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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오늘의 QT)

복음을 위하여 달리는 사람(고린도전서 9:19-27)

by essay2598 2026.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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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을 위하여 달리는 사람

본문: 고린도전서 9:19-27


서론

우리는 흔히 자유를 좋아합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어합니다.
내 시간도, 내 돈도, 내 삶도 내 뜻대로 쓰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자유를 따라 살수록 오히려 더 자기중심적이 되고, 더 쉽게 지치고, 더 쉽게 사람과 충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유를 “나를 위한 권리”로만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놀라운 말을 합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다.”

자유로운 사람이 왜 스스로 종이 되었습니까?
억지로입니까? 아닙니다.
복음 때문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 자기 권리를 내려놓았습니다.
사람을 얻기 위해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복음을 위해 달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느냐?”
“너의 자유는 누구를 살리고 있느냐?”

오늘 본문을 통해 복음을 위하여 사는 사람의 모습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복음은 나의 자유를 사랑의 섬김으로 바꿉니다

19절입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바울은 분명 자유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누구에게 매인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자유를 자기 편안함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종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스스로”입니다.
억지로가 아닙니다.
복음 때문에 자원해서 자신을 낮춘 것입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바울의 마음에는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한 영혼이라도 복음을 듣게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사람을 살리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은 사람을 이기적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복음은 사람을 섬기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러셨습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종의 형체를 입으셨습니다.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으시고 섬기러 오셨습니다.

복음을 진짜 경험한 사람은 높아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낮아집니다.

가정에서도 그렇습니다.
교회에서도 그렇습니다.
직장에서도 그렇습니다.

내 주장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이 됩니다.

때로는 손해 보는 것 같고,
억울한 것 같고,
내가 왜 참아야 하나 싶은 순간도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네 자존심이 더 중요하냐, 영혼이 더 중요하냐?”

바울은 자신의 자유보다 영혼 구원을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오늘 우리도 물어야 합니다.

나는 자유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내 편안함을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을 살리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을 아는 사람은 자기 권리보다 영혼을 더 소중히 여깁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섬김의 자리로 부르십니다.


2. 복음은 사람을 얻기 위해 나를 맞추게 합니다

20-22절에서 바울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되었고,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처럼 되었고,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처럼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바울은 진리를 바꾼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타협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람에게 다가가는 방식을 바꾼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종종 “내 방식”에 너무 익숙합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나는 표현 못 해.”
“나는 다가가는 스타일이 아니야.”

그런데 바울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을 얻기 위해 자신을 조정했습니다.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자리로 내려갔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복음은 전달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세리와 함께 식사하셨고,
죄인들과 가까이하셨고,
연약한 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함을 잃지 않으셨지만,
죄인들에게 가까이 가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과 단절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진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상처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를 두려워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가까이 오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 높은 자리에서만 말하면 그들은 다가오지 못합니다.

복음은 높은 자리에서 던지는 돌이 아닙니다.
복음은 낮은 자리에서 건네는 생명의 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누군가의 아픔에 가까이 가고 있습니까?
누군가를 얻기 위해 내 모습을 조정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말합니다.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라.”

이 마음이 우리 안에도 있어야 합니다.

복음은 우리를 사람에게 가까이 가게 만듭니다.


3. 복음은 목표 있는 절제와 끝까지 달리는 삶을 요구합니다

24절부터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바울은 갑자기 운동장 이야기를 합니다.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당시 고린도 지역에는 운동 경기가 유명했습니다.
사람들은 우승하기 위해 철저하게 훈련했습니다.

먹는 것도 절제했습니다.
생활도 절제했습니다.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말합니다.

세상 사람도 썩을 면류관을 위해 그렇게 하는데,
우리는 썩지 않을 영원한 상을 위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무슨 뜻입니까?

목표 없이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디를 향해 가는지는 모릅니다.

돈을 위해 달립니다.
인정을 위해 달립니다.
성공을 위해 달립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묻게 됩니다.

“내가 왜 이렇게 달리고 있지?”

목표 없는 인생은 결국 허무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위한 삶은 방향이 분명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영혼을 위해,
주님을 위해 달리는 삶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 몸을 쳐 복종시킨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자기 자신과 싸운다는 뜻입니다.

게으름과 싸우고,
욕심과 싸우고,
죄와 싸우고,
육체의 욕망과 싸우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끝까지 복음 안에 서 있기 위해서입니다.

신앙은 순간의 열심이 아닙니다.
끝까지 달리는 것입니다.

처음은 뜨거운데 끝이 흐려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처음에는 헌신하는데 점점 식어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끝까지 달리기를 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끝까지 달려야 합니다.

기도도 끝까지,
사명도 끝까지,
예배도 끝까지,
믿음도 끝까지 붙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상은 썩지 않을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위한 삶은 방향 있는 삶이며, 절제하며 끝까지 달리는 삶입니다.


결론

오늘 바울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복음을 위해 자유를 내려놓았습니다.
복음을 위해 사람에게 맞추었습니다.
복음을 위해 끝까지 자신을 절제하며 달렸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위해 그렇게 사셨습니다.
우리를 얻기 위해 하늘 영광을 내려놓으셨고,
십자가까지 순종하셨고,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 복음이 오늘 우리를 살렸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복음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내 편안함보다 영혼을 위해,
내 자존심보다 사랑을 위해,
세상 만족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상을 받도록 달려가라.”

끝까지 복음을 붙드십시오.
끝까지 사람을 사랑하십시오.
끝까지 믿음으로 달려가십시오.

주님께서 마지막 날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그 은혜의 자리까지 끝까지 달려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1. 복음을 위해 내 권리보다 영혼을 더 사랑하게 하소서.
  2.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낮아지고 섬기게 하소서.
  3.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달려가게 하소서.
  4. 썩지 않을 영원한 상을 바라보며 살게 하소서.

 

오늘의 말씀 묵상

“복음을 위하여”

본문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고린도전서 9:23)


우리는 종종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내 감정, 내 계획, 내 권리, 내 편안함이 우선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바울은 전혀 다른 삶의 방향을 보여줍니다.

“나는 복음을 위하여 산다.”

바울은 자유로운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유를 자기 만족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람을 얻기 위해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처럼 다가갔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요?

한 영혼이라도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아는 사람은 자기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바꿉니다.

“나는 무엇을 얻을까?”보다
“어떻게 하면 누군가를 살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합니다.

또 바울은 운동선수처럼 달리라고 말합니다.
목표 없이 살지 말고, 믿음의 방향을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순간의 감정이 아닙니다.
끝까지 달려가는 삶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습니까?

세상의 인정입니까?
성공입니까?
편안함입니까?

아니면 복음을 위한 삶입니까?

오늘 하루도 복음을 위해 살아가십시오.
말 한마디에도, 행동 하나에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도 복음이 드러나게 하십시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상을 받도록 달려가라.”


묵상 질문

  1. 나는 내 자유를 누구를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까?
  2. 복음을 위해 내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3. 지금 내 삶의 방향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내 삶의 중심이 내가 아니라 복음이 되게 하소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낮아지게 하시고, 끝까지 믿음의 길을 달려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오늘도 살아가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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