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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오늘의 QT)

교회는 죄를 가볍게 넘기지 않는다(고린도전서 5:1-13)

by essay2598 2026.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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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회는 죄를 가볍게 넘기지 않는다

본문: 고린도전서 5:1-13


서론

사람들은 교회를 생각할 때 사랑을 기대합니다.
따뜻함, 위로, 품어줌을 기대합니다.
실제로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여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읽으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바울은 매우 강한 말을 합니다.

“그 사람을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왜 이렇게까지 말할까요?

우리는 보통 죄를 말하면 부담스러워합니다.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사랑 없는 행동처럼 느낍니다.
그래서 점점 죄를 말하지 않는 문화가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성경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죄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너뜨리고 사람의 영혼을 병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고린도교회는 단순히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교회 전체가 죄에 대해 무감각해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죄를 슬퍼하기보다 오히려 교만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교회가 어떤 공동체여야 하는지를 보여주십니다.

교회는 죄인을 정죄하는 곳은 아닙니다.
그러나 죄를 방치하는 곳도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교회에 원하시는 거룩과 사랑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은 죄를 덮는 교만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1절을 보면 고린도교회 안에 매우 심각한 죄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이것은 단순한 부도덕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바울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2절입니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교회가 죄를 슬퍼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자유롭고, 열린 공동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고린도교회는 이렇게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의 공동체야.”
“사람을 판단하면 안 돼.”
“다 받아줘야지.”

하지만 바울은 말합니다.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였느냐”

교회는 죄를 보고 먼저 마음 아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죄는 반드시 사람을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말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죄 가운데 무너지는 것을 보고도 침묵할 수 없습니다.

부모가 자녀가 위험한 길로 가는데도
“판단하면 안 되니까 그냥 두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붙듭니다.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라.”

그리고 5절에서는
“사탄에게 내주었다”고 표현합니다.

이 말은 저주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 밖으로 내보낸다는 의미입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목적은 회복입니다.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죄 가운데 계속 머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우리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를 너무 쉽게 합리화합니다.

“이 정도는 괜찮아.”
“다들 그렇게 살아.”
“요즘 시대에는 별것 아니야.”

그러나 죄는 절대 가볍지 않습니다.

죄는 우리의 영혼을 둔하게 만들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합니다.

특별히 무서운 것은 죄 자체보다 죄에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양심이 아픕니다.
하지만 반복하면 무뎌집니다.
나중에는 죄를 죄로 느끼지도 못합니다.

그 상태가 가장 위험합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은혜는 죄를 허락하는 면허가 아닙니다.
은혜는 죄에서 돌이키게 하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숨기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애통해야 합니다.

“주님, 제 마음이 죄에 무감각해지지 않게 하소서.”


2. 하나님은 교회의 거룩을 지키기를 원하신다

6절에서 바울은 갑자기 누룩 이야기를 합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룩은 아주 적어 보여도 전체를 변화시킵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 죄를 방치하면
결국 공동체 전체의 기준이 무너집니다.

처음에는 모두가 놀랍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집니다.
나중에는 아무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국 죄를 죄라고 부르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이 누룩의 무서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왜냐하면 교회는 이미 새로운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7절입니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이 말이 너무 중요합니다.

교회의 거룩은 단순한 도덕이 아닙니다.
율법주의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 밤에 어린양의 피로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누룩 없는 떡을 먹으며 애굽을 떠났습니다.

그 의미는 옛 삶을 버리고 새 삶으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는
더 이상 옛 죄의 삶에 머물 수 없습니다.

교회는 세상보다 완벽해서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기 때문에 거룩한 것입니다.

넘어질 수 있습니다.
실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죄를 붙들고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8절은 말합니다.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신앙은 겉모습이 아닙니다.
겉으로는 경건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죄를 붙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진실함을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내 안에 아직 버리지 못한 묵은 누룩은 무엇입니까?

숨겨진 탐욕입니까?
미움입니까?
음란함입니까?
거짓입니까?
교만입니까?

우리는 종종 작은 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작은 누룩이 온 덩어리를 바꿉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 제 안의 묵은 누룩을 버리게 하소서.”

거룩은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리는 삶입니다.


3. 하나님은 교회 안의 책임 있는 사랑을 원하신다

9절부터 바울은 중요한 균형을 설명합니다.

성도는 세상과 완전히 단절해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우리는 죄인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세상 속에서 일하고, 관계 맺고, 복음을 전합니다.

예수님도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문제 삼는 것은
“형제라 일컫는 자”입니다.

즉,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회개 없이 죄를 지속하는 경우입니다.

그때 교회는 침묵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단순한 친목 모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여기서 판단은 정죄의 즐거움이 아닙니다.
우월감을 느끼는 것도 아닙니다.

회복을 위한 책임입니다.

참된 사랑은 침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종 사랑을 오해합니다.

“상처 줄까 봐 말 못하겠어요.”
“불편해질까 봐 그냥 넘어가요.”

하지만 사랑은 때로 아픈 말을 합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병을 말해주는 것은 미워해서가 아닙니다.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서로의 영혼을 책임지는 공동체입니다.

때로는 붙들어야 합니다.
때로는 권면해야 합니다.
때로는 눈물로 회개를 촉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사랑입니다.

오늘 교회가 세상과 달라야 하는 이유는
죄인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죄를 숨기지 않고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함께 회개합시다.”
“함께 하나님께 돌아갑시다.”
“함께 거룩을 붙듭시다.”

그 공동체가 살아 있는 교회입니다.


결론

오늘 본문은 매우 무거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바울이 강하게 말한 이유는 사람을 버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살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죄를 방치하면 결국 영혼이 무너집니다.
그러나 회개는 사람을 살립니다.

교회는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두 가지를 보여줍니다.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줍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죄를 숨기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무감각해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회개의 자리로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찾지 않으십니다.
회개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오늘 다시 십자가 앞으로 나아갑시다.

그리고 기도합시다.

“주님, 제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죄에 무감각해지지 않게 하시고,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주님의 은혜가 우리를 다시 세우실 것입니다.


기도제목

  1. 죄에 무감각한 마음이 아니라 회개하는 마음을 주소서.
  2. 우리 교회가 거룩과 사랑을 함께 붙드는 공동체 되게 하소서.
  3. 숨겨진 죄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새롭게 살아가게 하소서.
  4. 서로의 영혼을 책임지는 참된 사랑을 배우게 하소서.

 

오늘의 말씀 묵상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본문: 고린도전서 5:7-8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우리는 종종 죄를 작게 생각합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다들 그렇게 사는데.”
하지만 바울은 죄를 누룩에 비유합니다.

누룩은 아주 작아 보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반죽 전체에 퍼집니다.
죄도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이 불편합니다.
양심이 찔립니다.
그런데 반복하면 익숙해집니다.
나중에는 죄를 죄로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오늘 바울은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착하게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피로 우리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옛 삶에 계속 머물 수 없습니다.

신앙은 완벽한 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숨겨진 죄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회개하며 다시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조용히 물어보십시오.

“주님, 제 안에 아직 버리지 못한 묵은 누룩은 무엇입니까?”

미움일 수 있습니다.
탐욕일 수 있습니다.
음란함일 수 있습니다.
교만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정죄하기 위해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깨끗하게 하시기 위해 부르십니다.

오늘도 십자가의 은혜 앞에서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죄에 무감각해진 마음을 깨워 주옵소서.
제 안의 묵은 누룩을 버리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날마다 새로워지게 하옵소서.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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