가 자기의 모든 생활비를 드렸습니다.
즉, 자신의 안정을 버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결단을 드린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경건이 무엇인지 제자들에게 가르치십니다.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신앙의 모양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한 마음, 온전한 신뢰와 헌신입니다.


🪧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은 무엇인가?

  1. 헌신의 크기는 마음의 태도로 결정됩니다.
    액수나 외형이 아니라, ‘마음의 비중’이 하나님 앞에서 평가 기준이 됩니다.
    예수님은 과부의 두 렙돈을 “가장 많이 넣은 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참된 경건은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함입니다.
    과부는 드러내려 하지 않았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섰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정직하고 진실한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3. 하나님은 우리 중심을 보시고, 그것에 따라 칭찬하시고 기억하십니다.
    이 과부의 이름도, 배경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믿음은 복음 안에서 영원히 기억됩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뿐 아니라, 마가복음에서도 이 과부의 이야기를 다시 전하시며 본보기로 삼으십니다(막 12:41–44).

오늘날 우리는 ‘보이는 신앙’에 너무 익숙합니다.
얼마나 봉사했는가, 얼마나 기도했는가, 얼마나 드렸는가—이 모든 것이 중요한 것처럼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보는 것은 네 마음이다. 네가 얼마나 나를 신뢰하는지, 얼마나 네 전부를 내게 맡기고 있는지 그것을 보노라.”

이 과부의 믿음은 조용했고, 계산되지 않았고, 완전히 하나님께 의탁한 믿음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제자의 삶이요, 경건의 본질입니다.

 

🙏 [결론 –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 속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던 서기관들과, 사람들의 시선조차 받지 못했던 가난한 과부.
그러나 예수님의 시선은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사람들은 서기관을 존경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경계하라 하셨고,
사람들은 과부를 주목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그녀를 칭찬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보시는 경건의 기준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처럼 외모나 위치, 액수나 규모를 기준으로 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무게, 신뢰의 깊이, 헌신의 진실함을 보십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적더라도, 기도의 말이 짧더라도,
하나님께 향한 마음이 온전하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제사의 향기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진실하고, 믿음으로 사는 삶이라면
그것이 참된 제자의 길이며, 경건의 능력 있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과부의 작은 헌금을 보셨듯,
지금도 주님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중심을 보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서기관들의 외식이 아닌, 과부의 온전한 헌신을 본받기를 소망합니다.


🔚 삶의 적용과 결단

  • 나는 지금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 내 예배, 내 섬김, 내 헌금은 하나님께 향한 온전한 마음으로 드려지고 있는가?
  • 과부처럼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갈 믿음이 내게 있는가?

🙏 마무리 기도 제안

“주님,
사람의 시선이 아닌 주님의 시선을 따라 살게 하소서.
겉모양이 아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겸손하며 전심으로 드려지는 제자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가난한 과부의 믿음을 본받아
작아 보여도 온전한 헌신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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