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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오늘의 QT)

본래로 돌아가라: 언약, 완악함, 천국 (마태복음 19:1-12)

by essay2598 2026.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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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로 돌아가라: 언약, 완악함, 천국 (마태복음 19:1-12)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사는 시대는 관계가 너무 쉽게 “소비”되는 시대입니다. 마음이 식으면 끝, 불편하면 거리 두고, 손해 같으면 끊어버리는 문화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결혼도 예외가 아닙니다. 결혼을 언약이 아니라 계약처럼, 거룩한 책임이 아니라 개인의 만족처럼 여기는 공기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정이 흔들리고, 마음이 무너지고, 자녀들이 불안해집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단지 결혼 제도에 대한 강의가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의 질문은 ‘신학적 토론’처럼 보이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왔습니다(3절). 그리고 주님은 그 시험을 통해 우리 모두의 마음을 드러내시고, 하나님 나라의 질서로 다시 부르십니다. 결혼한 사람에게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똑같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세 가지로 붙잡겠습니다.

 

1. 예수님은 결혼을 ‘본래’ 창조 질서의 언약으로 세우십니다 (1-6절)

1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라고 합니다. 마태는 지금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향해 내려가시는 길목에서,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제자들과 무리에게 다시 세우시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그 길에서 2절, 큰 무리가 따르자 예수님은 “그들의 병을 고치시더라.” 주님은 논쟁을 즐기시는 분이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람을 고치시는 분입니다. 아픈 현실 한가운데 계십니다.

그런데 3절에서 바리새인들이 와서 “시험”합니다.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이 질문은 단순한 정보 요청이 아닙니다. 당시에는 “사소한 이유로도 이혼이 가능하냐”를 놓고 느슨한 기준을 정당화하려는 분위기가 있었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어느 쪽을 택하든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논쟁의 기준을 신명기 규정(이혼증서)으로만 끌려가지 않으시고, 창세기로 돌아가십니다.

4-5절에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성도님들, 결혼의 출발점은 ‘감정’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합하여”라는 말은 단지 함께 산다는 정도가 아니라, 삶을 결합하고 책임을 결합하는 강한 연합입니다. 결혼은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공적으로 맺는 결합이며, 하나님 앞에서 새 가족이 세워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6절이 핵심입니다.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결혼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 결혼은 사람의 취향이 만든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의 틀입니다.

복음적으로 말하면 결혼은 더 큰 현실을 가리키는 그림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교회를 ‘신부’로 말합니다. 언약의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결혼은 그 언약의 성품을 닮아가도록 부름 받은 자리입니다. 물론 우리의 결혼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혼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우는 자리입니다.

그러니 적용합시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결혼을 감정의 온도로만 평가하지 마십시오. “요즘 행복하냐”만이 기준이 되면, 결혼은 버티기 힘든 날에 쉽게 무너집니다. 결혼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이 사람을 맡았습니다”라는 언약입니다.
부부가 ‘한 몸’으로 살기 위해 이번 주에 딱 두 가지만 실천해 보십시오.

  • 하루 한 번, 상대를 평가하는 말 대신 축복의 말 한 문장을 하십시오.
  • 하루 10분이라도 함께 앉아 “오늘 내 마음이 어땠는지”를 나누고, 마지막 1분은 손잡고 기도하십시오.

언약의 무게를 짐이 아니라 은혜로 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이혼의 허용은 ‘본래’가 아니라 ‘완악함’에 대한 임시적 허락이었습니다 (7-9절)

바리새인들이 7절에서 반문합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그들은 모세를 들이대며 예수님의 말씀을 무너뜨리려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답이 아주 날카롭습니다. 8절,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성도님들, “완악함”은 단지 성격이 세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굳어버린 상태입니다. 듣지 않는 마음, 회개하지 않는 마음, 사랑을 포기한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이혼 규정을 “이상적인 명령”으로 높이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규정이 왜 생겼는지 이유를 밝히십니다. 죄로 인해 관계가 깨지는 현실을 억제하기 위한 임시적 허락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이혼 규정은 이혼을 장려하려는 것이 아니라, 완악함이 만든 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그리고 9절에서 예수님은 가볍게 버리는 문화를 엄중히 다루십니다.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여기서 “음행”은 성적 부정과 관련된 죄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결혼을 쉽게 끊고 쉽게 새로 시작하는 일을 “간음”이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결혼은 하나님 앞에서 맺은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님들, 이 말씀은 교회를 정죄의 법정으로 만들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히 경고합니다. 죄는 관계를 무너뜨립니다. 완악한 마음은 가정을 무너뜨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두 가지를 함께 붙잡아야 합니다.

첫째, 결혼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둘째, 상처 난 사람을 가볍게 정죄하지 말라.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할 복음의 균형이 있습니다. 예외 조항은 이혼을 쉽게 만들기 위한 ‘구멍’이 아니라, 죄가 가져온 파괴 속에서 연약한 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길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 말씀으로 누군가를 죄책감에 묶어두려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회개와 회복으로 부르십니다.

또 하나, 성도님들, 주님이 “나누지 말라” 하신 말씀을 폭력과 죄 안에 묶여 침묵하라는 뜻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학대와 폭력이 있는 자리에서 교회는 “참아라”로 방관하면 안 됩니다. 교회는 피해를 숨기지 않고 보호하며, 필요한 도움과 실질적 조치를 함께 도울 책임이 있습니다. 주님은 어두움을 덮는 분이 아니라 드러내어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복음은 죄를 축소하지 않지만, 죄인을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율법은 우리의 완악함을 폭로합니다. “너희 마음이 굳었다.” 그러나 복음은 그 굳은 마음을 깨뜨리십니다. 하나님은 돌 같은 마음을 제하시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십니다. 가정의 유일한 소망은 그리스도의 용서와 회복입니다.

그러므로 적용합니다. 혹시 부부 사이에 오래된 상처가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들으며 “그래, 상대가 문제야”로 끝내지 마십시오. 주님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말씀하십니다. 주님 앞에서 먼저 내 마음을 보십시오.

  • 이번 주에 ‘금지어’ 세 가지를 정해 보십시오: 비난, 비교, 과거 소환.
  • 그리고 대체 문장을 정하십시오: “당신 탓이야” 대신 “내가 아파. 우리 같이 풀자.”
  • 혼자 버티지 말고, 필요하다면 목회적 상담과 전문적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이미 깨어진 자리에서 주님은 정죄가 아니라 회복으로 부르십니다. 십자가는 실패한 사람을 끝내는 자리가 아니라, 다시 살리는 자리입니다. 주님의 은혜 안에서 새 길을 걷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천국을 위해 결혼/독신 모두를 은사로 받고, 받은 만큼 순종해야 합니다 (10-12절)

10절에서 제자들이 말합니다.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제자들도 부담을 느낀 것입니다. 언약의 무게가 크니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게 낫지 않느냐는 반응입니다. 인간은 책임이 무거우면 도망가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11절에서 이렇게 답하십니다.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그리고 12절에서 당시 사회의 언어로 ‘고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시며, 결혼하지 않는 상태와 관련된 여러 경우를 포괄해 말씀하십니다. 태로부터 된 경우, 사람에 의해 된 경우, 그리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경우입니다. 주님의 의도는 결혼을 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을 위해 독신과 절제의 삶으로 부르심을 받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은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모두에게 강요되는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와 소명에 따라 받는 길입니다.

성도님들, 하나님 나라에서는 결혼이 ‘최고’도 아니고 독신이 ‘차선’도 아닙니다. 독신이 더 높은 단계도 아닙니다. 결혼도 독신도 모두 하나님께 드리는 소명이며, 모두 천국을 위한 순종으로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서로를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혼했다고 더 성숙한 것도 아니고, 결혼하지 않았다고 덜 성숙한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건 하나입니다. 내게 주신 자리에서 천국을 위해 충성하는가입니다.

적용합시다.
기혼 성도님들, “천국을 위하여” 가정을 세우십시오. 신앙은 교회에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말하는 방식, 갈등을 푸는 태도, 돈을 쓰는 기준, 자녀를 대하는 손길 속에서 천국이 드러나야 합니다. 가정이 작은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미혼/독신 성도님들, 주님은 여러분을 외롭게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교회는 영적 가족입니다. 주께서 주신 은사대로 기쁨으로 섬기십시오. 여러분의 헌신은 하나님 나라에 귀한 열매를 맺습니다. 자기 처지를 비교하며 낙심하지 말고, 부르심을 따라 기쁘게 순종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결론: 본래로 돌아가라, 그리고 천국을 위하여 살라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예수님은 우리를 “본래”로 부르십니다.
가볍게 끊고 가볍게 버리는 문화가 아니라,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언약의 자리로 돌아가라 하십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의 완악함을 폭로하십니다. “문제는 제도만이 아니라 너희 마음이다.”

그러나 절망으로 끝내지 않으십니다. 복음은 우리를 다시 세웁니다.
우리가 언약에 실패할 때에도, 그리스도는 언약에 신실하셔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 신실하심이 우리 가정을 다시 세우는 힘입니다.

그러니 오늘 주님 앞에 마음을 내어드립시다. 굳어진 마음을 깨뜨려 달라고, 사랑할 힘을 달라고, 회복의 길을 열어 달라고 기도합시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이 말씀을 무거운 짐으로만 듣지 말고, 우리 가정을 붙드시는 하나님의 손길로 들으십시오. 그리고 각자에게 주신 자리에서 “천국을 위하여” 충성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제목 (마 19:1-12)

  1. 결혼을 감정이나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맺는 언약으로 다시 붙들게 하소서.
  2. 우리 마음의 완악함을 깨뜨리시고, 회개와 용서로 관계가 회복되게 하소서.
  3. 부부가 ‘한 몸’으로 살게 하시고, 말과 태도와 습관이 서로를 살리는 통로가 되게 하소서.
  4. 가정을 무너뜨리는 죄(비난·비교·과거 소환·무관심)를 끊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우게 하소서.
  5. 상처 입은 가정과 깨어진 관계 가운데 정죄가 아니라 복음의 위로와 치유가 흐르게 하소서.
  6. 학대와 폭력, 위기 상황 속에 있는 지체들을 교회가 숨기지 않고 보호하며, 실제적인 도움으로 동행하게 하소서.
  7. 미혼/독신 성도들도 ‘천국을 위한 부르심’으로 기쁘게 섬기게 하시고, 교회가 영적 가족으로 세워지게 하소서.
  8. 우리 교회가 다음 세대에게 결혼과 가정의 거룩함을 본으로 보이게 하시고, 믿음의 가정을 세우는 공동체 되게 하소서.

예배용 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를 말씀 앞에 세워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창조 때부터 세우신 질서와 은혜를 다시 바라보게 하시고, 흔들리는 시대 한가운데서도 하나님 나라의 길로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는 결혼과 관계를 너무 쉽게 생각했던 죄를 고백합니다. 언약의 무게를 잊고 내 만족과 내 기준을 앞세우며, 마음이 굳어져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던 완악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오늘 주님께서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말씀하실 때, 변명하지 말게 하시고 겸손히 회개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부부가 둘이 아니라 한 몸이라 하신 말씀을 따라 우리의 가정이 다시 세워지게 하옵소서. 말로 찌르는 혀를 멈추게 하시고, 비난과 비교와 과거를 꺼내는 습관을 끊게 하시며, 축복과 경청과 위로의 언어가 가정에 흐르게 하옵소서. 사랑할 힘이 없을 때,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부어 주셔서 용서하고 다시 손 내밀게 하옵소서.

주님, 이미 상처 입고 깨어진 가정들 위에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정죄로 더 무겁게 하지 않게 하시고, 십자가의 은혜로 위로와 치유를 얻게 하옵소서. 회복을 위해 도움을 구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시고, 교회가 따뜻한 품으로 상담과 돌봄과 실제적인 동행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특별히 주님, 폭력과 학대와 위기 가운데 있는 지체들을 지켜 주옵소서. 그들의 두려움과 침묵을 걷어 주시고, 교회가 그들을 숨기지 않고 보호하며 안전한 길로 인도하게 하옵소서. 필요한 도움과 조치를 마련하고, 정의와 사랑으로 함께 걸어가게 하옵소서.

또한 주님, 결혼한 성도들만이 아니라 미혼과 독신의 성도들도 주께서 주신 부르심으로 기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결혼도 독신도 모두 천국을 위한 순종임을 믿게 하시고, 서로를 비교하거나 낙심하지 않게 하시며, 교회가 참된 영적 가족이 되어 서로를 귀히 여기고 함께 섬기게 하옵소서.

언약에 실패할 때에도 언약에 신실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주님, 그 신실하심으로 우리의 가정을 다시 붙들어 주옵소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우리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빛이 가정마다 비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를 사랑하시고 끝까지 붙드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오늘의 묵상 |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마태복음 19:1-12)

📖 본문 말씀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마 19:6, 8)

✏️ 묵상
오늘 본문에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질문을 던지지만, 사실은 주님을 “시험”하려고 나아옵니다. 겉으로는 율법을 묻는 것 같지만, 그 마음에는 관계를 가볍게 다루고 싶은 욕망이 숨어 있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으면 버리는 것이 옳습니까?”라는 질문은, 결국 사랑보다 권리를 앞세우는 마음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그 질문에 끌려가지 않으시고, 우리를 “본래”로 데려가십니다. 창세기로 돌아가 “남자와 여자”, “부모를 떠나”, “둘이 한 몸”이라는 창조의 질서를 다시 세우십니다. 결혼은 단지 감정이 맞아 떨어질 때 유지되는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서로를 맡고 지키는 언약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얹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흔들리는 관계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주님은 현실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모세의 이혼 허용 규정이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문제는 제도보다 마음입니다. 사랑이 식고, 용서가 멈추고, 내 주장만 커질 때 마음은 굳어집니다. 완악함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습니다. 작은 무관심, 쌓이는 말의 상처, 반복되는 비교와 비난, “어차피 안 돼”라는 포기가 마음을 돌처럼 만들어 갑니다.

하지만 복음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완악함을 고치지 못하지만, 그리스도는 언약에 신실하셔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십자가는 실패를 확정하는 자리가 아니라, 회복을 여는 자리입니다. 오늘 주님 앞에서 이렇게 기도해 봅시다. “주님, 내 마음의 완악함을 깨뜨려 주십시오. 내 관계를 ‘본래’의 자리로 돌려 주십시오.” 그리고 작은 순종 하나를 시작해 보십시오. 축복의 말 한마디, 먼저 사과하는 한 걸음, 함께 기도하는 짧은 시간이 가정을 다시 살리는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관계를 내 기준과 감정으로만 판단했던 마음을 회개합니다. 제 안의 완악함을 깨뜨려 주시고, 주님이 세우신 ‘본래’의 뜻으로 돌아가게 하옵소서. 말과 태도를 새롭게 하시고, 용서와 화해의 길을 열어 주옵소서. 결혼한 자는 가정에서, 독신인 자는 주께 집중하는 삶에서 모두 천국을 위하여 순종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오늘의 적용 한 줄
“오늘 나는 내 마음의 완악함을 내려놓고, 축복의 말 한마디와 화해의 한 걸음으로 ‘본래’의 길을 걷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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