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제목: 천국에서 큰 사람 (마태복음 18:1-9)
서론
사람 마음속에는 늘 이런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누가 더 크냐?” 직장에서는 성과로, 학교에서는 성적으로, 관계에서는 영향력으로,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은근히 “누가 더 인정받느냐”를 따지고 싶어집니다.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비교가 멈추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더 아이러니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의 길을 향해 가고 계십니다. 주님은 낮아짐의 길, 섬김의 길을 걸으시는데 제자들은 그 곁에서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를 묻습니다. 십자가의 길과 제자들의 경쟁이 정면으로 부딪히는 자리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천국의 ‘서열표’를 꺼내지 않으십니다. 한 어린아이를 가운데 세우시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오늘 말씀은 분명합니다. 천국의 크기는 높아짐이 아니라 회심과 낮아짐이며, 작은 자를 영접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길이고, 죄와 실족을 단호히 끊는 거룩이 천국 백성의 길입니다. 이 말씀 앞에서 우리의 기준이 바뀌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1.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 회심과 낮아짐이 천국의 문이다 (1-4)
1절에서 제자들은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묻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천국의 영광보다도 그 안에서 내 자리, 내 이름, 내 인정이었습니다.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엔 여전히 세상의 방식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2절, 예수님은 한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십니다. 당시 어린아이는 힘이 없고, 지위가 없고, 스스로를 증명할 업적이 없는 존재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아이를 가운데 세우심으로 제자들의 질문 자체를 뒤집으십니다.
3절에서 주님이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여기 “돌이켜”는 단순한 마음가짐 조정이 아니라 방향 전환, 곧 회심입니다. ‘내가 주인’인 길에서 ‘하나님이 주인’인 길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아이 같이”는 아이의 미성숙이나 천진함을 칭찬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자랑할 것 없는 자가, 붙들 것 없는 자가,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리를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은 “천국에서 더 크게 되는 방법”이 아니라, 천국에 들어오는 표지입니다. 회심 없이 겸손 흉내만 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4절에서 주님은 천국의 큰 자를 다시 정의하십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천국에서 큰 사람은 크게 보이려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를 낮추는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이 왜 복음입니까? 천국은 잘난 사람이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은혜를 아는 사람이 들어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공로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자랑할 게 없습니다. 죄인입니다. 그래서 어린아이처럼 빈손으로 그리스도를 붙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의가 되시고, 예수님이 문이 되시고, 예수님이 길이 되십니다.
천국은 내가 올라가서 따내는 상이 아니라, 주님이 낮아지셔서 우리를 살리고 들어오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그러니 오늘 회개할 것이 있습니다. 비교입니다. 인정욕입니다. 내 자리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내가 더 낫다”는 마음이 올라올 때가 있지요. 주님은 우리 가운데 어린아이를 세우시며 물으십니다. “너는 정말 돌이켰느냐?”
이번 주 이렇게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비교가 올라올 때마다 짧게 고백하십시오.
“주님, 저는 어린아이입니다. 주님의 은혜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사람인 줄 믿고, 낮아짐의 길을 걷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 작은 자를 영접함이 곧 그리스도를 영접함이다 (5)
5절에서 예수님은 놀라운 연결을 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내 이름으로”는 단지 좋은 마음의 친절이 아니라, 예수님의 권위와 복음 때문에 영접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6절이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라고 말하듯이, 여기 “어린아이/작은 자”는 실제 어린아이뿐 아니라 주님을 믿지만 연약한 지체, 믿음이 어린 새신자, 상처 입은 성도, 소외된 지체까지 포함합니다.
주님은 그 작은 자를 어떻게 대하는지가 곧 주님을 어떻게 대하는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의 기준이 여기에 있습니다. 강한 사람 중심이 아니라, 작은 자를 가운데 세우신 주님의 마음이 기준입니다.
성도 여러분, 복음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길도 이렇습니다. 주님이 먼저 낮아지셨습니다. 우리는 큰 자가 아니었습니다. 죄로 연약해진 작은 자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찾아오셔서 품으셨습니다.
그러니 주님을 영접한 사람은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그 열매 가운데 하나가 작은 자를 귀히 여기는 사랑입니다. 작은 자를 품는 공동체는 복음이 살아 있는 공동체입니다.
성도 여러분, 내 주변의 “작은 자”는 누구입니까?
가정에서는 말수가 적고 마음이 닫힌 가족일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늘 뒤로 물러서는 성도일 수 있습니다. 믿음이 약해 흔들리는 지체, 새로 온 새가족일 수 있습니다.
이번 주에 한 사람을 정해 보십시오.
- 안부 문자 한 번
- 식사 한 번
- “기도 제목이 뭐예요?” 하고 물은 뒤 짧게라도 함께 기도해 주기
작은 자를 영접하는 그 자리에서 주님을 영접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본론 3.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면… 찍어 내버리라” — 실족을 막고 죄를 끊는 거룩의 단호함 (6-9)
6절에서 예수님은 매우 강하게 경고하십니다.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은 걸려 넘어지게 하는 덫, 장애물입니다. 이 실족은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첫째, 적극적 실족입니다. 나쁜 본보기, 위선, 권력 남용, 거짓된 말, 믿음이 어린 자를 유혹하는 행동으로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둘째, 소극적 실족입니다. 무관심, 냉대, 조롱, 차별, 방치로 인해 작은 자가 공동체 안에서 마음이 꺾이고 신앙이 흔들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7절은 현실도 인정합니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다.” 유혹은 세상에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덧붙이십니다.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성도님, 세상에 걸림돌이 있다고 해서 내가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공동체 안에서 작은 자를 넘어뜨리는 죄는 하나님 앞에서 매우 무겁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강한 자의 편의’가 아니라 연약한 자의 보호와 양육에 책임이 있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자라는 길이 막히지 않도록 지켜야 합니다.
8-9절에서 예수님은 더 급진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손이나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이것은 문자적으로 몸을 훼손하라는 뜻이 아니라, 과장법으로 죄를 단호히 제거하라는 명령입니다. 죄는 조금 남겨두면 결국 나를 끌고 갑니다. 그래서 주님은 유혹의 통로를 끊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최종 현실을 말씀하십니다. 영생과 지옥 불입니다. 천국이 실제인 만큼 심판도 실제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겁주려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기 위해 깨우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죄를 끊는 것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공로를 쌓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답게 살기 위한 것입니다.
십자가는 “죄를 대충 넘어가도 된다”는 면허가 아니라,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줍니다. 죄가 가벼웠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죽으셨습니다. 죄인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은 사람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은혜는 방종으로 흐르지 않고 거룩으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자기 의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를 붙들고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죽입니다.
이제 매우 구체적으로 적용합시다.
- 내가 누군가를 실족하게 했는지 돌아봅시다. 말로 상처 주고, 뒷말로 무너뜨리고, 위선으로 시험 들게 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사과해야 합니다. 작은 자를 보호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 내 죄의 통로를 끊읍시다.
- 눈이 범죄하게 하면: 유혹을 부추기는 콘텐츠를 정리하십시오.
- 손이 범죄하게 하면: 반복되는 죄의 습관을 끊을 장치를 만드십시오.
- 발이 범죄하게 하면: 죄로 끌고 가는 자리와 관계를 재정리하십시오.
말씀대로, 아프더라도 끊어야 삽니다. 죄를 ‘관리’하려 하지 말고, 죄를 ‘죽이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자들은 “천국에서 누가 크냐”를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세우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돌이켜 어린아이 같이 되라.” 그리고 작은 자를 영접하라 하시고,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지 말라 하시며, 죄를 단호히 끊으라 하셨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천국의 크기는 낮아짐입니다. 천국의 삶은 작은 자를 품는 사랑입니다. 천국 백성의 길은 죄를 끊는 거룩입니다.
그런데 이 길이 우리 힘으로 가능합니까?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복음으로 돌아갑니다. 주님이 먼저 낮아지셨습니다. 하나님 아들이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셔서 끝까지 낮아지시고,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 낮아지심이 우리를 살렸습니다.
그러니 오늘 이렇게 고백합시다.
“주님, 저를 돌이키게 하소서. 어린아이 같이 은혜를 붙들게 하소서. 작은 자를 주님처럼 영접하게 하소서. 죄를 단호히 끊는 거룩을 주소서.”
이 결단으로 한 주를 시작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제목
- 주님, 비교와 교만에서 돌이켜 어린아이 같은 믿음으로 은혜를 의지하게 하소서.
- 주님, 작은 자를 귀히 여기고 영접함으로 그리스도를 모시는 교회 되게 하소서.
- 주님, 실족을 주는 죄를 회개하게 하시고, 유혹의 통로를 단호히 끊는 거룩을 주옵소서.
예배용 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른다 하면서도 여전히 누가 크냐를 따지며 비교하고 교만했던 죄를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를 돌이켜 주옵소서. 어린아이와 같이 빈손으로 은혜를 붙들게 하시고, 자기를 낮추는 길을 걷게 하옵소서.
주님, 교회 안의 작은 자들을 귀히 여기게 하시고, 주님의 이름으로 영접하게 하옵소서. 작은 자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곧 주님을 영접하는 것임을 믿게 하시고, 우리의 말과 태도와 행동이 누군가를 넘어지게 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 주옵소서. 가정과 공동체가 연약한 자를 보호하고 양육하는 자리 되게 하옵소서.
또한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게 하시고, 유혹의 통로를 끊는 거룩한 결단을 주옵소서.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오니, 십자가의 은혜를 붙들게 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죽이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소그룹 나눔지
1) 관찰
- 제자들의 질문(1절)은 무엇을 드러냅니까? 예수님은 어떻게 답하십니까(2-4절)?
- 5절에서 작은 자를 영접하는 것이 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까?
- 6-9절에서 예수님이 경고하시는 ‘실족’과 죄의 심각성은 무엇입니까?
2) 점검
- 나는 최근 어떤 비교와 인정욕 속에 있었습니까?
- 내 주변의 “작은 자”(연약한 지체)는 누구이며, 나는 어떤 태도로 대하고 있습니까?
- 내가 반복해서 넘어지는 죄의 통로(눈/손/발)는 무엇입니까?
3) 적용
- 이번 주 한 사람을 정해 구체적으로 섬길 행동 하나를 정합시다.
- 유혹의 통로를 끊기 위한 실천(삭제/차단/거리두기/시간 조정)을 하나 정합시다.
- 서로를 실족하게 하지 않도록 공동체 안에서 조심할 한 가지를 정합시다(말/뒷담/비난 절제 등).
4) 함께 기도
- “주님, 돌이켜 어린아이 같은 믿음으로 살게 하소서.”
- “작은 자를 영접하는 교회 되게 하시고, 죄의 통로를 끊는 거룩을 주소서.”
🌱 오늘의 묵상 | 천국에서 큰 사람 (마태복음 18:1-9)
📖 본문 말씀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 18:3-4)
✏️ 묵상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참 솔직한 질문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종종 이렇게 움직입니다. ‘나는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나, 나는 어떤 자리인가.’ 그런데 예수님은 천국의 서열을 설명하지 않으시고, 한 어린아이를 가운데 세우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기대한 답과 전혀 다른 기준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돌이켜”라고 하십니다. 천국은 좋은 사람이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방향이 바뀐 사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내가 중심’인 삶에서 ‘하나님이 중심’인 삶으로 돌아서는 회심이 없으면, 아무리 종교적으로 열심을 내도 “결단코”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어린아이 같이” 되라는 말씀은 순수해지라는 뜻이 아니라, 자랑할 것 없는 사람이 은혜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리로 내려오라는 초청입니다. 천국의 문 앞에서 우리는 빈손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손을 붙들 뿐입니다.
또 주님은 “내 이름으로 작은 자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라고 하십니다. 믿음이 어린 사람, 연약한 지체, 소외된 이웃을 대하는 태도가 곧 주님을 대하는 태도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주님이 귀히 여기시는 작은 자를 지나쳐 버릴 때가 많습니다. 오늘 주님은 “작은 자를 향한 너의 시선이 곧 나를 향한 시선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6-9절은 단호합니다.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는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주님은 죄를 ‘조금 남겨두고 관리’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끊어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구원을 얻기 위한 공로 쌓기가 아니라, 이미 은혜로 구원받은 자가 마땅히 걸어야 할 거룩의 길입니다. 십자가는 죄를 가볍게 하라고 주신 면허가 아니라, 죄의 무서움과 하나님의 사랑을 동시에 드러낸 자리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아는 사람은 죄와 타협하지 않고, 성령의 도움으로 죄를 죽이며 살아갑니다.
오늘 주님 앞에 이렇게 서고 싶습니다. “주님, 저를 큰 사람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먼저 돌이키게 해 주세요. 어린아이처럼 은혜를 의지하게 해 주세요. 작은 자를 주님처럼 품게 해 주세요.”
🙏 기도
주님, 제 마음속에 숨어 있는 비교와 인정욕을 내려놓게 하시고, ‘내가 중심’인 길에서 돌이키게 하옵소서. 어린아이처럼 빈손으로 주님의 은혜를 붙들게 하시고, 작은 자를 영접함으로 주님을 모시게 하옵소서. 누군가를 실족하게 하는 말과 태도를 회개하게 하시고, 유혹의 통로를 단호히 끊을 거룩한 결단과 성령의 능력을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오늘의 적용 한 줄
오늘 한 사람(작은 자)에게 먼저 다가가 안부를 묻고, 내 죄의 통로 하나를 ‘끊는’ 실천을 시작하겠습니다.
🌱 오늘의 묵상 | 천국에서 큰 사람 (마 18:1-9)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한 어린아이를 가운데 세우시며 말씀하셨어요.
“돌이켜 어린아이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어린아이 같음은 순수함이 아니라 자랑할 것 없는 자가 은혜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리입니다.
또 작은 자를 영접하면 곧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라 하셨어요.
그리고 죄와 실족은 가볍게 두지 말고, 유혹의 통로를 단호히 끊으라고 하십니다.
🙏 기도: 주님, 비교와 교만에서 돌이키게 하시고, 작은 자를 품고, 죄를 끊는 거룩을 주소서.
👉 오늘의 적용: 안부 연락 1번 + 죄의 통로 1개 차단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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