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와 거절, 또 다른 초대(누가복음 14:15-24)
서론
우리는 누구나 ‘초대’라는 단어에 마음이 열립니다. 누군가 나를 생각하고, 기억하고, 함께하자고 손 내밀어줄 때,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됩니다. 반대로 초대를 거절당했을 때의 서운함은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큰 잔치를 준비한 주인이 등장합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초대했지만, 놀랍게도 초대받은 자들이 모두 약속된 자리를 거절해버립니다. 하지만 주인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명령합니다. “길과 산울타리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이 초대는 단순한 식사 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구원에 참여하는 영광의 자리요, 은혜의 부르심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끊임없는 초대, 그리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며 살아야 할 우리의 사명을 돌아보려 합니다.
우리는 초대받은 자이면서 동시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렇다면 이 잔치 자리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 하나님의 초대는 오늘 우리에게 어떤 책임을 부여할까요?
🔹 본론1 – 하나님의 초대는 은혜에서 시작되었고, 거절당했지만 멈추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배경은 한 바리새인의 집에서 식사하는 자리였습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관심이 많았지만, 정작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는 자신들의 위치를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말합니다.
“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눅 14:15).
그의 말은 경건하지만, 그 마음에는 은혜에 대한 겸손한 반응보다는 자신이 그 자격이 있다는 자만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 바로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주인은 하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구원의 잔치를 준비하셨고, 언약 백성을 먼저 초대하셨습니다.
이 초대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계획된 은혜의 부르심이었습니다.
구약의 모든 언약, 율법, 선지자의 예언은 이 구속의 잔치를 향한 준비였습니다.
하지만 주인이 초대한 자들은 오히려 이 초대를 가볍게 여기며 “한 목소리로 사양하였다”(눅 14:18) 고 말씀합니다.
하나는 밭을 샀다고(18절), 다른 이는 소를 샀다고(19절), 또 다른 이는 결혼(20절)을 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보게 됩니다.
이유들은 모두 죄악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초대보다 자신의 삶의 스케줄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초대는 하나님의 은혜였지만, 그 은혜 앞에 그들은 무관심했고, 자기를 더 우선시했습니다.
이 장면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날카로운 거울이 됩니다.
우리는 매주일, 매일의 말씀과 기도, 공동체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너무 자주 분주하고, 다른 관심사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미 차려졌고, 초대는 도착했지만,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이 비유에서 더욱 놀라운 복음은 이 다음에 등장합니다.
주인은 초대를 거절당한 후에도 분노 가운데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더 넓은 곳, 더 낮은 자들, 세상에서 소외된 이들을 향해 종을 보내십니다.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눅 14:21)
이것이 하나님의 초대의 본질입니다. 자격이 아니라 은혜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초대는 인간의 반응에 좌우되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적 사랑에 따라 계속 확장됩니다.
🔹 본론2 – 복음의 초대는 가난한 자와 길가의 사람들에게까지 확장된다
거절당한 초대를 앞에 두고 주인은 종에게 명령합니다.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눅 14:21).
이 장면은 당대 유대사회에서 가장 천대받고, 잔치 자리에서 배제되던 사람들을 향한 부르심입니다.
즉, 이 초대는 기존의 종교적 자격, 사회적 기준, 문화적 배경을 모두 무시하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 가르치시는 복음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자격 있는 자들이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부르심에 응답한 자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자격 없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복음은 약한 자, 죄인, 소외된 자들을 위한 좋은 소식임을 선포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공생애 전반에서도 계속해서 드러났던 모습입니다.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하셨고, 혈루증 앓는 여인을 고치셨으며, 맹인과 앉은뱅이들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분의 손길은 경계 바깥으로 확장되어 갔고, 이는 오늘 본문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눅 14:23).
이 표현에서 ‘강권하여’(ἀνάγκασον) 라는 단어는 단순한 설득이 아닌, 거절하지 못할 만큼 간절한 초청을 뜻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걸까요?
하나님은 그분의 집이 채워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 수를 채우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구원하여 그분의 잔치에 참여시키려는 거룩한 뜻에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정체성과 사명을 발견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초대받은 자들만의 모임이 아니라, 길과 산울타리로 나아가는 종의 역할을 감당하는 공동체입니다.
이 세상에는 여전히 하나님의 초대를 듣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마음이 병든 이들, 실패와 낙심 속에 있는 이들, 교회를 떠난 이들…
하나님은 그들을 초대하고 계시며, 우리를 그 초대의 전달자로 부르고 계십니다.
복음은 담장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복음은 울타리를 넘고, 거리로 나아가며, 그곳에서 잔치 자리를 채우기까지 일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 사명은 지금, 바로 오늘,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 본론3 – 우리는 초대받은 자이면서 동시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종이다
본문에서 등장하는 ‘종’은 단지 심부름꾼이 아닙니다.
그는 주인의 마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듣고, 그 뜻을 세상에 전달하는 사자(使者)입니다.
주인은 단호히 말합니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눅14:23)
하나님의 은혜는 단지 우리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흘러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 흐름의 통로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주인의 명령이 반복될수록 종은 점점 더 바깥으로, 더 멀리로, 더 낯선 곳으로 나아갑니다.
이 종의 모습은 오늘 우리 교회의 선교적 정체성을 상징합니다.
교회는 은혜의 잔치를 누리는 동시에, 여전히 그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특별히 장년 성도님들에게는 풍성한 인생 경험과 삶의 깊이가 있습니다.
이 시대의 청년과 다음 세대가 복음을 어려워하고 멀게 느낄 때,
장년 성도님들은 삶으로 증거하고, 관계로 연결하며, 따뜻한 말 한마디로 초대할 수 있는 복음의 대사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미 초대받은 은혜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종으로서, 누군가를 그 은혜의 자리로 인도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마음의 빈자리, 인생의 공허함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발을 들여놓지 못한 이웃, 과거 교회에 상처 입고 떠난 지인, 신앙에 관심은 있지만 누구도 초대하지 않아 아직 오지 못한 친구들…
그들에게 가는 것이 바로 종의 사명이며, 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초대에 응답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오라”는 주님의 말씀에 응답할 차례입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친절하게 권면하며, 인내로 사랑을 베풀고, 기도로 동역하며 초청하는 삶—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채우는 길이며, 우리 인생의 가장 복된 쓰임입니다.
🔹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잔치를 준비하시고 사람들을 초대하고 계십니다.
그 초대는 우리가 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 은혜에 참여한 자들이며, 동시에 이제는 복음의 초청자로서 세상 속으로 나아갈 사명을 가진 자들입니다.
혹시 우리가 너무 바빠서, 너무 익숙해서, 이 초대의 놀라움을 잊고 살아가고 있진 않습니까?
하나님의 초대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으며, 그 은혜는 멈추지 않고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누군가의 빈자리를 채우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다시 귀 기울입시다.
“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오라.”
이 부르심은 목회자만을 향한 것도, 특별한 사람들만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복음의 종으로, 하나님의 손길로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집을 채우는 길이며, 우리의 신앙이 열매 맺는 길입니다.
이 시간 마음을 다해 기도합시다.
“주님, 제가 이미 은혜로 초대받은 자임을 기억하게 하시고, 이제 누군가를 그 자리에 데려오는 주님의 종이 되게 하소서.”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시며, 하나님의 기쁨을 이루는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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