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는 율법주의, 살리는 율법정신
(누가복음 6:1-11)
서론: 율법, 생명을 위한 것인가 억압을 위한 것인가?
한 유명한 판사가 법정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법은 정의를 위한 것이지 사람을 옭아매는 족쇄가 아니다."
이 말은 우리가 법을 해석할 때 단순한 조항의 나열을 넘어 그 정신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에서 말하는 율법도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법이지, 인간을 억압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문자 그대로 적용하여 사람을 정죄하는 도구로 삼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죽이는 율법주의를 거부하시고, 참된 율법의 정신, 즉 살리는 율법을 보여주십니다.
1. 생명을 무시한 율법주의 (1-5절)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눅 6:5)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 먹었을 때, 바리새인들은 즉시 이를 문제 삼으며 예수님께 따졌습니다. 안식일에는 어떤 노동도 해서는 안 된다는 그들의 해석에 따르면, 제자들의 행위는 추수와 타작에 해당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리새인들이 왜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안식일 규정을 지키려고 했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적 전통을 하나님께 대한 충성의 표현으로 여겼고, 이를 통해 경건을 증명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율법이 본래 지니고 있던 하나님의 의도, 즉 인간을 위한 법이라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데 있습니다.
율법은 본래 하나님께서 인간을 보호하고 복을 주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안식일의 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쉼을 허락하시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재충전할 기회를 주신 날입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이 날을 철저히 지켜야 하는 의무로 만들었고, 그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께 불충하는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문제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리고, 그 과정에서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시각을 깨우쳐 주시기 위해 다윗의 예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던 시절, 굶주린 자신과 부하들을 위해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먹었던 사건을 언급하셨습니다(삼상 21:1-6). 율법에 따르면 일반 백성이 진설병을 먹는 것은 금지된 일이었지만, 당시 제사장 아히멜렉은 다윗과 그의 일행이 굶주려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여 율법을 융통성 있게 적용했습니다. 즉, 율법을 문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정신을 이해하고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예를 통해 바리새인들에게 율법의 본래 정신을 돌아보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신앙 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때때로 규칙과 형식을 너무 중요시하여 정작 그 안에 담긴 본질을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전통과 질서를 강조하다 보면, 어느 순간 사람보다 규칙이 우선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이며, 율법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 이유는 단순히 율법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눅 6:5)라고 선언하신 것은 단순한 권위의 주장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만드신 분이시며, 율법의 본래 목적이 무엇인지 가장 잘 알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율법이 사람을 옭아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생명을 살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율법을 지킬 때, 단순한 규칙 준수를 넘어서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실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 적용:
우리도 때때로 교회 안에서 규칙과 전통을 너무 강조하다가 정작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규율과 형식을 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을 살리는 정신이 살아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2. 사랑 없는 율법의 잔인함 (6-7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눅 6:7)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한쪽 손이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신체적 장애는 단순한 건강상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종교적 문제로 여겨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신체적 장애가 죄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따라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죄인 취급을 받거나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 사람은 단순한 병자가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고립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 사람이 치유받을지 예의주시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관심은 그 사람의 회복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이를 빌미로 예수님을 공격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즉, 한 사람의 고통과 아픔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고, 오직 자신들의 종교적 권위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 없는 율법주의의 실체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율법을 어떻게 적용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만약 율법이 사람을 정죄하고 억압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통해 사랑을 실천하도록 하셨고, 이를 통해 이웃을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자신의 권력과 입장을 고수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러한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규칙을 강조하고, 전통을 고수하는 것이 때로는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사람을 살리는 방향이 아니라 사람을 정죄하고 배척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우리는 율법주의에 빠진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규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규칙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태도를 단호하게 꾸짖으셨고, 그들에게 율법의 본래 정신을 상기시키셨습니다. 율법은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규칙을 따를 때,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 적용:
우리는 혹시 신앙생활 속에서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정죄하는 도구로 율법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른 사람의 신앙과 삶을 판단하기 전에,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먼저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3. 살리는 율법의 능력 (8-11절)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눅 6:10)
예수님께서는 손 마른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 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에게 "손을 내밀라"고 하셨습니다. 손을 내미는 순간, 그의 손은 회복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행동은 단순한 치유의 기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율법의 본래 목적을 회복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율법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이며,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율법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금 가르쳐 주십니다. 율법은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해석되고 실천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할 때, 사랑과 긍휼의 정신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신앙은 율법주의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신앙이 될 것입니다.
👉 적용:
우리가 말씀을 적용할 때, 규칙을 지키는 것에만 집중하기보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는 율법을 이용해 누군가를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율법의 정신을 따라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결론: 생명을 살리는 율법의 정신을 따르라
우리 신앙의 핵심은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정죄의 도구로 삼았지만, 예수님은 율법을 생명을 살리는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도 신앙 생활에서 규칙을 중요하게 여기되, 그것이 사랑과 긍휼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율법을 사랑으로 해석하고 실천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됩시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율법을 문자적으로 적용하여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랑과 생명의 정신을 따르게 하소서. 예수님처럼 긍휼과 자비로 사람을 대하고, 율법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도구로 삼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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