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명의 삶(오늘의 QT)

하나님은 우리의 관계를 거룩하게 부르신다(고린도전서 7:1-16)

by essay2598 2026. 5. 20.
728x90
반응형
SMALL

 

제목: 하나님은 우리의 관계를 거룩하게 부르신다
본문: 고린도전서 7:1-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관계 때문에 가장 많이 웃고, 또 가장 많이 웁니다.
가정 때문에 행복하기도 하고, 가정 때문에 무너지기도 합니다.

특별히 부부관계는 우리의 삶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쉽게 상처를 줍니다.
사랑해서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의무만 남고, 대화는 줄어들고, 서로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결혼 때문에 고민하고, 어떤 사람은 혼자 있는 외로움 때문에 고민합니다.
믿지 않는 가족 때문에 눈물 흘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오늘 고린도 교회도 바로 그런 문제로 혼란 가운데 있었습니다.

고린도는 성적으로 매우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반대로 “영적으로 살려면 결혼도 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교회 안에 극단이 함께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바울에게 질문합니다.
“결혼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부관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믿지 않는 배우자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바울은 단순한 결혼 기술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복음 안에서 관계가 어떻게 회복되어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함께 보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은 서로를 책임지는 사랑으로 부르십니다

1절을 보면 이렇게 시작합니다.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이 말은 당시 어떤 사람들이 “영적으로 살려면 결혼도 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분위기를 반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극단으로 가지 않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하나님은 결혼을 죄악처럼 보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만드신 질서 안에서 관계를 거룩하게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3절부터 매우 놀라운 말을 합니다.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당시 시대는 남성 중심 사회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남편에게만 권리를 주지 않습니다.
아내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4절입니다.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이 말씀은 지배의 언어가 아닙니다.
“서로에게 속한 존재”라는 사랑의 언어입니다.

세상 사랑은 자꾸 “내 만족”을 중심으로 갑니다.
그래서 상대를 소비합니다.
내 기분이 좋으면 사랑하고, 힘들면 밀어냅니다.

그러나 복음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이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진짜 사랑은 “내 권리”보다 “상대의 유익”을 먼저 생각합니다.

성도 여러분,
가정이 무너지는 이유는 거창한 사건 하나 때문만이 아닙니다.
대부분 작은 무관심이 쌓이기 때문입니다.

대화하지 않습니다.
배려하지 않습니다.
함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틈이 생깁니다.

그래서 바울은 5절에서 “서로 분방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관계는 방치하면 좋아지지 않습니다.
돌보아야 합니다.
지켜야 합니다.

특별히 바울은 기도를 말합니다.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놀랍지 않습니까?
부부관계 안에도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부가 함께 기도하면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함께 서기 때문입니다.

혹시 오늘 우리의 가정 안에 사랑보다 자존심이 더 커져 있지는 않습니까?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판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관계 안에서 상대를 살리고 있느냐?”

가장 가까운 사람을 다시 사랑으로 품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맞는 은혜의 길을 주십니다

7절을 보면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바울은 결혼만 절대화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독신만 더 영적이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상태가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입니다.

당시 어떤 사람들은 결혼하면 세속적이고, 독신이어야 더 거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사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결혼의 은사가 있고,
어떤 사람은 독신의 은사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비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삶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비교합니다.

결혼한 사람은 혼자가 부럽고,
혼자인 사람은 가정을 부러워합니다.

남의 삶은 좋아 보이고 내 삶은 부족해 보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실수로 우리를 어떤 자리에 두지 않으십니다.

결혼도 하나님의 인도하심 안에 있고,
독신의 시간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마다 다른 길을 통해 우리를 빚어 가십니다.

개혁주의 신앙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합니다.
우리 인생의 자리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이 주신 자리에서 충성하고 있는가?”

결혼했다고 자동으로 거룩해지는 것도 아니고,
혼자 있다고 더 영적인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분은 지금 외로운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가정의 무게 때문에 지쳐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도 일하십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비교가 아니라 순종입니다.

“하나님, 지금 제 삶 속에서 주님께 충성하게 하소서.”

그 고백이 우리 안에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은 깨어진 관계 속에서도 화평을 이루기 원하십니다

10절부터 바울은 이혼과 믿지 않는 배우자 문제를 말합니다.

당시 예수를 믿고 나서 큰 고민이 생겼습니다.

“배우자가 믿지 않는데 같이 살아야 하나?”
“신앙 때문에 갈라져야 하나?”

그런데 바울은 쉽게 끊어버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12절입니다.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13절도 같습니다.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관계 속에서도 일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14절은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이 말은 자동 구원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믿는 성도를 통해 그 가정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간다는 뜻입니다.

믿는 한 사람 때문에 가정 안에 기도가 들어가고,
말씀이 들어가고,
복음의 향기가 들어갑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종종 관계를 너무 쉽게 포기합니다.

상처받으면 끊고,
힘들면 돌아섭니다.

물론 모든 관계가 다 회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15절에서는 믿지 않는 사람이 떠나겠다면 억지로 붙들지 말라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화평의 사람으로 부르셨습니다.

왜냐하면 복음 자체가 화평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예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십자가로 우리를 붙드셨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관계를 쉽게 끊는 사람이 아니라
복음으로 견디고, 사랑하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분은 믿지 않는 가족 때문에 오래 기도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배우자의 차가운 태도 때문에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16절을 보십시오.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여러분의 기도를 통해
여러분의 인내를 통해
여러분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화평의 길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단순한 결혼 지침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관계를 통해 거룩을 이루기 원하십니다.

  • 서로 책임지는 사랑으로 살아가고
  • 하나님이 주신 자리에서 충성하며
  • 깨어진 관계 속에서도 화평을 이루는 삶

이것이 복음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 주님,
포기하지 않으신 주님,
십자가로 관계를 회복하신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도 사랑하라.
너도 화평하게 하라.
너도 끝까지 품으라.”

이 은혜가 우리의 가정과 관계 가운데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제목

  1. 하나님, 내 관계가 주님 앞에서 거룩하게 세워지게 하소서.
  2. 우리 가정 안에 사랑과 화평을 회복시켜 주소서.
  3. 비교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자리에서 충성하게 하소서.
  4. 믿지 않는 가족과 배우자를 위해 끝까지 기도하게 하소서.

 

오늘의 말씀 묵상

“하나님은 우리의 관계 가운데 일하십니다”
본문: 고린도전서 7:1-16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가족과 부부, 부모와 자녀,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사이에서 기쁨도 경험하고 상처도 경험합니다.

오늘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질문에 답하면서 단순히 “결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만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복음 안에서 관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바울은 먼저 부부가 서로에게 책임을 다하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감정만이 아니라 서로를 돌보는 헌신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관계를 자기 만족의 수단으로 여기지만, 복음은 상대를 살리는 사랑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또한 바울은 결혼과 독신 모두 하나님의 은사라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삶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자리에서 충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현재 자리 속에서도 일하십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배우자와의 관계 속에서도 화평을 이루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관계 가운데 역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기도와 믿음, 인내와 사랑을 통해 하나님은 가정을 만지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쉽게 포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쉽게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는 끝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증거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도 사랑으로 관계를 세워 가라.
너도 화평의 사람이 되라.”

혹시 지금 마음 아픈 관계가 있습니까?
기도해도 변하지 않는 가족이 있습니까?
지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오늘도 그 관계 속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포기가 아니라 믿음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묵상 질문

  1. 나는 관계 속에서 상대를 살리는 사람입니까, 힘들게 하는 사람입니까?
  2. 하나님이 내게 주신 현재의 삶의 자리를 감사로 받고 있습니까?
  3. 내가 포기하려 했던 관계 가운데 다시 기도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제 관계 가운데 하나님이 다스려 주소서.
자기중심적인 사랑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쉽게 포기하지 않고 화평을 이루는 사람 되게 하소서.
특별히 제 가정 가운데 복음의 은혜가 흐르게 하옵소서. 아멘.”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