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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오늘의 QT)

복음은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바꾸는가(고린도전서 6:1-11)

by essay2598 2026.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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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은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바꾸는가

본문: 고린도전서 6:1-11


서론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갈등이 있습니다.
가정에도 갈등이 있고, 직장에도 갈등이 있고, 교회에도 갈등이 있습니다.

문제는 갈등 자체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 갈등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느냐입니다.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하면 본능적으로 반응합니다.
“내가 왜 손해 봐야 하지?”
“내가 왜 참아야 하지?”
“끝까지 가서라도 내 억울함을 밝혀야 하지 않겠는가?”

세상은 그렇게 말합니다.
이기라고 말합니다.
절대 손해 보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바울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서는 성도들이 서로 고발하고 있었습니다.
형제가 형제를 세상 법정에 세우고 있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서로를 공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단순히 “사이좋게 지내라” 정도로 말하지 않습니다.
더 깊은 문제를 지적합니다.

“너희가 누구인지 잊어버렸느냐?”

복음을 아는 사람이라면
관계 맺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복음이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복음은 이기는 사람보다 공동체를 지키게 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서로 법정으로 갔습니다.
세상 사람들 앞에서 형제를 고발했습니다.

당시 고린도는 헬라 문화가 강한 도시였습니다.
사람들은 공개적인 논쟁과 재판을 즐겼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상대를 이길 수 있는지를 자랑했습니다.

그 문화가 교회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누가 옳은가”
“누가 이기는가”
그것이 중요해졌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말합니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성도는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큰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지금 작은 문제 하나도 복음 안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법정에 가지 말라”는 규칙이 아닙니다.
핵심은 형제를 형제로 대하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교회는 경쟁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가족입니다.

가족 안에서는
누가 이겼느냐보다
관계가 살아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쉽게 관계보다 자존심을 붙듭니다.

한 마디 들으면 바로 상처받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 반드시 되갚고 싶어집니다.

“내가 틀린 게 아닌데 왜 참아야 합니까?”
우리 마음 안에 이런 생각이 올라옵니다.

그런데 여러분,
복음은 우리를 “옳은 사람”으로만 부르지 않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한 몸 된 사람”으로 부릅니다.

그래서 성도는
말로 상대를 무너뜨리는 사람이 아니라
관계를 살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때로는 내 자존심보다
공동체를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예수님의 피로 세워진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관계 속에서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내 체면입니까?
내 감정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세우신 공동체입니까?

복음은
우리를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살리는 사람”으로 부르십니다.


2. 복음은 내 권리보다 십자가를 선택하게 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이 말씀은 세상 기준으로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세상은 절대 손해 보지 말라고 합니다.
억울하면 끝까지 싸우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차라리 손해를 보라”고 말합니다.

왜입니까?

복음의 중심에 십자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억울한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죄 없으신 분이 죄인 취급을 받으셨습니다.
조롱당하시고 침 뱉음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끝까지 자신을 변호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내 권리”를 주장하는 길이 아니라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길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형제를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무엇을 지키려 하느냐?”

자존심입니까?
체면입니까?
내 권리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마음입니까?

물론 모든 상황에서 무조건 침묵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불의를 방치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성도는
미움과 복수로 반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용서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이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품어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받은 사람이
어떻게 끝까지 미워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진짜 강한 사람은 끝까지 싸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진짜 강한 사람은 십자가를 붙드는 사람입니다.

억울함 속에서도
예수님의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
진짜 믿음의 사람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권리보다 십자가를 붙들어라.”


3. 복음은 과거의 사람이 아니라 새 사람으로 살게 합니다

9절부터 바울은 여러 죄의 모습을 나열합니다.

음행하는 자, 우상 숭배하는 자, 탐욕하는 자, 속이는 자…

그리고 1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여기 아주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있더니.”

과거형입니다.

이 말은
“너희가 완벽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너희의 정체성이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합니다.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복음은 사람을 새롭게 만듭니다.

예전에는 자기 욕심대로 살았습니다.
예전에는 자기 분노대로 살았습니다.
예전에는 자기 중심적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단순히 다툼이 아니었습니다.
옛사람의 방식으로 계속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교회만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관계의 방식이 바뀌는 것입니다.
말하는 방식이 바뀌는 것입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는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넘어집니다.
화도 나고, 미움도 올라오고, 억울함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이미 씻음 받은 사람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정죄 가운데 두지 않으셨습니다.
새 삶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과거의 방식으로 살 수 없습니다.

용서받은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거룩하게 된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복음을 아는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결론

오늘 본문은 단순히
“교회 안에서 싸우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복음이 사람을 바꾸면
관계의 방식도 달라진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아는 사람은
공동체를 지키려 합니다.

복음을 아는 사람은
권리보다 십자가를 붙듭니다.

복음을 아는 사람은
옛사람이 아니라 새사람으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는 원래 불의한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피로 씻음 받았습니다.

우리를 살리신 그 은혜가
이제 우리의 관계 속에서도 드러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정에서, 교회에서, 삶의 자리에서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복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쉽게 상처받고 쉽게 다투며
내 권리와 내 자존심만 붙들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주님,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은혜를 기억하게 하옵소서.

관계 속에서 복음을 드러내게 하시고
미움보다 사랑을 선택하게 하시고
정죄보다 회복을 이루게 하옵소서.

우리를 씻으시고 거룩하게 하신 주님의 은혜 안에서
새 사람답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도제목

  1. 복음으로 관계를 바라보게 하소서
    내 감정과 자존심보다 하나님 나라와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게 하시고, 사람을 정죄하기보다 품게 하소서.
  2. 갈등 속에서도 십자가를 붙들게 하소서
    억울함과 상처 속에서도 예수님의 마음을 잃지 않게 하시고, 미움 대신 사랑으로 반응하게 하소서.
  3. 복음으로 말과 태도가 변화되게 하소서
    함부로 말하지 않게 하시고, 관계를 무너뜨리는 사람이 아니라 세우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4. 교회가 세상과 다른 공동체 되게 하소서
    경쟁과 정죄가 아니라 용서와 회복이 있는 공동체 되게 하시고, 서로를 형제로 사랑하게 하소서.
  5. 씻음 받고 거룩하게 된 자답게 살게 하소서
    과거의 죄성과 옛 습관에 머물지 않게 하시고, 성령 안에서 날마다 새롭게 살아가게 하소서.
  6. 예수님의 은혜를 잊지 않게 하소서
    내가 얼마나 큰 은혜로 용서받은 사람인지를 기억하며, 받은 은혜를 흘려보내는 삶 살게 하소서.

 

 

오늘의 말씀 묵상

“복음은 관계를 바꿉니다”

본문: 고린도전서 6:1-11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관계 속에 있습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상처도 깊고, 갈등도 쉽게 생깁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마음이 무너지고,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집니다.

고린도 교회도 그랬습니다.
성도들이 서로를 세상 법정에 세우며 다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단순히 “싸우지 말라” 하지 않습니다.
그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너희가 누구인지 잊어버렸느냐?”

복음을 아는 사람은
관계 맺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내 권리를 지키라고 말합니다.
끝까지 이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복음은 공동체를 살리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가장 억울한 길을 걸으셨지만
끝까지 사랑으로 감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내가 얼마나 옳은가”보다
“내가 얼마나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가장 은혜가 되는 구절은 11절입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우리는 원래 죄인이었습니다.
분노하고, 미워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은혜로 씻음 받고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과거의 방식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관계 속에서 화가 날 때마다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이미 용서받은 사람이다.”

복음은 예배당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 안에서
우리의 말과 태도와 관계 속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사람을 무너뜨리는 말보다
살리는 말을 선택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내 감정과 자존심만 붙들지 않게 하시고
복음의 마음으로 사람을 바라보게 하소서.

억울함 속에서도 십자가를 기억하게 하시고
내가 먼저 용서받은 사람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오늘도 관계 속에서
예수님의 향기를 드러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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