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세상이 미련하다 말할 때, 하나님은 구원하신다
본문: 고린도전서 1:18-25
서론
사람들은 늘 강한 것을 좋아합니다.
눈에 보이는 힘, 증명되는 성공, 이해되는 논리를 신뢰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늘 묻습니다.
“그게 정말 가능해?”
“그게 진짜 힘이야?”
“그걸 믿고 살아갈 수 있어?”
우리는 어려움을 만나면 더 강한 방법을 찾으려 합니다.
돈이 있어야 안전할 것 같고,
지식이 많아야 흔들리지 않을 것 같고,
능력이 있어야 인정받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군대를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철학자를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권력자를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세우셨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가장 초라하고 실패처럼 보이는 자리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 충격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헬라인들은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바울은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십자가는 미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다.”
오늘 말씀은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1. 하나님은 인간의 지혜를 무너뜨리신다
18절 말씀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같은 십자가를 보는데 반응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말도 안 된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십자가 앞에서 눈물을 흘립니다.
어떤 사람은 조롱하고,
어떤 사람은 거기서 생명을 얻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문제는 십자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기 기준으로 하나님을 판단하려고 합니다.
내가 이해되면 믿고,
내 논리에 맞으면 받아들이고,
내 경험 안에 들어와야 인정합니다.
당시 고린도는 철학과 수사학이 발달한 도시였습니다.
사람들은 논쟁을 좋아했고, 지혜를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세상이 자랑하는 지혜가 결국 하나님 앞에서는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똑똑해도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죽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
마음의 공허를 채울 수 없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하게 살아도 속은 무너져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많이 배웠는데 평안이 없습니다.
성공했는데 두렵습니다.
가졌는데 만족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의 지혜는 인간을 구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자기 힘을 자랑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교만을 깨뜨리십니다.
우리가 붙들던 것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내 계산이 틀어질 때가 있습니다.
내 경험으로 설명되지 않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 사람은 깨닫습니다.
“내 힘으로는 안 되는구나.”
그리고 그 순간 십자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은 내가 하나님을 이해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의 자랑을 무너뜨리십니다.
우리가 붙들던 것을 내려놓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 붙들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혹시 지금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습니까?
내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까?
그 자리가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게 되는 자리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지혜가 무너질 때 하나님의 은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2. 하나님은 미련해 보이는 복음으로 구원하신다
21절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참 놀라운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보기에는 너무 단순하고 약해 보이는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그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게 하시는 방식입니다.
사람들은 더 화려한 것을 원했습니다.
22절입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유대인은 기적을 원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능력을 요구했습니다.
헬라인은 철학을 원했습니다.
이해되는 논리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십자가를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 초라했습니다.
십자가는 당시 가장 수치스러운 형벌이었습니다.
로마 시민에게는 사용하지도 않을 만큼 치욕적인 죽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
세상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왜 죽어?”
“능력이 있다면 왜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아?”
“그게 무슨 구원이야?”
그러나 바로 그 십자가에서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십자가는 실패가 아니라 승리였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복음을 단순하게 여깁니다.
“예수 믿으면 다 해결되냐?”
“그런다고 사람이 변하냐?”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복음은 실제로 사람을 바꿉니다.
미워하던 사람이 용서합니다.
절망하던 사람이 다시 일어섭니다.
죄에 묶였던 사람이 자유를 얻습니다.
왜입니까?
복음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24절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은 세상이 보기에는 미련해 보이는 십자가로 사람을 살리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사람이 자기 공로를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구원은 인간의 업적이 아니라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자꾸 다른 것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환경이 좋아야 평안할 것 같고,
문제가 해결되어야 행복할 것 같고,
내 능력이 있어야 안전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를 붙들어라.”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부끄러워하면 안 됩니다.
세상이 비웃어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해도,
십자가는 여전히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복음으로 사람을 살리십니다.
3. 하나님의 약함이 인간의 강함보다 강하다
25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십자가는 겉으로 보기에는 약함의 상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체포되셨습니다.
조롱당하셨습니다.
침 뱉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끝났다.”
“실패했다.”
제자들도 두려워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 자리에서 가장 놀라운 일을 이루셨습니다.
죄를 이기셨습니다.
사망을 깨뜨리셨습니다.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인간은 강함으로 세상을 바꾸려 하지만,
하나님은 약함 속에서 일하십니다.
우리는 높아지려 하지만 하나님은 낮아짐 속에서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을 무너뜨립니다.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구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구나.”
그 깨달음으로 인도합니다.
우리는 약함을 싫어합니다.
실패를 감추고 싶어 합니다.
눈물 보이기 싫어합니다.
무너진 모습을 숨기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한 자를 사용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때 하나님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나중에 고백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강함이라.”
여러분,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만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넘어진 사람도 사용하십니다.
눈물 흘리는 사람도 붙드십니다.
무너진 사람도 회복시키십니다.
왜냐하면 십자가 자체가 하나님의 역설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통해 생명이 왔고,
약함을 통해 능력이 나타났고,
패배처럼 보이는 자리에서 승리가 시작되었습니다.
혹시 지금 약함 가운데 있습니까?
지친 마음이 있습니까?
무너진 현실이 있습니까?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사람이 끝이라고 말한 자리에서 하나님은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절망 가운데서도 십자가를 붙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의 약함 가운데 가장 선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실패의 상징이 아니라 하나님의 승리의 증거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합니다.
세상은 십자가를 미련하다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십자가로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인간의 지혜는 사람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우리를 살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자랑을 붙드는 사람이 아니라 십자가를 붙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 능력이 아니라 은혜를 의지하십시오.
내 계산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십자가는 약해 보이지만 가장 강한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미련해 보이지만 가장 깊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십자가 앞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너는 무엇을 의지하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이 흔들려도 십자가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기도제목
- 세상의 지혜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신뢰하게 하소서.
- 십자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소서.
- 약함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소서.
- 우리 교회가 사람의 방법보다 복음을 붙드는 공동체 되게 하소서.
오늘의 말씀 묵상
“십자가는 정말 능력입니까?”
본문: 고린도전서 1:18-25
우리는 강한 것을 좋아합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를 원하고, 이해되는 논리를 신뢰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십자가가 너무 약해 보입니다.
“기도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말씀 붙든다고 현실이 변할까?”
“예수 믿는다고 정말 살아날 수 있을까?”
세상은 여전히 십자가를 미련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나님은 왜 십자가를 사용하셨을까요?
왜 더 화려한 방식이 아니었을까요?
왜 더 강한 방법이 아니었을까요?
그 이유는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자랑을 무너뜨립니다.
“내가 잘해서 사는 것이 아니구나.”
“내 힘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구나.”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구나.”
우리는 자꾸 내 능력을 붙들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만이 사람을 살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실패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승리였습니다.
죽음처럼 보였지만 생명이었습니다.
약함처럼 보였지만 가장 강한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무엇을 의지하느냐?”
환경입니까?
내 경험입니까?
내 계산입니까?
아니면 십자가입니까?
십자가를 붙드는 사람은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세상의 기준보다 십자가를 더 붙드는 믿음으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지혜와 힘을 더 의지했던 제 모습을 돌아봅니다.
십자가가 때로는 약해 보이고 느리게 보였지만,
그 십자가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음을 믿게 하소서.
내 힘이 아니라 은혜로 살게 하시고,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드는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의 적용 질문
- 나는 지금 무엇을 가장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 내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이 충돌할 때 나는 무엇을 선택하는가?
- 오늘 내가 붙들어야 할 “십자가의 능력”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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