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멈추게 하는 믿음
본문: 마태복음 20:29–34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는 때때로 이런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내 기도를 주님이 들으실까?”
“내가 부르짖는다고 정말 주님이 응답하실까?”
기도를 해도 상황은 쉽게 바뀌지 않고,
사람들은 오히려 조용히 하라고 말하는 것 같고,
내 믿음이 너무 작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놀라운 사실 하나를 보여 줍니다.
어떤 믿음은 예수님의 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
곧 십자가를 향해 가시는 매우 중요한 길 위에서
예수님은 두 맹인의 외침 때문에 걸음을 멈추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멈추게 하는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1. 믿음은 예수를 메시아로 알아보고 부르짖는다
(30절)
본문 30절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여기서 매우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이 표현은 단순한 혈통 표현이 아닙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사무엘하 7장에서
다윗의 후손 가운데 영원한 왕이 나올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왕을 기다렸습니다.
그 왕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눈이 보이지 않는 두 맹인이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이 말은 이런 고백입니다.
“예수님, 당신이 바로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눈이 보이는 사람들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도 예수를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눈이 보이지 않는 맹인들이 예수를 알아봅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의 눈이 열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기도는 매우 단순합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말은 헬라어로
“엘레이손 헤마스”(ἐλέησον ἡμᾶς) 입니다.
뜻은 단순한 도움 요청이 아니라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죄인의 기도입니다.
“주님,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 우리는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의 출발은 능력이 아닙니다.
신앙의 출발은 긍휼을 구하는 외침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여러분 모두
주님께 긍휼을 구할 줄 아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믿음은 방해 속에서도 더 크게 부르짖는다
(31절)
31절을 보면 놀라운 장면이 나옵니다.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사람들이 그들을 꾸짖습니다.
“조용히 해라.”
“예수님을 귀찮게 하지 마라.”
당시 맹인은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계층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외침을 불편한 소리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더욱 소리 질러”
방해가 있었지만
그들의 믿음은 더 강해졌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순간들이 있습니다.
기도하려고 하면 방해가 생깁니다.
예수님을 찾으려고 하면 낙심이 찾아옵니다.
때로는 사람들도 말합니다.
“너무 믿음에 집착하지 마.”
“적당히 믿어.”
그러나 참된 믿음은 다릅니다.
믿음은 방해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간절해집니다.
마틴 루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기도가 막히는 순간이
기도가 가장 깊어지는 순간이다.”
여러분,
사람들이 막아도
환경이 막아도
상황이 막아도
예수님께 나아가는 믿음은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이 두 맹인처럼
방해 속에서도 더 크게 주님을 찾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3. 믿음의 부르짖음 앞에 예수님은 멈추신다
(32–34절)
32절을 보면 매우 감동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여기서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머물러 서서”
예수님은 지금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입니다.
곧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가시는 길입니다.
그런데 그 길 위에서
예수님이 멈추십니다.
왜 멈추셨습니까?
두 맹인의 믿음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부르시고 질문하십니다.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들은 말합니다.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그리고 3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여기서 “불쌍히 여기다”라는 단어는
헬라어 스플랑크니조마이(σπλαγχνίζομαι) 입니다.
이 말은 단순한 동정이 아닙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긍휼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만지십니다.
그리고 즉시 눈이 열립니다.
그런데 본문의 마지막 문장이 매우 중요합니다.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치유의 목적은 단순히 눈을 뜨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삶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만난 사람의 삶에는
반드시 변화가 있습니다.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예수를 따르게 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멈추게 하는 믿음을 보여 줍니다.
그 믿음은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예수를 메시아로 알고 부르는 믿음입니다.
둘째
방해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셋째
주님의 긍휼을 경험하고 예수를 따르는 믿음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믿음으로 부르는 사람의 소리를 들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가
이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때 주님은 우리의 삶 속에 멈추어 서시고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고
우리의 삶을 새로운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예수님을 멈추게 하는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에 따른 기도제목
- 예수님을 바로 알아보는 믿음을 주시도록
우리의 눈이 열려 예수님이 참된 구원자이시며 다윗의 자손 메시아이심을 더욱 분명히 믿는 믿음을 주시도록. - 긍휼을 구하는 겸손한 기도를 회복하도록
자기 의가 아니라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고백하는 겸손한 심령을 주시도록. - 방해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믿음을 주시도록
환경과 사람의 시선, 낙심 속에서도 더욱 간절히 주님을 찾는 믿음을 주시도록. - 영적인 눈을 열어 주시도록
말씀을 통해 우리의 영적인 눈이 열리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살아가도록. - 은혜를 경험한 후 예수를 따르는 삶을 살도록
주님의 은혜를 경험한 후 머무는 신앙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도록.
예배 대표기도문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거룩한 주일에 우리를 하나님의 전으로 불러 주시고
말씀 앞에 서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때때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영적인 어둠 가운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주님, 우리의 눈을 열어 주옵소서.
오늘 말씀 속의 맹인들처럼
예수님을 향해 믿음으로 부르짖는 심령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사람들의 시선과 환경의 방해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주님을 찾는 믿음을 우리에게 더하여 주시고,
우리의 기도가 형식이 아니라
진심으로 주님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의 삶 속에도 멈추어 서 주옵소서.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시고
닫혀 있는 우리의 영적인 눈을 열어 주셔서
주님의 뜻을 보고 주님의 길을 따르게 하여 주옵소서.
은혜를 경험하고도 멈추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이 교회를 기억하여 주셔서
말씀 위에 굳게 서는 교회 되게 하시고
복음을 전하는 교회 되게 하시며
이 지역 가운데 하나님의 빛을 비추는 교회 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병중에 있는 성도들과
어려움 가운데 있는 가정들을 주님 붙들어 주시고
주님의 위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드리는 모든 예배를 받아 주시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의 묵상 | 마태복음 20:29–34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마 20:30)
여리고 길가에 앉아 있던 두 맹인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자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꾸짖으며 조용히 하라고 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더 크게 외쳤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눈은 보지 못했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믿음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간절한 부르짖음 앞에서 예수님은 걸음을 멈추셨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습니다. 때로 우리는 상황과 환경 때문에 낙심하고 기도하기를 멈추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포기하지 않고 주님을 향해 계속 부르짖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믿음의 외침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기도 앞에 멈추셔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의 영적인 눈을 열어 주십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의 삶의 마지막 모습은 예수를 따르는 삶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신 주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길을 따라가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주님,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셔서 예수님을 바로 보게 하소서. 낙심하지 않고 주님을 부르짖는 믿음을 주시고,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아멘.
오늘의 적용
오늘 하루, 잠시 시간을 내어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로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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