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아니라 회개와 순종입니다
본문: 마태복음 21:23–32
서론
사람이 살아가면서 종종 이런 말을 합니다.
“마음은 있는데 잘 안 됩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있습니다.
말씀을 들으면 우리는 쉽게 말합니다.
“아멘.”
“맞습니다.”
“순종해야죠.”
그런데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말은 했지만 실제로 움직이지 않았던 순간들이 적지 않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처음에는 하나님을 거부하며 살았습니다.
신앙도 없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마음이 무너지고
눈물로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바로 이 문제를 말씀하십니다.
“누가 정말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인가?”
말로 순종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회개하고 실제로 순종하는 사람입니까?
오늘 예수님은 두 아들의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이 아니라 회개와 순종으로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1. 권위를 묻지만 순종하지 않는 마음 (23–27절)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그때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
곧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묻습니다.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겉으로 보면 신학적인 질문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질문이었습니다.
이미 그들은 마음속으로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드러내기 위해
한 가지 질문을 되물으십니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사실 이 질문은 어려운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종교 지도자들은 서로 의논하기 시작합니다.
성경을 보면 그들의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들은 진리를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기준은 이것이었습니다.
첫째, 자신들의 체면
둘째, 정치적 계산
셋째, 사람들의 눈치
그래서 결국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사실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알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에서 가장 위험한 태도는
진리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알기를 원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면
자신들의 삶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질문은 하지만
순종할 마음은 없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권위를 묻는 것과 권위에 순종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2. 말로만 순종하는 신앙 (28–30절)
예수님은 이어서 두 아들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어떤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말합니다.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먼저 맏아들에게 말합니다.
그러자 맏아들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버지, 가겠습니다.”
아주 좋은 대답입니다.
완벽한 대답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가지 아니하고.”
말은 순종이었습니다.
그러나 삶은 불순종이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이 첫째 아들은
바로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말했습니다.
율법을 말했습니다.
경건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세례 요한이 회개를 외칠 때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
예수님도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가지 않은
첫째 아들과 같은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에는 아주 위험한 착각이 있습니다.
“내가 좋은 말을 했으니까 순종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보다 삶을 보십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중요한 것은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입니다.
3. 회개하고 순종하는 믿음 (30–32절)
이제 둘째 아들이 등장합니다.
아버지가 똑같이 말합니다.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그런데 둘째 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싫습니다.”
아주 무례한 대답입니다.
불순종의 대답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여기서 “뉘우치다”라는 단어는
헬라어 메타멜로마이(μεταμέλομαι)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마음이 바뀌어 행동이 바뀌는 돌이킴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아들은 결국
아버지의 뜻을 행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질문하십니다.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사람들이 대답합니다.
“둘째 아들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매우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리라.”
당시 세리와 창녀는
가장 죄인 취급을 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처음에는 “싫습니다”라고 말하며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바로 그런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 오셨습니다.
반면 종교 지도자들은
그 장면을 보고도
끝내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죄의 크기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회개가 있느냐 없느냐였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너는 어떤 아들이냐?”
말은 순종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첫째 아들입니까?
아니면 처음에는 부족했지만
결국 회개하고 순종하는
둘째 아들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우리는 교회 안에서
첫째 아들처럼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말은 신앙인데
삶은 여전히 내 뜻대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복음의 놀라운 사실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찾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처음에는 멀리 있었어도
지금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
넘어졌어도
다시 순종으로 걸어가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 앞에서 다시 결단하기를 바랍니다.
“주님,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순종하겠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회개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후 기도제목
오늘 말씀(마태복음 21:23–32)을 마음에 새기며 함께 기도할 제목입니다.
- 말로만 신앙을 고백하는 삶이 아니라 회개와 순종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마음으로만 동의하는 신앙이 아니라 실제 삶으로 순종하는 믿음을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 우리 마음을 겸손하게 하셔서 말씀 앞에 진실하게 반응하게 하소서.
종교 지도자들처럼 체면과 계산으로 말씀을 판단하는 마음을 버리고,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 회개하는 은혜를 날마다 허락하소서.
넘어지고 부족할 때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회개의 마음을 주셔서,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 우리 교회가 말보다 순종으로 복음을 드러내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보여 주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니다.
예배 마침 기도문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때로는 말로만 믿음을 고백하고 실제 삶에서는 순종하지 못했던 모습을 돌아봅니다.
주님, 우리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앞에서 체면과 계산으로 말씀을 판단하는 마음을 내려놓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를 겸손히 인정하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말로만 “주님”이라 부르는 신앙이 아니라 삶으로 순종하는 믿음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가 때로는 넘어지고 부족할지라도 둘째 아들처럼 회개하고 다시 주님께 돌아오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날마다 우리의 마음을 돌이켜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를 붙들어 주셔서 말이 아니라 삶으로 복음을 드러내는 공동체가 되게 하시고,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 나라로 부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감사드리며,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의 묵상 | 마태복음 21:31–32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마 21:31)
예수님은 두 아들의 비유를 통해 참된 순종이 무엇인지 가르치십니다. 첫째 아들은 “가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가지 않았습니다. 반면 둘째 아들은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나중에 마음을 돌이켜 아버지의 뜻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행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신앙의 본질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말로만 동의하는 신앙보다 마음이 돌이켜 실제로 순종하는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말했지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리와 창녀 같은 죄인들은 세례 요한의 메시지를 듣고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 나아왔습니다.
복음의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완벽한 사람을 찾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넘어졌어도 다시 돌아오는 사람, 부족해도 회개하며 순종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의 완벽함이 아니라 우리의 돌이키는 마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기도
주님, 말로만 믿음을 고백하는 삶이 아니라 마음을 돌이켜 순종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날마다 주님 앞에 돌아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오늘의 실천
오늘 들은 말씀 중 하나를 정하고 작은 순종으로 실천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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