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자를 찾으시는 아버지, 거룩을 세우는 교회(마태복음 18:10-2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 공동체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입니까? 많은 경우 “연약한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리고 “죄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입니다. 어떤 사람은 연약한 지체를 쉽게 무시합니다. “왜 저렇게 유난이야, 왜 저렇게 못하나” 하며 업신여깁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죄의 문제를 덮어버립니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방치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를 동시에 붙잡게 하십니다. 작은 자 하나도 잃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마음과, 형제를 얻기 위해 거룩을 세우는 교회의 길입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붙잡겠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자 하나도 잃지 않길 원하시며, 교회는 사랑의 권면과 거룩한 치리로 형제를 회복시키는 공동체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 교회의 마음과 우리의 태도를 새롭게 하기를 바랍니다.
1. 작은 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10, 14절)
예수님은 먼저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여기서 “작은 자”는 단지 나이 어린 아이만 뜻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8장의 흐름을 보면, 공동체 안에서 연약하고 쉽게 넘어지고, 눈에 잘 띄지 않고, 때로는 돌보기 번거롭게 느껴지는 사람들까지 포함합니다. 내 기준에 부족해 보이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작은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왜 그들을 업신여기지 말라고 하십니까? 10절이 이유를 말합니다.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성도 여러분, 여기서 핵심은 천사들의 체계를 세밀하게 규정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핵심은 작은 자가 하나님 앞에서 결코 하찮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서는 약하고 작은 사람이 밀려나기 쉽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작은 자가 결코 작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버려도 되는 영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잘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교회는 은혜로 부름받은 죄인들의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업신여긴다면, 사실은 그 사람을 넘어 하나님의 마음을 거스르는 것이 됩니다. 뒷말로 상처 주고, 무시로 밀어내고, 은근히 배제하는 태도는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니 오늘 적용이 분명합니다. 내 눈에 별것 아닌 사람, 나를 불편하게 하는 연약함을 가진 사람을 대할 때마다 이렇게 고백합시다. “주님, 저 사람은 주님의 귀한 양입니다.” 작은 자를 함부로 말로 찌르지 않고, 무시로 쓰러뜨리지 않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아버지는 길 잃은 한 마리를 반드시 찾으신다 (12-14절)
예수님은 이어서 비유를 드십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효율만 따지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음이 효율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3절은 말합니다. “만일 찾으면…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아흔아홉이 덜 소중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 귀합니다. 그런데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한 영혼을 향해 하나님이 특별한 기쁨으로 품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4절이 결론입니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여기서 “뜻”은 단지 “그랬으면 좋겠다”는 감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선하신 계획 속에서 작은 자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모든 사람을 일반론으로 말하는 자리가 아니라, 지금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제자 공동체 안에서 길 잃기 쉬운 작은 자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즉, 주님은 공동체 안에서 흔들리고 넘어지는 지체를 두고 “버려라” 하시지 않고 “찾아라” 하십니다.
복음이 바로 이것 아닙니까? 우리는 다 길 잃은 양이었습니다. 스스로 돌아올 능력도 없고 길을 찾을 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단지 “돌아와” 말만 하신 게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값을 치르셨고, 부활로 우리를 다시 우리리에 세우셨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길 잃은 양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져야 합니다. “왜 저래?”가 아니라 “주님이 찾으시는 양이구나.” “귀찮다”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저 영혼을 잃지 않는 것이구나.”
적용해 봅시다. 떠나간 성도, 낙심해서 예배가 멀어진 지체, 상처로 움츠러든 가족과 친구가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이 쉽게 “그 사람은 원래 그래”로 닫힐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 우리를 부르십니다. 찾는 사랑으로 걸어가라. 이번 주에 마음에 떠오르는 ‘작은 자’ 한 사람에게 먼저 안부를 묻고, 이름을 불러 기도해 주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교회는 ‘형제를 얻기 위해’ 권면하고, 하늘의 권위를 위임받았다 (15-20절)
이제 예수님은 공동체가 죄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15절이 핵심을 먼저 말합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성도 여러분, 목적은 처벌이 아닙니다. 망신 주는 것도 아닙니다. “형제를 얻는 것”입니다. 잃은 양을 찾는 아버지의 마음이 여기에서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절차는 지혜롭습니다. 첫째,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공개적으로 말해서 상처를 키우지 말고, 조용히 사랑으로 다가가라는 뜻입니다. 둘째, 듣지 않으면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확증하라. 소문과 감정이 아니라 진실 위에 서기 위함입니다. 셋째,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권면을 받게 하라. 교회는 가십의 장이 아니라 회복의 장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17절) 하십니다. 이 말씀을 두 방향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는 배척과 왕따로 가는 오해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럼 아무 조치도 없이 이전과 똑같이 지내자”는 치리 회피의 오해입니다. 주님의 뜻은 균형입니다. 교회의 교제와 질서는 지키되, 원수처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들려야 할 대상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즉, “괜찮다”라고 죄를 정상화하지 말고, 그가 회개가 필요한 자리라는 것을 분명히 하되, 사랑으로 돌아오도록 문을 열어두라는 뜻입니다.
18절은 이 과정이 단지 인간관계 기술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이것은 교회가 마음대로 사람을 묶고 푼다는 뜻이 아닙니다. 교회가 말씀에 근거하여 “회개한 자는 용서받았다” “회개하지 않는 죄는 죄로 남아 있다”라고 분별하고 선포하는 복음 선언의 권세를 주님이 위임하신 것입니다. 천국 열쇠의 권세가 바로 이것입니다.
19-20절도 문맥 안에서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두 사람이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을 개인 소원 성취의 약속처럼 오해합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주문이 아닙니다. 이 약속은 특별히 교회의 회복 사역과 공동체의 합심 기도에 주님이 임재로 책임지신다는 약속입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성도 여러분, 교회가 눈물로 권면하고 말씀으로 바로 세우며 기도로 붙들 때, 그 자리에 주님이 계십니다.
복음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는 죄를 가볍게 넘기지 않으십니다. 동시에 죄인을 버리지도 않으십니다. 십자가는 거룩의 심판과 긍휼의 구원이 동시에 선포된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방치로 사랑한다고 말하지 말고, 분노로 거룩을 말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사랑으로 권면하고, 거룩으로 회복시키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적용합시다. 갈등을 피하려고 죄를 덮어버리지 마십시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무책임일 수 있습니다. 또 화가 난 채로 말하지 마십시오. 권면은 이기기 위한 말이 아니라 얻기 위한 말입니다. 이번 주에 갈등이 있는 지체가 있다면, 뒷말 대신 기도하고 직접 만나 “얻기 위한 대화”를 시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권면을 받을 때도 변명보다 회개로 반응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결론: 작은 자를 찾으시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형제를 얻는 교회가 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은 두 줄기로 우리를 이끕니다. 하나는 작은 자를 업신여기지 말라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다른 하나는 형제를 얻기 위해 권면하라는 주님의 지혜입니다. 이 두 가지는 따로가 아닙니다. 뿌리는 하나입니다. 작은 자 하나도 잃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뜻입니다.
오늘 주님 앞에서 결단합시다. 내 마음에 업신여김이 있었다면 회개합시다. 포기가 있었다면 돌이킵시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사랑으로 권면하고 거룩으로 회복시키는 공동체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두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 형제를 위해 울며 기도할 때, 주님은 그 가운데 계십니다. 그 임재를 믿고, 주님의 마음을 품고, 작은 자를 살리고 형제를 얻는 교회가 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제목
- 주님, 교회 안의 작은 자를 업신여기지 않고 주님의 눈으로 귀히 여기게 하소서.
- 주님, 길 잃은 한 영혼을 포기하지 않는 찾는 사랑을 우리에게 주소서.
- 주님, 죄를 방치하지도 정죄하지도 않게 하시고 사랑의 권면과 거룩한 회복을 이루게 하소서.
- 주님, 두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일 때 주님의 임재를 신뢰하며 합심 기도하게 하소서.
예배용 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으로 우리 마음을 비추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연약한 지체를 쉽게 업신여기고, 어떤 때는 죄의 문제를 두려워하여 덮어버리며, 또 어떤 때는 분노로 정죄했던 것을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아버지께서 작은 자 하나도 잃지 않으시려는 뜻을 우리 안에 심어 주옵소서.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마음을 우리에게 주셔서, 포기하지 않고 찾아가며 붙들며 기도하게 하옵소서. 또한 교회가 형제를 얻기 위해 사랑으로 권면하고, 말씀의 기준으로 거룩을 세우며, 회복의 길로 인도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가 두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일 때 주님이 가운데 계신다는 약속을 믿습니다. 우리의 만남과 권면과 기도가 사람의 감정이 아니라 주님의 임재 가운데 이루어지게 하시고, 우리 교회가 이 시대에 복음으로 사람을 살리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소그룹 나눔지
1) 관찰
- “작은 자”를 업신여기지 말라는 명령의 이유는 무엇입니까?(10절)
- 14절에서 드러나는 아버지의 뜻은 무엇입니까?
2) 해석/복음
- 잃은 양 비유(12-13절)는 하나님의 마음을 어떻게 보여줍니까?
- 15-17절의 권면 절차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3) 적용
- 내가 무시하거나 거리 두고 싶었던 “작은 자”는 누구였습니까? 이번 주 어떤 태도를 바꾸면 좋을까요?
- 갈등을 피하려고 덮어둔 죄의 문제가 있습니까? 사랑으로 권면하기 위해 내가 취할 첫걸음은 무엇입니까?
4) 함께 기도
- 공동체 안의 연약한 지체가 회복되도록 중보합시다.
- 우리 교회가 사랑과 거룩이 균형 잡힌 권면의 공동체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 오늘의 묵상 | 작은 자를 잃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마음 (마태복음 18:10-20)
📖 본문 말씀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마 18:10, 14-15)
✏️ 묵상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교회의 눈을 바로 세우십니다. 우리는 쉽게 “큰일”에는 민감하면서도, 공동체 안의 “작은 자”는 지나치기 쉽습니다. 연약하고 느리고, 자꾸 넘어지고, 마음이 닫혀 있는 사람을 보면 내 마음이 먼저 피곤해집니다. 그런데 주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업신여기지 말라.” 작은 자를 가볍게 여기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 사람을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거스르게 됩니다. 여기서 핵심은 천사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작은 자가 결코 하찮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잃은 양의 비유로 아버지의 뜻을 보여주십니다. 목자는 아흔아홉을 두고 한 마리를 찾으러 갑니다. 세상 기준으로는 비효율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사랑이 기준입니다. 아버지는 작은 자 하나도 잃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이 말씀은 단지 감정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흔들리는 영혼을 끝까지 붙드시려는 하나님의 선하신 의지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정리”가 아니라 “회복”을 선택해야 합니다. 포기하고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고 기다리고 기도하는 길로 부름받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죄의 문제를 다루는 길을 가르치십니다. 목적은 벌이 아니라 “형제를 얻는 것”입니다. 먼저 조용히 권면하고, 필요하면 증인과 함께 하고, 끝내 교회가 함께 붙듭니다. 이것은 사람을 눌러 이기기 위한 절차가 아니라, 죄에 묶인 형제를 자유롭게 하기 위한 사랑의 질서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죄를 덮어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고, 분노로 정죄하는 것도 거룩이 아닙니다. 복음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지만, 죄인을 버리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은 죄의 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다시 품으셨습니다. 그러니 오늘 내게 필요한 것은, 작은 자를 향한 냉소를 버리고, 회복을 향한 한 걸음을 내딛는 순종입니다.
오늘 내 마음을 비춰봅시다. 내가 마음으로 ‘작은 자’ 취급했던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내가 피하고 덮어두었던 죄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주님은 우리를 정죄하려고가 아니라, 형제를 얻고 공동체를 살리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고, 한 영혼을 향해 사랑으로 다가가는 성도님이 되시기 바랍니다.
🙏 기도
아버지 하나님, 작은 자 하나도 잃지 않으시는 주님의 마음을 제게 부어 주소서. 제가 연약한 지체를 업신여기거나 포기했던 마음을 회개합니다. 주님, 사랑으로 권면할 용기를 주시고, 권면을 받을 때는 겸손히 돌이킬 마음을 주소서. 우리 교회가 정죄와 방치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고, 복음으로 회복을 이루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오늘의 적용 한 줄
오늘 ‘작은 자’ 한 사람의 이름을 적고 기도하며, 안부 한마디로 회복의 첫걸음을 내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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