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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오늘의 QT)

교회는 누구의 이름으로 서 있습니까?(고린도전서 1:1-17)

by essay2598 2026.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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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회는 누구의 이름으로 서 있습니까?

본문: 고린도전서 1:1-17


서론

사람은 어디를 가든 편을 만듭니다.
학교에서도 그렇고, 직장에서도 그렇고, 심지어 가족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나는 저 사람하고 맞아.”
“나는 저 스타일이 좋아.”
“나는 저쪽은 별로야.”

그런데 문제는 그런 모습이 교회 안에도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 되어야 할 공동체인데, 어느 순간 사람 중심으로 나뉘기 시작합니다.
누구의 설교를 좋아하느냐, 어떤 스타일을 선호하느냐, 어떤 사람과 가까우냐에 따라 갈라집니다.

고린도교회가 바로 그랬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은혜도 많았고, 은사도 풍성했고, 열정도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은혜는 많았는데 사랑은 부족했습니다.
지식은 많았는데 하나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교회의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교회는 누구의 이름으로 존재하는가?”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교회의 본질을 다시 보여주십니다.


1. 하나님은 우리를 먼저 부르셔서 교회 되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편지를 시작하면서 자신을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

바울은 자신의 능력을 말하지 않습니다.
학벌이나 경력을 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다.”

이것이 바울의 정체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성도들을 향해서도 말합니다.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회는 스스로 만들어진 공동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셔서 존재하게 된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종종 교회를 사람들의 모임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라고 부릅니다.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고린도교회의 상태입니다.

이 교회는 분쟁이 있었습니다.
교만도 있었습니다.
도덕적인 문제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을 향해 “거룩하여진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의 수준이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4절부터 바울은 계속 “은혜”를 말합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왜 감사합니까?

  •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고
  • 지식을 주셨고
  • 은사를 주셨고
  • 끝까지 붙드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8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너희를…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이 말씀은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릅니다.

교회는 인간의 완전함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유지됩니다.

우리도 교회를 보며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왜 저럴까?”
“왜 이렇게 부족할까?”
“왜 갈등이 생길까?”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되었고, 하나님의 손으로 붙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완벽해서 부르심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은혜로 부르심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가장 먼저 가져야 할 태도는 정죄가 아니라 감사입니다.

“하나님이 아직도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구나.”

이 은혜를 기억하는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9절에서 결정적인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사람은 흔들려도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변해도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교회의 소망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부족한 우리를 부르셔서 교회 되게 하십니다.


2. 사람을 중심에 두면 교회는 반드시 갈라집니다

10절부터 분위기가 바뀝니다.

바울은 이제 고린도교회의 실제 문제를 다룹니다.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고린도교회 안에는 편 가르기가 있었습니다.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사람들이 자기 기준으로 지도자를 선택하며 서로 갈라지고 있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고린도는 원래 경쟁이 심한 도시였습니다.
누가 더 뛰어난지, 누가 말을 더 잘하는지, 누가 더 영향력 있는지를 중요하게 여기던 문화였습니다.

그 문화가 교회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사람을 비교하고 평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오늘날도 너무 익숙한 모습입니다.

“나는 저 목사님 설교가 더 좋아.”
“나는 저 스타일이 맞아.”
“저 사람들은 너무 보수적이야.”
“저쪽은 너무 자유로워.”

어느 순간 예수님보다 사람이 더 커집니다.

그런데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이 말은 생각이 모두 같아지라는 뜻이 아닙니다.
중심을 하나로 두라는 뜻입니다.

교회는 다양할 수 있습니다.
성격도 다르고, 은사도 다르고, 배경도 다릅니다.

그러나 중심은 하나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람 중심 공동체는 반드시 갈라집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중심에 두면 비교가 시작됩니다.
경쟁이 시작됩니다.
섭섭함이 생깁니다.
상처가 생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면 서로를 품게 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 앞에서는 누구도 자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은혜로 살아난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 안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사람이 커지고 예수님이 작아질 때입니다.

우리는 늘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누구를 중심에 두고 있는가?”
“나는 정말 예수님 때문에 교회를 사랑하는가?”
“아니면 사람 때문에 움직이고 있는가?”

교회는 사람의 이름으로 서는 곳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서는 공동체입니다.


3. 교회를 살리는 것은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십자가입니다

바울은 13절에서 아주 충격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이 질문은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정확히 찌릅니다.

교회는 원래 하나의 몸입니다.
그 머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 기준으로 교회를 조각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세례 이야기를 꺼냅니다.

사람들은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는가”를 자랑거리처럼 여기고 있었습니다.

마치 유명한 사람에게 세례받으면 더 높은 신앙인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고 이어서 아주 중요한 말을 합니다.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 사람들은 화려한 말과 철학을 좋아했습니다.
논리와 수사학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교회를 살리는 것은 인간의 화려함이 아니라 십자가라고.

왜냐하면 사람의 지혜는 결국 사람을 높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오직 예수님만 높입니다.

십자가 앞에서는 잘난 사람도 없고 못난 사람도 없습니다.

  • 오래 믿은 사람도
  • 많이 아는 사람도
  • 직분 있는 사람도

모두 똑같이 은혜로 살아난 죄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교회를 하나 되게 합니다.

우리는 자꾸 인간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세우려고 합니다.

더 좋은 시스템,
더 뛰어난 전략,
더 매력적인 말.

물론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진짜 살리는 능력은 오직 복음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살아 있을 때 교회는 살아납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면 교회는 갈라지지만, 십자가가 중심이 되면 교회는 다시 하나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더 뛰어난 인간적 능력이 아닙니다.

십자가 앞에 다시 서는 것입니다.

“주님, 내가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내 자존심이 너무 컸습니다.”
“내 기준이 복음보다 앞섰습니다.”

그 십자가 앞에서 다시 무릎 꿇을 때 교회는 회복됩니다.


결론

오늘 본문은 교회의 본질을 다시 보여줍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부르신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사람 중심이 아니라 그리스도 중심 공동체입니다.
교회를 살리는 능력은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자꾸 사람에게 기대합니다.
사람 때문에 실망합니다.
사람 때문에 흔들립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 시선을 다시 예수님께로 돌립니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우리는 모두 십자가 아래 부름받은 은혜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다시 결단하기 원합니다.

“주님, 사람보다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소서.”
“내 주장보다 복음을 붙들게 하소서.”
“우리 교회가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서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는 교회,
복음 위에 굳게 서는 교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제목

  1. 하나님이 부르신 교회의 은혜를 잊지 않게 하소서.
  2. 사람 중심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 되게 하소서.
  3. 교회 안의 분열과 비교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게 하소서.
  4. 인간의 지혜보다 복음의 능력을 붙드는 교회 되게 하소서.

 

오늘의 말씀 묵상

“교회는 누구의 이름으로 서 있습니까?”

본문: 고린도전서 1:1-17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지식도 있었고 열정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는 분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말했습니다.

“나는 바울에게 속했다.”
“나는 아볼로에게 속했다.”
“나는 게바에게 속했다.”

사람 중심으로 나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교회를 향해 묻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이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들려옵니다.

나는 지금 누구를 중심에 두고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정말 예수님 때문에 교회를 사랑하는가?
아니면 사람 때문에 기뻐하고 사람 때문에 흔들리고 있는가?

우리는 쉽게 사람을 바라봅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따라가고, 실망한 사람 때문에 마음이 무너집니다.

그러나 교회의 중심은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교회를 세우는 힘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십자가 앞에서는 누구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은혜로 살아난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우리를 낮추고, 다시 하나 되게 합니다.

오늘 하루도 사람보다 그리스도를 더 바라보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누군가의 말에 흔들리기보다,
십자가의 은혜 안에 굳게 서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묵상 질문

  1. 나는 지금 누구를 중심에 두고 신앙생활하고 있습니까?
  2. 사람 때문에 시험 들고 흔들렸던 경험은 없습니까?
  3. 오늘 내가 다시 붙들어야 할 복음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사람보다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소서.
내 생각과 자존심보다 십자가를 붙들게 하소서.
우리 교회가 오직 예수님의 이름 위에 굳게 서게 하소서.
복음의 은혜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하나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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