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무엇으로 세우고 있습니까?
본문: 고린도전서 3:1-1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세우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성공을 세웁니다.
어떤 사람은 관계를 세웁니다.
어떤 사람은 자녀의 미래를 세우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세우려 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매일 우리의 믿음을 세우고 있습니다.
예배로 세우고, 말씀으로 세우고, 선택으로 세우고, 삶의 태도로 세워갑니다.
그런데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 위에 내 인생을 세우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무엇으로 내 믿음을 세우고 있는가?”
오늘 본문 속 고린도교회는 겉으로는 대단한 교회였습니다.
은사도 많았고, 열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들을 향해 충격적인 말을 합니다.
“너희는 아직도 어린아이와 같다.”
왜 그렇게 말했을까요?
그들의 문제는 단순히 의견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지금 무엇으로 세우고 있느냐?”
1. 성장은 오래 믿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고린도교회는 이미 오래 복음을 들은 교회였습니다.
많은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그들을 “어린아이”라고 부릅니다.
왜입니까?
2절과 3절을 보면 이유가 나옵니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그들은 서로 비교했습니다.
서로 편을 갈랐습니다.
“나는 바울에게 속했다.”
“나는 아볼로에게 속했다.”
결국 사람 중심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의 성숙은 단순히 교회 다닌 연수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오래 믿어도 여전히 쉽게 상처받고,
비교하고,
시기하고,
사람 때문에 흔들릴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오래한 것 같지만
속은 아직 어린아이일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자기중심적입니다.
자기 감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삐지고 흔들립니다.
영적으로 미성숙한 사람도 그렇습니다.
말씀보다 감정이 앞서고,
하나님보다 사람이 크게 보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금 고린도교회의 상태를 아주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아직 육신에 속한 자다.”
여기서 육신적이라는 말은 단순히 세상적이라는 뜻만이 아닙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 중심이라는 뜻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교회 안의 대부분의 갈등은 결국 “누가 중심인가”의 문제입니다.
내가 인정받고 싶은 마음,
내 의견이 중요하다는 마음,
내 감정이 우선이라는 마음.
그것이 분열을 만듭니다.
하지만 성숙한 사람은 다릅니다.
성숙한 사람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봅니다.
감정보다 말씀을 붙듭니다.
내 자리를 주장하기보다 공동체를 세웁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혹시 아직도 사람 때문에 신앙이 흔들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누가 알아주지 않으면 시험 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비교와 시기 속에서 마음이 메말라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정죄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성장시키시기 위해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어린아이 상태에 머물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젖을 넘어서야 합니다.
이제는 말씀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사람 따라 움직이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 따라 움직이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안의 미성숙함을 내려놓기를 바랍니다.
“주님, 나를 자라게 하옵소서.”
2. 하나님은 각 사람을 통해 교회를 세우십니다
고린도교회는 사람을 지나치게 높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5절에서 말합니다.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이 말은 굉장히 놀라운 표현입니다.
바울은 사도였습니다.
위대한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그런데 스스로를 높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합니다.
“우리는 그저 사역자일 뿐이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이 말씀이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심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생명을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농부가 씨를 심을 수는 있습니다.
물을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생명이 자라는 것은 인간의 능력이 아닙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자가 말씀을 전할 수 있습니다.
교사가 가르칠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양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믿음을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사람에게 집중합니다.
누가 잘하느냐,
누가 더 영향력이 있느냐,
누가 더 인정받느냐를 봅니다.
하지만 바울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이 말은 사역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든 사역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도구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입니다.
그래서 건강한 공동체는 사람을 우상화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여러분,
우리가 맡은 자리는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심는 일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물 주는 일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다리는 일을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비교가 아닙니다.
충성입니다.
하나님은 결과보다 순종을 보십니다.
우리는 종종 결과가 없으면 낙심합니다.
“내가 열심히 했는데 왜 변화가 없지?”
“왜 열매가 없지?”
하지만 여러분,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내가 할 일은 충성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어머니의 눈물도,
묵묵히 섬기는 손길도,
아무도 몰라주는 헌신도
하나님은 다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자라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이것이 아니라
“나는 하나님께 속했다.”
이 고백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누군가의 무대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밭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동역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비교하지 말고,
질투하지 말고,
맡겨진 자리에서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다양한 사람을 통해 당신의 교회를 세우고 계십니다.
3. 마지막에는 무엇으로 세웠는지가 드러납니다
바울은 이제 교회를 건축의 비유로 설명합니다.
10절입니다.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터입니다.
11절에서 바울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교회의 기초는 사람이 아닙니다.
철학도 아닙니다.
감정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이 흔들리면 다 무너집니다.
그리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 터 위에 무엇으로 세우는지가 중요하다고 말입니다.
금, 은, 보석이 있습니다.
반대로 나무, 풀, 짚도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차이는 불이 오면 드러납니다.
불은 모든 것을 시험합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견고한지 허약한지 드러냅니다.
여기서 바울은 마지막 심판의 날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운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드러날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화려하게 세운 것 같지만 남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조용히 살아간 것 같지만 영원히 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재료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인정으로 세운 것은 무너집니다.
욕심으로 세운 것은 불탑니다.
자기 영광으로 세운 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말씀 위에 세운 것은 남습니다.
순종으로 세운 것은 남습니다.
눈물의 기도로 세운 것은 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무엇으로 인생을 세우고 있습니까?
세상의 기준입니까?
성공입니까?
자존심입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입니까?
오늘은 괜찮아 보여도
불이 오면 드러납니다.
고난의 불,
시험의 불,
마지막 심판의 불 앞에서
무엇이 남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오늘 다시 기초를 점검해야 합니다.
내 신앙의 중심은 무엇인가.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남기며 살고 있는가.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크기를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무엇으로 세웠는지를 보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삶을 찾고 계십니다.
결론
고린도교회는 많은 것이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람 중심이 되었고,
비교와 분쟁 속에 있었고,
무엇으로 세워야 하는지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시 본질로 돌아가게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남는 것은
그리스도 위에 세운 것뿐입니다.
사람의 칭찬은 지나갑니다.
세상의 성공도 지나갑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사라집니다.
그러나
예수 위에 세운 믿음은 남습니다.
순종은 남습니다.
사랑은 남습니다.
복음을 위해 살았던 삶은 영원히 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다시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으로 세우고 있는가?”
부디 우리의 인생이
불 가운데서도 남는 믿음 되기를 바랍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견고하게 세워지는 삶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 영적으로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서 자라가게 하옵소서.
- 사람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믿음을 주옵소서.
- 맡겨진 자리에서 비교하지 않고 충성하게 하옵소서.
-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영원히 남는 삶을 세우게 하옵소서.
오늘의 말씀 묵상
“무엇으로 세우고 있습니까?”
본문: 고린도전서 3:1-15
고린도교회는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은사는 많았지만 성숙하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향해 “그리스도 안의 어린아이”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게 말씀했을까요?
그들 안에 시기와 분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하며 사람 중심으로 나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 자연히 성숙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성숙은 시간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될 때 이루어집니다.
사람을 바라보면 비교하게 됩니다.
비교는 시기를 낳고, 시기는 분열을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감사하게 되고,
맡겨진 자리에 충성하게 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우리는 심을 수 있습니다.
물을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신앙은 내 힘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우리의 삶을 건축에 비유합니다.
모든 사람은 무언가를 세우며 살아갑니다.
문제는 “얼마나 크게 세우는가”가 아니라
“무엇 위에 세우는가”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흔들리지 않는 기초입니다.
세상의 인정 위에 세운 삶은 흔들립니다.
감정 위에 세운 믿음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말씀 위에 세운 삶은 남습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십시오.
“나는 지금 무엇으로 내 삶을 세우고 있는가?”
하나님은 오늘도
그리스도 위에 견고하게 세워지는 삶을 기뻐하십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사람 중심의 신앙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의 믿음을 갖게 하옵소서.
비교와 시기를 내려놓고 맡겨진 자리에서 충성하게 하시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흔들리지 않는 삶을 세우게 하옵소서.
오늘도 말씀으로 나를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의 묵상 질문
- 나는 하나님보다 사람의 평가에 더 흔들리고 있지는 않은가?
- 지금 내 삶은 무엇 위에 세워지고 있는가?
- 오늘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자리에서 어떤 충성을 요구하고 계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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